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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의 교수님
작가 : RainaKim
작품등록일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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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만나다, 반하다(5)
작성일 : 16-11-23     조회 : 459     추천 : 0     분량 : 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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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만나다, 반하다(5)>

 

 

 "그럼 교수님이 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줄곧 연구했어요."

 

 

 우리 집을 향하는 차 안에서 교수님과 나는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는 교수가 되기 전 연구를 했다고 답했다.

 

 혹시 계속 쳐다보는 내가 신경 쓰여서 운전에 방해가 될까 봐 나는 자꾸만 돌아가는 고개를 붙잡느라 고군분투 중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떤 연구요?"

 

 "볼츠만 방정식이라고 알아요?"

 

 "들어만 봤어요."

 

 "동역학 쪽을 연구했었어요. 아무것도 남은 건 없지만."

 

 

 허탈하다는 듯 말을 마치고 난 교수님은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괜히 물어본 탓에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끄집어낸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교수님에게서 시선을 떼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런 나에게 덤덤한 말투로 그는 입을 열었다.

 

 

 "십 년을 넘게 연구했는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때 드는 기분은 정말 형용하기 힘들어요."

 

 "……."

 

 "부디 한결 학생은 나와 다르길 빌어요."

 

 

 듣다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마치 수학자로서의 역할이 끝난 것처럼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직 연구하기에 나이도 어린 편이고, 교수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지속할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풀이 죽어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교수님이 어디가 뭐 어때서요."

 

 "……."

 

 "아직 인생 끝난 거 아니잖아요. 연구하시던 거 계속하세요. 왜 그렇게 기가 죽어 있으신 거예요?"

 

 "기죽어 보여요?"

 

 "네. 교수님이 얼마나 완벽하신데."

 

 

 젠장. 말을 이어가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거기서 완벽하다는 얘기가 왜 나와. 미치겠네.

 

 무표정으로 최대한 고개를 교수님에게서 멀리 떨어뜨리고 나 자신에게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 고백 아닌 고백을 듣고 난 교수님은 소리 나게 웃으며 내 말에 답했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저는 교수님의 존재 자체가 고맙습니다. 나는 최대한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전혀 민망하지 않은 척.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지만, 아마 귀까지 빨개져 있을 게 분명했다. 부디 교수님이 눈치채지 못했기를. 신이시여.

 

 

 "저기 내려주시면 돼요."

 

 "어디요?"

 

 "저기 사거리 코너요."

 

 

 내가 손으로 내릴 곳을 가리키자 교수님은 능숙하게 그 장소에 차를 멈춰 세웠다.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지만, 토마토가 되어있을 내 얼굴을 생각하니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 정말 감사드려요. 교수님. 밥도 맛있는 거 사주시고 집에 데려다주시기도 하고."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내일 수업 다 끝나고 내 방으로 와요. 일거리 있을 것 같으니까."

 

 "네!"

 

 

 나는 올라가는 교수님의 차창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담아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내일도 단둘이 교수님을 만날 수 있다니 벌써 행복한 기분이었다.

 

 일거리가 매일 있으면 좋겠다. 종일 일 해도 좋으니 제발.

 

 

 *   *   *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장난 아니야 진짜. 어제 꿈에도 나왔어. 무려 세 번이나."

 

 "너 진짜 큰일이다."

 

 

 내 말에 나연이는 정색하며 말했다. 나는 어제 교수님 생각에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 그것도 선잠이 들어서 새벽 내내 잠들고 깨고를 여러 번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교수님이 꿈에 나와 나를 설레게 했다. 내가 정말로 미쳐버린 것이다. 한 남자에게.

 

 

 "잠깐 하루 동안 지나가는 감정인 줄 알았더니."

 

 "……."

 

 "내가 알기로 너 연애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아니야?"

 

 "없지."

 

 

 나는 입맛을 다시며 민망한 얼굴로 내뱉었다. 솔직하게 한 번도 남자와 사귀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남자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아주 가끔가다 독특한 여성 취향을 가진 남자가 다가와 데이트를 신청해도 몇 번 만나기만 할 뿐 관계를 이어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남자를 만나지 않았느냐. 별다른 이유는 없고, 주말엔 아르바이트하랴, 평일엔 공부와 근로장학생 역할에 충실하랴. 나는 참 눈코 뜰 새 없이 살아왔다.

 

 

 "네가 연애를 한 적이 없어서 지금 망상에 빠진 것 같은데."

 

 "아냐. 운명을 느꼈다니깐."

 

 "야. 진짜 냉정하게 얘기해줄게."

 

 "뭔데?"

 

 "그 정도로 잘생긴 남자는 주위에 널린 게 여자야. 그 경쟁을 뚫고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아?"

 

 "……."

 

 "나는 네가 걱정돼서 그래.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 번도 못해본 애가 갑자기 나이 차이도 크게 나는 어른이랑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정말로 걱정돼."

 

 "나도 어른인데 뭐…."

 

 "외로워서 그러는 거면, 내가 소개팅 얼마든지 시켜줄게. 그 교수만큼은 아니지만 잘생긴 애들도 꽤 있어. 어쨌든 김은성 교수는 진짜 아니야."

 

 

 나를 향해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연이는 진심인 것 같았다.

 

 평소에 툭하면 연애 좀 하라고 부추겼던 친구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나연이는 내 현재 감정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왜냐하면, 만약 나연이가 나를 이해했다면 교수님을 포기하라는 말 따위는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감정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너 마음은 알겠는데, 나 진심이야."

 

 "아, 얘를 진짜 어떡해."

 

 "이런 감정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어."

 

 "……. 에휴."

 

 "나한테 조언 좀 해줘. 남자는 어떻게 꼬시는 거야?"

 

 

 내 간절한 질문을 듣고 난 나연이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연이는 나와는 다르게 몇 번의 연애 경험이 있는 상태였다. 아무렴 나보단 아는 게 많겠지 싶어 용기 내어 물어본 거였다.

 

 그런 내 절박한 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연이는 웃음 컨트롤이 잘 안되는지 계속 끅끅거리며 대답했다.

 

 

 "왜, 내가 알려주면 그대로 하시려고?"

 

 "응."

 

 "단호하네. 아주."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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