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어린아이> (9)
작전은 이러하였다. 하성이 먼저 H 그룹 후계자의 자택에 잠입한뒤 분위기를 살핀후, 설치되어있는 cctv와 경보 시스템등을 해체시키고 귀에 꽃은 초소형 무전기로 현에게 신호를 보낸다. 하성의 신호가 떨어지면 현 또한 자택에 잠입해서 자고 있는 그를 간단하게 총으로 쏴서 죽인다는 심플한 계획이었다.
사실 말로 하면 간단해보이지만 상대가 H 그룹의 후계자인만큼 치밀한 보안 시스템이 걸려 있기에 시간을 끌어선 안된다는 결론에 세운 작전이었다. 또한 제거대상인 H 그룹의 후계자는 혼자 살고있을뿐더러 밖에 자주 나가지 않는탓에 야외에서 급습할수는 없었다.
또 한가지, 한번 본 얼굴이라도 꼭 기억한다는 후계자의 비상한 머리 덕분에 비서나 아는 사람으로도 변장할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만큼 최악의 상황에는 정면승부를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쓰는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현은 미리 챙겨둔 여러가지 가벼운 암기들을 살펴보다가 이내 다시 품안에 넣었다.
"..달도 안 떴네.."
네온 사이트와 각종 간판 때문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으나 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괜찮겠지..?'
임무를 수행할때마다 긴장감이나 박진감을 느껴본적은 있었으나 불안감은 한번도 느껴본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불을 자유자재로 쓸수있는 능력이 있으니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능력을 쓸때마다 체력소모가 어마무시하게 들긴 했지만 말이다.
-"..상황보고. 여기는 오케이."
-"..응."
어둠속에 몸과 기척을 숨기고 있던 현은 귀에 꽃은 커브형의 초소형 무전기에서 하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보실까나.."
밀려오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버리고 현은 소리없이 능숙하게 담을 타고 넘은뒤 자택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자택안은 대기업의 아들이 사는곳 답게 넒고 깨끗했고 가구나 시설 또한 최신식이었다. 가정부가 매일 와서 집을 청소한다는 말을 듣긴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바닥이 반질반질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바로 돈지랄이라는건가.."
-"킥..뭐래..빨리 들어오기나 해."
-"뭐야, 이거 안 꺼져있었어?"
현이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무전기가 켜져있는 상태였는지 하성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당황한 현은 얼굴을 붉히며 이번엔 확실하게 무전기를 끄고 하성이 숨어있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가 불룩하니 사람이 누워서 자고 있는듯 하였다. 머리만 살짝 빼꼼 내민체 자신에게 일어날 상황은 꿈에도 모른체 깊게 잠들어 있는듯 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문 뒤에 숨어있던 하성을 발견한 현은 그에게로 다가가서 물었다.
"제거대상, 확실히 확인했어?"
"응, 당연하지."
하성이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둠 때문에 그 모습은 하성에게 보이지 않았다. 계속 해서 주의를 둘러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던 현이 중얼거렸다.
"..이상해."
"..그렇지?"
하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하자 그녀는 인상을 찌뿌리고 입을 열었다.
"..너무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니깐 더 이상해."
"아무래도 그렇긴 해."
하성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현의 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데체 무슨 속셈인거지..? 우리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헛점을 노리려고 하는건가..?'
"..상대는 한일파야. 쉽게 생각하면..윽!!"
'퍽!!'
하성이 대답을 하다 말고 신음소리와 함께 몸이 풀썩 하고 쓰러졌다.
"오빠?!"
하성이 갑자기 둔탁한 무언가를 맞고 쓰러지자 현은 뒤를 돌고 재빨리 몸을 피하였다. 그러자 현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를 볼수 있었다.
"오..제법이군."
"..당신은.."
현이 믿을수 없다는듯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조소가 가득한 얼굴로 현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런거 가지고 놀라시면 어쩌나..안 그래,'류(Ryu)'?"
그의 말에 현은 인상을 더욱 찡그릴뿐이었다. 너무 긴장을 풀고 있던 탓일까? 하성에게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침대에 머리를 내밀며 잠 들어 있는 저 사람은 누구라는 거지?
현이 믿을수 없다는듯이 침대를 바라보자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침대에 시선을 두며 말하였다.
"아, 저건 우리 회사가 이번에 새로 개발한 인조 로봇이지. 이 와중에 저런게 궁금하다니 실력에 자신이 있는건지.."
그의 조소가 가득한 말에 현은 침대에서 시선을 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H 그룹의 후계자 성인혁은 암기를 꺼내들며 살기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말하였다.
"자..그럼 제발로 사지에 들어와 주셨으니, 이거 기뻐해야할 일인가?"
"...글쎄요, 저희가 과연 그 정도로 준비없이 왔겠어요?"
인혁이 차갑게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자 현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것을 느꼈다. 그러나 애써 무시하곤 그의 말에 맞받아쳤다. 하지만 그녀의 허세 어린 말에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였다.
"아쉽게도 그런거 같네. 이 집 전방 10미터 이내의 곳곳에 우리 조직원들이 숨어있거든.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진한파의 조직원들은 이 자택에 있는 너희 둘뿐이라던데? 안타깝게도 한분은 기절해서 인질인 상태이고."
인혁이 쓰러져있는 하성을 발로 툭툭 차며 아까와 다름없는 얼굴로 현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인혁이 하성의 머리를 발로 밟자 현의 얼굴이 저절로 싸늘하게 굳었다.
"..당장 그 발 치워."
"어이구, 무서워라. 안타깝게도 너에겐 그런 권한이 없을텐데?"
인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악스러운 소리와 함께 여러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방 안에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현의 얼굴 또한 하얗게 질렸다.
"초대장에 응해줬으니 이제 어울려 놀아야 될 일만 남았네. 내가 준비한 파티가 마음에 들어?"
"..당신 설마..그 의뢰도 진한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역시 이래서 '류(Ryu)'가 마음에 든단 말이야..죽이기엔 정말 아까운 여잔데."
그러나 말과 행동이 다른 그는 현에게 총구을 겨눈체 아까보다 더 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인질도 잡혀있겠다, 거기다가 당신은 나한테 지금 목숨을 위협 받고 있는 상태네?"
"....."
"말할 필요도 없이 당신한테 불리한 상태네. 어떡할래? 진한파의 최상급 킬러인 '류(Ryu)'?"
"......"
현은 아무말 없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볼뿐이었고 인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아무래도 여자긴 하니깐 선택권을 줘야겠지?"
"그딴거 필요없..."
"일번, 여기있는 조직원들이랑 싸워서 이긴다. 이번, 그냥 나한테 이 자리에서 죽는다. 골라봐."
"누가 멋대로 죽어준대요? 다 덤벼요. 어차피 이판사판이니깐."
현이 머리를 질끈 묶으며 싸움 자세를 취하자 인혁은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쳐."
"와아아아!!!"
인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직원들은 기다렸다는듯이 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현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방안의 테이블에 올라간뒤, 단도들을 던졌다.
'푹-!!'
"으아악!!"
아무래도 몸싸움을 주로하는 보통 조직원이 아닌 어둠속에 몸을 숨겨 은밀히 사람을 죽이는 살수이다보니 이런 정면대결이 그녀에겐 여러모로 불리했다.
테이블과 옷장위를 넘나들며 현은 소지하고 있던 단도들과 독침들을 조직원들의 다리나 팔, 아니면 배에 명중했으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높은곳에서 무기들을 날릴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천장이 높다보니 옷장에 올라갈수 있는데다가 이런 공격이 가능한 것이었다.
현은 가볍고 재빠르게 옷장에서 내려온뒤, 체술로 급소를 때리며 차례차례 조직원들을 기절시켰다. 주변에 있는 의자와 액자, 램프등의 가구들도 적절히 활용해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을때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그녀의 등뒤에 섰다.
"..괜찮아?"
"오빠?"
현의 등뒤를 맞대고 선 이는 다름아닌 하성이었다.
"..기절한거 아니었어?"
"막 깨어난참이야."
"그 남자는 어떡하고?"
현이 슬쩍 하성을 쳐다보며 말하자 하성이 개구진 얼굴로 대답하였다.
"중요부위를 힘껏 때려줬지."
"쿨럭."
다소 과격했던 그의 공격을 상상한 현은 자신도 모르게 기침을 하였고 하성은 그녀에게 달려든 조직원 한명을 돌려차기로 헤치우며 말하였다.
"싸움중엔 한눈 파는거 아니다?"
"..미안하네요."
현은 사과를 하며 자신에게 계속해서 달려드는 조직원들을 때려눕혔다. 그러나 뛰어난 싸움솜씨로 조직원들을 헤치워도 그 수가 줄어들지 않자 둘은 몸이 점점 지쳐가는것을 느꼈다.
"..젠장.."
몸이 느려질수록 몸에 상처도 점점 늘어갔고 현이 한 조직원을 단도로 찌르려고 했을때 하성이 외쳤다.
"위험해!!!"
"어...?"
하성의 말에 현은 자신의 몸이 누군가에 의해 감싸지는것을 느꼈으나 그것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푹-!!'
"큭...!!"
"오..오빠!!"
자신의 감싸안고 대신 칼이 등에 찔린 이는 다름아닌 하성이었다. 현은 고통어린 신음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가느다란 선혈이 흐르는것을 볼수 있었다. 하성이 현을 감싸안은체 그대로 주저앉자 여러명의 조직원들이 둘에게 달려들어서 무자비한 구타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런 구타 가운데에서도 하성은 현을 꼭 끌어안은체 대신 그 고통을 감내하였다. 현은 자신을 꼭 껴안은 그 손을 풀려고 하였으나 어찌된 힘인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때 그 가운데서 비틀린 웃음소리와 함께 이 상황에선 절대 듣기 싫은 목소리가 방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