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어린아이> (10)
"아..이거 진짜 눈물 겹네?"
인혁이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말하자 현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직원들의 사이에 가려져서 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인혁이 손을 들어 조직원들을 제지했다. 둘을 둥글게 둘러쌌던 조직원들은 인혁에게 경례를 하며 둘에게서 물러났고 인혁은 아주 마음에 든다는듯이 말하였다.
"감히 겁도 없이 내 소중이를 발로 차?!"
'퍼억-!!'
인혁이 하성을 꽤나 파워가 실린 발로 차며 말하였다.
"엄청난 사랑꾼 나셨네..절대 안놔."
"......"
"떼어내."
"넵!!"
조직원들 여럿이 달려들어서 하성과 현을 억지로 떼어내자 현은 차갑게 얼어붙은 눈으로 인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혁은 하성을 때리는데에 정신이 팔린탓에 자신을 바라보는 현을 보지 못하였다.
'퍽-!!퍽!!'
구타하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현은 그런 인혁에게 달려들어 한방이라도 때리고 싶었으나 자신의 두팔을 결박한 조직원들 탓에 이도저도 못한체 그저 눈물범벅인 얼굴로 이 상황을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온통 눈물로 뒤덮혔으나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는것을 막을수는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것일까. 하성이 드디어 축 늘어지자 인혁은 그의 머리카락를 움켜잡고 머리를 들어올리며 말하였다.
"너..재수없거든..? 그러니깐 좋은말로 할때 까불지마..새끼야, 응?"
그렇게 말하곤 인혁은 하성의 얼굴을 바닥에 세게 내려꽃은뒤 손을 떼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후련한 얼굴로 현에게 다가왔다.
"자..이제 방해물도 없어졌고..아가씨는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 전의상실 인가?"
그가 진하게 미소를 띄우며 묻자 현은 그저 흉흉한 눈빛으로 인혁을 바라보았다.
"내가 왠만하면 여자는 안 때리는 주의인데.."
'짝-!!!'
인혁이 미소를 지우고 그녀에게 다가가 뺨을 내리쳤다. 그리고 살의가 깃든 낮은 목소리로 현에게 말하였다.
"그딴 눈으로 꼴아보지마. 그러면 이렇게 맞을 일도 없잖아."
얼마나 세게 때린건지 돌아간 얼굴 한쪽은 벌써 퉁퉁 부어올랐고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인혁은 만족했는지 몸을 일으킨 뒤, 망신창이가 된 둘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뒷세계에서 내놓으라던 둘이 이렇게 한심한 꼴로 내 앞에 쓰러져 있다는것을 누가 믿어주겠어, 안 그래?"
희열에 찬 그는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죽일 일만 남았나?"
인혁이 눈꼬리만 휘며 말하자 현은 텅빈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져 금방이라도 끊어질듯이 힘겹게 숨을 내쉬는 하성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괜히 들떠서 이런 허술해 빠진 작전을 세운 자신 때문에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자신 때문에..하성 오빠가 죽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자책할수는 없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것은 하성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는것이었다. 그 생각에 불현듯 정신이 든 현은 눈을 감으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지금같이 체력이 저하된데다가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능력을 개방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것을 현 또한 직감을 하였다. 아직까지 이렇게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태에서 능력을 써본적은 없었기에 그녀 또한 자신이 어떻게 될지 확신하기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것을 신경 쓸때가 아니었다. 일단 하성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띠리링~'
"아, 하필 이때에.."
그 전화벨 소리는 인혁의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에서 나는것이었고 인혁은 거칠게 욕설을 한번 내뱉더니 뒤를 돌아서 전화를 받았다.
"누구냐, 용건만 말해. 아, 사업 구상은 내일 해도 되잖어..왜 굳이 지금.."
인혁이 한창 통화에 정신이 팔려 있을때 현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하성의 근처로 기어갔다. 주위의 조직원들은 현이 그에게 다가가는것을 보고 눈을 날카롭게 떴으나 이내 심하게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의 상태를 보고 자신들을 어찌할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것을 깨닫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성이 근처에 도달한 현은 그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 오빠...미안해..정말 미안해..'
아까 의자 다리로 머리를 비껴맞은것 때문인지 머리에선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 피는 자신이 흘리고 있는 눈물과 뒤섞여 붉은 눈물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현은 점점 약해져 가는 하성의 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아직까지 통화를 하는 인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통화는 점점 막바지를 향해 치닫았으며 그가 전화를 끊고 뒤돌아섰을때 현은 그의 휴대전화를 노려보며 능력의 일부를 개방하였다.
'타올라라..!!'
'화아악!!!'
"너 언제 거기로..으..으아아악!!!!"
자신의 손에 갑자기 열기가 느껴지자 불이 붙은 핸드폰을 발견한 인혁은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불이 붙은 핸드폰을 아무데에 집어 던졌고 다행히 사람이 없는 벽에 부딪힌 핸드폰은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다.
'퍼엉-!!'
핸드폰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연기가 치솟자 인혁은 믿을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니..갑자기 어디서 불이..?'
터져버린 핸드폰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을때 인혁은 자신을 살기어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현을 발견할수가 있었다. 얼굴이 부어오르고 피에 뒤덮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에 한기를 느꼈다.
그는 방금의 불을 낸것이 그녀라는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외쳤다.
"이..이 괴물!!!"
"하."
괴물이라니. 이 얼마만에 듣는 단어인가. 현은 자조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하성을 끌어 안지 않은 한손을 떼어 손바닥 위에 불을 형성하였다.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피가 울컥하고 터져 나올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잠 들라면 잠들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현은 자꾸만 흐려져 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불의 형상을 머릿속에 그렸다.
'타올라라..타올라라..'
'화악-!!'
"헉!!"
"아니.."
"이럴수가..!!"
허공에서 불이 나타나자 조직원들과 인혁의 눈은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이봐,"
"..!!"
"난 그리 참을성이 있는 인간이 아니야."
목구멍에서 피가 끓는 거친 목소리로 말하자 인혁과 조직원들의 몸이 움찔 하고 떨리는것을 보았다. 그 모습에 현은 웃음이라도 짓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었던 탓에 싸늘한 얼굴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기 터진 핸드폰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다 꺼져."
"힉..!!"
협박과 함께 커진 불덩어리를 본 조직원들은 아연실색을 하고 도망을 쳤다. 그때 인혁 또한 때를 틈타서 조직원들과 함께 방을 나가려고 하였지만 현은 그의 눈앞에 불의 장벽을 형성해내었다.
"아, 당신은 빼고."
"허..헉.."
"형님!!"
"도련님!!"
인혁을 둘러싼 둥근 원형의 장벽이 형성 되자 조직원들은 애타게 그를 부를뿐 아무도 구출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내가 분명히 꺼지라고 했을텐데."
"히익!!"
현의 살기어린 말 한마디에 방안에 남아있던 몇몇의 조직원들은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현과 인혁을 둘러싼 불의 장벽을 바라보다가 이내 방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조직원들이 모두 방밖으로 사라지자 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인혁을 둘러싼 불의 장벽의 면적을 점점 줄여나갔다.
"아..안돼..싫어..아악!!!"
자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불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발악을 하였으나 불꽃은 비웃는듯이 인혁의 온몸을 감쌌다.
"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가 자택을 울렸고 현은 그 모습을 무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절대 용서할수 없었다. 하성을 이 꼴로 만든 그를 절대 용서할수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희열에 찬 웃음을 짓는 그를 용서할수 없었다.
"쿨럭-!!!"
피가 역류하는 느낌에 현은 고개를 숙여 입을 막았다. 내상을 입은것이었다. 보통 능력을 쓸때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내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한계를 넘을 시 능력을 컨트롤하기가 더욱 힘들어져 폭주를 할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다른 누군가가 가르쳐준것이 아닌 직감적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쿨럭..쿨럭!으으.."
계속해서 혈이 섞인 기침이 터져나왔지만 멈출수 없었다. 그는 절대 이 세상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계속해서 능력을 개방하였다.
그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
"오..오빠?!"
금방이라도 끊어질듯이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던 하성을 발견하고 현은 정신을 차렸다.
"오..오빠..말 하지마. 아프잖어.."
"..이제 ...그..만..해도 되.."
"오빠.."
"너..라도..행복..해야...해..."
"오빠!!오빠!!제발..흐흑.."
현은 정신을 차리라는듯이 애절한 목소리로 그를 흔들며 외쳤으나 그는 잠시 떴던 눈을 도로 감으며 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오빠..?"
그의 숨소리가 멈춘것을 느낀 현은 눈을 깜박이며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오빠, 오빠, 하성 오빠!!은하성!!!"
이름으로도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현은 다시 한번 눈물 한줄기가 자신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것을 느꼈다. 그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
내가 정말 미안해.
"미안..."
행복해질수 없을것 같아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전부 다 미안해.
현은 자신의 안에 꼭꼭 숨겨왔던 깊은 무언가가 풀리는것을 느꼈다. 마치 자물쇠로 채워진 문을 열쇠로 간단하게 해제하듯이 톡 풀어지는것을 느꼈다.
"아..."
그와 동시에 현은 자신의 시야가 더욱 흐릿해지는것을 느꼈다.
주위에 불길이 더욱 크게 치솟았다. 인혁은 이미 숨이 끊어진지 오래였다. 한번 폭발한 힘은 멈출줄을 모른체 단번에 방안을 삼키고 또 자택 마저 삼켜버렸다.
온몸에 참을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으나 그녀는 웃을수 있었다.
'..죽는건가..아아..이제 죽는거구나..'
그러나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두렵지는 않았고 점점 아득해지는 정신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고백도 못하고 가네..'
죽기전에 아쉬웠던 바램 하나가 떠오르자 그녀는 쓰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아득해지는 정신 가운데 가까스로 손을 들어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정말..미안해..나의 하나뿐이자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하고 있는..하성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