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貴人)들과의 만남> (5)
정신이 멍하다.
여긴 어디지...?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는 정신 가운데 현은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생각외로 밝은 빛 때문에 그녀는 인상을 찡그려야만 했다.
"어?이프리트!!일어났어!!"
"알거든?땅새끼야."
자신이 눈을 뜨자마자 눈 앞에 보인 이는 다름아닌 동글동글한 갈색의 큰 눈과 머리칼이 매력적인 남자와 정신을 잃기 전에 봤던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던 기묘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누..누구...?"
당황한 현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묻자 갈색 머리칼의 귀여운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덥썩 부여잡더니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하였다.
"드디어 깨어났구나!!내가 바로 너의 아ㅃ..."
'퍼억-!!!!'
"방금 일어난 애한테 왠 개소리야, 이 빌어먹을 노아스야."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노아스를 주먹 하나로 제압해버린 붉은 머리칼의 여자는 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그녀가 갑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놀란 현은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누구세요..?"
현이 그렇게 말하자 자신에게 다가오던 붉은 머리의 여자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던 갈색 머리칼의 남자 또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이 당황한 만큼 그들 또한 당황한듯 싶었으나 현에겐 그런것을 알아차릴 여유따윈 없었다.
사람같지 않은 묘한 분위기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에 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고 또 주위에 펼쳐진 낯설었어야만 하는 풍경이 가슴이 저릿하도록 익숙했던 나머지 그녀는 온통 뒤죽박죽인 머리를 정리하고자 몸을 뒤로 뺐다.
현이 머리를 부여잡고 엉망인 머리속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을때 갈색 머리칼의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스타샤...설마..우리가 기억이 안 나는거야...?"
이스타샤?
그것 또한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분명 낯설지는 않았으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스타샤..?그게..제 이름인가요..?"
현이 머리를 부여잡던 손을 떼고 흔들리는 눈을 들어 그들에게 묻자 그들은 그런 현의 물음에 더욱 당황한듯 하였다.
"이프리트...."
노아스라 불린 사내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붉은 머리칼의 여자를 부르자 그녀는 당황한 얼굴을 숨기고 다시 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현은 그녀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머리속에 눈을 질끈 감았으나 붉은 머리칼의 여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쉬이...괜찮단다, 이스야..네가 싫어할 짓은 안해. 잠깐 무엇을 좀 확인하려는것 뿐이야.."
그 말에 현은 조금은 진정이 된 듯이 감았던 두 눈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이프리트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갖다대고 눈을 감았다. 약 10초동안 그러고 있다가 손을 뗐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프리트는 굳은 얼굴로 노아스에게 말하였다.
"봉인이야."
"뭐?"
"아른이 직접 건 봉인이야. 완전 철벽으로 봉해놨어."
이프리트가 굳은 얼굴로 그에게 말하자 노아스는 부정하고 싶다는듯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아니지..?"
"부정하려고 하지마, 노아스. 현실을 직시해."
이프리트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였으나 떨리는것을 숨기려는 두 주먹은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완전하게 숨겨주지 못하였다.
"그럼..그럼..우리가 만들어줬던 그 귀한 추억들을 하나도 기억 못한다는거야..?봉인이라면 우리가 풀수 있는거잖아..이프리트.."
"몰라서 그러는거야, 노아스?아른은 인간계에서 500년만에 네명의 정령왕인 우리들을 힘 한번 들이지 않고 한번에 소환했던 놈이야. 풀수야는 있지만 이스에게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는 일인데 너같으면 함부러 풀수 있겠어?!"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프리트는 더이상은 참을수 없다는듯이 그녀답지 않게 눈물이 고인 두눈으로 노아스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반응에 노아스는 놀라 떨리는 두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프리트는 그것을 보지 못한체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한편 현은 두 눈을 깜빡이며 자신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들을 완전히 다 이해할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기억이 현재 봉인 되어 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 또한 과거 일을 생각해내려고 하면 지끈 거리다가 멍해지는 머리탓에 계속해서 머리를 부여잡아야만 했다.
"윽...."
"이..이스, 괜찮아..?!"
현이 신음소리를 내며 이마를 감싸쥐자 놀란 노아스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의 걱정에 현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이프리트가 말하였다.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면 더 머리가 아플거야. 시간이 지나면 하나하나씩 자연스럽게 기억이 돌아올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렴."
이프리트가 그녀의 옆에 앉아 볼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현은 절로 가슴이 따스해지는것을 느꼈다. 이 여자..도데체 누구길래 이렇게 내 가슴을 따듯하게 하는걸까. 누구길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지고 아련해지는걸까..
"당신은..정말..누구신가요.."
현이 떨리는 두손으로 자신의 뺨을 쓰다듬고 있는 이프리트의 따스한 손을 두손으로 잡으며 물었다.
"응?당연히 이 여자는 이스 너의...!!!"
"글쎄...그런건 네가 생각해보는게 더 유익하지 않을까?그리고 가르쳐주면 재미 없잖니."
그러자 노아스가 대답하려 하였으나 이프리트는 일부러 그의 말을 가로 막고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현에게 말하였다. 노아스의 자신에게 대할때와는 정반대인 이프리트의 행동에 기가 막히다는듯이 할말을 잃어 어버버 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이..이런 가식적인 이프리트!!!이스한테만 따뜻하게 말해주는 거야?!?"
"닥쳐라, 땅새끼. 나와 이스의 사이를 방해하지 말고 얌전히 네 정령계에나 돌아가시지?"
"이스가 돌아오니까 나에 대한 이프리트의 애정이 식어버렸어...이럴수 있어?이러는 법이 어딨...!!!"
"잘가."
계속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노아스를 가볍게 한손을 들어 휘둘러 주는것으로 친히 내쫓아주었다. 사라지고 나서도 그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리는듯 하였으나 이윽고 그 소리는 이프리트의 목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자, 그럼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우리 둘끼리 오붓하게 대화나 나눠볼까?"
이프리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현은 눈을 깜박였다. 이프리트도 나름 쑥쓰럽긴 한지 베시시 웃으며 현에게 물었다.
"음..그러니깐..지금 현재 너의 이름이 현..류현 이라고?"
"네.."
현애 조용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이프리트는 씁쓸한 얼굴을 애써 숨기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그래, 그럼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혼란스러웠을테니 질문하고 싶은게 있다면 물어봐."
"제가..다른 세계에서 온것을 알고 계셨나요?"
예상치 못한 이프리트의 말에 현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이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당연하지, 난 너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 그 빌어먹을 한진..이었나?그런 놈 보단 내가 훨배 더 낫지."
"한진보스를 아세요?어떻게 그분을 아시는거죠?"
현은 그녀가 한진보스를 안다는 사실이 놀라워 묻자 이프리트는 다시 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당연히 다 보고 있었으니까. 맘 같았으면 내가 가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미안하게도 다른 차원에는 간섭을 못하게 되어있어서.."
"아...."
조금 잠겨든 이프리트의 목소리에 현은 그녀의 말을 잘 이해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이전부터 궁금하던것이었어요. 제 머리색과 눈동자 색은 왜 이 세계에 오자마자 바뀐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