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歸還)> (3)
화창한 날씨의 아침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햇빛은 강하지 않은게 여행을 떠나기 딱 좋은 날씨였다. 현과 에릭은 왕성의 마법진 안에 서있었고 에이브 왕과 여왕, 그리고 레이른 왕세자와 레이첼 왕녀가 그들의 앞에 서서 배웅을 해주었다. 에릭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며 말하였다.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조심히 가시오."
현 또한 그를 따라서 허리를 숙였고 그에 에이브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불미스러운 사고로 이렇게 번거롭게 한 점 내가 대신해서 사과하네. 레이디 류, 우리 레이첼을 구해줘서 고맙소. 내 나중에 다시 한번 귀빈으로 초대하리라."
"감읍하옵니다, 폐하."
현이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예를 표하며 말하자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레이첼 왕녀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나중에 다시 뵈요, 류."
"네, 왕녀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왕녀가 아몬드형의 큰눈을 반달로 접으며 말하자 현 또한 마주 웃으며 말하였다.
"다음에 만날때는 감사인사 대신 차를 준비해주셔요."
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레이첼 왕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더니 이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때는 하젠더스 차를 준비해놓을게요. 저희 몽쉐르 제국에서만 나는 향이 좋은 아주 귀한 차랍니다."
"감사해요, 왕녀님.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요."
현 또한 그녀와 마주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미소 띈 얼굴로 말하였다. 둘은 맞잡은 손을 떼고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였다. 그때 레이른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레이디 류,"
"....?"
현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다 그가 입을 열었다.
"좋아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현은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그에 그의 뒤에 서있던 레이첼 왕녀와 에이브 왕, 그리고 여왕은 갑작스러운 자신의 아들-혹은 동생-의 사랑고백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답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제 마음이 거짓과 장난이 아닌것만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그 말을 하고 무릎을 궆혀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 입을 맞추었다. 쪽 하는 입술의 마찰음과 함께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마음이 있는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아찔하리만치 색정적이게 느껴져 현은 남은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
'세상에, 세상에..일국의 왕세자한테 청혼을 받게 될줄이야..이거 기뻐해야하나 아님 부담스러워 해야하나.'
현은 빨게진 얼굴을 애써 식히며 생각하였다. 물론 그녀의 자신의 뒤에 서있는 에릭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진것을 보지 못하였으나 이 모든 상황을 관전하던 레이첼 왕녀는 흥미로움이 뒤섞인 미소를 지으며 생각하였다.
'어머..이거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데..?후훗.'
그녀는 남몰래 웃음을 지으며 당황스러워 어쩔줄 몰라하는 현과 굳은 얼굴의 에릭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 에릭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자연스럽게 두사람의 손이 떨어지도록 하며 말하였다.
"왕세자님도, 그동안 몸 건강하시길."
"스피니아 경도요."
두사람의 눈빛에 전류가 흐르는듯 하였으나 역시나 귀족중의 귀족답게, 또 왕족중의 왕족답게 표정을 덧 씌우며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때 마법진에 빛이 나더니 두사람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레이첼 왕녀는 흐릿해지는 두사람의 모습에 손을 흔들며 외쳤다.
"류!!스피니아 경!!나중에 또 뵈요!!"
두사람은 그녀의 말을 들은것인지 흐릿해진 모습 사이로 미소를 짓는것이 보였다. 이윽고 두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두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것을 본 레이첼은 중얼거렸다.
"...갔네."
레이첼이 쓸쓸한 눈빛으로 텅빈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었을때 르아젠 왕비가 호호 웃으며 멍하니 서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가갔다.
"바람둥이 아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나타난줄은 몰랐네~호호."
"어..어마마마.."
웃음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레이른은 몸을 움찔거렸고 레이첼 왕녀는 그 광경을 에이브 왕과 함께 흥미롭게 관전하였다.
"확실히 이 어미가 봐도 레이디 류는 정~말 아름답더구나. 언제 좋아하게 됐니? 응?"
"어..어마마마..!!저 집무실에 가봐야 합니다!!"
"에이~대답하고 가도 늦진 않잖니. 첫눈에 반한거니?"
"어..어마마마!!"
방금전의 당당한 모습을 어디로 갔는지 레이른 왕세자는 장난스럽게 추궁하는 왕비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울쌍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마음속으로 소리없는 고함을 질렀다.
'누가 나 좀 도와줘!!!!'
..에릭과 현이 떠나고 레이른 왕세자에게 벌어진 이 작은 해프닝은 대륙의 역사집에 고이 남았다.
* *
한편 마법진을 타고 아스탈리아 제국으로 돌아온 현과 에릭은 현재 황제와 대면을 하고 있었다.
"신 에릭 스피니아, 보좌관 류 이스타샤와 함께 몽쉐르 왕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음을 폐하께 고합니다."
"수고했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고개를 들라 명하였고 그 명에 현과 에릭은 고개를 들었다.
"상황은 자네에게 통신구를 통해서 다 들었으니 이만 생략하고...'리베르'란 조직은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 대륙에 악명을 떨치는 암살자 집단이라고 짐도 들었네만."
"네, 그러하옵니다. 폐하. 주로 공작 이후의 고위 계급부터 왕족들만 노린다 하였습니다."
"자네가 말한 후로 짐 또한 조사를 해봤다만 그들의 첫번째 타깃은 메이베른 왕족들이었다 하더군. 이번 몽쉐르 왕국에서 일어난것과 같이 왕부터 공주까지 차례대로 암살시도를 했다더군."
황제가 턱을 쓰다듬으며 탁자에 놓인 서류들을 훑어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방금 자네가 말한대로 다음 타깃은 메이베른 왕국의 블랑카 후작부터 시작해서 사이렌 공작까지였다네."
"메이베른 왕국 다음 타깃이 저희가 갔던 몽쉐르 왕국이었던것이죠."
가만히 있던 현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황제가 탁자에 놓은 서류를 훑어보며 말하였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음성에 에릭과 황제,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루이즈 후작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하였다. 그러나 현은 다른 서류들을 집어 훑으며 말하였다.
"이쯤되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도데체 리베르에게 의뢰하는 사람은 무슨 이득을 위해서 이렇게 왕국들을 번갈아 가면서 순서대로 치는것일까요."
"......"
"또 여기 이 서류를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옵니다. 암살자들은 하나같이 귀족들의 목숨을 취한적은 없고 부상만 입히고 바로 모습을 감추었답니다. 이렇게 되면 의뢰인의 목적은 왕국의 붕괴나 원한을 가진 사람의 암살이 아닌 다른데에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현이 방금 훑어본 서류를 팔랑이며 말하자 세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추 추리해본다 하더라도 정보가 너무 부족하였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꾸민것인지 이 정도 양의 정보로는 좀처럼 알수가 없었다. 그 사실에 모인 인원들은 각자 한숨을 내쉬었고 황제가 입을 열었다.
"뭐, 그럼 이 안건은 서로 좀더 확실하게 조사해보는것으로 하지. 스피니아 가(家)에서도 협력 바라네."
"예, 폐하."
에릭과 현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뒤에 서있었던 루이즈 후작이 말하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스피니아 가(家)도 이번 마물 토벌에 참가해주었으면 하네만."
마물 토벌?
그 말에 현은 고개를 들어 루이즈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루이즈 후작은 말을 이었다.
"웨이험 산맥은 워낙 험하기로 유명한 만큼 온갖 마물들의 최상의 놀이터이기도 하다네. 그런데 요즘 그곳에서 가끔 마물들이 주변의 마을에 내려와 일대를 초토화 시킨다 하더군."
"..그렇습니까,"
에릭이 그를 바라보며 묻자 루이즈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말하였다.
"뭐, 새삼스러울것도 없네만 10년에 한번씩은 그곳에서 마물 토벌을 한다네. 아무래도 온순한 마물들도 있긴하지만 간혹 이번처럼 심하게 날뛰는 험한 마물들이 출몰해서 말이네."
"그렇담 거의 전례 수준이네요."
"그렇지."
현이 그를 바라보며 말하자 루이즈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 하였다. 그에 에릭은 골똘히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내 결심을 내린듯이 입을 열었다.
"...이번 마물 토벌에 저희 스피니아 가(家)는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예상외의 그의 선언에 루이즈 후작이 그에게 물었다.
"왜지? 스피니아 경. 이제까지 무가인 스피니아 가(家)는 항상 이 마물 토벌에 참가했었다. 헌데 참가를 하지 않겠다니.."
"..말씀드리기 송구하옵니다만 후작, 이번 리베르 조직 안건 외에도 저희 스피니아 가(家)가 맡고 있는 안건들은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사옵니다."
에릭이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말하자 루이즈 후작은 순간 어이가 없다는듯이 물었다.
"자네, 혹 지금 처리 할 업무들이 많아서 못 간다고 말하고 있는것인가?"
"..말씀드리기 외람되오나 그렇사옵니다."
그가 긍정의 대답을 하자 루이즈 후작이 말하였다.
"이보게, 스피니아 경. 다른 가문들도 그 점은 감안하고 가는것이라네. 자네도 그걸 모르는게 아닐텐데? 그리고 자네 선대들과 아버지들도 그 점들은 감안하고..."
"그만하십시요, 형님."
분개하는 루이즈 후작을 황제가 드물게 공석에서 형님이라 부르며 제지하였다. 그에 루이즈 후작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손으로 머리를 짚었고 황제는 에릭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네, 스피니아 경."
"미켈!!!"
황제의 말에 루이즈 후작은 큰 목소리로 황제를 불렀으나 황제는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말해주게."
"..감사하옵니다, 폐하."
에릭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황제는 미소 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런, 업무시간이 다 되었군. 이만 먼저 일어나겠네, 스피니아 경."
"..살펴가시옵소서."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현과 에릭 또한 일어나서 예를 표하였고 후작과 황제는 문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후작은 나가는 내내 황제 모르게 에릭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생각하였다.
..어지간히 서운하셨구나.
한편 미켈란 황제는 업무실로 가는 내내 자신의 형이자 재상인 후작에게 시달림을 받아야했다. 공적인 자리가 아닌 이상 말을 높이지 않는 루이즈 후작이 인상을 찌뿌려가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미켈..!!스피니아 가(家) 없는 마물토벌은 밀가루와 크림이 빠진 케이크란거 너도 알잖아!!그런데 도데체 왜 넘어가준거야?"
"형님,"
계속해서 올라간 목소리로 따지는 루이즈를 미켈란이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루이즈 후작은 그가 입을 떼는 것을 바라보았다.
"형님, 눈치채지 못하신겁니까?"
미켈란이 재밌다는듯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묻자 후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뭘 말이야?"
루이즈 후작이 묻자 미켈란 황제는 뒤를 돌아 휑한 복도를 잠시 바라보고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하였다.
"레이디 류를 바라보는 스피니아 경의 눈빛, 그것은 보통 주인이 보좌관을 바라보는 평범한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하?"
그가 알수없다는듯이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묻자 미켈란 황제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업무실의 문을 열었다. 루이즈 후작에게 대답을 하며 그답지 않게 옆에 앉아있는 레이디 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에릭의 모습에 황제는 흥미로운 얼굴을 하였다. 미켈란을 그것을 다시 떠올리며 자신의 형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걱정 마십시요, 형님. 그는 다시 돌아올겁니다."
황제의 담담한 말에 루이즈 후작은 알수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는 병사들에 황제는 뚜벅뚜벅 안으로 걸어가며 생각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공작도 한번 그랬던적이 있었지..갑자기 왠 여자의 손을 잡고 업무실에 쳐들어와서 어찌나 놀랐는지.'
그때를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지 황제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형님을 이끌고 업무실의 의자에 앉았다.
'...부전자전(父傳子傳), 이라는건가..'
"미켈, 레간 지방에서 상소가 올라왔어."
"좀 보지,"
하지만 이내 황제는 하고 있던 생각을 잠시 지우고 업무에 열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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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여기까지가 조X라와 초록창의 연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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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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