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장사치 생활을 오랫동안 해오던 장사백은 비가 그친 뒤 맑게 갠 하늘 아래로 자신의 짐마차를 끌고 있었다.
“하~ 아무래도 넌 특이한 아이란 말이야. 보아하니 떠돌이 생활을 꽤나 한 듯한데, 전란 속에서 너 같은 아이가 살아남기는 매우 힘들 터인데 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지 않겠느냐? 쯧쯧..”
그의 옆 좌석에는 어린 령이 있었다. 령이는 묵묵히 사백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어떤 기분 나쁜 말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 오직 령이에게는 강한 삶의 욕구가 그 누구보다도 절실했고, 강했다. 령이는 사백 곁에 머물며 자신의 비루한 삶을 꿋꿋이 버텨나가야만 했다. 령이에게는 오직 하나의 목적이 가슴과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죽은 린의 복수를 다하기 전까진 결코 죽을 수 없었다.
‘반드시, 울제국의 황제를 내 손으로 죽이겠어.. 반드시..“
“너 정도면 꽤나 비싼 값에 팔릴게다. 어찌됐든, 넌 네가 원하는 대로 계속 살 것이고, 난 많은 돈을 손에 거머쥐겠지 이게 상부사조 하는 것 아니겠느냐?, 흥! 그때까지 널 보살펴야겠지만 말이지. 너의 숙식비까지 계산을 다해서 값을 치룰 것이다. 난 계산은 철저히 하는 편이거든. 여러 거래들도 해왔고 말이지. 울 제국도 드나들 수 있게 되었지!. 암, 그렇지. 그러니 울 제국의 도장이 찍힌 통행증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난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하!”
령은 이따금씩 들썩이는 마차 위에서 가만히 앞의 풍경들을 보며 사백의 말을 계속 듣고만 있었다. 원래 울 제국의 출입은 엄격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편히 드나들 수 있었고, 장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울하 황제 서거 후, 동생인 울천이 황제가 되고서부터 제국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아마도, 도망친 황태자와 불안한 제국 내 정세 탓이리라. 그리고 풍나라를 침략하고부터는 더 철저히 통제하게 되었다. 이는 황제 울천의 명이었다. 울 제국의 도장이 찍힌 통행증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하였다. 상인들은, 상인임을 나타내는 명패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은 상인들은 전부 출입을 제한하였다. 다행히, 장사백은 상인의 명패와 울 제국의 통행증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제국의 병사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제국의 통행증을 가진 이들은 살려도 좋다는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명은 명이었지만, 혹시라도 제국에 위해를 가할 지도 모를 자라면 죽여도 좋다는 명이 있었다. 사백은 운이 좋았다. 하마터면 전날 밤 마을의 사람들과 같이 몸이 차갑게 식어버린 채 흙탕물에 나뒹굴고 있을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원래라면 너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어야겠지만, 네 스스로 몸이 팔리길 원하는 애는 처음 보는데다 널 가만히 지켜보니 도망갈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내가 친히 마부 석에 앉힌 것이다. 그냥 이때까지 장사치 생활을 해오며 생긴 감을 통해 보건데 넌 날 도망치지 않을 거란 말이지.. 혹여나 도망가면 네 목숨은 온전치 못할 것이야..”
“아!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이 뭐지? 이거 참 실례가 이만저만이 아니네, 비단 노예를 자처한 너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 통성명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 난 장사백이다. 잘 알다시피 상인이지. 자 꼬맹이 네 이름이 뭐지?”
령은 물끄러미 사백으로 고개를 돌렸다. 령의 꾹 다문 입이 열렸다.
“령...령이 내 이름이야.”
“령이렷다..? 성은 뭐지? 뭐 아무렴 어때 이름만 알면 되지. 그나저나 어제부터 나에게 계속 반말질이구나? 흥! 봐주마. 어디 가서 꼬맹이 녀석과 반말로 대화하겠느냐. 어차피 너와 난 잠깐의 동행일터. 마음대로 하거라! 이게 다 나 장사백의 마음이 저 바다와 같이 넓기 때문이렷다.”
‘바..다? 바다가 뭐지?’
“바다가 뭐야?”
장사백의 바다라는 말에 갑자기 궁금증이 일은 령이 마차에서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령의 질문에 사백은 호기심이 생겼다.
“호.. 바다를 모르는 모양이지? 당연히 가본적도 없겠군? 바다란 말이지 여기서 멀리 나아가야 있는 곳으로 물줄기가 끝없이 펼쳐진 곳이지. 호수는 알겠지? 호수보다 엄청 넓고 아무리 앞을 내다보아도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이지. 물과 하늘이 맞닿은 경계인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란 말이지! 바다를 보노라면 얼마나 마음이 차분해 지는지 나는 종종 바다 근처로 향하면 꼭 바다를 들러서 하루 종일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며 감상하곤 하지.. 넌 이 맛을 모르겠구나. 하하! 뭐, 너도 운이 좋으면 언젠가 바다를 볼 수 있을 테지. 죽기 전에 꼭 보거라. 후회하진 않을 터.”
‘바다는.. 끝없이 펼쳐진 곳.. 그럼 그곳에는 린이 있을까..? 죽은 이들이 가는 곳이 끝이 없는 곳이라는데..’
령은 장사백의 말을 떠올리며 바다를 상상해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물줄기와 수평선. 그리고 린을 떠올렸다. 령은 바다를 꼭 한번 가고자 마음먹었다. 그 전에 복수를 하고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정설로 떠도는 말 중, 사람들이 죽으면 끝이 없는 곳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곳을 ‘무극’이라고 불렀다. 죽는다 하여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속세의 삶이 끝났을 뿐 그 뒤에는 무극에서의 삶이 시작된다고들 한다. 령도 속세의 짧고 불운한 삶을 마친 린이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무극에서 행복하게 새로운 삶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길 희망하였다. 아직 령은 자신의 가슴속에 린을 간직한 채 있었다. 아직 린을 가슴속에 묻고 보내기엔 복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령의 점철된 삶은 복수를 갈망하였다.
“그나저나 령아. 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것이냐? 그것도 자신의 몸을 대가로 말이다. 난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 말이지. 나라면 혀 콱 깨물고 죽는 것이 편할 것이야. 거지꼴로 살다간 굶어 죽나 제국의 손에 죽나 매한가지로 죽기 마찬가지거든. 죽는 걸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 길이지.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난.. 복수할거야..”
“뭐 복수..? 무슨 복수 말이냐.”
린의 눈에 다시 살기가 비쳤지만, 앞을 보며 말을 끄는 장사백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저 제국의 황제의 목을 쳐버릴 거라고!”
순간적으로 령의 입에서 큰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어린 아이에게 절규와 가까웠다. 령은 가슴속 맺힌 한에 자신도 모르게 외친 것이리라. 이에 장사백이 화들짝 놀라곤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 녀석! 그 입 조심하지 못해!”
장사백은 마차를 멈추곤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하던 우려와 달리 주변에는 울 제국의 병사들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령에게로 홱 돌렸다.
“만약 주변에 울 제국의 병사가 있기라도 했다면 나도 모가지가 뎅겅 날아간다고!”
“..!”
장사백은 령을 향해 크게 호통을 쳤으나 순간 그는 령의 눈 속에 비친 살기를 느꼈다. 이는 전란 속에서 초췌한 꼴을 하며 동냥이나 하는 어린 아이의 눈이 아니었다. 그 어떤 아이도 이런 눈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장사백은 분명 령이가 품은 살기와 그것에 서린 한을 느꼈다. 그가 이제껏 장사치를 해오며 여러 사람들을 상대해 보았지만, 그 중에 무서운 살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음에도 령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령에게, 어린 아이도 이토록 지독한 한을 품게 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니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것일 테지.
“다음엔, 입 조심 하거라! 너 때문에 내가 죽으면 너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 네 바람대로 날 이용해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령의 눈빛에 다소 긴장을 하다가 마음을 누그러뜨린 사백은 말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필시 령을 가엾이 느낀 것이리라. 그래도 이내 불쌍히 여긴 마음을 거두었다. 자신은 장사치였고 철저한 계산속에 냉정한 마음을 유지해야 했다. 어디까지나 령은 자신의 상품이었고 누군가에게 팔아넘겨야만 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가 삶을 살아오며 배운 단 한 가지 법칙은, 그 누구에게도 정을 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정을 줌으로 받는 슬픔과 고통 등이 얼마나 자신에게 크게 작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이 불쌍한 어린 아이 령이라도 말이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향해 저물기 시작하였다. 장사백은 마차를 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으로 향하게 하더니 빈 공터가 나오자 그 곳에 멈춰 세웠다.
“자! 내리거라, 이제 여기서 숙박을 할 것이야. 또 울 제국의 병사들과 마주치면 상당히 곤란할 테지. 그래서 숲속으로 들어 온 것이다. 이 정도 머리는 가져야 장사치답지 않겠느냐?”
장사백과 령은 마차에서 내렸고, 사백은 자신의 말들을 마차에서 풀고는 공터 쪽 나무에다 말 끈을 묶었다. 말들도 쉬게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는 마차의 짐칸에서 나무 양동이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이거 받거라! 날 이용하며 살고자 하니, 그 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아까 오면서 물줄기가 계속 이어진 것을 보았을 것이다. 거기 가서 물을 한가득 길러 오거라. 오늘 밤 너와 내가 마실 물이고 저 말들이 마실 물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갔다 오거라. 나는 불씨를 지필 땔감이나 주우러 가야겠다. 해가 지기 전에 꼭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어두운 밤 속에 불하나 없이 지내야 할 것이고 그건 위험할 것이야.”
말을 마친 장사백은 숲 속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덧 사백의 그림자는 까마득히 사라져갔다. 령은 자기 몸만 한 나무 양동이를 두 손으로 짊어지고는 물줄기를 찾으러 갔다. 물을 길러 나무 양동이를 한 가득 채우게 되면 그 무게가 만만찮을 것이다, 그걸 다시 짊어지고 오는 건 어린 아이에게 너무 힘든 일일 것이지만, 령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낼 것이라 마음먹었다.
숲 속의 그림자가 길어지며 점점 하늘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령은 얼마쯤 걸었을까 이내,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찾았다. 령은 도착하자마자 물줄기로 가서 몸을 숙이고는 물을 작고 예쁜 손에다 퍼 올리며 입에다 갖다 되었다. 어느 정도 갈증을 느꼈던 모양이다. 물을 몇 모금 마신 뒤 입가에 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노을이 진 하늘은 아름다웠다. 린이 곁에 있다면 같이 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하나의 추억이 더 생겼을 것이리라. 령은 따스한 빛깔을 내는 노을을 한 동안 감상하고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무 양동이를 두 손으로 들었다. 물줄기의 깊이가 꽤나 있어 나무 양동이로 한번 물을 훔쳐내니 가득 차게 되었다. 하지만 물이 찬 나무양동이 상당히 무거웠다. 령은 꽤나 나무양동이와 한바탕 씨름을 하고는 겨우 땅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 또 짊어지고 마차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지만, 령은 있는 힘껏 나무양동이를 등으로 받치며 겨우 들어올렸다. 무게에 두 다리가 떨려왔지만, 한 발 한 발 힘을 주며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령은 입에서 연신 숨을 내쉬고 있었고 몸은 세차게 떨려왔지만, 이를 꽉 악문 채 기어이 마차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나무양동이를 크게 땅에 내려놓았다. 그제 서야 령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는 몸의 긴장이 풀리자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런 일은 어린 소녀에겐 너무나 힘들었다.
“이제 온 것이냐? 고생 많았다. 거기 있지 말고 여기 화톳불로 가까이 와서 자리를 잡거라. 이제 추워질 것이니 말이다. 음식은 나밖에 못하니 너에게 시킬 수도 없겠고. 곧 저녁 식사를 대접해주마.”
장사백은 화톳불에서 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령이 도착한 것을 보고 이제 저녁을 준비하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