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貴人)들과의 만남> (4)
사실 현은 찻집에 들어섰을때 부터 살기를 눈치챘었다. 다만 자신과 비슷한 기척을 숨기는 실력에 지금까지 아무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나이프를 던졌을때 유지하던 기척에 흠이 갔었다.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향해 날아온 나이프를 간단하게 고개를 틀어 피해주고 자신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갈색머리 여자를 바라보았다.
르안은 흉흉한 눈빛으로 찻집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현이 바라보고 있는 갈색 머리의 여자의 앞에 멈췄다. 르안은 살벌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탁자가 흔들리도록 세게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거...나이프 관수 좀 잘하시지..우리 쪽 여자분이 다칠뻔 했잖아요.."
"죄..죄송합니다.."
여자는 몸을 벌벌 떨며 그에게 사과를 하였고 르안은 그녀에게 몸을 가까이 들이밀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그 거추장스러운 헝겊 치웠다고 내가 모를줄 아나?"
".....!!!!"
"그러니깐 행동 똑바로 해..'이른'."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싸늘한 얼굴로 바라보고 보는 이가 다 불쌍하게 떨리는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자리에서 멀어졌다. 르안이 자리로 돌아오자 현은 굳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으응..?글쎄.."
그가 능글능글 웃으며 어물쩡 넘기려고 하자 현은 표정을 아까보다 더 굳히며 그에게 말하였다.
"말하기 싫으시다면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되요. 하지만 당한 사람은 나에요. 자칫하면 죽을뻔한 사고였는데 르안님께서 이렇게 아무일도 아니란 듯이 제가 그녀에게 가서 경고할 기회도 주지 않은체 일을 무마시키려는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요?"
르안은 어릴적 트라우마 때문에 방금같은 큰일도 작은 일로 해결하려는 타입이지만 현은 언제나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져서 해결을 보는 타입이다.
물론 이따위 칼 부림으로 죽을 현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였다.
"굳이 말하시기 싫으시다면 모르는 사람으로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뭐에 얻어맞은듯이 멍한 얼굴을 한 르안을 뒤로 하고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찻집을 나가려는 여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저기요,"
"....아까 일은 죄송하다고 했을텐데요."
갈색머리의 여자가 얼굴을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체 그녀를 째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하지만 현은 여자답지 않은 엄청난 힘으로 그녀를 돌려 세우고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사과는 저에게 한 것이 아니라 저의 일행인 남자분께 하신 것이잖아요? 하마터면 제가 죽을 뻔한데다가 잘못 날리기라도 했으면 죄없는 인명피해가 일어날 뻔했어요."
"......"
"그러니 저는 저 뿐만이 아니라 이런 소동에 휘말려들 뻔한 손님들께 사과를 했으면 합니다. 뭐, 제 말에 이의라도 있으신지?"
내뱉는 말 한자한자를 분명하게 말하며 꼬투리 하나 잡을것 없는 그녀의 말에 이른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이른은 인상을 찌뿌리며 그녀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하였으나 아까 언급했다싶이 도통 여자답지 않은 손아귀 힘에 그녀는 찌뿌린 인상을 더더욱 구겼다.
"..이거 놓으시죠..?"
"지금 도망치려는 건가요? 자신이 싸지른 똥은 그대로 둔체요?"
현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하자 이른은 분한 나머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따위 여자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망신을 주고 없어 버려야 할터인데 르안님과 함께 있을줄은 판단미스였다.
원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것을 좋아하지 않던 그녀는 수치심에 손톱 자국이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망할 계집, 자기가 누군데 목표물 하나 제대로 못 맞출까.
"저기요, 제가 누군진 알고 이러시는...."
"이상하네요. 그냥 '미안합니다.' 사과 한번이면 될것을 굳이 이렇게까지 질질 끌어야 되나요? 그리고 저한텐 당신이 높으신 귀족 나부랭이더라도 별 상관 없는데 말이죠."
날카롭게 선 이른의 말을 현은 일부러 잘라먹고 능청스럽게 말하였으나 그녀가 한 발언은 위험하기 그지 없었다. 아무리 노려보며 말해도, 살기를 뿜어내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계속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 얼굴이 붉어질대로 붉어진 이른의 얼굴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까딱 숙이고 씹어내듯이 사과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는 그렇게 하는게 아닐텐데요."
현이 능청스레 웃으며 그녀에게 말하였고 그런 그녀의 말에 반박하려던 이른의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는 태도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이 철없는 아가씨를 어떻게 해야 할까.
기척과 내뿜는 살기 실력을 보면 평범한 여자는 아닐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과거 자신이 했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일 터였다.
'..그래봤자 진한파의 하급 킬러급인데.'
현의 사람보는 눈은 뛰어났지만 그중에서 킬러들의 능력을 분석하는데에는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현이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아우라를 볼수 있는 탓도 있었지만 어렸을적부터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분석을 하곤 하였기에 사람들의 능력을 꿰뚫는것이 가능한 것이었다.
말을 안듣는 아이에겐 교육을 시켜줄 필욘 있지만 자신이 누군지 가르쳐 줄 필요까진 없겠지, 라고 판단한 그녀는 곧바로 이른의 고개를 엄청난 힘으로 내리누르고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하하, 얘가 죄송하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라 눈치를 못 챘었는데 고향에서 올라온 아는 동생이네요. 어서 미안하다고 해."
현이 아까보다 더 능청스레 웃고 자신에 의해 고개를 푹 숙이게 된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빨리 사과를 하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내었다. 그러자 이른은 급기야 몸을 부들부들 떨었으나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보다 강한 이라는것을 느끼게 된 이른은 다시 한번 한자한자 씹어내듯이 사과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방금 현의 아는 동생이었다는 말에 사람들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었으나 그중에 현이 앉은 자리에서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사람 몇몇은 그녀를 아니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른의 사과에 현은 빙그레 웃으며 못 도망가도록 세게 누르고 있던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떼었다. 현이 손을 떼자마자 이른은 도망치듯이 찻집을 나왔다. 나가면서 현을 다시 한번 더 째려보는것을 잊지 않고.
이른이 찻집을 나가자 현은 후련하다는듯이 미소를 지으며 르안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현은 심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르안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르안님..?"
"류, 저 여자 조심해야되..위험한 여자야."
르안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자 현은 대수롭지 않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홀짝였다. 별 긴장감 없는 그녀의 태도에 울컥한 르안은 탁자를 쾅!하고 주먹으로 내려치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좀 새겨들어!!저 여자.. 네가 생각하는것만치 단순하고 고분고분한 여자가 아니란 말이야. 그녀는..!!!"
마치 이성을 잃은듯한 르안의 태도에 현은 더이상 참을수 없다는듯이 마시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소리나도록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충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르안님께서 저를 걱정해주시는 것은 잘 알지만 도를 넘으신것 같습니다."
"류, 나는...!!!"
"됬습니다.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뭐라 말하려던 그의 말을 가로막고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찻집을 나갔다. 찻집을 나와서 먼저 그녀가 한일은 다름아닌 한숨을 쉬는것이었다.
"하아..."
안 그래도 머리속이 복잡한데 더 머리를 아프게 하는 르안의 행동 탓에 현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나저나 찻집 주인은 누굴까. 찻집 주인은 지구에서 살던 사람임이 분명하였다. 단서는 찻집과 메뉴판 단 두개였기 때문에 한국인인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은 희망을 가질수 있었다.
그렇게 복잡하게 밀려드는 생각들을 차근차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을때 현은 자신의 주위를 배회하는 나비 하나를 볼수 있었다. 날이 어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비는 타오르는 불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게...?'
자신을 눈치챘다는 사실이 반가운지 붉은 빛의 나비는 애교스럽게 그녀의 주위를 맴돌다가 이내 포르르 날아올랐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무언의 행동인듯 하였고 그에 현은 뭐에 홀린듯이 날아가는 나비를 쫓아갔다.
하지만 나비가 맞는것일까. 나비가 날아가는 속도는 나비답지 않게 더욱 빨라져갔고 그에 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뛰기 시작하였다.
"잠깐...!!!"
나비는 점점 어둑한 길목으로 향했고 현은 가까스로 나비의 속도를 따라잡으며 뛰었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기묘한 붉은 빛을 발하던 나비가 멈춰서자 현 또한 한손으로 벽을 짚어 서며 멈췄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막다른 골목이었다. 나비는 처음 만났을때의 속도로 포르르 그녀의 주위를 날더니 이내 앞으로 날았다. 나비가 갑자기 막다른 골목을 향해 날자 현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비가 내려앉은 곳을 바라보았다.
"어..누구...?"
아까 분명 고개를 들었을땐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왜 저런곳에 사람이 있는거지?
정신없이 뛰었던 탓일까, 뒤엉킨 머릿속은 이 상황이 도데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답을 내주지 않았다. 나비는 자신보다 더욱 진한 붉은빛을 은은하게 발하는 여인의 주위를 맴돌다가 이내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베일에 가까운 후드를 쓰고 있었으나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아찔하도록 묘했다. 그에 현은 홀린듯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이내 입을 열었다.
"당신..도데체...?"
현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빙그레 웃을뿐이었다. 그 웃음이 신호가 된듯이 현과 그녀가 밟고 있던 지면엔 신비로워 보이는 마법진이 나타나 빛을 발하였다. 그 믿을수없는 광경에 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니..이게 대체...!!!"
그러나 현은 마법진의 빛이 강해질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정신탓에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하였다. 빛이 희미해짐과 동시에 현의 모습이 희미해지자 묘한 분위기의 여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아..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이스타샤.."
그 말을 끝으로 어두운 골목 안에는 방금 전까지 누가 있었다는 사실을 못 믿을 정도로 감쪽 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따라 환한 달빛이 방금까지 그들이 있었던 그 자리를 은은하게 빛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