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물토벌은 게임이 아니다> (10)
모든것이 혼란스러웠던 그날 이후로 현과 에릭은 사무적인 일 이외에는 전혀 만나는 일이 없었다. 밀려있던 일들이 많기도 했거니와 어색했던 현이 먼저 자리를 피한 것도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마물토벌 당일이 되었다. 에릭과 현은 스피니아 가(家)의 마차를 타고 웨이험 산맥으로 향했다.
물론 마차를 타고 가는 길에서도 두사람은 말이 없었고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마침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마차에서 내리자 다른 여러 귀족들과 기사들이 눈에 띄었고 선두에는 1황자인 미하엘과 2황자인 아헨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을 보고 현은 남몰래 얼굴을 굳혔지만 아헨은 그것을 본것인지 보지 못한것인지 알수없었지만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저거 분명 일부러 그러는거야..'
현은 그 모르게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으나 이번에 그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에 현은 반은 다행, 또 한편으로는 아쉽다고 생각을 하며 맨 앞에 선 두 황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미하엘이 입을 열었다.
"이번 마물토벌에 참가한 모든 기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이네."
"......."
무리중에 황태자보다 나이가 월등히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가뿐히 위축하리만큼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지자 그들은 모두 일제히 숨을 죽였다. 그때 제국의 황태자다운 근엄한 목소리가 다시금 귀를 울렸다.
"이번 마물토벌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성들을 위협하는 마물들을 몰살하는것에도 있지만 최대한 적은 사상자들을 내는것. 가능하다면 모두들 안전하게 돌아올수 있기를 바라는것이네."
황태자의 소신있는 발언에 모여있는 인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때 황태자가 허리에 찬 검집에서 검을 스르릉 뽑아들고 외쳤다.
"아스탈리아 제국을 위하여!! 백성들을 위하여!!"
"와아아아아!!!!"
힘있고 강단있는 그의 말에 모인 모든 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열을 맞춰 웨이험 산맥의 안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현은 2황자인 아헨의 옆에 있는 그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어딘가 낯이 익은데..'
잊어버린 기억의 저편을 자극하는 얼굴이었다. 머리가 욱신욱신 아파왔지만 생각하는것을 그만둘순 없었다.
그를 어디서 보았는지 온 정신을 집중시켜 유추해내고 있었을때 땅에 박힌 돌맹이에 걸렸다.
"어..."
그대로 넘어지면 낙법을 쓰려 하였지만 한 손으로 자신의 팔을 잡아 지탱해주는 에릭이 더 빨랐다.
"위험하다."
"아, 감사합니다.."
현은 붙잡은 그의 손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자신을 내려다 보는것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애써 무시하고 잡은 손을 빼내었다. 그는 맞잡았던 두 손이 떨어지자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려 하다가 이내 다물었다. 그것을 보지 못한 현은 그에게서 약간 떨어져서 걸음을 옮겼다.
험한 산길이라 그런지 숨이 점점 차오르는것이 느껴졌으나 몸을 혹사시키는것이 익숙했던 현은 숨 하나 고르지 않고 산을 올랐다. 그런 자신에게 이따금 꽃히는 익숙한 몇몇의 시선들이 느껴졌으나 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아무말 없이 산을 오르내린지 몇시간, 그제서야 그들은 동굴을 발견할수있었다.
"...여기가 가이르 동굴인가.."
말로만 듣던 마물의 소굴을 눈앞에 맞이하자 현은 급작스레 밀려오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자료와 여러가지 책들에 적힌 바로는 다양하고 위험한 마물들이 한곳에 집합해있는 곳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쥐같은 크기의 마물들도 있고 지난번 구로브 지방에서 본 몸집이 거대한 마물들도 떼거지로 밀집되어 있다고 하였다.
아무리 살수의 일을 하였더라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단 한번밖에 보지 못한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생명체를 무서워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오랜만에 밀려오는 흥분감에 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에 든 지도를 구겨쥐는것으로 숨겼다.
그때 선두에 선 황태자가 다시금 말을 채찍질 하자 뒤에 선 병사들과 나머지 장수들은 그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동굴 안에 들어서자 습한 기운과 한기가 느껴졌으나 그와 동시에 나는 악취에 현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얼굴을 찡그렸다. 변의 냄새도 이것보단 독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코를 쥐어 막고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지면을 내려치는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제군들!!모두 전투 준비 하여라!!마물이 나타났다!!"
황태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여기저기서 일사불란하게 스르릉 검집에서 칼을 뽑는 소리와 열을 맞추어 공격마법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 또한 품안에서 암기들을 꺼내었으나 지난번의 마물보다 두꺼워보이는 가죽탓에 섯불리 공격을 하지 못하였다.
현이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었을때 줄곧 그녀의 앞에 서있던 에릭은 검집에서 검을 빼내어 날아오는 돌덩이를 베었다.
'카앙-!!'
"어...."
"..지금은 전투중이다. 그렇게 넋을 놓고 있다간 당한다."
나지막히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현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상당한 부상자들이 속출되었고 그나마 아직까지 몸이 성한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으로 마물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현은 그제서야 차갑게 정신을 가라앉히기 시작하였다.
점점 냉랭해지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본 그는 다시금 검을 고쳐쥐고 거대한 마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재빠르게 마물의 몸위로 뜀박질을 하며 단전에 쌓인 마나를 검에 불어넣어 표효하는 마물을 향해 휘둘렀다.
'콰콰쾅-!!!'
"키에에엑!!!"
그 엄청난 위력에 마물의 철갑같던 몸통에 선이 그어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올랐다. 그의 일격에 주변의 기사들의 수근거림이 들려왔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마물의 숨통을 끊는데만 집중을 하였다.
소름끼치도록 강한 그의 모습에 현은 숨을 들이켰다.
저게 바로 대륙 최연소 소드 마스터의 힘. 자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했다.
터져오르던 피분수를 완전히 피해내지 못한 그의 몸은 온통 붉은빛이었으나 그 모습이 오히려 두려움을 일깨웠다. 인상 하나 찌뿌리지 않은체 공격을 퍼붓는 그의 표정 또한 한몫 더하였다.
"...이젠 솔직히 마물보단 그가 더 두려워지려고 하네.."
그 혼잣말을 끝으로 현은 여러개의 단검을 손에 끼우고 마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의 특기인 스피드로 순식간에 마물을 향해 뜀박질을 하며 지난번처럼 암기에 기운을 주입시켜 날렸다. 기운을 불어넣은 암기에는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고 궤도를 그릴수록 기운은 점점 증폭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붉은 빛의 암기는 정확히 현이 목표한 마물의 눈과 머리에 꽃혔다.
'콰앙-!!!'
"키야아-아악!!!"
"어라...?"
기운이 더 강해진듯한 느낌에 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하지만 이내 느껴지는 여러개의 시선에 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황태자와 황자는 물론, 여지껏 무표정으로 공격을 퍼붓던 에릭 마저도 놀란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지금 나도 놀랐거든요..?
그리 말하고 싶은것을 간신히 눌러내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였다. 그러곤 또하나의 단검을 품에서 꺼내었다. 다시 기운을 불어넣은 단검을 손에 쥐고 마물의 다리에 휑 하고 궤도를 그렸다. 그러자 아까의 위력은 우연이 아니었는지 이번에도 붉은 기운이 증폭되어 마물에게 중상을 입힐수가 있었다.
'촤아악-'
"..윽..!!"
하지만 그와 동시에 터지는 피를 완벽히 피하지 못하고 맞아버렸다. 재빨리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탓에 얼굴은 무사했으나 오른쪽 팔과 다리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때 익숙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라이트닝 버스터 (lightning buster)!!!"
그 외침과 동시에 마물의 머리위로 번개가 내리꽃혔다.
'콰콰콰쾅!!!!'
"키야아아아아악!!!!!!"
이상하게도 그 울림과 반동은 기사들이나 자신들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눈을 들어 자세히 허공을 바라보자 파란색의 반투명한 보호막이 자신들의 주위에 쳐져있는것을 현은 발견할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마물이 쓰러지자 마법 보호막은 웅 하는 진동이 울리면서 충격의 여파를 막아주었다.
마물이 쓰러지자 기사들과 장수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이겼다!!!!"
기뻐하며 서로를 부둥켜 안는 모습에 현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르안을 볼수 있었다.
"르안님."
"어때? 나의 마지막 일격, 정말 죽여줬지??"
이가 가지런히 드러나도록 활짝 웃은 그의 모습에 현은 그가 마치 아이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최고였어요."
그녀 또한 그를 마주보며 웃어보이자 의기양양한 그의 표정은 더욱 하늘을 찌를듯하였다.
"역시 마탑의 최연소 후계자네요."
하지만 그때 들려오는 여유로움이 섞인 낯익은 목소리에 현은 표정을 굳혔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