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생각처럼 드라마틱 하지 않다> (1)
그리고 그 다음날, 오늘도 어김없이 살기가 짓누르는 집무실 안에서 스피니아 가(家)의 차기 가주님께서 전보다 더한 싸늘한 표정으로 서류를 검토하며 인장을 찍고 있었다. 그의 책상 옆에는 또하나의 책상이 있었는데 깃펜대와 여러가지 필기구들이 놓여있는것으로 봐서 누군가가 썼었던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에릭은 그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은체 그저 묵묵히 살기를 내뿜으며 쌓여있는 서류들을 검토하고 사인을 하였다. 그러나 이내 그는 손에 쥐고 있던 깃펜을 깃펜대에 짜증을 가득 담아 꽃아넣었다. 그리곤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녀가 이곳에 머문지 2주밖에 안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빈자리는 매우 컸다. 업무처리 능력은 여느 귀족들에게 뒤지지 않았으며 몸에 좋지 않다며 일정을 하나하나 꼼꼼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정하며 일을 거들어 주기도 한 그녀는 어느새 그의 꽉 닫힌 마음 가운데에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류 이스타샤..."
그녀가 사라진지 어언 일주일이 흘렀다.
배신을 한것일까?
그녀가 자신의 일을 도우며 알게 된 왕국의 기밀 사항들도 조금 있었다.
"..나라를 뒤져서 찾아내야 하는것인가.."
현상 수배를 걸려고 하였으나 무언의 믿음이란게 있었다. 그녀라면 자신을, 스피니아 가(家)를 배신하지 않을거란 근거없는 믿음이 마음속에 있어서 섣불리 그러지 못하였다. 그 결과, 그녀는 일주일째 행방불명이었다.
오늘 자정내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군대를 풀어서 수색할 생각이었다.
"제발...도데체 어딜 간거냐..."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집무실의 천장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화아악-!!!'
".....!!"
눈을 제대로 뜰수 없을 만큼의 밝은 빛이었으나 그는 가까스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보고 말았다.
'마법진....?'
흐릿하게 나마 형체는 보였으나 무슨 마법진인지 볼 여유따위 그에게는 없었다. 더욱 더 밝은 빛이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 안에서 한 인영이 뚝 떨어졌다.
"아악-!!!"
'쿠웅-'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집무실을 안을 가득 메웠고 그에 이어서 땅에 추락하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마법진의 안에서 사람이 떨어져 나오자 빛은 그제서야 점점 사그라 들었다. 완연하게 빛이 사그라들고 눈을 뜰수 있게 되자 에릭은 자신의 눈을 가렸던 팔을 치웠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류....?"
"어..?에릭님?"
고운 미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천장에서 떨어진 타격이 컸는지 그녀는 욱씬거리는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던 에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자신의 품안에 가뒀다.
'포옥-'
"에..에릭님..?"
갑자기 왜 이러시지..?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그녀는 눈을 껌벅껌벅 뜨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느꼈다.
"...돌아와줘서 고맙다.."
"아...네..네..당연히 돌아와야죠.."
그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하자 현 또한 그녀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돌아오지 않을줄 알았던걸까? 그제서야 정신이 든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에릭님, 지금 몇일이 지난건가요?"
"7일이다."
진정이 된건지 원래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하였다. 그 말에 패닉상태가 된 현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분명 아까 거기서는 몇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시간개념이 다른걸까?
하지만 기하학적으로 다른 정령계의 시간 흐름 속도에 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령왕님들..알려주시는 김에 이런것도 알려주셨으면 정말 고마웠을텐데.
방금 전, 웃는 얼굴로 헤어지는 순간을 회상하며 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완전히 정신을 차린 에릭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품에서 떼어놓으며 물었다.
"그나저나...어딜 다녀온거지..?아까 그 마법진은 또 뭐고..."
"아아..그게..글쎄요...낯선 여자를 따라가다가 눈을 뜨니 붉은 빛의...굳이 명칭을 말하자면 정령계이려나요..."
정령계?!
예상치못한 장소에 에릭은 눈을 크게 떴다. 인간은 절대 정령계를 드나들순 없다. 정령계를 드나들수 있는건 오직 정령들과 정령왕들뿐. 그들뿐이었다. 거짓말이라 치부하기엔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도 올곧았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인가..?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머리 가운데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
"도련님, 에샨입니다."
"....들어와."
그가 머리를 짚고 일어나며 말하자 집무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의 주군의 방이라는것과 함께 주군의 앞이라는것도 잊고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류..!!!!!!"
"아..에샨씨.."
에샨은 자신의 주인 앞이라는것도 잊은체 달려가서 그녀를 자신의 품에 꼭 껴안았다.
"류우...어딨었던 거야..."
"아..죄송해요..많이 걱정하셨죠."
현이 미안하다는듯이 웃으며 말하자 에샨은 놀랍게도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걱정하다마다!!말도 없이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정말..!!"
"하하..죄송해요.."
현이 어색하게 그녀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며 사과하자 에샨은 억울한듯이 '씨잉..' 투정을 부리며 누군가의 앞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암튼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네.."
현은 그녀를 마주보고 웃으며 대답하였고 에샨 또한 눈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마주 웃어보였다. 그리고 에샨은 현을 품에서 떼어내며 에릭에게 화려한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에릭은 말없이 굳은 얼굴로 그녀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들였고 약 2초뒤, 그의 표정은 눈에 띌 정도로 썩어들어갔다.
"...수고했다, 에샨."
"네, 도련님.."
에샨은 마치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듯이-일명 지못미- 자신의 주인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였으나 이미 썩어들어간 그의 표정은 도저히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지 편지 한장 때문에 색종이의 양면을 보는듯한 확연히 다른 둘의 반응에 현은 영문을 모른체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앞에 서있는 에샨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만 물러가도록."
"...네."
에샨은 애써 얼굴에 어색한 웃음기를 지우며 집무실을 나갔다. 저 편지가 도데체 무엇이길래 저러는것일까. 게다가 이번 편지 봉투는 지난번에 불쏘시개 대용으로 써버렸던 편지 봉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지나치게 화려하다는것 빼고는 별 다른것이 없어보였지만 편지는 겉보다는 내용물이 중요하다는것을 아는 현은 자신의 상사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것을 속으로 어렴풋이나마 예상하며 표정을 굳혔다. 그때 에릭이 몸을 돌려서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기분을 잡치게 한 원인이자 근원인 편지지를 그녀에게 말없이 내밀었다.
현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편지지를 말없이 받아들며 그것을 찬찬히 훑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이 약 2초뒤, 그녀의 표정 또한 눈에 띄게 구겨졌다.
"이건..."
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흐리자 에릭이 굳은 얼굴로 말하였다.
".....몽쉐르 왕국의 왕실 파티 서신이다."
확인 사살을 하는듯이 무미건조하나 쐐기를 박는듯한 그의 한마디에 현은 그 자리에서 절망할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