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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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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471     추천 : 0     분량 : 5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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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이런 가죽을 뭐 하는데 쓰시려고 그럽니까?”

 잡화점 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레온이 고른 가죽은 시중에 내놓지도 않는 최하급 품이었다. 별로 질기지도 않고 고무처럼 잘 늘어나서 어디에도 쓸 데가 없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쓸 만한 가죽 부분을 오려내고 버리려고 모아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필요 없는 거라도 찾아보면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게 마련이지. 개똥도 약에 쓰일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레온은 그 가죽이랑 함께 이것저것 역용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다.

 잡화점에는 변장에 필요한 도구들이 꽤 많았다.

 붙이기만 하면 되는 콧수염이라든지, 갖가지 모양의 가발, 그리고 안경 등.

 하지만 레온은 그런 것들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저렇게 어설프게 이미 만들어진 것들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대신 털이 가닥가닥 따로 있는 것들을 길이와 색깔 별로 한 뭉치 샀고, 여러 가지 화장에 필요한 도구를 샀다.

 이곳 주인에게 물어본 바에 의하면 이 도시에는 역용에 필요한 도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없었다. 때문에 이런 것들을 모두 잡화점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다.

 중원이 아니니 당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에 덮어 쓸 가죽이었는데, 다행히 잡화점에서 버리려고 모아둔 가죽들이 제법 괜찮았다.

 물론, 인피면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진짜 사람의 얼굴 가죽이다.

 하지만 정말로 어디 가서 사람 얼굴 가죽을 벗겨 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가죽들을 얼마나 구할 수 있겠습니까?”

 잡화점 주인은 상인이었다.

 그는 단박에 상대가 그 가죽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가 짐짓 까다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요. 보통은 팔리지도 않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로서도 일부러 만들어내지는 않는 편이라서.”

 “그럼 만들 수도 있습니까?”

 “뭐, 만든다면야…….”

 레온이 은화를 두 닢이나 던졌다.

 어젯밤 어쌔신들로부터 뜯어낸 은화였다. 어쌔신들은 만약을 대비해 최소 금액을 소지하고 다니는데, 그들은 각각 1실버씩 가지고 있었다.

 “이것보다 더 얇게. 서른 장정도. 되겠소?”

 금화를 받아 든 상인이 입을 헤벌쭉 벌렸다. 사실 2실버가 아주 큰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쓸데없는 가죽을 처리하면서 받는 것치고는 짭짤한 수익이었다.

 다만 그보다 더 얇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 조금 손이 가긴 하지만.

 “물론입지요. 하지만 당장 만들어드리기는…….”

 “언제까지 되겠소?”

 “그보다 더 얇게 만드는 것이라면 일주일 정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그때 다시 오지.”

 “최대한 서둘러 만들어 드립지요.”

 “서두르는 것도 좋지만, 정교하게 해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흐흐. 그런데 그걸 어디에 쓰시려고 합니까?”

 “그건 알 필요 없고.”

 레온은 유유히 몸을 돌려 잡화점을 나섰다.

 어제 어쌔신들의 습격을 받은 후, 레온은 여러 가지 대책을 생각했다.

 버몬과 그란이 순순히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하나 어제의 습격은 사실 위험천만이었다.

 가까스로 놈들을 제압했지만 절대 두 번은 써먹을 수 없는 방법. 만약 레온이 조금만 늦게 눈치를 챘다면 그 둘에게 목숨을 잃었으리라.

 ‘제길, 너무 약해. 수련을 더 해야 해.’

 실제로 레온의 수련 속도는 일반인에 비해 수배에 달할 정도로 빨랐지만, 그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중원을 종횡무진하던 혈마존이 아니었던가. 본능과 생각을 따라오지 못하는 육체가 이만저만 답답한 게 아니리라.

 ‘그 녀석들도 가만두면 안 되겠어.’

 레온은 버몬과 그란을 떠올리며 걸음을 서둘렀다.

 

 “오오! 레온, 이제 왔느냐?”

 데이먼은 레온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그가 이렇게도 자신을 반기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세상에 네가 식재료를 알아보는 귀신이라며?”

 뒤이어 다가온 루나가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았다.

 데이먼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평소라면 50코퍼는 나갔을 텐데. 단 30코퍼에 이렇게 좋은 재료들을 구해오다니. 레온, 네게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구나!”

 그러니 당신은 사람이 너무 무르다고.

 레온이 싱긋 웃었다.

 “별것 아닌데요, 뭐.”

 “하하하, 정말이지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구나. 피곤하진 않니?”

 “아뇨, 별로 한 일도 없는데요. 뭐.”

 “그래도 좀 피곤하면 쉬려무나.”

 “그럼 잠깐 방에 갔다가 나올게요.”

 “그래, 그래. 오늘도 홀은 한가하니까 서둘지 않아도 된다.”

 ‘그렇군. 오늘도 한가하군.’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겠지만 어제 엿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레온은 가볍게 인사하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방에 들어가서 품에 숨겨 들어온 물건들을 침대 아래 두고는 다시 내려갔다.

 ‘어떻게든 가게 수익을 올려야겠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내가 한 번 요리를 해봐?’

 사실 데이먼의 요리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레온은 자신이 요리를 해도 그 정도의 맛은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데이먼보다도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4. 뜻밖의 손님.

 

 

 

 레온은 옥상에 올라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이 총총히 빛나는 맑은 하늘이었다.

 ‘수동적인 그란보다는 버몬이 보낸 어쌔신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는 버몬을 생각하면서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설마 했지만 어쌔신까지 보낼 줄이야. 이번 기회에 단단히 혼을 내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버몬의 방까지 어떻게 들어가느냐다. 그의 방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누가 있을까?

 제일 먼저 그의 부모이리라. 그리고 집사와 하인 정도이려나. 여러모로 편한 걸 고려해 봤을 때 집사가 제일 적격이리라.

 눈에 아주 띄지도 않고, 적당히 가내에서 권위도 있으니 움직이기에 편할 게다.

 좋아, 그럼 집사로 하고.

 문제는 그 집사의 얼굴을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집사의 얼굴을 보려면 저택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 없다면 끌어내면 되지.’

 레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의 계획이 섰다. 그때 문득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 해?”

 돌아보니 루나가 서 있었다.

 “잠시 생각 좀 한다고.”

 “무슨 생각?”

 “착한 일 할 생각.”

 루나가 풋 웃고는 레온이 앉아 있는 난간으로 다가왔다.

 “신전에는 다녀왔어?”

 “방금 돌아온 길이야.”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요즘 너 보면 가끔 다른 애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난 항상 내가 다른 사람 같아.”

 “바보, 기억을 잃어서 그런 거야.”

 “그럼 너도 똑같은 거야. 내가 기억을 잃어서.”

 “누나한테 너라니.”

 루나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정말 기분이 나빠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원래 레온은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며 잘 따랐지만, 요즘의 이런 레온도 왠지 싫지는 않았다.

 “나이 차이도 한 살밖에 안 난다며? 그 정도면 친구지.”

 “피! 밥을 먹어도 내가 너보다 많이 먹었어.”

 “사람이 밥 먹은 양으로 위아래를 가릴 수는 없잖아? 그럼 많이 먹고 똥 많이 싼 사람이 무조건 윗사람이야? 돼지들은 전부 형님이겠군.”

 “치, 말이라도 못하면.”

 “말이라도 잘해야 할 것 아냐.”

 “어이구, 잘 나셨어. 우리 동생.”

 “그렇게 누나로 불리고 싶어? 그럼 이제부터 누님으로 부르지요.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누님.”

 “됐어!”

 루나가 버럭 소리쳤다.

 레온이 뜨끔해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루나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난 그만 자러 갈래.”

 “잘 자.”

 레온이 루나를 돌아보고 싱긋 미소 지었다.

 루나는 순간 양 볼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 나이도 어린 게 자꾸 어른처럼 군단 말이야.’

 그녀는 괜히 차갑게 몸을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금방 자신의 행동에 후회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이상하게 요즘 들어서 레온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쩌면 자신이 다르게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루나가 내려가고 나서 레온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슬슬 가볼까?”

 그는 품에 넣어둔 역용 도구를 다시 확인했다.

 

 ***

 

 한 시간 후, 제프리가의 저택 앞이 전에 없이 소란스러웠다.

 “거참, 내가 이집 주인이랑 친한 사이래도 그러네.”

 “헛소리 말고 썩 꺼지지 못할까!”

 저택 대문을 지키고 있던 사병들이 검집째로 치근대는 거지의 가슴팍을 밀쳤다.

 “어이쿠! 이거 이러다 사람 잡겠구나! 여기 사람 죽소!”

 거지는 목이 찢어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저택을 지키는 사병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거지를 내려다보았다.

 늦은 밤에 갑자기 찾아온 거지는 도통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술에 잔뜩 절었는지 온통 술 냄새가 가득했고, 정신은 반쯤 다른 세계에 가 있었다.

 “이러다가 사람들 다 깨우겠군.”

 “누가 아니래. 이러다가 주인님이라도 깨시면 골치 아파지는데.”

 거지가 찾아와서 소동을 피운 지 벌써 삼십 분째였다.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나중에는 폭력을 휘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구타를 하자니 괜히 인사불성 된 사람 잘못 쳐서 큰일이라도 날까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새벽에 대체 무슨 소린이더냐?”

 대문 안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병들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다행히 나온 사람은 모리안이 아니라 집사였다. 사병들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하소연했다.

 “글쎄, 이 거지 놈이 와서 다짜고짜 주인님 뵙기를 청합니다.”

 “거지가?”

 집사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찰나 거지의 눈빛이 반짝였다. 물론, 그 작은 변화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사가 걸어나오더니 거지의 면모를 찬찬히 살폈다.

 거지는 집사를 보곤 헤벌쭉 웃었다.

 “헤에~”

 “누구요?”

 집사가 딱딱하게 물었다.

 “이집 주인 친구.”

 “이름이?”

 집사는 신중한 편이었다. 그는 거지가 절대 주인의 친구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물었다.

 “이름? 음… 뭐였더라?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집사는 거지의 행색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내뱉듯이 말했다.

 “아무리 보아도 처음 보는 사람이군.”

 당연한 것이었다.

 거지의 정체는 인피면구를 뒤집어 쓴 레온이었으니까. 특별히 누군가를 모방해서 만든 인피면구도 아니었으므로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레온은 곤드레만드레 취한 척하면서도 집사의 외모를 유심히 관찰했다.

 ‘팔자 콧수염과 눈가의 주름이 포인트군. 훗, 이만하면 됐어.’

 이윽고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응? 아무래도 내가 집을 잘못 찾았나 보군.”

 사병들은 기가 막혔다.

 여태까지 온갖 행패를 다 부려놓고 갑자기 정신을 차린 거지가 얄밉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집사가 나오자마자 바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니 그의 영향력에 내심 감탄하기도 했다.

 집사 역시 자신의 침착한 대처로 거지가 정신을 차린 줄 알았다.

 그는 더욱 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조심하시오.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와서 소란을 피울 곳이 아니오.”

 “알겠수다. 거참,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빡빡하기는.”

 거지가 중얼중얼 불평하면서 걸어갔다.

 이윽고 집사도 다시 저택 안으로 돌아갔다.

 사병들이 멀어져 가는 거지를 보며 소리쳤다.

 “네 이놈!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마라!”

 “썩 꺼져라.”

 레온은 그들의 고함 소리를 뒤로 하고 골목으로 접어 들어갔다.

 ‘미안해서 어쩌지. 내일 또 올 건데.’

 레온이 씨익 미소 지으며 얼굴 가죽을 뜯어냈다.

 ‘남은 건 버몬의 방을 찾는 거군. 후후, 그건 어렵지 않겠어.’

 금세 대안이 생각났다.

 정말이지 나쁜 쪽으로는 귀신도 놀랄 만큼 빠른 두뇌회전을 자랑하는 그였다. 달빛에 비친 그의 미소는 어쩐지 광기마저 서려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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