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풀리지 않는 의문
장원은 동현을 불렀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동현은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로 갔다.
동현의 표정에는 불쾌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런 모습을 자주 봐왔음에도 장원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앉으시죠.”
동현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오셨더군요.”
다짜고짜 묻는 장원의 질문에 잠시 당혹감이 스치는 동현이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 정애영 씨 때문에요?”
동현은 대답하지 않는다.
“곧바로 집으로 가셨던데.”
“우선, 짐을 풀어야 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경찰서에 있는데 짐을 푸는 게
먼저였군요?”
장원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동현이다.
“궁금한 게 뭡니까?”
“아내에게 목걸이를 선물하셨죠?”
“네, 아내가 무척 맘에 들어 했죠.”
“그런데 그 목걸이를 목에 감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살해됐습니다.”
“살해가 맞습니까?”
“아! 저런, 제가 실수했습니다. 자살일지도 모르니까.”
동현은 말이 없다.
그저 내내 불쾌한 표정이다.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뭐요?”
동현은 발끈하여 장원을 바라본다.
“제 질문이 이상합니까?”
“지금 상황에서 정상적이지는 않군요.”
장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놓인 화분의 꽃잎을 살살 만진다.
동현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이 화분은 제 아내가 결혼기념일 날 사준 겁니다. 동료들이 가끔 묻죠,
그 화분이 그렇게 좋아? 아내를 무척 사랑하나 봐? 라고요.”
동현은 여전히 바라만 보고 있다.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까?”
“지금 수수께끼라도 하고 싶은 겁니까?”
머리를 긁적이며 장원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이렇게 단순한 질문이 수수께끼입니까?”
동현은 여전히 말없이 장원을 바라본다.
“아내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왜 대답을 못 하시죠?”
동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지금 장난하나?”
“앉으세요!”
동현과 장원의 눈빛이 짧은 순간 부딪친다.
동현은 어이없는 듯 자리에 앉는다.
“저하고 얘기하시죠!”
김 변호사의 말에 동현이 저지한다.
“들어봅시다. 무슨 말을 하는지.”
“지난번 정애영 씨에게 보냈던 변호사가 아니군요?”
“불필요한 얘기는 나누고 싶지 않소.”
“아! 예,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집에 왔고, 정애영 씨는 경찰서에 있었고,
그날 밤 집에서 뭐했습니까?”
동현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짐을 풀었다고 말했을 텐데.”
“아! 그랬죠?”
장원의 표정이 변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애영 씨는 집 앞에서 차를 돌려 해밀턴 호텔로 갔습니다.”
동현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내 아내는 해밀턴에 자주 갑니다. 아내의 소유이기도 하고, 아마도 불상사가 있었던 집에 들어오는 것이 부담이 됐을 거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동현이 장원을 바라보며 말한다.
“본론만 얘기합시다. 난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오.”
장원은 정색하며 동현에게 묻는다.
“그러죠, 그날 이동현 씨와 함께 있던 여자가 진영희 씨 맞습니까?”
그때서야 동현의 표정이 굳어진다.
“뭐요?”
장원은 빙그레 웃는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아니라고는 못 하시는 겁니까?”
동현은 귀찮은 듯 대답한다.
“영희는 내 오랜 친구요, 불미스러운 소식을 듣고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왔었고,
그저 우연히 만났을 뿐이요.”
장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럴 수 있겠군요?”
이죽거리는 장원을 보며 동현이 주먹을 꽉 쥔다.
“곧, 자살인지 타살인지 국과수에서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땐, 싫어도 자주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동현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만 가 봐도 되겠소?”
“오늘은 가셔도 됩니다. 진영희 씨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요.”
“앞으로는 내 변호사가 올 거요.”
웃고 있지만 입가는 차가운 장원이다.
경찰서에서 나온 동현의 눈동자가 긴장되어있다.
“아내도 알고 있나?”
“제가 알기론 모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장원 씨가 입이 무거운 것 같습니다.”
“입이 무거운 게 아니라 확실치 않아서겠지.”
동현은 차에 오른다.
집에 들어서자 애영이 달려와 동현에게 안긴다.
동현은 애영을 꼭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많이 놀랐지? 이제 아무 걱정 마, 내가 있잖아.”
애영은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동현을 바라본다.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사랑해요! 여보!”
동현은 힘주어 애영을 끌어안는다.
장원은 서류를 책상에 힘껏 내던진다.
“말도 안 돼! 자살? 자살이라고? 아니야! 이건 분명히 타살이야!!”
“계장님,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그렇게 결론 내고 마무리 지으라고.”
장원은 주먹으로 책상을 힘껏 내리친다.
“아니야, 누가 봐도 이건 타살이야! 강순자씨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잖아요.”
강순자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장원은 애영의 멍한 눈빛이 떠올랐다.
이동현을 의심하고 있던 장원으로선 오기가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애영은 사건 이후, 급속도로 말수가 적어지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외출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을 새로 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제 왔던 아주머니 괜찮던데.”
멍한 눈빛으로 동현을 바라보는 애영이다.
“싫어요!”
“후우… 그럼, 다시 알아볼게.”
“아주머니를 대신 할 사람이 있을까요?”
동현은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애영아! 이제 그만 좀 해! 아주머니는!”
숨을 가다듬으며 애영의 손을 잡는다.
“더 좋은 아주머니도 많아, 내가 꼭 찾아볼게.”
애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동현은 미소 지으며 애영을 끌어안는다.
“애영아… 병원에… 가볼까?”
애영이 동현을 밀어낸다.
“병원이요?”
애영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정신과?”
“내 말은….”
애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내 정신은 말짱해요! 아무 이상 없다고요!
당신! 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이라도 시키고 싶은 거예요?”
동현은 한숨을 쉬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다.
“힘들다….”
애영은 무표정으로 동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벌써 힘들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동현은 돌아서 애영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미안, 나도 좀 예민했어,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애영도 동현을 향해 미소를 보낸다.
동현은 애영을 불끈 안아 침대에 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