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날은 하늘에서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직은 새벽이라서 그런지 어둑했으나 메이베른 왕국의 동(東)쪽 숲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잡아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눈에 핏발을 세운 체 명령을 내리자 독수리의 형태가 새겨진 갑옷을 입고 검을 든 사내들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숲속의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거친 발걸음에 숲속의 풀밭은 이미 비참한 모습으로 밟힌 발자국만이 남았었다.
그때 병사들이 있는 위치로부터 약 1미터 뒤의 나무뒤에 왠 남자가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가려진 후드탓에 보이진 않았으나 그 위로 칼로 베인듯한 상흔과 화살이 박힌 어깨에 진한 검붉은 색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으윽..헉.."
남자는 신음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를 흘렸고 품 안에 무언가를 꼭 안고 있었다. 그는 품 안에 안긴 아기를 보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스야.."
"우..으.."
"착..하지..쉬이.."
곧 아기가 울음을 터뜨릴것 같이 칭얼대며 눈에 눈물이 맻이자 남자는 겨우 입을 움직여 품안의 아기를 달랬다. 그러자 아기는 남자의 말을 알아듣는듯이 소리없이 눈물이 고인 눈으로 손을 빨며 남은 한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띄었으나 곧바로 실소를 터뜨렸다.
"하..!흐..으.."
피로 얼룩진 그의 볼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고 아기를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이스야..사랑스러운 내 딸아.."
"......."
"아빠가..미안하다..."
"......."
"..지켜주지 못해서..미안하다.."
"우으..."
아기가 다시 칭얼대며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에 남자는 그저 소리없이 흐느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때 병사들 특유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몸을 흠칫 하며 소리를 죽였다.
"어이!이쪽 좀 잘 찾아봐!!"
"...없는거 아냐?"
한 병사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횃불을 든 병사가 말하였다.
"상대는 아기를 안고 있는데다가 마력 차단기가 채워져 있다. 분명 멀리 가진 못 했을 거야."
그러자 병사들의 말소리에 아기를 꼭 안고 있던 남자는 결심을 한듯이 굳은 눈빛으로 자신의 귀에 걸려있던 푸른빛의 귀걸이를 빼내었다. 그리곤 그것을 아기의 귀에 걸어주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스야.."
"우..?"
"이 아빤...아마 이스랑 같이 살지 못할듯 하구나.."
"아..."
"..엄마를 부탁한다.."
"..바.."
아기는 다시 손을 들어 그의 뺨에 갖다 대었고 그때 아기의 눈에서 작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남자는 아기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아기를 땅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아기는 착하게도 울지않고 그저 눈물이 고인 두 눈망울로 자신의 아버지를 응시하였다.
출혈이 심한 탓인지 그의 몸이 휘청거렸으나 손으로 나무를 짚고 신음소리를 삼켰다. 그리곤 떨리는 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한 병사가 소리쳤다.
"금빛 정령사다!!!"
그러자 삽시간에 병사들이 그의 주위를 에워쌌고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 그렇게 살기와 함께 침묵이 흐르던 가운데 병사들의 뒤편에 있던 나무에서 눈을 뜰수조차 없는 빛이 발현 되었다.
'파아앗-!!'
밝고 푸른빛이 발현되자 남자는 그제서야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병사 한명이 들고 있던 검을 빼앗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왼쪽 가슴에 찔렀다.
'푸욱-!!'
그러자 남자의 몸은 힘없는 허수아비처럼 풀밭에 쓰러졌고 빛이 사그라듬과 동시에 제일 먼저 눈을 뜬 병사가 눈을 크게 뜨고 붉은 머리칼의 남자에게 말하였다.
"크..크렌시올라님..금빛 정령사가.."
"..사라졌는가?"
"아니..그게..자..자결을 하였습니다.."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붉은 머리의 남자는 피를 흘린체 힘없이 풀밭에 쓰러져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말하였다.
"됐다. 철수한다."
그 말을 끝으로 몇분뒤 병사들과 붉은 머리의 남자는 숲을 벗어났다. 그때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치며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