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아기였을때 산에 버려졌다. 검은 천조각에 칭칭 감겨진 그 아기를 주운건 어느 도적이였다. 도적은 키득키득 웃으며 아기를 들어올렸다.
“요것봐라? 울지도 않네?”
보통 애새끼들이라면 꺄앙- 꺄앙- 울어야 정상이지만 도적은 시끄럽게 우는 애들을 정말로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들어올린 아기는 무서워서 그런건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건지 울지 않고 커다랗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뭐가 좋은지 꺄르르 웃기도 한다. 그 모습에 도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네놈 보통 핏덩이가 아닌가 보구나.”
“꺄르르-”
“아니면 나처럼 미친 놈이던가.”
도적은 알수 있었다. 이 아기는 제대로 된 미친 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걸. 도적은 아기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피투성이에 험상궂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웃는 아기는 자신과 너무 닮아 보였으며 자신보다 더 대단한 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했는지 도적은 아기를 자신의 아들로 삼기로 했다. 이름은 검은 천에 감쌓여진채 발견됐다고 하여 현(玄)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 아기는 훗날 성장하여 자신을 거둬준 아비와도 같은 남자를 죽이고 사라국을 공포로 몰아넣는 살인마 ‘까마귀’로 불리게 되었다.
“자.. 어떤 칼을 준비 할까?”
살인마 까마귀, 즉 현은 마치 천진한 아이와 같은 들뜬 마음처럼 자신의 앞에 놓여진 날이 잘 세워진 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그의 양뺨은 마치 여자와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난 뒤의 오르가즘을 느낀 것처럼 빨개져 있었다.
“기대되네.. 어떤 식으로 죽일지가..”
천천히 문신을 그리듯 죽여줄까? 아님 고통없이 한번에 죽일까? 아아.. 아니지. 먼저 힘줄을 끊은 다음 가축처럼 발버둥 치는 모습을 즐긴 다음에 천천히 요리를 해볼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생각들이 현의 머릿속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밀려들어왔다. 살인은 그에게 삶이였고 그 삶은 즐거움이자 행복이였다. 그리고 그 죽음의 결과물인 시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그는 한마리의 ‘까마귀‘ 였다.
“자.. 다음은 어떤 노래로 날 유인할까..”
※ ※ ※
어느 아름다운 달빛이 내비치는 청류전에는 이상하리 만치 한산 했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들과 병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누가 쳐들어와도 지켜줄 이가 아무도 없었는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루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싱그럽고 탱글탱글한 포도 한알을 입에 물었다. 핑크빛 입술을 적시는 과즙은 세상 그 어느것보다도 달콤하다고 느껴지는 밤 하늘 아래에서 루는 새하얀 다리를 들어내며 과일의 맛을 음미했다.
‘아아. 정말이지 짜증날 정도로 예쁜 달이네.’
음과 양의 조화로 그 중 음(陰)을 상징하는 달빛을 보고 천천히 웃음기를 띄우는 루는 가녀린 팔을 들어올려 달을 향해 뻗어보았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야속한 달이 얄밉지도 않은지 루는 금방 포기했다는 듯 여러개의 푸른 보석들이 널린 푹신한 침대 위로 몸을 맡겼다. 새하얀 달빛이 그녀의 새하얀 피부를 더욱 하얗게 비추었다.
‘어리석었던 어린 시절 항상 달에게 소원을 빌곤 했었지.’
누군가가 말했었다. 달님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 준다고. 웃기지도 않는 말이였다. 정작 소원을 들어주는건 달이 아닌 바로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하찮은 돌멩이 이거늘. 루는 다시 한번 피식 웃으면서 침대 위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보석 하나를 잡았다. 길거리에 흔하디 굴러다니는 돌과 같은 크기의 푸른 보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치가 있는 물건일지도 모르지만 루 자신에게는 하찮은 물건과 같았다.
“12개의 보석 중 가장 신에 가깝다고 칭송 받는 보석? 웃기지도 않아.”
이깟 돌멩이로 자신의 운명은 구속되었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에게 보석을 요구하는 무능한 왕과 호시탐탐 탐욕에 찌든 눈으로 자신을 보는 욕심많은 영감탱이들.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애환과도 같은 목소리들. 벗어나고 싶었다. 자유로워 지고 싶었다.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죽음이였다. 루에게 있어서 죽음은 자유임과 동시에 삶이였다.
“죽기에 너무 아름다운 밤이네. 안그래?”
누군가가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루는 청각이 아주 예민했기에 알수 있었다. 매일같이 따라다니던 영이였다. 영은 루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루는 다시 포도 한알을 베어 물었다.
“나의 어리석은 그림자야. 이제 다음 노래를 퍼뜨리렴.”
“네, 루님.”
“보석은 알아서 담아가고.”
“분부데로.”
루의 명령에 영이 다시 무릎을 펴 루의 주위에 있던 보석들을 하나하나 담아가기 시작했다. 거의 나신과 다름없는 주인의 몸을 애써 외면하며 주위의 보석을 거의 치울 때 쯤 영이 굳게 다물던 입을 열었다.
“루님.”
“음?”
“그냥.. 그냥 이곳에서 도망치면 안될까요?”
“............”
갑작스런 그림자의 말에 루의 시선이 그에게 돌려졌다. 영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어린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언제까지고 곁에 있어드리겠습니다.”
“..........”
“저는 당신의 그림자.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고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어리석은 새끼.”
자신을 걱정하는 그림자를 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굳힌 루는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며 날카롭게 퍼져갔고 영의 한쪽 뺨이 빨갛게 부어올라갔다.그 여파로 그가 담았던 보석들 중 일부가 바닥에 나뒹굴어 졌다. 하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한듯 루는 새하얀 다리를 들어올려 영을 걷어차고는 그를 침대 밖으로 떨어뜨렸다. 덩치에 안맞게 힘없이 바닥 위로 쓰러진 영에게 루가 다가가더니 그의 머리를 거칠게 잡아 들어올렸다.
“그림자면 그림자 답게 닥치고 있어.”
“루님..”
“네까짓게 뭔데 내 안위를 걱정해. 너는 네 처신에 맞게 내 명령만 들어.”
죽고 싶지 않으면.
싸늘한 주인의 표정에 영의 눈이 처절함으로 크게 떠졌다. 언제나 아름다웠던 제 주인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나 매정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주인 밖에 없었던 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럼에도 루의 매정한 말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왔다.
“무슨 왕자님 흉내를 내고 싶었나? 그렇게 내 몸을 갖고 싶어?”
“루님, 저는..”
“너는 이미 죽은 놈이야. 그 날 내가 널 사고 이름을 지어준 그 순간부터 너는 이미 죽었고 주인 곁에만 머무는 그림자라고. 그림자는 생명이 아니야. 그러니 네 처신에 맞게 똑바로 행동해, 이 어리석은 그림자야.”
그 말을 끝으며 루는 다시 영을 내팽켜 치고는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아직도 화끈 거리는 뺨을 잡고 일어난 영은 아무말 없이 루를 쳐다보았지만 루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뭐해. 얼른 돌멩이 들고 사라져. 그리고 내 명령을 시행해.”
“..네... 루님..”
가녀린 몸과는 다르게 제법 힘이 센 건지 주춤주춤 일어난 영은 떨어진 보석들을 다시 주워담고 방을 나갔다.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루의 시선이 영이 나간 문 쪽으로 향했다. 루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녀석..”
오랫동안 자신의 곁에 둔 영이였지만 루는 그에게 정을 주지 못했다. 자신을 보는 그 눈빛과 마음이 부담스러웠고 언제나 자신을 위하는 그의 행동이 익숙치가 않았다. 그래서 가끔 화풀이 용도로 때리고 욕을 했는데도 어리석은 그림자는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왔다. 루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 그 집안 핏줄들은 왜 하나같이 저 모양인지..’
불현 듯 머릿속에 기억들이 스쳐지나 갔다. 다정하게 웃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남자들의 모습. 그 모습들이 떠오르자 혐오스럽다는 듯 얼른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런 모습들을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핏줄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