작가연재 > 무협물
지옥왕
작가 : 김남재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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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화
작성일 : 16-11-21     조회 : 826     추천 : 0     분량 : 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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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텁석.

 그림자의 주인은 다름 아닌 탈명삼귀의 막내인 삼귀였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그가 손에 박힌 젓가락을 빼내고 적월을 뒤에서 덮쳐 온 것이다.

 커다란 사내의 우람한 손이 단단하게 적월을 옭아맸다. 삼귀는 양팔을 옭아맨 채로 크게 소리쳤다.

 “쥐방울만 한 놈! 형님들, 어서 이놈을……!”

 삼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일귀의 얼굴에 혈색이 감돌았다. 지금은 기회다. 제아무리 뛰어난 박투술을 지녔다 해도 이 상태라면 어찌 공격을 피해 내겠는가.

 헐떡거리면서 다가온 이귀와 일귀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인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도를 꺼내 들었다.

 차앙!

 객잔에서 싸움 구경에 한창이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 버렸다. 아무리 못 볼 꼴을 보였다 해도 상대는 어린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향해 무기까지 꺼내어 드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가 없었다.

 “저걸 어째!”

 “당신이 좀 말려 봐, 이 사람아.”

 “아니, 왜 그걸 나한테 시키는가! 자네가 하면 되잖은가!”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잔뜩 터져 나왔지만 정작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탈명삼귀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지독한 살기 때문이다.

 도를 뽑아든 일귀와 이귀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린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었으니…… 날 탓하지 마라!”

 말을 마친 이귀가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적월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람한 팔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면 빠져나가면 그만 아닌가.

 적월이 뭔가를 하려고 하는 그 순간이었다.

 차라랑.

 맑은 소리와 함께 검 한 자루를 든 여인이 앞을 막아섰다. 여태까지 뒤에서 조용히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설화의 등장이었다.

 그녀의 검이 이귀의 검을 쳐 내는 것과 동시에 혈도를 제압했다.

 사람을 향하는 칼임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단숨에 이귀를 제압한 설화가 뒤를 돌아 적월을 보며 빙긋 웃었다.

 “칼까지 뽑아 들어서 더는 못 보겠어서 나섰어요. 제 낭군님을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뭐요?”

 낭군이라는 말에 당황하면서도 적월 또한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설화의 말하는 어투가 무척이나 귀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설화가 무공을 익혔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적월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무공을 익힌 수준이 아니다.

 검으로 상대에게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점혈을 했다.

 저런 나이 대에 이루기 힘든 성취가 분명했다.

 ‘역시 제왕검의 딸이라 이건가…….’

 하지만…….

 ‘이렇게 좋게 끝내는 건 맘에 안 든단 말이지.’

 적월은 갑작스러운 설화의 움직임에 놀라 정신이 팔린 삼귀를 향해 공격을 펼쳤다.

 빠악!

 적월의 발바닥이 정확하게 삼귀의 발등을 내리찍었다.

 엄지와 두 번째 발가락 사이에 위치한 태충혈이 정확하게 가격당했다.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온몸이 찌릿거리며 마비가 된 듯이 덜덜 떨렸다.

 그런 삼귀의 안면에 가볍게 주먹을 한 방 먹여 준 적월이 고개를 돌리며 일귀를 향해 다가가는 설화를 향해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잠깐, 그놈은 제 겁니다.”

 

 화룡검문의 안채에 앉은 두 사내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은 바로 화룡검문의 주인인 설리표와, 적월의 아버지인 적사문이었다.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홍초희가 아까 자리를 떴지만, 사실 둘만의 대화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한 그녀의 행동이었다.

 그런 그녀의 배려 덕분이었을까?

 빈 적사문의 술잔에 술을 채우며 설리표가 천천히 속에 담긴 이야기를 꺼냈다.

 “슬슬 돌아오는 게 어때?”

 “또 그 소리. 못 들은 걸로 하겠네.”

 “아니, 똑바로 들어 줬으면 좋겠어. 황제께서 너를 다시금 원하고 있어.”

 “…….”

 황제가 자신을 원한다는 말에도 적사문은 전혀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황제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자, 그리고 황제가 자신을 원한다는 말조차 담담히 들을 수 있을 자. 그것이 바로 이 둘이었다.

 잠시 잔을 어루만지던 적사문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났네.”

 “알고 있어. 하지만 네가 와야 해. 주천영(朱天永)을 막아 내기 위해선 너와 내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

 주천영, 황제를 지켜내는 세 가지의 방패 중 하나로 일컬어지던 자다. 황제의 오른팔로 그 뛰어난 지략으로 승상의 위치에 오른 인물.

 하지만 그 방패가 이제는 황제를 노리는 날카로운 창이 되었다는 것은 황궁 내에서도 누구나 알 정도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금은 아산촌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몸을 숨기고 살고 있지만 적사문은 십수 년 전 정이품(正二品) 좌우도어사(左右都御史)의 위치에 있던 사내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벼슬을 버리고 아산촌 같은 곳에서 숨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침묵을 유지하던 적사문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네. 다른 건 다 자네의 말대로 해 줄 수 있어도 그것만은 무리야.”

 “허어! 이거야 원…….”

 길게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설리표 또한 알고 있었다. 적사문의 마음을 쉬이 돌릴 수 없다는 것은 말이다. 그리고 더욱 조를 수도 없다. 계속해서 닦달을 하여 지금처럼 오랜 시간 보지 못하고 지내지 않았던가.

 마음 같아서는 설리표 또한 적사문이 원하는 대로 편히 살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모든 자리를 내려놓고 낙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설리표는 황제의 밀명을 받고 지금 외부에서 힘을 기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적사문이다.

 지금 승상의 자리에 있는 주천영이 유일하게 두려워한 인물이니까.

 높은 학식, 그리고 뛰어난 인품으로 적사문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학자들이 따랐다.

 적사문을 건드린다는 것은 곧 이 나라의 모든 학자들과 척을 진다는 걸 의미했으니 아무리 주천영이라 했어도 상대하기 거북했던 것은 당연했다.

 주천영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설리표, 그리고 그런 설리표를 돕던 적사문이었으니 주천영이 그를 곱게 봤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건드릴 수 없었기에 주천영은 다른 수를 썼고, 그 일로 인해 적사문은 스스로 벼슬길에서 물러나 재야에 묻힌 것이다.

 설리표는 적사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한번 정하면 쉽게 뜻을 바꾸지 않는 사내다.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해야만 하는 자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음을 바꾸게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설리표가 다시금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어찌 됐든 또 십오 년 전처럼 그냥 도망가면 용서 안 할 거야!”

 “걱정하지 말게나. 이제 사돈이 될 사이인데 내가 도망치면 내 아들도 평생 홀아비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이, 그렇게 치면 내 딸이 더 문제지 네 아들이 문제냐?”

 설리표의 말에 적사문이 피식 웃었다.

 이미 설리표의 마음은 잘 알고 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부귀영화? 명예?

 분명 그것들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사내라면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적사문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가족보다 중요하지 않다.

 평생을 사랑한 아내, 그리고 느지막이 얻은 소중한 아들 적월…….

 그 둘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계속.

 적사문이 술잔에 담긴 술을 마시며 한마디 툭 던졌다.

 “단둘이 나가더니 언제 들어오려나 모르겠군.”

 그 말에 설리표가 두 눈에 쌍심지를 세우며 대꾸했다.

 “어린 것들이 말이야, 들어오면 혼쭐을 내 줘야겠어.”

 

 ***

 

 공화로 떠난 지 삼 일 만에 적월을 비롯한 세 명은 다시금 아산촌을 향해 출발했다.

 그날 객잔에서의 사건 이후 내심 부모님에게 무엇인가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했던 적월이었다. 하지만 적사문도, 홍초희도 그날의 일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이틀 내내 눈치를 봤지만 결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설화가 그 일에 대해 함구했다는 거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설화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조차 객잔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지 않은 듯했다.

 물론 내공이 금제되어 있으니 알아차릴 수도 없긴 하겠지만 어찌 됐든 의심의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니 적월 본인으로서는 무척이나 좋은 결과였다.

 ‘하암.’

 적월은 길게 하품을 했다.

 오랜만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그것을 제하고는 그리 좋을 것도 없는 여정이었다. 뜬금없는 약혼녀에 객잔에서 싸움질까지 벌였다.

 물론 걸리지 않았으니 그만이긴 하지만 뒤가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무공을 되찾고 결국 떠나야겠지만, 그 전까지는 적사문과 홍초희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자그마한 행복이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마차에서 적월은 앞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긴 여정 탓에 피곤했는지 홍초희는 적사문의 어깨에 기댄 채 깊은 숙면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적사문은 혹시나 홍초희가 깰까 봐 조심스레 머리를 받쳐 주고 있었다.

 별것 아닌 광경일 수도 있지만 적월은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상념에 잠겨 있을 때였다.

 마차가 마침내 아산촌에 도착했다.

 익숙한 아산촌의 초입에 시선이 돌아갈 때 옆쪽에서 익숙한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의 정체는 장씨 성을 지녔기에 장노(將老)라 불리는 자였다.

 장노가 마차를 불러 세웠다.

 “적 대인, 안에 계십니까?”

 장노의 목소리를 들은 적사문이 어깨에 기대어 잠든 홍초희를 깨우고는 마차 바깥으로 걸어 내려갔다.

 적사문이 마차로 다가온 장노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며 말했다.

 “설마 여기서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지라…….”

 워낙 조그마한 마을이기에 동네 주민들이 모두 알고 지낼 정도다. 개중에 장노는 마을의 대변인으로 모두의 뜻을 모으는 인물이다.

 자주 만나 다과를 즐기는 사이이기에 제법 친분이 있는 둘이다. 십오 년은 알아 왔고 그 덕분에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해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적사문은 장노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마도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적사문이 장노를 향해 조그마하게 말했다.

 “우선 마차에 오르시죠.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 가서 들어야 할 듯싶군요.”

 “그러지요.”

 장노가 성큼 마차에 올라탔다.

 

 “현감(縣監)이 아산촌에 왔다 이 말씀이십니까?”

 자리에 둘러앉은 채 차를 마시던 적사문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예. 적 대인께서 이곳 아산촌을 떠난 바로 이튿날 갑작스럽게 찾아오더군요.”

 이곳 아산촌은 워낙 작은 마을이었기에 현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형식상으로 관부가 있긴 했지만 그곳은 처음 적사문이 이곳 아산촌에 왔을 때부터 비어 있을 정도였다.

 “현감이라…….”

 갑작스러운 현감의 부임, 하지만 장노가 이토록 안색이 좋지 않은 건 그저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자유롭게 살던 이들이니 현감이 등장한 것이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애초에 관부가 있는 곳, 관원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노가 따뜻한 차로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오시는 동안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셨습니까?”

 “이상한 점이요?”

 적사문이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무엇인가 변했다는 걸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만히 앉아만 있던 적월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없었죠.”

 “허, 그러고 보니 오는 내내 아무도 보지 못했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적사문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적월을 바라봤다. 대단한 눈썰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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