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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용알과 언년이
작가 : 서연
작품등록일 : 201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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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
작성일 : 16-12-09     조회 : 517     추천 : 0     분량 : 5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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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되겠다, 내일부터 장인 건재 배달 가지 마.”

 “아버지한테 말해, 그건.”

 “아버지가 일일이 전화받니? 네가 알아서 조절해.”

 “아, 귀찮아.”

 “이것이,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네.”

 한껏 윤지를 노려보며 말봉이 혼잣말을 웅얼댔다.

 “살 만큼 사는 양반이 왜 이 동네를 안 떠나나 몰라. 딸 가진 부모 가슴 졸여서 살 수가 있나.”

 그제야 윤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정도 말귀를 못 알아들을 만큼 어리숙한 윤지가 아니었다.

 ‘아하, 그 녀석이 바람둥이였구나.’

 하지만 말이란 주체에 따라 얼마든 그 색깔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 알지 못하는 그녀였다.

 “뉘 집 딸을 데려다 고생을 시킬지 앞이 훤하네, 훤해. 아니, 어디 제 놈이 남의 집 귀한 막내딸을 넘봐, 넘보긴. 그저 눈이 보배지.”

 “킥킥.”

 귀하다는 말에 대뜸 윤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

 “언년이가 귀해?”

 기다렸다는 듯 말봉의 손바닥이 윤지의 등짝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얏!”

 “하여간 동네에서 그 녀석하고 안면이라도 텄다간 엄마 손에 맞아 죽을 줄 알아!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마!”

 득달같이 들어선 염려를 딸에 대한 압력으로 밀어붙인 말봉이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놀란 가슴을 한시라도 빨리 남편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씨, 아파 죽겠네.”

 화끈거리는 등짝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윤지는 어머니의 발소리를 듣고 재빨리 껐던 음악을 다시 틀었다. 경쾌한 비트와 함께 나긋나긋한 가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자기야 사랑인 걸 정말 몰랐니

 자기야 행복인 걸 이젠 알겠니

 자기를 만나서 사랑을 알았고

 사랑을 하면서 철이 들었죠…….

 “앗싸! 가사 좋고, 목소리 좋고!”

 박자에 맞춰 어깨까지 들썩이며 윤지는 아직 귀에 익지 않은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뭐니 뭐니 해도 음악 감상의 최고봉은 역시나 트로트였다. 워낙 트로트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배달 생활을 하는 윤지에게 트로트라는 장르가 가져다주는 위안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좋았어, 접수!”

 CD로 구울 노래 목록을 하나 더 추가하며 윤지는 얼른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온라인 강의를 듣기 위해선 이쯤에서 음악 감상을 접어야 했다. 빠른 동작으로 노트를 펴고 펜을 챙긴 뒤 윤지는 미리 열어놓은 사이트에 로그인을 시도했다.

 리터레이처(literature)라는 문학공간에서 제공하는 소설 창작 수업은 암담할 수 있었던 생활에 생각지 못한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하늘처럼 생각했던 작가 윤은헌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랬고, 무엇보다 윤은헌 작가가 윤지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동영상 강의를 들었던 화요일과 달리 오늘은 채팅으로 수강생의 작품 평가를 하는 날이었다. 윤지는 지난 일주일 동안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은 다른 수강생의 작품을 한 번 더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채팅 방에 들어섰다. 하루아침에 중국집 배달부로 전락한 이윤지가, 마법의 힘을 빌어 변신한 신데렐라처럼 소설가 지망생으로 비상하는 순간이었다.

 

 

 3. 용알, 잠 못 드는 밤을 배우다

 

 

 ‘아, 우리 윤지?… 몰랐구나, 우리 막내야, 막내. 근데 그건 왜 묻니? 호호, 너도 참 웃긴다. 얘. 내가 장장 동생이 셋이나 되는데 걔들을 다 데리고 놀러 다녔겠니? 막내야 늘 큰 언니 차지였지. …이유를 말해야 대답을 해 주지.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선 대뜸 우리 막내에 대해 물으면 내가 무슨 소릴 하겠니? …뭐, 관심?! 재하, 너 우리 막내 알아? …글쎄다, 아무리 걔가 뜻한 바가 있어서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고는 하지만 설마 남자 친구 하나 없을까. …걔? 얼굴만 곱상하지 실속은 없어. 막내라 성격도 지랄 맞고, 제멋대로야. 재하, 넌 나이를 먹어도 여자 무늬에 꽂히는 건 여전하구나. 얘, 걔 이제 스물다섯이야. 요즘 애들 머리숱 적은 남자는 용서해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잔 용서 못 하는 거 모르니? 그리고 우리 막내 길거리 캐스팅도 두 번이나 당한 애야. 그런 애가 남자 하나 없겠니. …당연하지, 모르긴 해도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줄을 섰을걸. 눈 버렸다 생각하고 마음 접어, 아니면 하루쯤 네 눈이 호강을 누렸다고 생각하던가. 호호호…….’

 오후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윤형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재하는 진하게 내린 블루 마운틴으로 입술을 축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독할 정도로 착하고 어질게 생긴 그녀가 초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닌 동창 윤형의 동생일 줄이야.

 윤형의 바로 아래 동생 윤석이 두 해 가까이 홍화 반점에서 배달 생활을 했던 건 재하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동글동글하니 짜리몽땅했던 윤석이 배달통을 들고 다니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감정이 긴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하아…….”

 “어머, 아들 무슨 일이야?”

 언제 들어왔는지 어머니 선자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하며 재하에게 다가왔다.

 “발소리 좀 내고 다니지?”

 “오, 미안, 미안!”

 과장되게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어머니를 보자 이내 짜증을 낸 일이 후회스러웠다.

 “무슨 걱정 있니?”

 “아니야.”

 “일이 잘 안 풀리니? 오자마자 출근해서 그런 거지? 며칠 쉴 걸 그랬나 보다. 엄마가 아버지한테 얘기해 볼까? 참, 고모가 오셨어, 엄마랑 같이 내려가자.”

 후회도 잠시, 쉬지 않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염려에 재하는 절로 미간이 구겨지는 걸 느꼈다. 극진한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유독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사랑 앞에선 자주 답답함을 느끼는 그였다.

 “됐어.”

 퉁명스럽게 대꾸를 한 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방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순간에도 눈앞엔 온통 한 여자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촉촉한 비에 젖은 아카시아 꽃을 연상케 하는.

 “오셨어요?”

 재하가 근처에 사는 고모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하자 소파에 앉아있던 명화의 얼굴에 대번 화색이 감돌았다.

 “아이고, 녀석, 잘 지냈지?”

 환갑을 지난 노인답지 않게 정정한 명화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 와 재하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았다.

 “고모도 잘 지내셨죠?”

 “그럼, 그럼. 녀석아, 아무리 출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얼굴은 한 번씩 보여 줘야지. 눈이 다 머는 줄 알았네. 아무리 봐도 너무 잘 생겼단 말이야.”

 일찍이 자식 하나 없이 청상과부가 된 명화에게 오라비의 아들 재하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쪽으로 와서 앉자.”

 재하의 손을 꼭 붙든 명화가 소파를 향해 다가왔고,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선자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깃들었다.

 나이 서른이 넘은 뒤에야 삼신할미가 인심을 쓰듯 닦아준 눈물이었다. 워낙 손이 귀한 집안으로 시집을 온 까닭에 첫 딸을 낳으면서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선자에게, 재하는 눈물로 잉태한 진주와도 같은 아들이었다.

 ‘어째 완(完)쌀로 밥을 해 처먹으면서, 반푼이 같은 짓만 골라 하는지.’

 한희, 두희, 세희에 이어 넷째 딸 소희를 낳을 때까지 집안에서 철저히 반푼이 취급을 당해야 했던 선자였다.

 가뜩이나 성에 안 찼던 며느리를 홀대하던 시어머니도 시어머니이지만, 딸 때문에 어깨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명치가 답답한 그녀였다. 한 술 더 얹어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가는 사내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볼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선자에게 있어 재하는 하늘이 씻어준 눈물이자 하늘이 선사한 보배였다.

 “재하야, 고모가 네 선 자리를 알아보셨다지 뭐니.”

 “선이요?”

 뜬금없는 어머니의 말에 재하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스물여덟이 되면서부터 보기 시작한 선이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올려본 적 없는 재하에게, 선이란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 죽이기 놀이였다.

 “색시가 어찌나 참하던지 내 한눈에 반했지 뭐니. 길게 볼 것도 없이 돌아오는 주말로 시간을 잡았으니까 그리 알아라, 재하야.”

 진한 카키색의 벨벳 블라우스를 걸친 명화의 말에 재하는 잠시 할 말을 잊어야 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이란다. 괜찮지?”

 “선 보는 데 직업을 왜 따져?”

 “왜 따지긴. 명색이 교육하는 사람인데, 이다음에 아이들을 낳으면 좀 잘 가르치겠어.”

 “그뿐이 아니야, 재하야. 생김도 곱지만 성품이 어찌나 어진지,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하단다.”

 “호호, 고모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내가 다 기대가 되네요. 여보, 당신 생각은 어떠우?”

 “흠, 만나봐야 아는 게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흡족하기는 기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이에게 전해 듣기론 비교적 다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규수라고 했다.

 “참, 고모, 그 댁 형제가 어떻게 돼요?”

 “아이고, 언니도 참. 아무렴 내가 그걸 안 알아봤겠수. 위로 떡하니 오라비가 둘 있고, 아래로 여동생 하나가 있대요. 오라비 하나는 한의사에다, 다른 하나는 변호사라지, 아마. 여동생은 유치원 선생이고.”

 “어머, 어머, 너무 마음에 든다.”

 “누가 채 갈까 싶어 내 직접 그 댁 어머니한테 신신당부를 해 놨어요.”

 “잘했어요, 고모. 자식 농사를 아주 잘한 댁인가 보네. 여보, 우리 재하가 이번엔 제대로 제 짝을 만나려나봐. 그렇지?”

 반색을 감추지 못하는 선자의 말에 기순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보다 늦게 본 아들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며느리에 대한 욕심이 커가는 그였다.

 ‘잘하면 내년이나 후년쯤이면 손자를 안아볼 수 있겠군.’

 “고모, 토요일이라고 했죠?”

 “네, 점심시간에 보기로 했어요.”

 “참, 그 댁 어른들은 어떤 일을…….”

 “바깥양반은 내내 교직에 계시다 은퇴한 지 얼마 안 되고, 안 주인은 요리 연구가라지, 아마.”

 “요리 연구가요?”

 “책도 여러 권 내고 가끔 텔레비전에도 나온다지?”

 “어머, 어머! 웬일이야! 아주 똑 부러지는 양반인가보네. 자기 일을 갖고서도 자식들을 그리 잘 키운 걸 보면.”

 “직접 보면 언니도 입이 쩍 벌어질 거예요. 사람들이 차원이 달라.”

 “그러겠네요. 내가 다 가슴이 설레요, 고모. 고모만 믿고 며느리 들일 준비만 하면 되는 거죠? 호호호.”

 “그 댁에서도 재하가 아주 마음에 드는 눈치야.”

 “그래요?”

 “처음엔 외아들이라니까 조금 멈칫해 하는 것 같더니만, 내가 우리 재하 성품에 대해 장황하게 얘길 했더니 요즘 세상에 그렇게 건실한 청년이 있느냐면서 반색을 하던 걸요.”

 “아무렴요, 내 자식이라 하는 얘기가 아니라 요즘 세상에 우리 아들만 한 인물이 어디 또 있나요.”

 “언니, 몰라서 그렇지 효자 사윗감 꺼리는 집들도 많아요.”

 “그거야 근본 없는 사람들 얘기지. 막말로 며느리를 들인다고 해서 내가 시집살이를 시킬 것도 아니고. 눈치 볼 시누이가 있어, 망령 든 노인네가 있어? 누가 됐건 간에 우리 집에 들어오는 아가씨야말로 복 받은 거 아니에요?”

 “그야 그렇죠. 하여간 내 말은 그 댁에서 우리 재하가 효자라는 말에 큰 점수를 줬다는 거예요.”

 “아니, 그건 왜요?”

 “왜긴요, 애들이 보고 자란다면서……. 그렇게나 생각이 깊더라니까요.”

 “어머, 어머, 정말 딱이다, 딱!”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침을 튀겨가며 대화에 열중하는 어머니와 고모를 보며 재하는 한 번 더 흐릿한 영상이 눈앞을 어지럽히는 걸 느꼈다.

 이윤지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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