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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의 아리아
작가 : 도연
작품등록일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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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쁜데 불만 이신 분? 손? (5)
작성일 : 16-11-24     조회 : 409     추천 : 0     분량 : 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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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화

 

  손을 바짝 펴들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론 정원을 비추는 햇빛이 스며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이곳에 있었을까? 꿈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나는 죽은 걸까? 아니, 그렇다면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 나는 뭐지? 아니면 혼수상태 인걸까? 수 만 가지 질문을 할 수는 있었지만 뚜렷한 정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현실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투명하다 못해 얼굴까지 보일 정도로 반질반질한 은색의 궁과,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옷을 갈아입혀주는 시종들이 좋았고, 그런 내게 입혀진 화려하게 수놓인 옷가지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것도 좋았다. 높이를 가늠 할 수 없을 정도의 내 방 천장도 좋았다. 현실에서 눈을 뜨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허름한 고시원 천장에, 운이 나쁘면 마침 산책을 하고 있던 바퀴벌레나 돈벌레 등을 마주치기도 했으니까.

  당장 현실로 돌아가 눈을 뜨면, 그 순간은 좋을 거다. 아. 이런 꿈도 꿨구나, 하고 오늘 재수가 좋으려나, 하고 말거다. 그리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갈 준비를 해야 할 것 이였다. 당장 벌어야할 등록금에 까마득할 것이고, 취직 걱정에, 또 취직하면 학자금 갚고 그 이자까지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곤 다시 고시원 침대 위에 몸을 눕히겠지.

 “.......하아.”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부신 풍경에 숨이 탁 트였다. 이곳에 있으면 적어도 그런 것들을 걱정하는 것에선 자유로웠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나를 흥분시켰다.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않아도 됐고, 학교 과제에 동기들에게 치이며 1점이라도 더 받겠다고 아웅다웅 하지 않아도 됐다. 공주라는 신분은 엄청났다. 어제는 승마를 배웠고, 나를 위한 음악연주까지 해주기도 했다. 물론 그 승마를 경주마로 바꿔버리고, 지겹도록 들었던 클래식 연주가 재미없어 내 멋대로 힙합 무대로 바꿔버리기도 했지만 내게 꾸지람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허허, 이게 무슨 연주란 말이냐, 난생 처음 들어보는 연주와 노랫소리구나. 우리 공주가 음악의 역사를 재탄생 시켰도다!”

 하고 오히려 나의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았으니까.

 언젠가 이곳에 온 뒤로 마치 신생아가 된 것 같다고 말 한 적이 있었다. 무엇을 하든 이토록 칭찬과 기쁨을 받으니. 그래서 더욱 하고 싶은 건 참지 않고 일단 저지르는 것 같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이런 대우를 받아 본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 상황을 나는 최대한 즐기고 싶다는 거다. 지금이 꿈이라면, 언제 돌아가서 고시원 침대 위에서 눈을 뜰지 모르니까.

 “........”

 나는 배고프다. 조금 더 스펙타클한 걸 원해. 먹지 못한 걸 먹어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다 해보고 싶다. 성 밖으로 나가 가보지 못한 곳도 가보고 싶다. 후회 없이 만지고 보고 느끼고 싶다. 원 없이 사랑도 해보고 싶다.

 …….잠깐. 사랑?

 갑자기 떠오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혼수상태에서 이런 꿈을 꾸는 건가, 싶은데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하. 아니지. 내가 알 바야? 왜 여기까지 와서 현실세계에서의 그런 최악의 남자를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가스 공주님. 황비께서 찾으십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나를 부르는 시종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역시 푸른 눈에 건장한 체격, 깔끔한 외모까지. 역시 아가스 공주의 시종이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여기엔 그 남자보다 잘생기고 멋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으으, 그만 그만. 생각은 그만이다.

 이곳에선 무생각, 무잡념이 정답이다.

 

 “아가스 공주님께서 블루문 궁으로 들어오십니다!”

 잘생긴 시종을 따라 걸으니, 궁 뒤편의 정원 한가운데 돔 형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보였다.

 

 “....이, 이곳은 어디 인가요....?”

 “블루문 궁입니다. 황궁에 손님이 올 때면 개방 하는 곳입니다.”

 내 뒤를 조용히 따르던 이안에게서 딱딱하지만 명쾌한 답이 들렸다. 그 주변으론 족히 삼백여명은 넘는 듯 한 근위 기사단들이 각 잡혀 서있었다. 그 많은 이들이 내가 궁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허리를 숙이는 통에 철커덕, 하고 단단한 갑옷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그 차가운 쇳덩이 소리가 익숙하지 않아 절로 어깨가 움찔거렸다.

 

 “걱정 마십시오. 이들은 저와 같은 기사단입니다. 황궁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철벽의 기사단들입니다.”

  이안이 그런 아가스를 눈치 채곤 다시 덧붙여 말했다. 이안이 속해있는 광휘의 기사단의 바로 아래에 있는 기사단으로 제국의 두 번째 기사단 이였다.

 

 “....블루문 궁이라......”

  사방 뚫려있고 은색의 벽을 따라 걸쳐진 하늘색의 투명한 비단과 레이스가 엮인 문이 보였고, 이내 그곳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푸른빛의 정원이 보였다. 푸른색 식물들과 푸른빛을 내며 반짝거리는 나비와 반딧불 비슷한 곤충도 눈에 띈다.

  작은 수조로 흐르는 물은 그 빛에 비춰 영롱한 푸른빛과 에메랄드빛이 감돌고 있었다. 졸졸졸 나는 소리 또한 마치 천국의 궁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아름답게만 들렸다.

 “아가스!”

 주변에 떠도는 기운마저 푸른빛이 아닐까, 고민하던 차에 들리는 가녀린 목소리는 어머니였다. 궁으로 들어서자 길게 늘어진 새하얀 카펫을 따라 보이는 것은 그 끝에 앉아계시는 어머니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궁 한가운데 앉아있는 새하얀 드레스의 어머니는 꼭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눈을 꿈뻑꿈뻑 감았다 떠도 변하지 않는 모습에 그제 서야 아 이것이 현실이구나, 하고 곱씹었다.

 고생 한 번 안 해본 듯 가녀린 손끝이 나를 향해 자신의 옆자리로 부르신다. 얼떨떨한 얼굴을 겨우 다잡으며 어머니의 옆자리로 다가가 앉으니, 그제 서야 내가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수백의 기사단들의 상체가 일으켜 세워졌다. 이안은 익숙하다는 듯, 그런 내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서있다.

 이곳에 온지 나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건만, 여전히 그 낯선 모습에 심장이 덜컹 하고 소리를 냈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궁 한가운데 멍하니 앉아 그 앞을 지켜보고 있으니, 갑자기 주변이 한층 어두워지면서 내가 걸어온 긴 백색의 카페트 위로 훤칠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뭐지?

 “아가스. 이번 패션쇼는 특별히 네가 좋아하는 오뜨 꾸뛰르 식의 드레스를 많이 청했으니 보는데 재미가 있을 거다. 마음에 드는 옷을 저기 서있는 시종에게 손을 들어 표시하면 모두 네 방으로 그대로 가져가 옷장에 걸어두도록 말해뒀으니, 편하게 보렴.”

 헉. 입이 떡 벌어졌다. 어머니는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근 조근 말씀하시는 재주가 있으셨다.

 긴 카펫 위로 훤칠한 사내와 짝을 이루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금색의 드레스 위로 수놓은 문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했고, 소매가 독특하게 부풀려져있었다.

 “화려한 슬래쉬가 인상적인 드레스입니다. 아가스 공주님의 가녀린 팔을 더욱 가녀려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팔뚝을 가녀려 보이게 한다고? 저거 완전 내꺼 아니야?

 “저거요! 아주 딱! 마음에 드네요. 가녀린 팔.....아, 아니. 장식이 말 이예요.”

 “역시 탁월한 안목이십니다. 자, 그럼 두 번째 드레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드레스 전체적으로 감도는 청록 빛이 아주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특히나 아가스 공주님과 같은 투명하고 고운 피부에 잘 어울리는 색이지요.”

 “음......”

 “하하, 음, 그리고 또......! 아, 스퀘어 네크라인이 깊게 패여 있어서 아가스 공주님의 풍만한 보~디 라인을 살려주는....... 역시, 아가스 공주님께서 입기엔 너무 선정적인,”

 잠깐. 뭘 살려 준다고? 저것도 완전 내 옷 아니냐?!

 “제가 꼭 입어봐야겠군요. 그 풍만.....아니, 청록색 드레스 말 이예요.”

 “역시 최고의 드레스는 최고만이 알아보는 법! 아가스 공주님의 안목이 우리 디자이너들의 큰 귀감이 됩니다. 세 번째는 자주 빛의 벨벳 소재 드레스입니다. 어깨라인을 덮는 금색 숄은 아주 일품인......”

 “저거야!”

 “네번째 드레스는 산호색의 비즈 장식이 곳곳에 달려있는 옷으로, 로브가 타이트하게 나와 상체 라인을 강조시켜주는.....”

 “댓츠 잇. 바로 그거예요. 저건 내 옷이야.”

 “역시 아가스 공주님 이십니다! 다섯 번째 드레스는 머리에 장식하는 발조와 게이블드 헤드가 있어 머리 전체를 감싸기 때문에 목이 가늘어 보이는 효과를......”

 “공주라면 역시 목이 가늘어야 제 맛! 저게 내 드레스의 정답이야!”

  블루문 궁에서의 경험은 엄청났다. 나오는 드레스 족족 선택하다 목이 아파서 손가락만 까딱했도, 주변에 서있던 시종들은 선택된 드레스를 들고 내 방 옷장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댔다.

 “탁월하십니다!”

 “대답한 안목이십니다!”

 “놀라운 아가스 공주님!”

 카펫 위로 올라오는 드레스의 디자이너들은 매번 다른 말로 아부를 해댔다. 똑같은 의미도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구나, 하고 생각 될 정도로. 모델들은 무대의 한 구석에 서서 자신이 입었던 드레스가 선택 될 때마다 저들이 먼저 뛸 듯 기뻐했다. 자신이 모델이 되었단 것에 영광을 표했다. 이내 얼마나 골랐는지 말 그대로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을 때쯤,

 

 “아가스.”

 어머니의 부름이 들렸다. 옆 자리에 앉아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니 늘 그렇듯 아름다운 얼굴로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신다.

 “조금 더 고르지 않구, 이제 마음에 들지 않아? 디자이너들을 바꿀까?”

 “아뇨, 아뇨. 다 좋아요. 그냥........ 손가락이 아파서.”

 어머니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으니,

 “아가스가 손가락이 아프다! 의신관을 불러라!”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드레스를 고르다보니 손가락이 아프다는 거예요, 어머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신 모양 이였다.

 “아가스! 다시는 그런 장난을 하지 마렴, 나는 네가 아플까 늘 걱정이야,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네가 아카데미를 다녀야하기에 더욱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어.”

 선택한 드레스가 쭉 걸린 행거가 내 앞으로 섰다. 많기도 많다. 근데, 이걸 다 어디에 입고 다니지? 이건 정원 산책 할 때, 이건 저녁 식사 할 때.........,

 “아카데미요? 무슨 아카데미요?”

 “아가스, 모두 까먹은 모양이구나, 네 오빠들이 다닌 아카데미 말야, 아리아 왕국의 신전 아카데미. 아가스 네가 어렸을 땐 아카데미 가는 오빠들을 따라 간다고 늘 울음보가 터졌지, 어느새 그런 네가 아카데미를 갈 나이라니......”

 아리아 왕국? 신전 아카데미는 또 뭐지? 뭐, 잘 됐다. 이 많은 옷들을 입고나갈 곳이 필요했으니까!

 “좋아요! 완전 좋아요!”

 거기가 어딘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금색 드레스부터 당장 게시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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