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여러 대륙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재 이야기의 배경은 동방의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동방 대륙은 세계의 동쪽에 위치한 대륙으로, 그 모습이 초승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혹자는 생김새 그대로 초승달 대륙, 비 대륙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게 동방 대륙으로 불리 운다. 그리고 동방 대륙과 마찬가지로 서방에도 대륙이 있었다. 이 역시 서방 대륙이라 불렀다. 서로 동 서방의 대륙은 살아가는 인종이 달랐다. 동방인들은 대부분 머리가 검고, 눈동자 색은 갈색이나 검은색을 주로 띠고 있었으며 이와 다르게 서방인들은 검은색 머리칼이나 눈동자 색을 가지지 않은 대신 형형색색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 만난 동서방인들은 서로 상대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였다. 서로 생김새가 다른 만큼 문화나 언어도 무척이나 달랐고 물건이나 옷 생김새도 달랐다.
현재 동방 대륙에는 서방 대륙에서 먼 길을 거쳐 위험한 바다를 건너 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참 전 동방대륙에 도달한 서방인들 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동방인들과 교류를 하기도 하며 같이 지내기도 하였다. 서로 문화 차이에 대해 알아갔으며, 서로간의 언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언어를 배운 후에는 더 열렬히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처럼 서방인들을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서방인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존재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방인들은 동방 대륙의 한 쪽에 터를 잡고 부락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정착한지 오래되어, 이제는 동방 대륙의 언어들을 습득하고 일상 언어로 쓰기도 하였다. 그 중 일부는 다시 서방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온전히 바다를 건너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울제국과 풍나라는 초승달 모양의 동방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중심부가 가장 대륙 내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울제국의 영토는 추운 북부까지도 일부 뻗어가 있었고, 풍나라는 울제국의 중심 영토를 기준으로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울나라가 제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풍나라도 동방대륙 내에서는 꽤나 큰 나라에 속했다. 한 때는 제국의 칭호를 얻을 만큼이기도 하여 옛날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풍제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지금도 제국으로 불리기에 모자름은 없지만 울 제국의 영토는 풍 나라보다 넓었으며 군세도 강했다.
지금 치러지고 있는 전쟁이 울 제국의 승기로 기울고 있긴 하지만, 전쟁은 꽤나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풍 나라의 군세도 만만치 않았거니와,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울 제국 내 군사를 이끄는 장군들이 있는데 새 황제 울천의 휘하로 들어간 장군은 몇 없었다. 전 황제와 죽은 황태자를 위시로 한 적통파와 황후를 따르는 장군들이 있었다. 이들 장군은 아직 울천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었다. 물론 황제이니 명을 따라 풍나라의 전쟁에 가담하게 되었지만 일부러 진군을 늦추거나 일을 만들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하였다. 그들은 원치 않은 전쟁이었기 때문이었다. 울 제국은 군사를 이끈 장군들의 힘이 막강하였고 이는 전적으로 적통 황제의 명만을 따른다. 그러니 적자를 해치우고 자리를 꿰찬 울천을 탐탁지 않아 했다. 만약 울천이 정신이 나가서 황후에게 위해를 가하면 즉시 황후를 따르는 장군들은 울천의 목을 치러 군사를 돌려 황궁을 칠 것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울천은 황후를 그냥 방안에 가두는 정도로 그쳤다. 어차피 황후를 죽일 마음은 없기도 하였다. 황후는 울천을 잘 대해주었고,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거기다 어머니를 일찍 여인 울천에게는 황후는 부모이자 누나와 같았다. 비록 황후의 자식인 황태자를 죽이긴 했지만 자신은 반드시 황제의 자리를 탐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항상 형인 울하의 광명에 그림자 속에만 살아온 울천은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음에 분통 하였다. 울천은 어렸을 적부터 울하가 경험할 수 없는 온갖 괄시와 수모를 당하였다. 울천은 즉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자신을 업신여긴 이들을 모조리 참수하였다. 이와 같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이유에는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울천은 부모님 죽음에는 정치적 이유와 함께 다른 나라의 사주가 있음을 알아채었다. 이 사실을 황제인 울하에게 고하였으나, 정확한 증거가 없었고 추론뿐인 울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울천은 분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황제가 되어 꼭 사실을 밝힐 것이고 다른 나라들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 것이라 다짐하였다. 그는 어느 나라가 사주한건 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는 분노에 그저 울 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겠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변질되어가기 시작하였다. 어찌 보면 울천은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죄는 극악무도하였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에는 분명하였다.
빈 공터에 자리를 잡고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앉은 장사백과 령이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백은 꽤나 요리 솜씨가 훌륭하였다. 오랜 노숙 생활로 인해 터득한 인생의 기술이리라.
“맛은 괜찮느냐? 아마 괜찮을 테지! 내 요리 솜씨는 정말 훌륭하거든. 하하.”
“... 맛있어..”
“거 봐 그렇지? 이 장사백의 음식을 먹은 이는 얼마 없다고. 영관인 줄 알거라.”
령은 정말 사백의 음식이 맛있었다.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령의 오랜 동냥 생활 속에는 맛있는 음식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간혹 잔치라도 있으면 고기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외에는 그저 나물밥뿐이었는데, 이렇게 장사백의 훌륭한 음식을 먹으니 오랫동안 죽은 미각이 다시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령이는 계속 음식을 입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하! 배부르군! 언제든 사람은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좋아. 식기들은 네가 씻거라!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령이는 음식을 먹으면서 사백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 모습에 사백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령이를 계속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뒤로 발라당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았다. 실로 아름다웠다. 별 바다의 향연이 펼치진 밤하늘은 오색찬란하였다. 사백은 밤을 맞이하면 잘 때까지 별을 감상하는 것이 낙이었다.
“식기 씻고 마차 짐칸에 넣거라. 그리고 볏짚이 보일텐데 그걸로 말의 몸을 군데군데 훑어주거라. 그리고 물도 좀 먹이고. 그게 오늘 밤에 네가 할 마지막 일들이다.”
“응..”
령은 이제 식사를 마치고, 자신이 길러온 물을 통해 식기들을 세척하였다. 그 후 사백의 말대로 마차의 짐칸에다 실었고 그 안으로 볏짚을 한 움큼 쥐었다. 그대로 말에게 간 령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말의 모습을 보았다. 솔직히 어린 아이 입장에서 무서울 법도 했지만 령은 두려움을 떨치고 열심히 볏짚을 들고 말의 몸을 훑었다. 말은 기분이 좋은 듯 푸르렁 거렸다. 이어서 말에게 물도 떠먹여주었다. 령이 가져다 준 물이 맛난 듯 잘 마셨다. 령은 어느 정도 말에게 적응한 듯 고개를 수그린 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 부드럽다..’
말의 피부와 털을 처음 만져본 령은 그 감촉이 새롭기만 하였다. 한동안 말의 곁에 머물며 말을 쓰다듬어 주었다.
‘흥.. 일은 잘하는구나.’
장사백은 령의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하고 이리 와서 불이나 쬐다 잠에 들거라.”
사백은 자신도 모르게 령에게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였다. 흠칫 놀라는 자신이었다.
“..응”
령은 못내 아쉬운 듯 말의 곁에 좀 더 머물렀다가 말의 눈을 빤히 보다가 화톳불로 돌아왔다.
“뭘, 그렇게 까지 열심히 하느냐. 일은 그냥 필요한 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은 과분한 것이야.”
잘못한 것 없는 령이었지만 사백은 그저 타이르며, 나름 인생의 조언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다시 밤하늘의 별로 시선을 옮긴 사백은 잠깐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모포를 잡고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령도 화톳불 근처에서 장사백처럼 고개를 들곤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린은 별들을 참 좋아했는데..’
린의 생각에 눈시울이 나려고 했지만 소매로 나온 눈물을 훔치곤 참았다. 굳게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눈물을 보여선 안됐다. 눈물은 린과 함께 가슴속에 간직한 채 복수를 마치면 그제 서야 다시 꺼내보리라 마음먹었다. 령도 곧 자리에 누워 자신의 모포를 덮고 잠에 들었다.
령과 사백이 잠이 들고 고요해진 대지 위로
별과 달이 적막한 밤의 대지를 환하게 비추었다. 마치 어둠으로부터 누군가를 지키려는 듯 말이다. 그렇게 령은 사백과의 첫날밤을 보낸다.
타닥..타닥..
아직 불씨는 꺼지지 않은 채 장작의 남은 부위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자빠져 자는군. 하긴, 아이들은 잠이 많을 때지.. 그래도 아침은 아침이지. 이봐! 꼬맹이! 빨리 일어나 아침이다!”
사백은 몸에 베인 습관에 아침 일찍이 일어났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다. 그런 후 령이를 깨우러 갔다. 령은 아직 잠을 깨지 못한 채 사백의 재촉이 몸을 일으켰다. 계속 잠을 자고 있다가는 사백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지도 모르니 말이다.
“으..응...”
한껏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령이었다. 가엾은 것.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아야할 아이가 차가운 냉기가 도는 바닥에서 노숙을 하는 모습은 불쌍하였다.
“여기 아침이다. 어서 먹거라. 곧 떠날 채비를 하여야 한다. 난 이미 먹었으니 너만 먹으면 된다.”
령에게 음식이 든 그릇을 건네곤 말들에게 향했다. 말들도 먹이를 주고 물을 주어야 했고 마차로 다시 끈을 결속시켜야 했다. 사백처럼 일찍 눈을 뜬 말들도 기분 좋은 듯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콧김을 내뱉었다.
‘맛있어..’
떠날 채비에 전 날보다 볼품없어진 식사지만, 그래도 사백의 요리였다. 맛은 있었다. 아직 따스함이 남은 음식을 목구멍으로 집어삼키자 몸이 따듯해지는 것 같았다. 령이 식사를 하느 사이 말들을 마차에 결속시킨 장사백은 끈을 점검하면서 령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에게 어딜 가는지 말하지 않았구나.”
“...”
령은 몸을 돌려 사백을 쳐다봤다. 여전히 입은 음식을 씹느라 정신 없었다.
“우린 말이다. 저 제국과 풍나라의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갈 것이다. 솔직히 북부로 가고 싶었지만, 이 난리 통에 갈 수도 없을 것 같고.. 제국에 가는 것도 석연찮고, 이곳 풍나라에 있는 건 더 석연찮으니 우린 남쪽으로 갈 것이다. 그래, 남쪽의 자유도시로 갈 생각이지. 자유도시에 대해 들어봤느냐?”
령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역시 그럴 테지. 이따 마부석에서 설명해주마. 네 덕분에 가는 길 지루하지 않아서 좋구나. 마저 먹고 대충 정리하고 오너라. 방금 출발할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응..”
령은 대답하곤, 다시 음식에 집중하였다. 사백은 그런 령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그것은 령이 행동이 굼떠서 인지 식충의 모습을 해서인지 그저 가엾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