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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다이나
작가 : 수다온
작품등록일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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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작성일 : 16-11-16     조회 : 550     추천 : 0     분량 : 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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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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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거리는 잔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응접실 안을 갈랐다. 멋쩍은 다이나는 아이리스가 살며시 내려놓는 잔에다 얼른 시선을 뿌렸다.

  “으음”

  목을 가다듬어 어색한 공기를 밀어내자, 아이리스의 맑은 웃음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언니”

  다이나가 큰 두 눈을 흘기며 노려보자, 아이리스는 금세 웃음을 뚝 그치고선 시치미를 뗐다. 여전히 손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유리 주전자에다 알맞게 식은 물을 붓고 있었다. 중간쯤 차오르자, 아이리스는 자신 앞에 놓인 잔에다 일정한 속도로 조금씩 끊어 물을 부었다. 장미향이 조금씩 진하게 올라와 주변을 맴돌았다.

  다이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잔에다 향긋한 향기까지 채우는, 아이리스의 모습을 감탄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시녀장이 자신의 흐트러진 눈을 잡아채기 위해 조용히 목을 가다듬었다. 얼른 다이나는 자신 앞에 놓인 잔에다 똑같이 붓기 시작했다. 밖이 잠시 소란스러워 아이리스와 다이나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문이 갑작스레 열리며 왕과 왕비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신다는 연락은 따로 받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아이리스가 다이나에게 시선을 거두며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퍼지자,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묘한 매력이 흘러나왔다. 자신을 달래는 부드러운 어머니의 눈을 아이리스는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자 이내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자신의 유순한 표정을 만족스럽게 보시던 어머니가 말했다.

  “차를 만든다고 해서 와봤다.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왕과 왕비가 시녀장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자, 아이리스는 자신이 만든 차를 아버지 앞에 놔두었다. 그러자 눈치만 보고 있던 다이나가 짧게 한숨을 내뱉고선, 자신이 만든 차를 어머니 앞에다 조심스레 놔두었다.

  수줍게 자신 앞에 잔을 내려놓자 왕비는 작은 다이나의 손을 잡았다. 아이리스가 곧은 대나무 같다면, 다이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들꽃 같았다. 어디든 뿌리를 내려놓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리를 지키는 꽃. 하지만 쉽게 눈에 들지 않고, 오래 보아야 찾을 수 있는 존재. 아이리스에겐 그런 존재가 필요했다. 언니의 그늘에 갇혀 살아야 하는 다이나가 조금 안쓰러운 마음에, 왕비는 조금 더 손을 잡아주었다.

  “어머니.”

  “네 손이 너무 예쁘구나!”

  “매일 보는 손인데요”

  잡힌 손이 무안한지 다이나가 작게 투정했다. 다이나의 맑은소리가 왕비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존재감은 약하지만, 왕국에서 최고 미인은 다이나였다. 물론 아이리스도 눈에 띄게 아름다웠지만, 은근히 사람을 유혹하는 향기가 다이나에게 있었다. 아직 어린데도 이 정도인데 아마도 다 자란 여자가 된다면, 흐뭇한 생각과 함께 걱정이 살며시 안겨들었다.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얘기였다.

  “향이 좋습니다.”

  “들지”

  왕비가 왕의 손을 재촉하며 말하자, 왕은 자신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는 다이나에게 살짝 미소를 보냈다. 철부지 어린 꼬마가 다 자란 숙녀 흉내를 내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다이나가 은근히 재촉하는 시선을 보내오자, 왕은 다이나의 잔을 들어 은은한 향을 뿌리는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목울대가 한번 출렁였다. 다이나는 조금 더 긴장하며 잔을 내려놓는 아버지를 보았다. 다시금 인자한 눈길이 자신에게 뿌려졌다.

  ‘성공인가?’

  “맛있구나!”

  ‘얏호’ 마음속으로 거칠게 소리를 질렀지만, 겉은 태연히 치마를 살짝 잡아 무릎을 굽히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자 부드러운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촉촉이 내려앉았다. 아이리스가 자신을 보며 대견한 듯 미소를 보내왔다. 다도 연습은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또 이런 순간은 뿌듯했다.

  “이리와”

  어머니가 내민 손을 다이나는 빠르게 다가가 얼른 잡았다. 따스한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져와 마음이 부풀려졌다. 어머니의 손을 단단히 잡고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아이리스도 조용히 아버지 옆에 앉았다. 시녀장이 따로 차를 더 준비해와 다 같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다이나는 평온한 일상이 좋았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와 함께 아무 시름없이 그저 조용히 시선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지금이 가장 행복했다.

 

 

  새벽의 어둠을 가르고 해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찬 가운에 다이나는 보드라운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리며 몸을 뒤척였다. 그때 다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락도 없이 벌컥 열렸다. 조금 당황스러워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시선을 주자, 시녀장이 다급히 다가왔다.

  “큰일 났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지?”

  깜짝 놀라 다이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웨이브 진 검은 머리가 흘러내려 가슴께로 모여들며 찰랑거렸다. 시녀장이 자신의 반응을 무시하며 드레스 룸으로 빠르게 달려가, 긴 겉옷을 들고 나오며 소리쳤다.

  “공주님, 반란군이 쳐 들어왔어요!”

  “뭐?”

  다이나는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서둘러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자신이 있는 곳은 한적했다. 꿈속을 헤매는 듯한 이질감이 드는 시녀장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반란?”

  “공주님, 서두르셔야 합니다.”

  시녀장의 다급한 말소리에 허우적거리는 상념을 깨버리며 급하게 시선을 던졌다. 시녀장의 손이 눈에 뜨일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제야 이 모든 게 실감이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 언니는?”

  시녀장의 표정이 가파른 절벽에서 떨어지듯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다이나는 급하게 뛰어가 덜덜 떠는 시녀장의 손을 잡았다. 시녀장이 자신의 아랫입술을 물어뜯을 기세로 씹어대더니, 망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하아, 본채 입구에 계십니다.”

  “입구라면 반란군이 쳐 들어왔다면서?”

  “공주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공주님이라도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 잡혔단 소리야? 나만 살기 위해서 지금 도망치란 말이고?”

  “도망이 아닙니다. 잠시 몸을 숨기시는 거죠. 서둘러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를 지켰어야지?”

  자신의 앙칼진 목소리에 시녀장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어머니의 수족인 그녀가 왜 자신에게 왔으며, 왜 어머니를 내팽개치고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왕비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공주님을 피신시키라는 엄명을 놓으셨어요.”

  “내가 도대체 뭐라고?”

  시녀장이 급하게 다가와 자신의 몸을 막무가내로 잡더니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앞뒤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터라, 당황함은 배가 되었다. 시녀장이 이끄는 대로 다이나는 복도를 무작정 빠르게 걸어갔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공주님…….”

  울먹이는 시녀장의 목소리가 자신의 가슴속으로 곧장 날아왔다. 느낄 수 있었다. 어디로든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이나는 걸음을 딱 멈추었다. 혼자 살아남겠다고 도망가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아, 세상 물정 어둡다고 욕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에겐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는 전부였으니깐.

  “가지 않겠어.”

  시녀장도 자신과 같은 생각인지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꽉 움켜쥐고 있던 자신의 치맛자락을 시녀장이 힘없이 떨구었다.

  그때 복도로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긴 검을 허리에 차고 검은색 복장을 한 남자 열 명이 빠르게 뛰어왔다. 허리에서 천천히 검을 빼더니, 자기들끼리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복도를 강하게 후려치는 소리가 이내 아득히 멀어져갔다. 그들이 아주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실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지만. 남자 하나가 검을 시녀장에게 내려치는 모습을 보며, 다이나는 급하게 시녀장의 팔을 낚아채 잡아당겼다. 쭈욱 그녀의 몸이 자신에게로 밀려왔다. 다이나는 미처 타격을 계산에 넣지 못한 터라 자신의 몸까지 크게 휘청였다. 바닥에 힘없이 자신과 시녀장이 쓰러졌다. 긴 검이 다시금 시녀장의 목으로 향했다.

  “무엄하다. 누구 앞인 줄 알고 함부로 검을 뽑아 드는 것이냐?”

  “곧 죽어도 왕족이다?”

  자신의 말에도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비웃는 그들의 틈으로, 다이나는 다시 시녀장의 팔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시녀장이 얼른 자신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비를 베풀 마음이 없는지 다시금 시녀장의 목으로 검을 갖다 대었다. 누구의 몸이 덜덜 떨리는지 자각하기도 전에, 다이나는 사나운 남자들에게 팔이 우악스럽게 잡혔다. 딸려가지 않으려고 바둥거렸고, 시녀장이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해, 위로 덮치며 소리쳤다.

  “이분이 누구신줄 알고, 공주님은 안 되십니다.”

  “시끄럽군.”

  앞에 서 있던 짙은 사내 냄새를 풍기는 자가, 단칼에 시녀장의 목을 베어버렸다.

  “으윽, 어떻게 이런 짓을…….”

  그동안 아이리스와 배웠던 후계자 수업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도통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언니를 따라 열심히 배워둘걸. 그랬다면 공주의 위엄으로도 시녀장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이 들자 울분이 터졌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사치라는 듯 비웃으며, 자신의 급소를 거친 사내들이 마음대로 눌렀다. 이내 생각이 멀어져가고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한 사내의 어깨에 짐짝처럼 올려졌다.

  말을 뱉을 수도 없고 그저 눈만 덩그러니 떴다. 자신은 그들의 어깨에 매달린 채 힘없이 덜렁거려졌다. 지금 느끼는 수치심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시녀장의 피가 자신의 흐릿한 시야 사이로 길게 흘러내렸다.

  ‘이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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