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어린아이> (1)
신을 원망한다. 저주한다. 아니 애초에 믿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신이라는것이 실존 했다면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거니깐 말이다.
"야!!음침이!!"
또 저놈이다. 하지만 속과는 달리 아이는 몸을 떨며 자신을 부른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왜..왜..?"
뒤 돌아보는 순간 무언가가 날아와 자신의 이마를 맞췄다.
'딱..!'
"아..!!"
아이는 이마를 감싸쥐며 주저앉았다. 아이의 이마를 맞춘 건전지는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고 그것을 본 남자아이와 주변 아이들은 모두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멍청이. 그것도 못 피하냐?!"
아이들이 모두 자기를 비웃자 이마에 건전지를 맞은 아이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짜 음침하다니깐. 머리는 뭐 저렇게 검어??그리고 완전 더벅머리고!!"
"하하하!!!!"
아이들 모두가 비웃자 검은 머리의 아이는 벌벌 떨다가 이내 그 자리를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흐..으.."
자신의 유일한 피난처인 고아원 뒷산의 달맞이 꽃밭에 온 아이는 소리내어서 울면 들켜서 다시 웃음거리가 될것이 뻔하다는걸 알고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그녀의 머리는 아까 남자아이가 말한것과 같이 진한 먹물을 뿌려놓은듯이 인위적으로 검었고 머리카락은 산발이 된체 얼굴을 가렸다. 아이의 몸에는 멍들과 작은 화상에 딱정이가 진 상처들이 보였다.
나는 누구고 엄마 아빠는 왜 나를 버렸을까. 그리고 왜 고아원의 또래 아이들과 언니 오빠들은 다 나를 피하고 괴롭힐까. 왜 다들 나를 싫어하는걸까.
여러가지 원망들이 응어리져서 뾰족한 화살이 되어 아이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그리고 점점 더 물밀듯이 밀려오는 설움과 아픔 탓에 아이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진짜...죽고싶어..'
그렇게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지 몇분이 지났을까. 깜빡 잠이 들었던 아이는 쌀쌀한 가을 바람이 자신의 몸을 때리고 가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안녕?"
"......"
그러자 왠 남자가 자신의 옆에 앉아서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아이는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며 연신 깜박였다.
"누..누구세요..?"
"많이 힘들지?"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그 말에 아이는 아까 당한 괴롭힘의 설움이 다시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들은 이유없이 괴롭히고"
"......."
"다 나를 싫어하는것 같고."
"......."
"이 생각 한거 맞지?"
그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묻자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해가 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나도 똑같아."
".....?"
"아니, 똑같았다.라고 해야되는건가?"
그는 여전히 오렌지 빛깔의 노을 하늘에 눈을 둔체 말하였고 아이는 잠긴 목소리로 그런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옛날에 지금의 저같이 괴롭힘을 당했던건가요..?"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며 노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빤히 응시하였다. 몇분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남자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며 침묵을 깨뜨렸다.
"나를 따라올래?"
"...네..?"
"이 손을 붙잡으면 넌 힘들어질거야. 평범한 여자아이들처럼 지낼수도 없을거고. 하지만 괴롭힘 따위나 네가 지금껏 겪은 고통은 없을거야."
"......"
"그리고 무엇보다..지금 저 아이에게 복수 할수 있는 힘이 생길거야."
"......"
"..그래도 나를 따라올래?"
그의 얼굴은 따스함을 머금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또 외로워보였다.
아이는 그를 흔들림 없는 올곧은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들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당연하죠..지금 저에겐..이것보다 더한 지옥은 없어요."
그러자 남자는 다시 빙긋 웃더니 물었다.
"내 이름은 류 한진. 너는?"
"아..저는.."
이름을 물어보자 아이는 당황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류 현."
".....?"
"네 이름은 이제부터 류 현이야. 빛날 현(炫)자의 현. 어때?"
남자가 윙크를 하며 묻자 아이는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이름을 읇조렸다.
"..현..."
"그럼 현아, 잘 부탁해?"
"...네..."
* *
한진을 따라서 온 곳은 다름아닌 고층빌딩의 앞이었다. 건물의 문 앞에는 'J 기업' 이라고 새겨져있었고 안에 들어서니 카운터에 젊은 여직원 두명이 앉아 있는것을 볼수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이 낮설으나 새로운 현은 한진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옆에 붙은체 두리번 거렸다.
한진은 금빛으로 칠해진 엘레베이터에 올라타더니 익숙하게 맨 꼭대기층인 30층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은 신기한듯이 자신에게 펼쳐진 이 모든 풍경을 눈에 담았고 30층에 도착하자 한진은 문위에 '사장실'이라고 붙은 문을 열었다.
한진은 웃으며 말하였다.
"J 기업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그러자 여태껏 아무 표정이 없던 현은 눈을 깜박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그에 한진은 만족한듯이 현을 바라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부탁하신 분께서 오셨습니다."
"응, 알았어. 그럼 갈까요?꼬마 아가씨."
한진이 상냥하게 웃으며 마치 에스코트 하는 신사처럼 한 손은 등 뒤에, 또 한 손은 현에게 내밀며 말하였다. 그러자 현은 수줍게 웃으며 한진의 손을 잡고 사장실의 나갔다.
아까 문을 노크한 사람이 비서인지 한진은 그녀와 복잡한 사업 이야기를 하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현은 한진의 손을 꼭 잡고 그런 둘을 신기한듯이 바라보며 따라갔다. 그러자 현의 눈앞에는 다시 낯선 풍경이 펼쳐졌고 낯선 사람이 보였다.
현은 본능적으로 한진의 뒤에 숨었으나 그는 한 손으로 현의 머리를 달래는듯이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진은 앞에 선 여자와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 오랜만입니다. 최 실장님."
"저도 오랜만이에요, 사장님."
최실장이라 불린 여자는 화사하게 웃으며 한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한진은 그런 현을 자신의 앞으로 내밀며 말하였다.
"아, 다름이 아니라 이 아이를 '변신' 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듣는다면 우스꽝스러운 단어였지만 최실장이라 불린 여자는 익숙하다는듯이 풋 하고 조용히 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최실장은 지극히 낯을 가리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현은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 몸을 떨며 다시 한진의 뒤에 숨었다.
"어머나..낯을 좀 가리나 보네요."
"네, 얘가 낯을 좀 가립니다."
한진이 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자 최실장이 현과 키를 맞춰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안녕? 이름이 현이야??"
최실장이 만면에 친근해 보이는 웃음을 가득 띄운체 그녀에게 묻자 현은 몸을 움츠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최실장은 화사한 목소리로 현에게 물었다.
"우리 현이, 이 언니가 언니 머리처럼 현이 머리도 이쁘게 다듬어 줄까?"
최실장이 묻자 현은 산발이 된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으나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계속 친근하고 능숙하게 이것저것 말을 붙이며 가져온 프로파일러들을 현에게 보여주었다. 현의 또래아이들의 헤어 스타일을 보여주며 관심을 끌자 현은 어느세 최실장에게 이끌려서 준비된 의자에 앉아있었다.
"음..그럼 우리 현은 어떤 머리가 좋아? 단발? 생머리? 아님 웨이브?"
알수없는 단어들이 현의 귀에 들려오자 현은 긴장감으로 몸을 굳혔다. 하지만 관심이 가는건 어쩔수 없다보다. 현은 긴장어린 눈빛으로 최실장이 가져온 프로파일러와 헤어잡지를 보다가 이내 시선이 한곳에 박혔다. 그러자 현의 시선을 눈치챈 최실장은 화사하게 웃으며 물었다.
"현이는 웨이브가 마음에 드는가 보구나?"
그러자 현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최실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하였다.
"좋아. 그럼 이 머리로 하는거다?"
그러자 최실장은 머리를 하는데 필요한 장비들과 도구들을 가지러 사라졌다. 그때 현은 앞에 붙어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고아원의 아이들이 말한듯이 산발에 부스스한데다가 숱이 많고 길은 탓에 음침해 보였다. 그리고 삐쩍 마른 팔 다리의 여기저기에 남겨져 있는 상처들이 현을 더욱 안쓰럽게 만들었다.
이런 자신이 저런 멋진 여성처럼 변할수 있을까.
현은 밀려오는 자괴감에 고개를 푹 숙이며 터져나려오는 울음을 애써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