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지옥왕
작가 : 김남재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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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화
작성일 : 16-11-22     조회 : 826     추천 : 0     분량 : 5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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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말을 해도 통할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우선 돌아가리다.”

 적사문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이야기를 해 봤자 통할 자가 아니다. 이곳에서 굳이 심력을 소모하면서까지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니라는 거다. 차라리 돌아가서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낫다.

 뒤돌아선 적사문의 등 뒤로 엄등이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고작 이딴 촌구석 유지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들으라고 한 말이니 적사문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적사문은 꾹 참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 적사문을 바라보며 적월은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확 솟구쳤다.

 그냥 당하고만 있는 건 적월의 성격상 맞지 않았다.

 적월이 엄대웅을 스치듯이 지나가며 속삭이며 말했다.

 “돼지 새끼야, 너 오늘 운 좋았다.”

 “뭐?”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들었다.

 돼지 새끼라는 단어를.

 그것은 엄대웅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아빠! 저 새끼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걸 뒤로 하고 적월은 무시하듯 관부를 빠져나왔다.

 관부의 닫힌 문을 슬쩍 돌아본 적월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감돌았다.

 

 시각이 늦은 밤이다.

 인시(寅時)가 될 때까지 자리에 누워 있던 적월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순간 떠진 적월의 두 눈에서 적색 안광이 터져 나왔다.

 새빨간 기운이 주변을 휘도는 듯하더니 이내 검은 눈동자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기묘한 광경이지만 이것은 매일 밤 적월의 방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 현상은 다름 아닌 요력을 쌓으면서 생긴 것이다.

 요력이 짙어져 갈수록 붉은 안광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매일 밤 최소 네 시진가량은 요력을 쌓는 시간이다.

 덕분에 하루에 자는 시간은 최대 한 시진.

 갓난 아이 때부터 변하지 않는 하루 일과였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적사문이나 홍초희의 입장에서는 적월이 항상 너무 잠이 많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평소에는 해가 뜨기 직전인 묘시(卯時)에서 진시(辰時)까지 요력을 쌓다가 잠깐 눈을 붙였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훈련을 마쳤다.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아산촌으로 부임해 온 현감과, 그의 아들에 관련해서다.

 ‘어떻게 해 줄까.’

 침상에 걸터앉은 채로 적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예전의 적월이었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에 뛰어 들어가서 다 때려 부순 후에 놈들을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죽을 때까지 구경을 했을 게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적월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당장에 그런 큰 문제를 일으켰다가는 관부에서 사람이 올 것이고, 그건 적월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그냥 두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놈들에게 두고두고 후회할 만한 일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젠장, 갑갑하군.’

 골똘히 앉아서 고민을 하던 적월의 머릿속에 퍼뜩 무엇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방법이 있었다.

 벌떡.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서재에서 본 책이 기억났다. 원래 책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적월의 관심을 끌어 끝까지 읽었던 것이 있다.

 시간이 워낙 늦었기에 지금쯤이면 서재에 아무도 없을 게 분명했다. 적월은 빠르게 겉옷을 걸쳐 입고 적사문의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서재는 한적했다. 서재로 들어선 적월은 초에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원하는 서책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더라. 이쯤에 있었는데…….’

 빠르게 원하던 것을 찾던 적월의 손이 마침내 책을 발견해 냈다.

 독문첩서(毒問捷書).

 독문첩서는 수많은 독에 대해 적혀 있는 서책이다.

 독에 대해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마교 교주 시절 봐 오던 그러한 것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독들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서책에 실린 독들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게 대부분이다. 뭘 잘못 먹거나 해서 중독되는 독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거다.

 독버섯이나 독사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이것에 당했을 때 어찌 해독해야 하는지가 나열되어 있는 서책이었던 것이다.

 적월은 빠르게 서책을 넘겼다.

 그리고 이내 적월은 원하던 것을 찾아내고는 씩 웃었다. 적월이 찾고 있던 독은 단장산(斷腸散)이다.

 장을 끊을 듯한 고통을 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혈사(紅血蛇)라는 뱀이 있다.

 청해성의 일부 지방에만 존재하는 뱀으로 핏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적색 몸을 지닌 놈이다.

 그 모습이 심히 섬뜩하긴 하지만 독사는 아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놈들은 온순하고, 또 물린다고 해도 몸에 전혀 이상이 없다.

 문제는 바로 놈의 허물이다.

 물론 이 허물 또한 심각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홍혈사의 허물과, 다른 어떠한 것이 만나는 순간 이것은 단장산이라는 독이 된다.

 홍혈사와 쌍을 이루는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복숭아씨를 으깬 가루다.

 홍혈사의 허물을 먹고 한 시진 안에 복숭아씨 가루를 먹게 되면 생겨나는 독, 그것이 단장산이다.

 두 개가 뱃속에서 뒤엉키는 순간 사람들은 장이 끊어질 듯한 고통과 함께 뜨거운 고열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 독은 어마어마한 고통은 줄지 모르지만 몸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죽음까지 이르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라면 말이 다르다.

 성인은 복통과 고열에서 끝날지 모르겠지만 몸이 아직 체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최악의 경우 목숨을 앗아 갈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적월은 바로 이 단장산이라는 독을 현감인 엄등의 아들 엄대웅에게 먹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엄대웅이다.

 그런 엄대웅에게 단장산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적월은 망설임이 없었다.

 죄의식? 그런 건 가져 본 적도 없다.

 살기 위해 싸워 왔던 인생이다.

 남을 배려하다가는 죽었고, 그러한 것을 배우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교주의 자리에 올랐고 그곳까지 오르기 위해 손에 묻힌 피만 해도 수백이 훌쩍 넘는다.

 그런 적월이었기에 이 같은 행동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그리고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 누구도 적월을 말리지 못했고, 또 탓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교 교주라는 자리였다.

 물론 환생을 한 이후 전생과는 다르게 조용히 아산촌에서 숨어 지내고 있지만 대부분이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나마 교류하고 있는 것이 이 마을사람들인데 그들과는 크게 대화를 섞지도 않는다.

 그나마 부모인 적사문과 홍초희와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어색함을 감추기도 힘들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적월은 서둘러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복숭아씨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홍혈사의 허물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지금 같은 추운 겨울에야 뱀들은 땅굴을 파고 긴 잠에 빠져 있을 시기다.

 ‘서둘러야겠어.’

 적월이 황급히 집을 벗어나 아산을 향해 움직였다.

 

 적월이 아산에서 내려온 것은 무려 반나절 가까이가 지난 후였다. 아산을 마치 쥐 잡듯 뒤지고 다녔지만 겨울잠에 빠진 홍혈사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땅꾼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홍혈사를 찾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게다. 하지만 적월에게는 전생에 산속에서 수년 동안 홀로 생존해 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 덕에 뱀굴을 찾는 것 자체는 어떻게든 가능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홍혈사가 있는 곳이어야 했고, 또 꺼내어 들 허물이 있어야 했다. 그랬기에 반나절이 넘는 시간을 아산에서 소비하고 만 것이다.

 흙이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적월은 조심스럽게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바랐거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낮부터 안 보이더니 어딜 갔다 오느냐?”

 적월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서 있는 적사문이 있었다. 적월은 손에 든 뱀허물을 슬쩍 등 뒤로 감추며 말했다.

 “잠깐 놀다 왔어요.”

 “그래?”

 별일도 다 있다는 듯 적월을 한번 바라본 적사문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 어서 들어가서 공부도 좀 하고 그러렴.”

 “예, 그럼 이따 뵐게요.”

 말을 마친 적월이 황급히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저 인자하게 바라보던 적사문이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웬일로 저리 옷까지 더럽히며 다녔는지 모르겠군.”

 평소 적월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한편 방 안으로 들어온 적월은 조심스럽게 준비해 온 돌로 홍혈사의 허물을 빻기 시작했다.

 징그러웠던 허물이 점점 가루처럼 변해 갔다.

 그러고는 가루가 된 허물을 손아귀에 꽉 움켜쥔 적월이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엇인가가 담긴 조그마한 바구니를 들고 걸어 나왔다. 그 안에는 맛있어 보이는 곶감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곶감 중 일부는 결코 맛있지만은 않을 게다.

 현감의 아들 엄대웅이 있는 관부로 직접 찾아갈 생각은 없다.

 적월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네놈이 날 찾아올 거야.’

 그냥 기다릴 생각이다. 놈은 곧 온다.

 그리고 놈은…… 먹어선 안 될 미끼를 물게 될 것이다.

 

 “야!”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겨 있던 적월이 슬쩍 눈을 떴다. 햇빛을 가리고 선 이는 다름 아닌 엄대웅이었다.

 예상대로 엄대웅은 마을 공터에 있던 적월을 찾아왔다.

 아산촌으로 온 이후에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엄대웅이다. 적월은 그걸 알고 마을 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공터에서 왁자지껄하게 일부러 판을 벌렸다.

 당연히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엄대웅이 그걸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던 엄대웅은 이내 적월을 발견했고, 어제의 일을 앙갚음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적월은 엄대웅을 힐끔 올려다보고는 이내 귀찮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엄대웅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게!”

 엄대웅이 적월을 향해 냅다 발을 내질렀다.

 비대한 몸집을 한 엄대웅이었지만 그 공격은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 민첩했다. 그 이유는 엄대웅이 어릴 때부터 몇몇 무인들을 스승으로 둔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공에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었기에 제대로 익힌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딴에 몇 수 배운 것이 있었다.

 개중 하나가 지금 내지른 비연각(飛燕脚)이라는 각법이었다. 물론 내공 하나 실리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어린아이가 피하기엔 쉽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보통 아이였다면 말이다.

 휙.

 적월은 옆으로 슬쩍 몸을 움직이며 공격을 피해 낸 후에 재빠르게 손으로 엄대웅의 발목을 잡아챘다.

 “어어어?”

 쿠다당!

 균형을 잃은 엄대웅이 땅바닥을 굴러 버렸고, 주변에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 탓에 근방에서 뛰놀던 어린아이들의 시선이 다 이쪽으로 쏠리고야 말았다.

 “다들 눈 안 깔아!”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엄대웅이 소리쳤다.

 부끄러웠고, 화가 치솟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엄대웅은 재차 비연각을 날렸다. 처음 그 공격을 피한 것은 분명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벌어진 상황은 아까와 똑같았다.

 쾅!

 “이 새끼가!”

 다시금 넘어진 엄대웅이 분에 찬 듯이 욕을 퍼부으려고 할 때였다. 여태 가만히 앉아만 있던 적월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넘어져 있는 엄대웅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오싹.

 욕을 내뱉으려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딱 붙어 버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시선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대웅을 내려다보던 적월이 입을 열었다.

 “뭐 하냐?”

 “아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엄대웅은 방금 전처럼 공격을 해 댈 수가 없었다. 다시금 덤빈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힘으로 안 되자 엄대웅은 다른 패를 꺼내어 들었다.

 엄대웅은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듯 말했다.

 “야, 너 조심해라. 함부로 까불다가는 이 마을에서 살기 힘들 테니까.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말만 하면 너나 네 애비 전부 박살이 날거야. 알겠어? 그러니까 건방 떨지 마, 이 새끼야!”

 “하아, 정말.”

 적월은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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