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만나다, 반하다(4)>
분명 최대한 이미지를 관리하겠다고 젓가락을 들기 전에 스스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회 한 점이 입에 들어온 순간부터 무너져 버렸고, 나는 내 이상형 앞에서 걸신들린 년처럼 처먹고야 말았다.
다행히 교수님은 나를 보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분명 '귀여운 학생'으로 취급하는 미소란 걸 난 알고 있었다.
그에게 여자로 보이기 위해선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관계는 사제지간에서 멈춰버리고 말 거야.
"교수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교수님은 내 질문에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꾸 웃지 마세요. 방금 먹은 회 조각들이 배 속에서 요동을 치니까.
"서른두 살이에요."
"아, 저는 스물세 살이에요."
"알고 있어요. 나도 그 나이일 때가 있었는데."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교수님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나와 굉장히 차이가 나는 것처럼 선을 그으며, 내가 몹시 어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교수님을 대해야 내가 여자라는 걸 호소할 수 있는 것일까.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가장 어려운 점을 꼽자면 그 해결책을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럼 교수님 박사학위는 재작년에 따신 거예요? 그리고 작년에 교수가 되신……."
"음……. 아뇨."
나는 질문을 던지고서 사이다에 손을 뻗다가 내 긴 옷소매에 반찬 양념을 묻히고야 말았다.
괜히 흰 티셔츠를 입고 와서 표가 나게 얼룩이 묻어버렸다.
가장 짜증이 났던 건 이런 식으로 나의 조심성 없는 면을 교수님께 보이고야 말았다는 점이었다.
"아, 교수님 그쪽에 물티슈 좀 주세요."
교수님은 내 말에 자신의 옆에 있던 일회용 물티슈의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건네지 않고 손수 내 손목에 있던 얼룩을 닦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얼룩이 묻지 않은 다른 한 손 밖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두 손 모두를 사용할 수 있었던 교수님이 직접 내 팔목을 잡아 닦아준 거였다.
교수님의 시선은 오직 얼룩에만 가 있었다. 나는 박사학위에 관한 질문을 던졌던 것도 전부 잊어버리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진심을 다하여 말하건대, 상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와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이거 빨래해도 안 지워질 것 같은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교수님. 교수님한테서 엄청난 향기가 나고 있단 말이에요.
전신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계속 입맛만 다셨다.
이대로 가다간 머릿속에 있던 수많은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교수님의 두 손에 잡혀있던 내 팔목을 다시 가지고 왔다.
"괜찮아요. 비싼 옷도 아니에요."
"그래도, 아깝잖아요."
"……."
"박사학위는 예전에 땄어요."
아직 내 팔 근처에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내 마음을 교수님이 알기는 할까.
교수님을 바라보자 그는 정말로 얼룩에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시선이 내 손목에 가 있었다.
서운하긴 했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지금 내 표정을 봤다면 내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몇 살 때요?"
"열세 살 때요."
"……. 열세 살이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교수님은 내 표정을 보더니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왜 웃지? 놀라는 내 얼굴이 웃겼던 걸까. 셀프 경락 마사지라도 하고 올걸. 이제는 내 얼굴까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잘했어요."
"완전히 천재시네요. 와, 열세 살."
"별로 좋은 것도 아니에요."
"왜 아니에요. 교수님 같은 분이 노벨상 타는 거예요."
"막상 노벨상 타는 사람들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 에이 그래도."
"한결 학생처럼 노력으로 자신이 가진 역량보다 더 큰 성과를 내는 사람이 정말로 멋진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사회에 많이 필요하구요."
교수님 말대로 나는 내가 가진 역량보다 더 큰 성과를 내긴 한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나도 수학을 잘하긴 했지만, 막상 이름 좀 있다는 명문대 수학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나니 날고 기는 학생들이 널려 있었다.
아마 교수님도 자신과 같은 사람들 속에서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한 것이 분명했다.
뭐, 어쨌든 교수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가 날 얼마나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더 먹고 싶으면 주문해요. 그런 거 먹지 말고."
회 접시에 있던 회 조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돈을 받으면서 양은 쥐꼬리만큼 주는 이 식당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나는 눈치를 살살 보며 티 나지 않게 밑반찬들을 입에 넣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알아차리신 것 같았다. 쪽팔림의 연속이다.
"배불러요."
안 부르다. 회라서 더욱 그렇다.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교수님. 저……."
"왜요."
"말 놓으셔도 돼요. 굳이 저한테 존댓말 쓰지 않으셔도."
교수님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같은 성인인데,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
교수님이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뺨을 내리치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삶에 기쁨을 주는 당신이 어떻게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겠어요.
이미 과부하로 인해 덜덜 떨고 있는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이게 편한 것 같아요."
그는 끝까지 존댓말을 고수하며 이제 자리에서 일어설 것을 제안했다.
마음 같아선 이 가게를 사는 한이 있더라도 교수님과 더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버렸고, 더 같이 있는 건 그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집이 어디예요?"
"신림동이요."
"데려다줄게요. 겉옷 입어요."
교수님은 자신의 뒤에 걸려있던 옷걸이에서 내 겉옷을 챙기고 내밀었다.
나는 내 옷을 건네받으며 다시 한 번 그의 몸을 감상했다.
도대체 운동을 얼마나 해야 이런 정장핏이 나올 수 있는 걸까. 교수님도 자기가 완벽하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렇게 얇게 입으면 감기 걸려요. 내일부턴 두꺼운 옷 입어요."
이러다 청력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귀가 녹는다 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