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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의 아리아
작가 : 도연
작품등록일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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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인데 이유 있어? (2)
작성일 : 16-11-25     조회 : 338     추천 : 0     분량 : 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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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화

 

 아침부터 따가운 햇빛이 마당 위로 가득 내려앉았다. 간밤에 내린 새벽이슬이 어린 나뭇잎 위를 타고 톡 떨어진다. 짹짹 하고 우는 새소리도 평화롭게 들린다.

 탁-!

 타닥-!

 “...하아,”

 탁-!

 타다닥-!

 그런 평화로운 아침을 가르는 소리는 무언가를 바르게 내려치는 둔탁한 소리였다. 간간히 들리는 숨소리는 그 힘에 맞춰 빠르게 몰아쉬기를 반복했다. 마당 한가운데 드리워진 갈색의 그림자가 쥔 목검이 빠르게 내리치는 모습만이 앞마당 가득 그려졌다.

 

 “빌리~ 비일~리~”

 “......하아, 하아.....”

 

 멈출 줄 모르고 조금 더 빠르게, 빠르게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목검을 휘두르던 속도는, 집 안쪽에서 들려오는 앙증맞은 소리에 멈춰졌다. 이마론 흠뻑 젖은 땀방울이 죽죽 흘러내리며 남자가 아침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목검과 함께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아드을~ 들어와서 맛있는 밥 먹자아~”

 주방 쪽 창문이 열리며 목소리만큼이나 애교가 철철 흐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곤 소매로 대충 북북 얼굴을 닦아내자,

 

 “도련님! 여기요!”

 언제부터 자신의 옆에 서있었는지 하인 중 하나인 파르노가 곱게 접힌 헝겊을 내민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다가, 설마, 하는 눈치로 눈매를 가늘게 뜨며 흘겨보니 이건 제 옷이 아니라 진짜 수건입니다요! 하고서 손사래 치는 파르노다. 그제 서야 벅벅 얼굴을 닦아 내고 함께 식사를 하러 주방으로 연결된 문을 벌컥 열었다.

 

 “하하, 이리와 이 앙큼하고 음란한 암고양이, 디디!”

 “저리가요, 이 섹시한 헌터! 당신에게 잡히면 나는 울고 말거야!”

 

 “.......”

 열린 문 뒤로 보이는,

 

 “파하하하! 그것 참 기대되는 군, 눈물짓는 모습이 아주 어여쁘겠어!”

 “내가 우는 게 기대된다니, 아르쿠스, 이 변태!”

 

 “.......”

 빌리, 그러니까 다른 말로는 이 세계의 내 부모님인 아버지 아르쿠스와 어머니 디디는 혼자서 뛰어다니기도 버겁고 비좁은 주방에서 서로 껴안고 도망가고를 반복하는 장면이다. 아니, 저렇게 잡혔다가, 놔주고, 다시 도망갔다가, 다시 잡는 저 과정은 도대체 뭐 때문에 하는 거지? 애초에 놓치질 말던가, 아니면 천천히 뛰어서 잡히게끔 만들지를 말던가.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18살 빌리의 몸이라 한들 눈앞의 부모님께서 정말 죽자 살자 술래잡기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이 말이다.

 

 “......식사 준비가 다 되면 다시 불러주세요 어머니....”

 쾅-

 주방문을 닫으니 옆에 서있던 파르노는 아, 왜! 아 왜애! 하며 아침밥을 못 먹는 게 원통한 모양인지 닫힌 문을 허망하게 바라본다. 저 두 분은 지금 많이 바쁘시니까 이따가 다시 들르자. 하며 앞장서는 자신의 뒤통수를 원망하듯 바라보는 파르노를 애써 모른 척 했다.

 

 “빌리! 이제야 오다니, 밥 먹자고 해도 목검 연습에 잘 들리지 않았나 보구나! 하하, 자랑스러운 내 아들.”

 “말도 마요. 몸 상한다고 그만 두게 해도 어찌나 열심히 인지, 디디는 그런 폭력적인 아들 싫은데 말이야.......”

 “........그것 때문에 늦게 들어온 거 아니에요......”

 얼마나 마른건지 제대로 뜯어지지도 않는 질긴 빵을 겨우 뜯어 입안에 넣고 웅얼거리는 바람에 그의 의사표현은 가죽 같은 빵조각과 함께 사라졌다. 역시 드럽게 안 씹힌다. 아 맞다. 녹여먹기로 했지. 혓바닥으로 억센 빵조각을 겨우 세우니 입모양이 옥! 하고 자연스레 보기 흉한 얼굴을 만들었다.

 

 “오늘따라 아침이 더욱 맛있군! 디디의 사랑이 들어갔기 때문이겠지?”

 “호호호호, 아르쿠스, 농담 말아요. 어제랑 똑같은 메뉴인걸요?”

 “디디, 그런 말 마. 디디의 사랑은 늘 먹어도, 먹어도 고프고 새롭다구!”

 “........”

 ........제발 밥 먹을 때만큼은 조용히 먹자고요, 제발. 그리고 다시 한 번 식탁을 보세요, 아버지. 가죽 같은 빵과 시큼한 포도주가 전부인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런 닭살스러운 애정행각을 피해 꾸역꾸역 가죽 빵을 입안에 넣고 있으니 듣기만 해도 호방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빌리, 이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모양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거름에 미끄러져 넘어진 게 벌써 석 달 전이구나,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파르노에게 업혀 들어 올 때만 해도 아주 머리카락은 거름 범벅이 되어선, 일주일 만에 정신을.......!”

 “하하하!!!!!! 빵이 아주 맛있어요 어머니 하하하하하하하!!!!!!!역시 빵이라면 응당 씹는 맛!!!!!!!!”

 

 “어머, 빵이 그렇게 맛있니? 사흘 동안 깜빡하고 덮개를 씌우지 않는 바람에 겉이 모두 말라비틀어져서 버려야하나 고민했었는데, 역시 우리 효자 빌리!”

 ........그 정도면 당연히 버려야하는 거 아닌가요.......

 그가 부모님 몰래 입 안에서 녹이던 빵을 꺼내 식탁 아래로 던졌다. 그러자 바닥에서 사료를 먹고 있던 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더니, 자기도 이건 안 먹겠다는 듯 팽 뒤돌아 제 밥그릇으로 돌아간다. 건방진 놈. 나도 먹었다고, 나도!

 

 “그래도 빌리가 정신을 차리니 얼마나 다행이오, 그전엔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목검 연습에 밭일까지......, 빌리, 이제 네가 이 농장을 물려받을 준비가 된 것 같구나.”

 

 아버지의 말에 문득 고개를 든 그의 시야론, 활짝 열린 창문 너머 가득 포도밭이 보였다. 비록 규모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석 달 동안 정이라도 들어버린 모양인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포도밭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귀족이라면 다들 잘 먹고 잘 살줄 알았는데........ 석 달 내리 포도밭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도리도리-

 아니다. 빌리. 가죽 빵을 생각해. 저 시큼한 포도주를 생각해라. 좋기는 개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얼른 돌아가서 칡 냉면을 먹고 싶다. 나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렇지만 어떻게 가야할까? 짧게나마 읽어본 책으론 마법이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설마 마법을 써야하는 건가? 내가? 나는 마법은커녕 비둘기를 나오게 하는 마술조차 못하는데?

 

 “빌리! 왜 그러니? 안색이 좋지 않아,”

 “아, 아니에요 어머니,”

 “네가 밥을 조금 먹어서 그래, 아직 마른 빵은 얼마든지 있다, 여기!”

 “........갑자기 너무나 안색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 저는 이만 밭일을 하러 나가보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김시혁 일기.

  포도농장의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썩어가는 나무가 없는지, 병든 포도가 없는지 체크를 한 뒤, 나무마다 물을 주고 잎을 솎아낸다. 바닥에 떨어진 포도 알들은 성한 것은 주워가고, 썩은 것들은 벌레가 꼬이지 않기 위해 치워야 한다. 잔가지들이 양분을 빼앗아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지치기도 해줘야한다.

 

  뭐, 간단하다. 하루 24시간 중, 한 25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 무슨 말이냐고? 24시간을 돌려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는 얘기야. 하하. 거름도 빠지지 않고 줘야하는데, 그나마 그건 거름 주다 미끄러진 걸 알아서 그런지 몇 안 되는 하인들이 저들끼리 당번을 돌며 움직인다. 말이 하인이지, 그냥 서로 먹고 살려고 일하는 동지들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일하다가 돌아와선 짧게 샤워를 끝내고 저녁에 시간을 내어 이 세계에 대한 공부를 한다. 다행히도 이전의 빌리란 녀석은 공부를 심심치 않게 했던 놈인지 책장 가득 책이 꽂혀있다.

 

 서울에서 살 땐 나름 잘나가는 기업의 아들로, 풍족한 집안 환경에도 이렇게 열심히 살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이곳이 견디기 힘들만큼 나쁜 곳은 아니었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

 “빌리! 또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는 거니? 너무 무리하지는 마렴, 공부하다 출출할까봐 간식 좀 가져왔어,”

 “........마른 빵인가요?”

 “간식으로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단다. 호호.”

  늘 내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 부모님도 좋은 분들이다. 진짜 나의 부모님은 늘 바쁘셔서 집에서 오래 일했던 아주머니 손에서 거의 키워지듯 자랐는데, 이곳에선 진짜 부모님의 사랑을 가득 받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사흘 동안 뚜껑도 없이 말리 비틀어진 빵만 주시는 어머니는 조금 당혹스럽지만.

 

 뭐, 지금 생활도 그렇게, 아주 많이 나쁘진 않다는 얘기다.

 

 “도련님!!!!!!!빌리 도련님!!!!!!!!!”

 “......그럼 그렇지.”

 탁- 들고 있던 수첩을 닫자, ‘빌리의 비밀일기’가 눈에 띈다. 오늘은 왜 호들갑 떨면서 안 나타나나 했다. 재는 꼭 비밀일기 쓸 때만 나타나더라. 다행히 지난번 부러져 테이프로 소중하게 묶은 펜촉은 굳건하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인데?”

 “빌리 도련님, 큰일, 큰일이요! 큰일!!!!!”

 

 “무슨 일. 간밤에 수도관이 또 터졌든? 아님, 수달이 빌려간 나뭇가지를 잘 썼다고 돌려주려 왔더냐?”

 “아이, 아니요! 아닙니다, 아니요! 장난 마시구, 이번엔 진짜로 큰일이요, 큰일. 얼른, 얼른 사모님에게 가보셔야겠습니다, 얼른요!”

 “.......어머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막 주방으로 들어서니, 탁자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러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어머니가 들고 계신 종이를 언뜻 보지만 알 수 없는 꼬부랑글씨만이 가득하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네?!”

 “......아.....아아.....빌리, 빌리야........네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가.......!”

 “뭐라고 쓰여 있는데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왜요!!!!!”

 “너희 아버지가, 실은 아주 심각한 암에 걸려서..........”

 ......뭐? 암? 미친. 이건 또 무슨 전개야?!

 

 벌컥-

 “파하하하하하!!!!!! 빌리야!!!!!!!! 아버지가 케이크를 사왔다!!!!!!!!!”

 “.......아이! 당신도 참! 거의 넘어 왔었는데!!!!! 빌리, 울었지? 울었지? 눈물 찔끔 났지? 어머, 울었네! 울었어! 여보, 내 말이 맞죠? 운다니까!”

 “끅끅끅 빌리야! 끅끅끅끅.......사내 녀석이 아비를 이리 생각해서야, 디디, 우리가 자식 농사는 참 잘 지었구려!”

 “.......어머니.....? 아버지.......?”

 

 삐익-!

 뿌웁-!

 “도련니임~!!!!!”

 어리둥절한 사이, 주방문을 열고 싸구려 피리를 불며 들어오는 파르노와 하인들 몇이 보인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빌리! 이건 네 입학 축하 파티다! 하하하!!!!!!삐익- 쀼웁- 삐익삐익----!!!!”

 파르노의 피리를 빼앗아 부는 아버지와,

 “빌리, 이것 좀 보렴, 신전 아카데미 입학 통지서야! 아리아 왕국의 신전 아카데미 입학 통지서라구! 게다가 국가 장학생이다, 국가 장학생!! 우리 아들이! 이 디디의 아들이!”

 “어허, 여보. 말은 바로 해야지, 아르쿠스와 디디의 아들이! 쁍!쀼우웁--!!!삐익!!!!!!!!!”

 ....젠장, 그 피리 소리 좀 어떻게, 아니 그보다,

 “......아카데미요? 그게 무슨,”

 “어머 얘가 다 까먹었구나, 네가 1년 전부터 그렇게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그곳! 바로 신전 아카데미!!!!!!! 귀족들만 갈수 있다고 우리 집 기울면 안 된다고 그렇게 울고불고 떼를 썼잖니? 철없던 빌리.....그때만 생각하면 엄마는 정말 자다가도 불구덩이를 삼킨 것처럼 열이 받지만.......!”

 “디디! 좋은 날이잖소, 좋은 날! 게다가 지금은 이렇게 철든 빌리인 걸! 자랑스럽다! 내 아들!!!!!!!!”

 “....억!”

 아버지의 품안에 갇히듯 안겼다. 바짝 얼어버린 송사리 마냥 몸만 길쭉하게 늘리고선 이게 무슨 말이지, 아카데미는 또 뭐야? 하고 생각하기 바쁘다.

 아리아 왕국? 신전 아카데미라니? 국가 장학생은 또 뭐야? 여기의 대학교 같은 곳인가? 나 또 대학생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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