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차원이동인건가요> (6)
"아가씨가 원하시는 데로."
가네르안이 현의 부탁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현 또한 고마워져서 따라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 미소에 가네르안은 다시 그녀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으나 정작 본인은 빠른 걸음으로 저택의 이곳 저곳을 둘러볼 뿐이었다.
"음..그러니깐 여기가 연무장이군요."
"응. 에릭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연무장에서 가볍게 아침 운동을 하고 집무실에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야. 뭐, 아침은 대부분 건너뛸때가 더 많지만 말이야."
"그렇군요."
소설에서만 보던 연무장을 실제로 보게 되자 현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무장은 현이 상상했던것 보다 훨씬 넓고 컸다. 연무장의 크키는 각 귀족들의 집마다 다른데 아스탈리아 왕국의 최고 무가(武家)인 스피니아 공작가의 연무장은 다른 가문의 연무장과는 비교도 안되게 넓고 깨끗하고 좋은 시설로 설비 되어있어 왕국의 여러 기사들은 스피니아 가(家)에서 무예를 배우길, 아니 단 한번이라도 그 연무장에서 스피니아 가의 기사들과 대련을 하는것이 소망일 정도로 뛰어났다.
"자, 그럼 다음 장소로 가자."
"...네."
본인도 무예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넓고 쾌적한 연무장에서 잠시 수련을 하고 싶은 맘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아쉬운 눈빛으로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기사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 *
"이곳은..."
"저택 탐험의 마지막 장소인 도서관 이지."
현이 아까 자신의 말에 급해진 이유를 조금이나마 눈치챈 가네르안은 단시간에 저택의 이곳저곳과 영지를 좀 둘러보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와서 이곳 도서관으로 왔다.
"책이..상당히 많군요."
"..돌아가신 공작 부인께선 엄청난 독서광이셨거든."
가네르안이 넒은 도서관의 주위를 둘러보며 현에게 말해주자 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대한 책장 앞에 섰다. 그리곤 자신의 뒤에 서있는 가네르안을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그에게 말하였다.
"가네르안님,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 넒은 저택과 영지를 돌아다니셔서 많이 피곤하셨을텐데 저 때문에 서둘러 주신것도 너무 감사드려요."
"......!"
크리티컬!
현의 꾸밈없는 미소에 심장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가네르안이 살짝 비틀거리며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역시 타격을 준 장본인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바쁜 얼굴로 책장에서 여러 책들을 살펴보며 꺼내고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던 가네르안이 그녀를 불렀다.
"저..저기.."
"네?"
현이 품에 두꺼운 책 몇권을 안은체 뒤로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부른 그를 바라보자 가네르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르안..이라고 불러도 되. 말도 높이지 않아도 되고..."
"아..."
그 말에 현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가 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르안님. 하지만 제 주인의 친우분께 말을 높이지 않는것을 크나큰 결례랍니다. 그리고 오히려 저는 존댓말이 더 익숙 하답니다."
"아..."
"하지만 나중에 일부러 말을 높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 진다면 그때 반말을 쓰겠습니다."
현이 친절하게 르안에게 말하자 그는 홍조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알았어. 그럼 나중에 꼭이야. 아가씬 책 마저 보고 있어. 난 에릭한테 가볼테니깐!!"
"네, 조심히 가세요."
현은 미소 띈 얼굴로 도서관을 나가는 르안에게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운뒤 다시 책장으로 고개를 돌려 책들을 훑어보았다. 그러곤 도서관의 아치형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아서 자신의 옆에 수북히 쌓인 책중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대륙의 역사집」
다시 글씨가 빠르게 꾸물렁 거리며 한글로 바뀐 책 제목을 흥미어린 눈빛으로 훑어보다가 이내 책의 첫장을 펼쳤다. 그러자 책의 첫장엔 대륙의 지도가 나왔다.
"아스탈리아 제국..메이베른 왕국...몽쉐르 왕국 그리고 사이켈 왕국."
지도에 그려진 대륙의 영토위에 씌여진 각 왕국의 이름들을 작은 목소리로 읽은 그녀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장부턴 각 왕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었고 현은 그 장부터 집중해서 읽어내려갔다.
「아스탈리아 제국: 빛과 번영의 여신에게 축복받은 왕국으로써 역사에 따르면 네 왕국중에서 폭군이 가장 적게 나타난 왕국이다. 상징은 용맹함을 나타내는 라이언.」
첫장은 아스탈리아 제국에 대해 서술되어 있었다. 페이지의 가장자리에 굵은 글씨로 씌여진 글귀의 다음엔 자세한 역사에 대해 서술되어 있었다.
「빛과 번영의 여신인 레이샤 여신에 의해서 세워진 제국, 아스탈리아. 태초의 신인 메이른이 인간을 만들고 몇천년뒤 그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키며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자 이에 분노한 메이른은 인간들을 멸종시키고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였으나 빛과 번영의 여신인 레이샤의 중재로 인해 멸망은 막을수 있었다.
여신 레이샤는 자신의 뜻을 이어받은 신녀를 인간들의 세상에 보내어 신의 뜻을 알리게 하였다. (중략) 그녀와 신녀의 노력 덕분에 인간들은 전쟁을 멈추었고 대륙 곳곳엔 신전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종결되자 신녀는 대륙의 한 곳에 정착하였는데 여신 레이샤는 그녀가 정착한 영토에 축복을 내렸고 그곳을 '아스탈리아'라 이름지었다.
그 사이 대륙엔 큰 지진이 일어났고 -일명 팡크리아- 고대의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 지진 때문에 대륙의 영토들이 갈라지고 분산되었다고 한다.」
"신이라.."
미안하지만 자신은 신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에겐 이 역사집이 그저 지구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여겨졌다. 그냥 막연히 '아, 이런 일이 있었을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완전 신의, 신에 의한, 신의 뜻을 따른 역사집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은 그동안 독서를 하면서 익힌 습독을 이용해서 주욱 읽어나갔다. 그리고 소설책 세권 분량의 아스탈리아 왕국의 역사집을 두시간만에 읽고 메이베른 왕국의 역사가 서술된 페이지를 펼쳤다. 아까 아스탈리아 왕국의 첫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굵은 글귀로 씌여진 문구가 가장자리에 적혀있었다.
「메이베른 왕국: 정령들의 가호를 받는 왕국으로써 젖과 허니가 흐르는 왕국이다. 상징은 생명체들에게 강자이자 모든것을 통찰한다는 이그르.」
"정령..정령이라..정령..?"
현은 그 말에 지난번에 본 요정들을 떠올렸다.
"설마..그게 정령?"
요정이라 하기엔 수가 너무 많았고 한 물체에 집중적으로 머물러 있었다. 가령 이를테면 빨강,주황,노랑색의 요정들은 난로에 몰려 있었고 연두빛과 초록빛의 요정들은 식물에 몰려있었다. 그리고 푸른빛의 요정들은 허공에 둥둥 떠나니고 있었고 하늘빛의 요정들은 물이 담긴 자신의 컵에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령..정령일수도 있겠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읽고 있던 역사집에 집중을 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에 현, 자신은 몰랐다.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갈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