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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이세계의 아리아
작가 : 도연
작품등록일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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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인데 이유 있어? (1)
작성일 : 16-11-25     조회 : 351     추천 : 0     분량 : 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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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화

 

 덥다.

 ........더워.

 아침에 먹은 건 빵이 아니라 가죽이다.

 맛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빨이 나갈 것 같다.

 여긴 치과도 없겠지. 잠깐만. 나 사랑니 안 뺀 거 하나 남았는데, 이건 어쩌지......

 하...... 그냥 뽑을 때 다 뽑아버릴걸. 아. 아니다. 지금 나는 그때의 김시혁이 아니지.

 이 몸은 사랑니를 다 뺐을까? 아니, 애초에 이 시기에도 사랑니라는 개념이 있나?

 모르겠다. 이렇게 된 이상 빵의 탈을 쓴 가죽 빵은 입에 넣고 녹여먹어야겠다.

 근데 덥다. 얼마나 덥냐면 그냥 존나 덥다.

 냉면 먹고 싶다. 살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칡 냉면이 먹고 싶다........

 

 “도련님! 빌리 도련님!!!!”

 

 콰득-

 농장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요란스러운 소음에 펜을 쥐고 있던 손이 어긋나가며 펜촉이 부러진다.

 “아, 마지막 펜촉 이였는데...... 역시 싸구려는 구려서 싸구려인가.”

 냉면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구절을 끝으로 푹 번져버린 낡은 종이 수첩을 닫았다. ‘빌리의 비밀 일기장’ 이라고 쓰인 수첩 앞부분이 손때를 많이 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너덜거렸다.

 

 “무슨 일이야, 파르노. 그놈의 호들갑은 어떻게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니 이제 익숙해져야겠지.”

 “아유, 칭찬은 넣어두셔요,”

 “........칭찬이 아니야.......”

 절로 지끈대는 이마를 손으로 부여잡았다. 착하지만 조금 모자른 하인 파르노는 한껏 쑥스러워 하며 몸을 베베 꼬더니, 이내 자신의 임무가 생각난 듯 다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아아. 맞다, 맞다. 큰일, 큰일 났습니다 주인님, 석 달 전에 터진 수도관을 임시로 막아놨던 진흙과 나뭇가지들이 사라졌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요새 밭 근처 호숫가에 사는 수달들이 집을 착실히 잘 지어 논다, 했더니. 우리 수도관 위에 쌓아둔 나뭇가지들을 홀라당 가져가 버린 모양인지........”

 “젠장, 터진 수도관은!”

 “예, 남은 나뭇가지들과 옷가지로 대충 구멍은 매웠습니다. 수달 녀석들이 그대로 상도덕은 있는지 다 가져가지는 않았더라구요,”

 “.........하. 그그 츰 드흥으드(그것 참 다행이다).......”

 해맑게 웃는 파르노를 향해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대답해준 뒤, 터진 수도관이 있다는 자리를 가보니 벌써 옷가지가 흠뻑 젖은 하인 둘과, 간신히 막아놓은 수도관이 보인다.

 물난리로 난리가 난 주변을 살피며 어떻게 막아야 할지 보는데, 저기 바닥에 버려진 낡은 안장이 보인다.

 “너희들은 그거 두고 가서 저 안장을 주워오너라, 파르노! 수도관을 누를 큰 돌멩이 하나를 주워오고!”

 그의 말에 일사분란으로 움직이는 하인들 뒤로, 뒤틀려 터진 수도관에선 벌컥벌컥 물이 흘러내린다.

 “주인님, 여기요!”

 “일단 뜯어진 수도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돌맹이를 올려 공급을 막아!”

 “네!”

 “도련님, 가져오라고 하셔서 가져오긴 했는데, 이런 낡은 안장은 어디다 쓰실.......”

 쫘악- 쫘악--!

 하인이 들고 온 안장을 받아들고서 위에 덮인 가죽만 뜯어낸 그가 주머니에서 반짓고리를 꺼내 빠르게 수도관의 터진 부분을 연결해 꿰매기 시작한다. 점차 줄어드는 수압과 함께, 남자의 손길도 빠르게 바느질을 시작한다.

 “아, 아니....... 도련님! 어째서 계집아이들이나 한다는 바느질을 이리도 능숙하게......!”

 니들도 한국 군대 가봐라, 가서 제일 먼저 하는 게 이름표 꿰는 일이야.......! 심지어 나중엔 자기 이름을 실과 바늘로 새기고, 그 옆에 자그맣게 하트까지 새길 줄 아는 놈도 있었다......!!!!!

 라고, 말할 순 없으니.

 “.......그, 그냥 어깨너머로 배운 거다!”

 하고 얼버무린다. 터진 수도관으로 세차게 흐르던 물은 어느새 꿰매 덧댄 안장에 의해 줄어들었다.

 “너희들도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너라.”

 수도관을 잡느라 잔뜩 젖은 옷을 입고 있는 하인 둘을 보내고 나니,

 “도련님, 어이구, 도련님도 다 젖으셨어요, 여기, 이걸로 닦으세요!”

 “아니, 됐어,”

 “제 옷 나름 깨끗해요, 세탁한지 일주일도 안 됐다구요, 여기도......”

 “웁, 됐다니까!”

 자신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벅벅 닦는 하인 파르노의 옷가지가 입술 사이로 벅벅 밀고 들어오자 겨우 밀어내고 찝찝한 입술을 퉤, 퉤! 하고 닦아냈다.

 “차암, 깔끔은....... 아무튼, 망할 놈의 수도관은 터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말썽이람. 이게 아마, 도련님 막 일 시작하셨을 때 말썽 부렸으니까, 겨우 세달 밖에 안됐는데!”

  터진 수도관을 바라보는데, 문득 그 전에도 터졌었던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세 달 전에 처음 터졌던 수도관을 고칠 땐 반나절은 걸렸었는데, 두 번째라고 제법 능숙하게 대처해냈다. 하긴, 그 때는 농사일이나, 밭일도 모든 게 다 어색했으니까.

 “세달 전?”

 “네, 셈을 해보니 따악, 세달 전 이예요, 막 도련님 정신 챙기셨을 때요.”

 

 문득 세달 전 이곳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가 생각이 났다. 터지듯 떠진 시야론 새하얀 천장이 보였고, 이내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이내 세 번에 걸쳐 더 놀라운 일은 계속 되었는데, 하나는 자신이 벼락을 맞았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 벼락을 맞고도 살아 있다는 것. 세 번째는,

 “도련니이이이이임~~!!!!!!!!!!!엉엉엉!!!!!!!!!!”

 자신이 누워있는 병실에 나타난 우스꽝스러운 중세풍 옷을 입는 광대. 특히나 이 마지막은 압권 이였다. 난생 처음 보는 복장에, 프링글스 감자칩 통에 붙어있을 것만 같은 짙은 콧수염, 장화도, 요정 신발도 아닌 것이 애매한 모양의 신발까지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다 이상한 남자가 자신을 보며 도련님이라 오열했다.

 그뿐일까. 새하얀 천장에 병원일거라 짐작만 했었지, 막상 나오니 보이는 건 중세풍의 새빨간 벽돌집이요,

 “아들, 내 아들 빌리!”

 “아아, 우리 빌리...... 빌리가 일어나다니.......”

 오열하는 사람은 광대에서 늙은 부부에게로 까지 이어졌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지난 달 포도밭에 줄 거름을 퍼내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때 머리를 부딪히고는 일주일이 넘도록 깨어나질 않았다고. 나는 분명 벼락을 맞고 기절했는데, 이 몸뚱아리는 기껏해야 똥이나 밟고 넘어져있었다니. 이 천하의 김시혁이.

 

 “.......벌써 세 달이나 지났다니......”

 주머니에 넣어둔 일기장을 꺼내 파르르 넘기니, 첫날부터 써온 일기장이 제법 굵기가 있었다.

 

 이곳에 온지 첫째 날.

 나는 김시혁인데. 나는 분명 서울특별시 도곡동에서 태어났는데. 여기는 어디일까. 왜 사람들은 나를 빌리라고 부르지. 내가 아는 빌리라곤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뿐인데. 혼란스럽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이런 기분일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상한 나라의 김시혁 둘째날.

  엄청난 사실을 알아냈다. 빌리라는 놈은 똥을 밟고 넘어졌단다. 멋도 존나게 없다. 이곳은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일까? 아니면 그냥 진짜 동화책이라도 들어온 건가? 대충 보아하니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꿈일지도 모른다. 젠장. 근데 꿈이 너무 초라하다. 빌리네 집 졸라 가난함.

 얼마나 많이 펴봤는지 일기장의 앞 장은 반쯤 뜯어져서 겨우 실과 바늘로 묶인 부분을 엮었다. 손때 탄 일기장만이 이곳에서의 나를 온전히 기억하고 불러준다.

 

 “.......하아. 이때만 해도 내가 이곳에 석 달이나 있을 줄은 몰랐지.”

 

 그전에 살던(이라고 해야 맞는지 모르겠지만) 곳에서도 지독한 현실주의에 이기적인 면모까지 있어서 내 밥그릇은 알아서 차려 먹었던 나다. 그러니 이곳에 온지 한 달 만에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공부하기 시작했지. 이 세계에 대해 알기위해 날마다 밤을 새가며 역사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낮엔 포도밭에 나가 일을 했다.

 

 처음엔 남작가의 아들이라는 둥, 영주의 아들이라는 둥 그러기에 중세 봉건제도를 생각해보니 대충 귀족 중에서도 낮은 신분의 귀족임이 생각났다. 뭐. 생각이 안 났더라도 딱 보면 알 수 있었을 거다. 남작가의 집이라기엔 덩그러니 놓인 집 한 채와, 그 앞에 놓인 크지않은 규모의 포도 밭. 그리고 몇 보이지 않는 하인들.

 게다가,

 

 “빌리! 포도밭에 물을 흠뻑 주었으니 당분간은 다시 마을 저수지 수로에서 물을 길어 모아야겠다, 내일부턴 아버지를 도와다오!”

 “예! 함께 가요!”

 .........부잣집 영주 아들 내미가 포도밭에서 진흙탕 다 맞아가며 구르고 있진 않을 테니까.

 

 “도련님! 배가 출출하지 않으십니까? 아침에 먹다 남은 건데, 드셔보세요!”

 “.....됐다. 난 가죽을 씹다 이 나가고 싶진 않거든.”

 “도련님, 아침에도 목검 수련하신다구 얼마 안드시고 나가셨잖아요, 그러다가 또 앓아누우시면.....”

 “맞아요, 그러다가 또 거름에 헛발질이라도 하시면.....!”

 “젠장, 그 말은 입에 담지 말라니까. 나는 단지 돌에 부딪힌 거야, 거름은 빼라고.”

 “그래도, 밤엔 늦게까지 공부도 하시니까, 그때 배곯지 않으려면 지금 조금 먹어 두는 게.......”

 “너희들이나 마음껏 먹어라.”

 일이 끝나고 하인 몇이 모여 아침에 먹다 남은 빵조각을 먹고 있었다. 권유는 고마웠지만, 힐끗 보니 해는 저문지 오래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내일은 또 아침 일찍 일어나 포도밭은 물론 수로까지 채우려면 체력도 필요 할 테니까. 하인들의 권유도 마다하고, 간이 테이블 위에 있는 싸구려 포도주를 들이켰다.

 으, 역시 시기만 할뿐 맛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이래가지곤 포도 농사 성적도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나 참. 평생 처음으로 장남으로서 가난한 집안을 이끌려니 쉽지가 않다.

 “......하아.”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이렇게 온전한 빌리가 되어 집안을 이끌 생각을 하고 있다. 심지어 난 원래 둘째였는데...... 점차 내가 누구였는지 조차 혼란이 온다. 그러니 일기를 생각 날 때마다 틈틈이 써야겠다.

 

 이상한 나라의 김시혁. 세달 째.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 온지 날짜도 세질 않고 있다. 오늘은 포도밭 수도관이 터졌다. 젠장 농사를 해본 적이 있어야 알지. 포도알 새끼들은 예민해서 금방 떨어진다. 아무래도 여섯시 내고향 같은데서 본 방법대로 조금만 더 여물면 종이로 싸두어야 할 것 같다. 김시혁. 이러다가 농사직설 하나 집필해도 되겠어. 존나 똑똑해. 이따가 이 세계에 관한 역사책 한권 더 읽어야 해서 오늘 일기는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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