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국(沙玀國) 단금(蛋金) 15년. 800년이라는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면 긴 역사를 가진 오랑캐의 나라는 그 주인인 왕이 몇 대 전부터 온갖 폭정과 욕심을 채우기 급급해 나라의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그런 왕의 주위에는 아첨하는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며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급급했던 어려운 시기. 점점더 핍박해지는 생활에 힘들어진 백성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바로 노래였다. 특히 사람의 입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강 신화를 직접 노래로 읊으며 이야기를 전하는 외국의 음유 시인은 아이들의 눈길과 귀를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그 옛날 오랑캐였지만 그 누구보다 뜻이 깊었고 백성들을 사랑했던 한 사내가 있었다네-”
자신이 방문한 나라의 신화 혹은 역사를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음유시인은 사라국을 세운 초대 왕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사내는 신에게 빌고 빌었다네. 하루라도 빨리 백성들에게 평화와 안녕을 가져다 주고 싶사오니 제발 저에게 승리의 기원을 약속해 주십시오-”
마치 시를 읊는 듯 분위기를 잡는 음유시인의 모습은 마치 고고한 선비의 모습과 같았다. 아이는 더욱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노래에 집중했다.
“사내의 간절한 기도에 신은 감동하시어 그에게 하나의 보석을 내리시니- 그게 바로 신의 보석 중 하나인 ‘터키석’이니라.”
사내는 신에게 받은 터키석으로 일대를 정리하여 백성들을 통합해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지금의 ‘사라(沙玀)’. 신의 보석의 보호를 받고 있는 특이한 오랑캐가 세운 나라.
음유시인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웃으면서 박수를 쳐주며 음유시인의 노래실력을 칭찬했다. 아이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사내는 다정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야. 요즘 이 나라에 유행하고 있는 노래가 뭐가 있니?”
“그건 왜요?”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아이의 말에 음유시인은 자신의 가슴위로 손을 얹었다.
“나는 음유시인이란다. 노래를 좋아하지. 그래서 내가 방문한 나라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알고 또 그것을 배우고 싶어 하지. 혹 알고 있다면 나에게 알려주겠니?”
마치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듯 배움의 의지를 보이는 음유시인에게 단순한 아이들은 금세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면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을 알려줄게요!”
“그래, 잘 부탁한다.”
아이들은 이미 연습을 한것인지 단체로 입을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그 누구하나 박자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부르는데 정말이지 유행하는 노래인 것 같았다.
“새야- 새야- 이리 날아 오너라.”
“네가 좋아하는 보석들이 이곳에는 잔뜩 있으니-”
“이곳으로 날아와 보석들을 가져가거라.”
“내 언제든 너를 환영해줄 터이니-”
어서 이리로 날아오렴-
아이들의 얼굴에는 순수함이 가득 묻어나오면서 노래를 불렀지만 음유시인의 표정은 이상하게 점점 진지해져 갔다. 아이들이 부르는 가사의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음유시인은 뭔가 어림짐작이 간 것 같았다.
“저기 얘들아. 그 노래..”
“이것들아! 와서 밭일이나 돕지 모하냐!”
“우왁! 덕이네 아버지다!”
“퍼뜩 가서 밭일이나 해!”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다는 욕심에 고사리 손이라도 급급한 때라 더욱 민감해진 어른의 불호령에 아이들은 무서워서 얼른 자리에서 떠났고 음유시인은 이미 떠나 텅 비어버린 자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아이들을 잡지못한 팔을 다시 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그 노래는..”
꽤나 어릴적부터 음유시인의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 노래에 담겨진 그 뜻과 의미는 정확하진 않아도 대충이나마 알수있었다. 요즘 유행이라며 아이들이 다같이 부르던 그 노래는 분명-
“까악-”
“!?”
흠칫-!
분명 자신이의외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줄 알았는데 어느새 날아온건지 그의 옆에 까마귀가 앉아 울고 있었다. 그냥 까마귀와는 다른 매우 덩치가 큰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마치 저승사자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 까마귀가 기분이 나빴는지 음유시인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떠났고 까마귀는 자신이 무서워 떠나간 남자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고작 까마귀 한 마리에게 겁먹어 도망간 꼬라지를 비웃기라도 한 듯 까마귀는 날개를 피고 그 자리를 떠났다.
“까악- 까악-”
“아이구, 요즘들어 까마귀가 자주 우네.”
“불안하게 시리.”
“또 ‘까마귀’가 올려는 건가..”
죽음을 알리는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백성들은 뭔가 재수없는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건지 저마다 치를 떨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날. 사라국의 권세가 중 한명의 일가가 무참히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 ■ ■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기는건 당연했고 그 사건의 주인공이 왕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호기심은 더욱더 증가했다.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사건 현장으로 모여들었고 당연하게도 병사들이 사건 현장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초라한 볏짚에 덮여진 피가 고인 시체 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세상에.. 이번 주만 벌써 2명이..”
“또 그놈이겠지?”
“아까 얼핏 들었는데 시체 옆에 까마귀 깃털이 있었다는 구먼. 그러니 역시 그놈이 범인이지!”
“살인마 ‘까마귀’ 또 그놈이로구만.”
왕의 폭정으로 궁핍해진 나라는 당연히 도적이 들끓는건 어느 역사에서나 존재했다. 그러니 당연히 사라국에서도 도적이 판을 치는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백성들도 모잘라 왕실까지 공포에 몰아넣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살인마 ‘까마귀’였다. 얼굴도 심지어 이름도 모르지만 항상 살인을 저지를때마다 시체 옆에 까마귀 깃털을 놓아두고가며 마치 진짜 까마귀처럼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시체를 난도질을 하고 그 습성처럼 귀한 보물은 전부 훔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새부턴가 그 살인마를 ‘까마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참 너무하지.. 가족뿐만 아니라 그 집 하인들 까지 전부 도륙했으니..”
“훔쳐가기만 하지 살인까지 즐기는 놈이니 손쓸 도리가 있다.”
“나랏님들은 뭐하나! 그런 살인마도 제대로 못잡고! 이래서 불안해서 살겠나!?”
앞서 말했다 싶이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까마귀라고 단정짓고 애꿎은 사람만 감옥으로 끌고가 고문하거나 죽이는 엉뚱한 짓을 하는 왕실에 백성들은 이미 단단히 뿔이 난지 오래였다. 병사들이 시체 하나 하나를 들것에 옮겨 이동하자 역겨운 피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이를 구경하던 백성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데 직접 시체를 옮기는 병사들은 오죽할까. 그들도 역겨운 얼굴로 간신히 시체를 옮기며 사건 현장을 조사할 때 이 모습을 근처 나무에서 돋아난 나뭇잎들 사이에 숨어있는 한 까마귀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현장을 수습하는지 미리 조사하는 듯 했다.
“꺄르르-!”
열심히 머리에 기억할려는 듯 한 장면도 빼먹지 않고 지켜보던 까마귀의 심경을 거슬리는 존재가 등장했다. 바로 어린 아이들이였다.
“새야- 새야- 이리 날아 오너라.”
“네가 좋아하는 보석들이 이곳에는 잔뜩 있으니-”
요즘 마을 아이들이 즐겨부른다던 노래였다. 까마귀는 그 노래가 거슬렸지만 묘하게 신경이 쓰였는지 시선을 돌려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손에는 작게나마 무언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새야- 새야- 이리 날아 오너라.”
“네가 좋아하는 보석들이 이곳에는 잔뜩 있으니-”
“이곳으로 날아와 보석들을 가져가거라.”
“내 언제든 너를 환영해줄 터이니-”
“어서 이리로 날아오렴-”
무슨 노래인줄 아는건지 아이들은 계속 그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까마귀는 계속해서 아이들을 주시하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숨어있는 나무 근처에 있던 벽에 기대고 있는 삿갓의 남자가 어떻게 본것인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
“...............”
남자와 까마귀는 무슨 눈싸움을 하는것인지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던 그때 순진하게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이 남자의 곁을 무심하게 지나갔다.
“새야- 새야- 이리 날아 오너라.”
“네가 좋아하는 보석들이 이곳에는 잔뜩 있으니-”
“..............”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마음에 안드는 건지 남자는 까마귀와의 시선을 피하면서 조금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이들이 가버린 방향과 정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몸에서 어떤 소리가 났다.
짤그락- 짤그락-
자세히 보니 남자의 허릿춤에 뭔가 담겨져 있는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까마귀는 남자의 뒷모습과 주머니를 번갈아보더니 콧방귀를 한번 뀌고는 날개를 펼치며 자신도 그 자리에서 조용히 떠났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새야- 새야- 이리 날아 오너라.”
“네가 좋아하는 보석들이 이곳에는 잔뜩 있으니-”
“이곳으로 날아와 보석들을 가져가거라.”
“내 언제든 너를 환영해줄 터이니-”
“어서 이리로 날아오렴-”
도데체 뭐에 홀린 것인지 아이들은 계속 그 노래를 불렀고 그제서야 어른들도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조금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보니 요즘 애들이 무슨 노래를 그리 열심히 부르는거야?”
“왠 지나가던 음유시인이 가르쳐준 노래인가 보지.”
“아, 그러고보니 어제 외국의 음유시인이 마을에 있었지?”
백성들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 아는 것만 빠삭하지 그 이외는 전부 무지하다. 어른들은 결국 아이들의 노래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뭐.. 애들이 부른 노래니까.”
“그러게. 저렇게라도 애들이 조금이라도 즐거워 하면 됐지 뭐.”
“그런데 방금 지나간 애들 손에 뭔가가 반짝반짝 빛나던데.. 그게 뭐였지?”
“??”
어른들의 어리석음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똑같기도 하면서도 다르다. 어른들은 나이가 있었고 아이들은 어렸으니까. 그리고 그 어리석음과 순수함은 세대를 반복하고 되물림 되며 또다른 사건을 일으킨다. 그리고 장소를 바꿔서 사라국을 통치하는 왕이 머물고 있는 왕실 어느 깊숙한 방. 속살이 다 보일정도로 흐트러진 옷 차림을 한 어느 소녀가 시녀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라.”
“그리하여 당분간은 외출을 삼가라는 전하의 명령이...”
소녀가 제법 높은 사람인지 시녀가 쩔쩔 매며 이야기를 하자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소녀는 시녀에게 뭔가 하나를 던져주었다. 상아로 깔려진 바닥에 떨어진 것은 영롱한 푸른색을 띄우고 있는 보석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였다.
“오늘분의 보석이야. 그러니 얼른 주워서 가버려. 바보같이 서있지 말고.”
“..그...그럼 이만..!”
매정한 것 같으면서도 조롱이 섞인 말에 시녀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얼른 바닥에 떨어진 보석 두 개를 주워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빠져나가면서 화려하고 넓은 방 안에는 소녀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소녀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디뎠다. 먼지 하나 허용하지 않는 상아로 된 대리석 바닥은 소녀의 아름다운 몸을 비춰주었다. 그리고 소녀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혼자 노래를 불렀다.
“새야- 새야- 이리 날아 오너라. 네가 좋아하는 보석들이 이곳에는 잔뜩 있으니-”
“이곳으로 날아와 보석들을 가져가거라. 내 언제든 너를 환영해줄 터이니-”
어서 이리로 날아오렴-
짧은 노래가 끝나면서 소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팔을 벌렸다. 마치 어른의 첫 경험을 직접 겪은 것처럼 소녀의 표정은 황홀하기 그지 없었다.
“나 요즘 기분이 너무 좋은 것 같아. 네가 봐도 그러니? 그림자야?”
소녀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이였지만 그 말을 듣는 이는 하나뿐이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삿갓을 쓴 검은 옷의 남자가 조용히 서있었다. 소녀는 사뿐 사뿐 걸어와 남자의 앞에 섰다.
“그림자.. 나의 어리석은 그림자, 영(影)...”
“네, 루(淚)님.”
소녀가 웃어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영 또한 따스하게 웃으며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녀 즉 루는 자신의 몸을 가려주는 천 이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으면서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매혹적이게 웃으며 영의 팔을 쓸어내렸다.
“나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
“루님이 좋으시면 저 또한 좋습니다.”
영은 자연스럽게 루의 어깨에 걸쳐진 겉옷을 더욱 단단히 여며주면서 속살을 가려주었다.하지만 루는 그러건 말건 다시 팔을 올려 영의 얼굴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흡사 입맞춤을 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위치에 서로의 숨소리를 주고 받을 만큼 가까워졌다.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한 건지 아니면 그럴 가치가 없는 것인지 루는 매혹적이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얼른 와줬으면 좋겠어.”
“............”
“빨리 ‘까마귀’가 와줬으면 좋겠어.”
“................”
‘까마귀’라는 말이 연분홍빛 입술에서 나오자 영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운 돌덩이가 얹어진것처럼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사랑스런 소녀의 심기를 건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반드시 올겁니다. 루님이 이렇게 바라시니까요.”
그리고 항상 소녀가 원하는 말만 해주었다. 그래야 소녀가 웃으니까. 그리고 이 잔인하도록 사랑스러운 소녀는 꺄르르 웃으면서 영의 얼굴을 놔주었다.
“응, 반드시 올거야. 노래까지 퍼뜨렸으니까.”
마치 선물을 기대하는듯한 소녀다운 모습은 다른 이가 보기에는 매우 껄끄럽고 이상하며 혹은 공포스럽게 느껴졌지만 같은 방안에 있는 남자의 눈에는 그 모습 또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얼른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어.”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저 불길한 말만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