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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이세계의 아리아
작가 : 도연
작품등록일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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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는데 이유가 있어? (2)
작성일 : 16-11-18     조회 : 473     추천 : 0     분량 : 6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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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시혁아, 오늘 동방 빈다는데, 거기서 공부하자?”

  시험지를 내고 막 강의실을 나서는데 동기 하나가 붙잡으며 꽤 솔깃한 제안을 했다.

 동방에서 공부하면, 지긋지긋한 도서관 자리싸움 안 해도 되고, 조용하기도 훨씬 조용하며 주전부리까지 앞에 까놓고 할 수 있다는 꽤 큰 장점이 있으니까. 그러나........

 

  “아, 오늘은 안 돼.”

  “왜? 우리 이따가 치킨 시켜 먹을 건데?”

  “그래도 안 돼, 도서관 갈 거야.”

 찌뿌둥한 어깨를 쩌억 벌려 기지개를 폈다. 입가엔 절로 웃음이 걸렸다.

 오늘은 예지누나랑 같이 공부하기로 했거든. 흐흐. 그런 게 있다. 니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알콩달콩한 그런 도서관 로맨스, 그게 바로 오늘이다, 이 말이야.

  실실 웃으며 걸으니, 드디어 대학교 시험에 사지 멀쩡한 놈 하나를 미치게 만들었군,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상관은 없었다.

 

 “.......아직 안 왔나.....”

  예지 누나와 함께 앉을 자리를 맡기 위해 점심도 마다하고 달려왔다. 아무 자리나 앉을 순 없다. 약간 후미지고, 어둡고, 사람도 잘 안다니고. 그런 자리를 맡아야 썸을 타든 분위기를 타든 할 수가 있으니까.

  일단 도서관 가장 깊숙한 자리에 가방을 올려두고, 목이라도 축이자 싶어 휴게소에 들렸다.

 자판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마침 옆에 간이거울이 보였다.

 “와, 존나 잘생겼어, 김시혁.”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이지, 이 얼굴은.

  깔끔하게 넘긴 머리카락을 한 번 더 점검했다. 조금 있으면 예지 누나가 올 텐데, 그 전에 까리함을 한껏 장전 해둬야 했다.

 거울 뒤편으로 휴게실 문이 열리는 것도 힐끔 보는 둥 마는 둥,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진 않았는지, 머리 모양은 괜찮은지를 점검하는데,

 “저기,”

 등 뒤로 작게 들리는 목소리.

 .......?

 빙글 몸을 돌려도 시야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잘못 들었나.......

 “......아, 깜짝이야. 누구세요?”

  싶었는데, 그런 내 고개가 떨어짐과 동시에 웬 처음 보는 여자가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거다.

  “놀라셨어요......? 죄송해요, 저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아, 아니요. 괜찮아요. 그런데, 누구세요?”

  붕 뜬 단발머리에 안경을 치켜드는 여자가 나를 올려다본다. 아는 후배인가? 싶은데, 아무리 위 아래로 행색을 훑어도 이런 후배는 내 주위에 없었다.

 내게 다가오는 여자를 피해 몇 걸음 뒤로 물러서니,

  “......아, 저 모르세요.......? 그때, 학교 앞 카페에서....... 커피, 흘렸던........”

  눈을 게슴츠레 뜨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그 알바 생.

 예지 누나 앞에서 커피 뒤집어쓰게 했던, 제일 아끼던 하얀 스웨터를 눈물을 머금고 수거함 속에 넣게 만들었던 그 알바 생.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덤벙대는 실수를 자주 해서.......”

 아끼던 스웨터에 대한 보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만, 딱 봐도 별 영양가 없는 사과나 늘어놓을 참인 모양 이였다.

  “네, 뭐. 괜찮아요. 지난 일인데요.”

 시큰둥이 대답을 하곤 다시 거울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날 이후로 제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아니......, 그 전부터 생각해봤던 건데요....... 사실은 제가, 그러니까, 올해 초부터.......”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때 사과도 이미 다 받았는데요.”

  “아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저는, 시혁씨가 저희 카페에 처음 오셨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쭉......”

  꽤 노골적으로 대화를 끝내려는 의지를 어필하였건만, 뒤에서 들리는 여자의 말은 끝나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었다.

  “아 글쎄 괜찮다는데, 뭘 자꾸......”

 조금 있으면 예지 누나 올 텐데, 이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좋아해요!!”

 참다못해 거울에서 시선을 떼 몸을 돌리자마자 들리는 소리는 이거였다.

 

  “.........에? 네?”

  “조, 좋아한다구요! 시혁씨를!”

  “.........저기요, 저, 아세요?”

 지금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네! 그럼요, 경영학과에 스물다섯 살, 올해 복학 하시고, 또,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저희 카페 오셔서 아메리카노도 사 가시는.....!”

  “.......뭐야, 그걸 어떻게 다, 스토커야, 당신?”

  고개를 푹 숙이고 우물쭈물 거리는 모양을 바라보는데, 그런 여자의 뒤로 예지누나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럴 시간이 없다.

  “저기, 미안한데, 나는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거든요, 그럼, 누나! 여기요, 예지누나!!!!”

 애써 정리한 머리칼이 휘날리는 것도 모른 채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어, 시혁아. 일찍 왔네?”

  “당연하죠, 이 시간 아니면 여기 자리 못 구해요,”

  “네가 내 자리까지 맡아줘서 다행이다, 진짜 고마워.”

  “에이, 뭘 이런 걸로, 아 맞다. 누나 내일 뭐해요? 대학로에 진짜 죽이는 치킨 집 있다는데.”

  예지 누나의 옆에 바짝 서니 향기로운 냄새가 폴폴 풍겼다. 헤헤, 멍청하게 웃다말고 힐끗 돌아보니, 그런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지만 얼른 피했다.

 

  “야, 솔직히 그 전까지는 귀엽다고 쳐도, 이건 진짜 좀 아니지 않냐, 어?”

  “.......그러게 내가 넌 오지 말랬잖아,”

  “너 또 사고 칠까봐 그러지, 어제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다며! 그럼 게임 끝 아냐?”

  “좋아한다고 했지, 사귀는 사람 있다고 한 건 아니잖아......”

 쏴- 아!

  학교의 인공 호수에서 분수가 시원하게 뻗어 올랐다.

  “지금이야!”

 그런 물줄기 뒤에 숨어, 투다닥 자리를 옮기니 그제 서야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의 뒤통수가 좀 더 가까이 보였다.

  “으악! 다 젖었다고!”

  “조용히 해! 너 때문에 다 들키겠다!”

  “씨, 이게 얼마짜리 가방인데......!”

  투덜대는 민지의 소란에 두리번대는 남자를 피해 몸을 숙였다. 누구 좋아하는지, 그 때 그 여자가 맞는지 확인을 해야겠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이렸다!

  “씨 몰라! 난 먼저 갈래!”

  “야, 야! 쉬ㅡ, 쉿!!!!!!”

 푸슥-

  간신히 몸을 숨겼는데, 난데없이 민지가 벌떡 일어나면서 화단의 나뭇가지들이 소리를 냈다.

 화가 난 민지의 시선과 동시에,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남자의 시선도 여기에 닿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디 결판을 내고 와라, 엉?!”

  그런 남자와 나를 번갈아 보던 민지가 씩씩대며 화단을 나섰고, 그와 함께 화단 뒤로 쪼그려 앉아있던 난 그대로 노출이 되고 말았다.

 

  “.......”

  남자의 인상이 푹, 찡그려졌다.

 젠장, 얼른 무릎사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사이 내게로 가까워지는 기척이 느껴진다.

 모르는 척, 아닌 척........ 태초에 땅에서 태어난 자연인 척......! 

 

  “저기요.”

  “.......”

  “........저기요, 고개 좀 들어봐요. 나 몰라요?”

  “........”

 .......초록색 옷 입고 올걸. 보호색을 생각 못했다.

 

  “아, 안녕하세요.....?”

 내 고개가 삐그덕, 삐그덕 올려 지자 보이는 잘생긴 얼굴에, 목소리가 파르르 떨린다.

  “안녕 못하겠는데요. 왜 많은 벤치 놔두고, 화단 뒤에서 이러고 있어요? 꼭, 훔쳐보는 사람처럼?”

  그의 말에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진짜 훔쳐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그게....... 저는 단지, 여기 고,공기가 무척 좋아서......!”

 변명이라고는 젠장. 정말이지 못 들어 주겠다. 남자도 못 들어줄 수준인지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근데 그게 더 잘생겨 보이니, 나는 진짜 답이 없는 상태였다.

  “그 쪽 공기와 이 쪽 공기는 다른가 봐요? 오늘 미세먼지 수준 최고치라는데.”

  “어머, 그렇구나........ 어쩐지, 코가 매운 게......... 하하,”

  “착각이면 미안한데, 이런 식으로 마주치는 거 굉장히 불편하거든요, 제 신상 정보도 줄줄 꿰시질 않나, 솔직히 그땐 그냥 넘어갔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럼 4월 달부터 저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게 좀 소름 돋아서요.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고백을 하시질 않나....... 혹시나 저 따라다니시는 거면, 그만 두시라고요.”

  “........아니, 나는 진짜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럼, 그 우연히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요.”

 남자의 단호한 말투는 또 왜 이렇게 멋있어서, 사람을 서글프게 만드냔 말이다.

 

  “상희야, 수고했고, 내일 야간 근무 교대는 내가 할게. 폐기 나온 거 조금 가져갈래?”

  “어, 저 그럼 삼각김밥 하나만 주세요, 점장님.”

  편의점 알바 대타를 뛰고 나오니 어느새 거리는 어둑어둑 해졌다.

 번화가 한껏 들떠있는 사람들 사이로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나온 나는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은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하게만 보인다.

  “치, 누구는 돈 걱정에, 시험 걱정에, 짝사랑은 고백하자마자 차여선 스토커 취급이나 받고 있는데......”

  툴툴, 괜히 발아래 걸리적거리는 돌멩이를 툭 걷어차니, 그 돌이 또르르 그대로 굴러가선

 야외테라스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신발 앞으로 멈춰 선다.

  “아, 죄소.......”

 

  “뭐야, 당신 정말 스토커야?”

 혹시나 발에 맞았을까 싶어 얼른 고개 숙여 사과하는데, 그런 내 정수리를 덮는 차가운 음성이 익숙하다. 슥 들어 올린 시야로, 화가 난 얼굴이 가까워졌다.

  “내가 낮에 누누이 경고 했을 텐데, 더 이상 따라다니지 말라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지금 막 편의점에서.......!”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당신, 나에 대해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내가 예지누나한테 고백하려는 걸 알고 훼방 놓으러 온 거냐고! 나한테 왜이래 대체!”

 툭-

 남자가 내 어깨를 붙잡아 몰아세운 덕에 들고 있던 편의점 봉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지독히도 잘생긴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으로 맞닿았다.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인상이란 인상은 팍 쓰고서 노려보니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어머, 두, 두 사람 지금 뭐해?”

  그런 남자와 내 사이를 가녀린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고, 우리는 동시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누, 누나!”

  양쪽 어깨를 압박하던 힘이 풀렸다.

  “미안, 내가 방해한 것 같네, 눈치 없이. 그럼, 오늘 말고 다음에 먹자 시혁아.”

  “누나, 잠깐만! 기다려봐, 그런 게 아니라, 우리는, 아니 나는.......!”

  남자는 뒤돌아 바삐 걸어가는 여자를 뒤쫓았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바닥에 나뒹구는 봉지를 천천히 집어 들어 걸음을 옮겼다.

  “........”

  두 남녀는 어느새 점이 되듯 멀어지고 있었다.

 주변으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수근 거림이 서서히 제 목청을 높이며 커졌고,

 나는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눈물이 비집고 나올 것만 같았다.

  “씨...... 이번엔 진짜 따라간 거 아니었는데,”

  나한테 왜 이러냐고? 좋아해서 그랬다, 좋아해서.

 좋아하면, 뭐, 고백도 못하나? 멋진 남자 좋아하지 말라는 법 있어? 아니 그리고, 자기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는데?

  “......잘나긴 잘났지.......”

  그래, 잘난 건 인정. 씨이, 잘생긴 것도 인정. 그렇다고 그렇게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기회는커녕 스토커라고 의심이나 하고. 물론 몇 번은 스토커 같인 보였을지 몰라도, 이번엔 진짜 억울했다.

 .......내가 진짜 제대로 말이나 한 번 붙여보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을 텐데.

  손에선 삼각김밥이 든 봉지가 천진하게 덜렁거렸다. 문제는, 무너지다 못해 산산조각이 난 내 자존심도 그 안에 같이 담겨 덜렁덜렁 줏대 없이 흔들렸다는 거다.

  그래, 솔직히 그 모습도 멋있었다.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맛있다는 치킨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다른 여자와 있었던 모습을 해명하려 뛰어가는 뒷모습도.

  비록 나를 위한 행동은 그 중 단 한 가지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그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마구 뛰었다. 딱히 뚜렷한 이유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마음을 주는 일이였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품는다.

  나도 그런 거다. 이유는 없었다.

  “.......”

 그저, 그 앞에서 얼마나 당당해질 수 있느냐의 차이지.

 

  “아저씨. 이거 드세요.”

  나는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다 말고 발걸음을 돌렸다. 입구 앞에 앉아있는 노숙자 아저씨에게 삼각김밥이 든 봉지도 드렸다.

 그리고 애써 걸어왔던 거리를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걸음이 가벼워졌다.

 

  “아줌마, 노가리 한 마리 더요.”

  “아뇨, 후라이드 치킨으로 한 마리 주세요.”

 드르륵- ,

  앉아있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앞자리 의자가 아스팔트 바닥에 끌려 소리를 냈다. 

 그리곤, 그 앞으로 자리를 잡고 앉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예지누나 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매정한 그녀는 미련 없이 택시를 타고 떠났기에, 고로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여자는,

  “......그쪽 우리 학교죠? 무슨 과예요? 뻔뻔함이나, 미안함 같은 건 그쪽 전공과목엔 해당이 없어요? 아. 아니다. 그런 염치는 대학교가 아니라, 초등학교, 아니, 하다못해 유치원에서부터 배운다고.”

 “알아요. 나도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모두 밟았고, 매년 개근상은 빼먹지 않고 받았어요.”

 ........도대체 뭐하는 스토커인지. 젠장.

 “.......”

 “.......”

  여자는 의외로 말 한마디 없이 맥주를 마셨다. 딱히 더 할 말이 없는 나도 그랬다. 나는 예지누나에게 차인 마음을 달래려 채웠고, 눈앞의 여자는,

  뭐. 나에게 차인 마음을 달랬을 거다. 그저 묵묵히, 서로 마주보고 앉아 각자의 어긋난 짝사랑을 위로하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 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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