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지옥왕
작가 : 김남재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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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화
작성일 : 16-11-22     조회 : 907     추천 : 0     분량 : 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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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독의 종류는 수천수만 가지나 된다.

 그 모든 것을 기준으로 엄대웅을 살핀다면 적사문으로서는 독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다. 그랬기에 그는 우선 현실적으로 근방에서 구할 만한 독들의 종류를 간추렸다.

 그리고 개중에 생명을 앗아 갈 수 있는 독들에 대해 다시금 정리를 내렸다. 그러자 그 수많은 독들이 단숨에 다섯 개 이내로 좁혀졌다.

 삼진사(三進死)? 아니다. 이 독이었다면 삼 보를 걷기 전에 죽는다. 삼진사에 당했다면 이미 죽었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무가에 깊은 연이 없다면 구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구음향(九陰香)이나 표염향(飄閻香)? 이것도 아닌 건 매한가지다. 엄대웅은 밥을 먹다가 경련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마지막 하나 사혼초(死魂草)다.

 사혼초는 구하기 힘든 풀이긴 하지만 아산 깊숙한 곳에 일부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 사혼초는 워낙 생긴 게 독특하기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조심하는 풀이기도 했다. 한데 사혼초라고 보기에는 증상이 다르다.

 사혼초는 생명을 앗아 가는 독이긴 하지만 이처럼 지독하게 앓지 않는다. 더군다나 사혼초였다면 적사문보다 먼저 이곳으로 왔던 의원 문보생 또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만큼 사혼초는 이곳 아산촌에서는 널리 알려진 독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혼초도 아니라는 것인데…….

 적사문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삼진사, 구음향, 표혐향,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혼초까지 전부 아니다.

 이 모든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미간을 꾹 누르고 있던 적사문의 머리에 또 하나의 독이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적사문이 고개를 확 하고 치켜들었다.

 적사문의 일거수일투족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엄등이 다급하게 물었다.

 “뭐, 뭔지 알아차린 것이오?”

 “이것은…….”

 단장산이다.

 어른에게는 그저 복통만 유발하는 종류의 독이었기에 바로 생각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는 아직 어린아이, 단장산이라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군다나 이 증상, 이것은 바로 단장산의 것과 일치했다.

 독의 정체를 파악하는 순간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차라리 사혼초였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단장산을 복용했다는 것은 정말로 죽일 생각을 하고 벌인 일이라는 소리다.

 단장산은 홍혈사의 허물과, 복숭아씨가 합해지면서 생겨나는 신기한 독이다. 결코 실수로 먹이거나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고의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누가 그같이 잔혹한 짓을 벌인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 단장산이라는 독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자신을 제하고 아는 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데 대체 누가!

 적사문은 이내 한 명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렸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떠오른 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설마…… 그 녀석이.’

 적사문은 단번에 이 일의 배후에 적월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적사문의 서재에 들어갈 수 있고, 오늘 아침의 거동 또한 생각나서다. 흙이 잔뜩 묻어 있던 옷을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산에 올랐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토록 옷이 지저분해진 게 분명했다.

 범인을 알아냈기에 적사문의 마음은 더욱 불편해졌다. 이 독에 대해 사실대로 말한다면 적월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적사문이 대답을 망설이자 엄등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그러시오! 속 시원하게 말 좀 해 보시오!”

 다급하게 물어오는 엄등을 보며 적사문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지만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마을 사람들과, 아들 적월을 지켜야만 했다.

 적사문이 침착하게 말했다.

 “독이 아니오.”

 “독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요.”

 “누군가가 먹인 독 때문에 이리 된 게 아니라는 거요. 아들분이 예전부터 속이 갑갑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 그렇소.”

 고개를 끄덕이는 엄등을 보며 적사문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적으로 몸이 비대한 경우 혈액순환을 비롯해, 각종 잔병이 많다.

 당연히 엄대웅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쩍 떠본 것인데 그걸 엄등이 문 것이다.

 자신감을 얻었는지 적사문은 그대로 말을 내뱉었다.

 “그게 다 몸에 쌓인 탁기 때문이오.”

 “탁기 때문에 이리 됐다는 거요?”

 “그렇소. 한데 그 탁기 때문에 피와 정기가 지나다녀야 할 혈도가 꽉 막혀 버린 거요. 그래서 이처럼 된 것이지. 아마도 빠르게 손을 쓰지 않으면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이오.”

 “그, 그럼 어찌해야 하오?”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에 엄등의 얼굴은 죽을상이 되었다.

 적사문은 잠시 고민을 하는 척하다 이내 말했다.

 “종이와 붓을 주시겠소?”

 적사문의 말이 떨어지자 허겁지겁 엄등이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적사문이 말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엄등이 뛰쳐나가자 그제야 침묵을 하고 있던 문보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인, 탁기라니요. 제가 보았을 때는 분명…….”

 “쉿. 독에 당했다는 걸 알면 귀찮아질 겁니다.”

 그 한마디에 문보생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게 아니다. 긴 설명이 없어도 지금 적사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감탄했다.

 그 짧은 시간에 모든 걸 간파하고 이같이 행동을 할 수 있다니. 이토록 위급한 순간에도 한 치 앞까지 내다보고 결단을 내리는 적사문은 분명 이 마을에 없어서 안 될 존재였다.

 짧은 대화가 오간 이후 엄등이 종이와 벼루, 먹, 붓 등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러자 적사문이 우선 한 장의 종이에 이것저것 약재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고는 다음 장에 또다시 그러한 행동을 반복했다.

 적사문이 처음 적은 종이를 문보생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 종이에 적힌 것은 당장 구해 오셔야 합니다. 이것은 기의 흐름을 뚫어 줘서 환자의 생명을 붙잡아 줄 겁니다. 하지만 완치를 시키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론 안 됩니다. 이건 그저 시간을 벌 뿐입니다.”

 말을 마친 적사문은 두 번째 종이를 엄등에게 내밀었다.

 “아래에 있는 수하 중에 가장 날랜 자에게 이걸 전하도록 해 주시오.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귀한 약재라 조금 멀리까지 가야 할 거요.”

 “그리하리다.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 가면 되는 것이오?”

 “공화에 있는 화룡검문을 찾아가 제왕검에게 이 서찰을 전하라고 하면 될 거요.”

 아들인 엄대웅의 일로 반쯤 정신을 잃은 엄등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지금 적사문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화룡검문? 제왕검?

 어찌 그 이름을 모른단 말인가!

 엄등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귀한 자다.

 비록 벼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권력은 여전히 중앙까지 닿아 있고, 황제의 총애 또한 여전하다.

 그런 대단한 자를 마치 아무렇지 않게 부르다니.

 미쳤거나, 아니면…… 그만한 힘이 있는 자라는 소리다.

 엄등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서, 설리표 대인을 말하시는 것…… 입니까?”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공손하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적사문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적사문이 보냈다고 하면 바로 통과시켜 줄 테니 가서 서찰을 전하고 주는 걸 받아 오면 되오. 뭐 하시는 거요? 시간이 없소.”

 “아,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놀란 엄등이 황급히 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문보생 또한 우선적으로 먹을 약재를 구하기 위해 약방으로 돌아갔다.

 방이 텅 비자 적사문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후우.”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엄대웅의 생명에는 이상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적사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생각하니…… 괴로움이 밀려들었다.

 

 늦은 밤 갑작스러운 적사문의 호출에 적월은 침상에서 일어났다. 요력을 쌓아 가는 중에 방해를 받은 거라 내심 짜증스러웠지만 이렇게 늦은 밤 자신을 불러낸 적이 없는 적사문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하며 적월이 적사문의 방을 찾았다. 자시(子時)가 훌쩍 넘은 시간이거늘 방 안에는 적사문뿐만이 아니라 홍초희도 앉아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선 적월은 단번에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항상 자신 앞에서는 밝은 얼굴만을 보이던 둘이다.

 무슨 일을 벌여도 결코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차근차근 타이르거나 장난스럽게 넘어가는 둘이었다.

 한데 오늘은 달랐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적사문, 그리고 뭔가 안절부절못하는 홍초희의 표정이 대조적으로 적월의 눈에 들어왔다.

 적월이 둘 앞에 가서 앉았다.

 잠시 침묵하던 적사문이 입을 열었다.

 “왔느냐?”

 “예. 이렇게 늦은 밤에 어인 일이십니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느니라.”

 “물으시지요.”

 적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적월을 지그시 바라보던 적사문이 천천히 말했다.

 “단장산이…… 네 짓이냐?”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적월은 일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적월은 평정심을 되찾았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적월이 대답했다.

 “예.”

 “……정녕 네 짓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너라면 그 독이 어떤 건지 모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적월은 영특한 아이였다.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으며, 그러했기에 단장산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고 이 같은 일도 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영특한 적월이라면 그 모든 걸 알고 준비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상대는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나이를 떠나 사람에게 어찌 그리 잔인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단 말이냐! 네 그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모르고 그리한 것이냐?”

 “저는 그저 응당 잘못한 것에 대한 벌을 주려 했을 뿐입니다.”

 적월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적사문의 말대로 다 알고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왜?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적사문이 이토록 화를 내는 이유를 적월은 이해하지 못했다.

 설령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벌인 이 일 때문에 죽었다고 해도 적월은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신경 쓰였다면 애초부터 이 일을 벌였을 리도 없지 않은가. 이 일을 벌임으로써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의심받지 않게 하려고 음식에 복숭아씨 가루를 섞이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자신은 의심을 받지 않을 테고, 현감은 마을 사람들을 의심할 것은 자명했다.

 알면서도 한 일이다. 그들이 어찌 되든 전혀 상관도 없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죄책감도 없고, 그걸로 인해 혼나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그랬기에 적월은 당당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적사문의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뭐가 문제인가?

 약자는 죽는 것이고 강자는 살아남는 것이다.

 그것이 강호의 법칙이고 사람들 간의 암묵적인 관계가 아닌가.

 떳떳하게 말하는 적월을 바라보던 적사문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이내 다짐한 듯이 입을 열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구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래?”

 적사문의 손이 뒤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손에는 회초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본 홍초희가 놀라 소리쳤다.

 “여보! 그건…….”

 “가만히 있으시오, 부인.”

 말리려 드는 홍초희를 저지한 적사문이 적월을 향해 말했다.

 “종아리 걷어라.”

 회초리를 본 적월 또한 내심 당황했다. 단 한 번도 회초리를 든 적사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적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적월이 바지를 걷어 올렸다.

 “때리시죠.”

 적월의 당당한 모습에 적사문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처음으로 회초리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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