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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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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화
작성일 : 16-07-15     조회 : 482     추천 : 0     분량 : 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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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데이먼과 브란이 돌아왔다.

 “준비는 잘되고 있느냐?”

 “예, 걱정 마세요. 참, 두 시간 정도 후면 손님들이 온다는군요.”

 “그래? 그럼 어서 식기구라도 갖다놔야겠군.”

 “아닙니다. 식기구는 필요 없어요. 손을 닦을 깨끗한 물수건만 놔둬주세요.”

 “뭐? 식기구가 필요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데이먼에 문득 불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레온이 천연덕스럽게 싱긋 웃었다.

 “아무래도 이 요리는 손으로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시간 후.

 데이먼과 브란은 홀에서 연신 서성거렸다.

 처음에는 레온을 믿어보자는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후회가 밀려왔다. 레온은 사람이 많으면 분주하다며 두 사람을 홀로 내보냈다. 주방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올 텐데.”

 데이먼의 표정은 지나친 긴장으로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레온을 믿어보지요.”

 “그래야지. 그러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뭘 준비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도통 재료가 생선이랑 밥뿐이지 않은가.”

 “흐음.”

 브란도 자신 없는 듯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들었다.

 “혹시 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들어오지 못하게 한 건 아닐까요? 비장의 한 수가 있을지도.”

 “그럴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만.”

 “그러니 그렇게 믿어달라고 한 것이겠지요.”

 “그렇겠지? 그래, 뭔가 특별한 소스가 있을 게야. 그러지 않고서야.”

 두 사람은 겨우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주방에 있는 레온은 여전히 밥과 생선만 펼쳐 놓고 있었으니…

 보다 못한 루나는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었다.

 “이제 곧 사람들이 올 건데 어쩔 거니?”

 “오라면 오라지. 본좌는 모든 게 준비됐으니까.”

 “이걸로?”

 루나는 조리대 위에 죽 펼쳐진 밥알과 생선을 보았다.

 레온은 여전히 자신 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지 말고 밥이나 펼쳐 놔 줘. 대신 동판 같은 금속판 위에 놓으면 안 돼. 금속 재질에 닿으면 밥에 수분이 생겨 버리거든.”

 “휴, 알았어.”

 루나는 포기한 심정으로 레온이 시키는 대로 했다.

 밖에 계신 아빠와 브란은 알기나 알까. 지금 주방은 그들이 보고 간 후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레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손으로 생선들을 훑으며 마기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 기가 워낙 미약해서 루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레온으로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마기를 입은 생선살들은 조금씩 레온이 원하는 맛으로 숙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면서 글라니스가 들어왔다.

 “안녕하시오, 주인장.”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하, 오늘 내가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왔소이다. 조금 시끄럽겠지만 이해해 주시오.”

 “별말씀을요.”

 데이먼과 브란은 그들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과연 손님들은 제법 많았다. 홀을 가득 메우고도 몇 명이 자리가 없어서 의자를 더 가져와 테이블 틈에 비집고 앉아야 했다.

 테이블에 앉은 글라니스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식기가 없군.”

 “아, 그게 오늘 요리는…….”

 데이먼이 차마 말을 맺지 못하자, 브란이 대신 나섰다.

 “오늘 요리는 특별히 손으로 먹는 음식입니다.”

 “호오? 손으로? 혹시 게를 삶은 거요?”

 “그건 아닙니다만… 잠시 기다리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브란도 모르는 요리를 가르쳐 줄 수도 없었기에 대충 말을 둘렀다.

 “하하하! 기대하겠소!”

 그가 데리고 온 생도들도 잔뜩 기대를 한 표정이었다. 글라니스가 예정에도 없는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을 보면 뭔가 엄청난 요리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주방에서 루나는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손님들이 벌써 테이블을 잔뜩 메우고 있는데 레온은 아직도 밥알이랑 생선살만 펼쳐 놓고 있으니.

 아아, 어떡하면 좋아.

 “뭘 그렇게 풀 죽어 있어? 자, 시작해 보자.”

 레온이 경쾌하게 말하며 우선 손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얇게 썬 생선살을 올려놓고, 오른손에는 밥을 쥐었다. 밥을 굴리듯이 모양을 잡은 후 오른손으로 곱게 간 고추냉이를 찍어 생선살에 발랐다.

 고추냉이는 사실 중원에도 있는 향신료였지만 이렇게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레온이 생각하기에 숙성된 고추냉이가 들어간다면 약간 매콤한 맛을 내면서 좀 더 맛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넣은 것이었다. 거기에 마기를 뿜는다면 맛이 더해질 게다.

 그다음 레온은 생선살 위에 밥을 얹고 모양을 잡으면서 마기를 적절히 뿜어 숙성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생선 얹어진 반듯반듯한 밥을 열 개씩 그릇에 담고는,

 “다 했다.”

 “이게?”

 “먹어보면 놀랄걸?”

 “감히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래? 안타깝군. 최초의 시식 권한을 너에게 주려고 했는데.”

 “정말 이걸로 된 거야?”

 “그렇다니까? 반응 한 번 볼까? 참, 간장을 찍어 먹어야지.”

 레온은 작은 그릇에 준비했던 간장을 담았다.

 사실 아란스 왕국에서 간장을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십여 년 전, 먼 동쪽 코이펜 대륙에서 수입되고 나서부터 조금씩 사용해 온 조미료였다.

 때문에 레온의 요리는 다른 이가 볼 때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게다가 쌀 또한 주식이 아니었으므로.

 “데이먼, 요리 나왔습니다.”

 “응! 그래!”

 반갑게 주방 쪽으로 달려온 데이먼은 안색이 창백해져 버렸다. 그는 밥과 생선만 담겨 있는, 그야말로 밋밋한 접시를 보면서 말을 더듬더듬 뱉어냈다.

 “이, 이게 뭐냐?”

 “요리죠.”

 “먹, 먹을 수 있는 거지?”

 “당연하죠.”

 데이먼의 울고 싶은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온은 연신 해맑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게 다인 거요?”

 글라니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데이먼이 옆에서 손을 비비며 창백해진 안색으로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흐음. 생각보다 단순하군.”

 “하하하! 그, 그렇네요.”

 데이먼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생선밥은 꾸준히 생도들에게 나가고 있었다. 모든 생도가 음식을 받았을 때, 주방에서 레온이 나왔다.

 “이 음식은 손에 들고 간장에 찍어 먹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에 넣을 때는 생선이 아래로 오게 해서 드시는 게 좋습니다.”

 생도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게 다야?”

 “뭐야, 이건 그냥 날생선이 얹어진 밥이잖아.”

 생도들이 실망한 낯빛으로 글라니스를 바라보았다.

 글라니스도 다소 황망한 기색이었다. 그래도 아란스 왕국 내의 거의 모든 요리를 맛보았던 그였다.

 한데 레온이 만든 이 요리는 그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언뜻 보아서는 없는 재료로 대충대충 만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차분하게 말했다.

 “모두들 먹어보자.”

 그제야 생도들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기 시작했다.

 글라니스가 음식을 먹기 전에 데이먼을 불렀다.

 “보아하니 아까부터 홀에 계시던데, 그럼 이 요리는 누가 한 거요?”

 데이먼이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만약 레온이라고 얘기하면 이 사태의 잘못을 그가 전부 뒤집어쓸까 봐 염려된 탓이었다. 몰매를 맞아도 자신이 맞아야 한다. 이 가게의 주인은 자신이니까.

 데이먼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글라니스가 재차 말했다.

 “걱정 마시오. 그냥 궁금해서 물어 본 거요. 어차피 내가 어떤 요리든 상관없다고 했으니. 이것도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고.”

 “음. 이 아이입니다.”

 글라니스와 생도들의 시선이 레온에게 향했다.

 글라니스는 레온에게 물었다.

 “이 요리의 이름이 무엇인가?”

 레온이 잠깐 머뭇거렸다. 사실 이 요리는 중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름 같은 것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주먹초밥에 생선을 얹었으니.

 “생선초밥이라고 합니다.”

 “자네가 개발한 요리인가?”

 “뭐, 그런 셈이지요.”

 사실 여러 변칙이 적용되고 마기까지 뿌려댔으니 레온이 개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중원에 이러한 생선초밥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때였다.

 식당 구석에서 한 생도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그의 표정은 어쩐지 환상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우와아! 파도 소리가 들린다! 갈매기가 머리 위를 지나고 있어. 이거, 정말 맛있잖아!”

 최초의 반응이었다.

 생선초밥을 먹은 첫 생도였다. 그러자 다른 생도들이 너도나도 초밥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오오! 나는 지금 고향 마로체니의 앞바다를 보았어!”

 “아~ 내 다리에 지느러미가 달린 것 같아. 이 순간 물고기가 된 것 같아.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고 놀고 싶어져.”

 모두들 몽환적인 표정으로 우스꽝스러운 감상을 외쳐 댔다. 보는 사람이 민망해져서 닭살이 돋을 정도로…

 한편 데이먼과 브란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레온에게 시선을 던졌다. 레온이 그것보라는 듯 씨익 웃었다. 중원에 있던 시절 오랜 세월동안 요리를 해왔던 그였다. 때문에 무의식중의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글라니스를 보았다.

 글라니스는 오히려 생도들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자 콧방귀를 꼈다.

 ‘흥! 어쩌다 처음 먹는 요리에 저리 호들갑을 떨기는. 내가 추천한 곳이라곤 하지만 맛이 없다면 솔직히 맛없다는 반응을 보여야지. 다들 날 너무 의식하는군.’

 그는 생도들의 반응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곳을 추천했으니, 생도들은 별로 맛이 없어도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지나치게 맛있는 척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저런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독특한 반응은 주로 대단히 유명한 미식가들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흔해빠진 미사여구 대신, 자신만의 독특한 반응을 보임으로서 요리의 특질을 알아맞히고 자신들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니 글라니스가 보기에는 저런 반응까지 내뱉는 생도들이 그저 겉멋만 잔뜩 든 치기 어린 모습으로만 비쳤던 게다.

 글라니스가 레온을 힐끔 보았다.

 ‘요리를 개발하는 단계로는 안 보이는 어린 청년인데. 내가 확실히 평가해 주지.’

 그의 표정은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군의 그것이었다. 그는 생선초밥을 간장에 찍었다. 이 간장도 생소했다. 아란스 왕국에서는 간장을 수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 용도가 흔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간장은 뭔가 다른 양념이 첨가되어 있는 듯했다. 나올 때부터 간장의 냄새가 달랐던 것이다. 그만큼 글라니스의 후각은 뛰어났다.

 어쨌든 글라니스는 레온의 말대로 생선이 아래로 오게 한 후 생선초밥을 입에 넣었다.

 데이먼은 물론, 브란과 루나, 그리고 생도들까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단지 레온만이 느긋한 태도로 그를 보고 있었다.

 “헉!”

 문득 글라니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오오오! 나는 이미 바다에 왔노라!”

 돌연 그가 입고 있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가 웃통을 모두 벗고 출렁이는 뱃살까지 드러냈을 때, 제임스와 생도들이 가까스로 말렸다.

 제임스는 내심 놀랐다.

 ‘글라니스가 이런 특급 반응을 보일 줄이야. 도대체 무슨 맛이기에!’

 그도 초밥을 하나 집어 먹었다.

 “헉!”

 잠시 후, 그가 갑자기 물 컵을 들더니 자기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물속에 살고 싶다!”

 그는 아예 주전자 채로 들더니 자기 머리 위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글라니스가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반응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글라니스와 생도들은 3년 굶은 거지처럼 생선초밥을 허겁지겁 집어먹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민망해서 닭살이 돋는 장황한 리액션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리액션을 보인 후부터는 그저 먹기에 바빴다. 마기를 입고 숙성된 생선초밥은 그야말로 마약과 같은 힘이 있었던 게다.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먹고 싶은.

 “아, 아빠. 지금 좋은 반응인 것 맞죠?”

 “그런 것… 같구나.”

 “사장님,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브란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혹여라도 무리를 했다가 1천 코퍼 이상을 물어줘야 하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었다. 한데 결과는 보다시피 정반대. 지금 심정이라면 레온을 껴안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글라니스와 생도들은 접시를 완전히 비우고 나서도 연신 생선초밥을 추가 주문했다.

 그래서 데이먼과 브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루나는 레온 곁에서 설거지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거들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꿈의 밥상 식구들의 얼굴엔 웃음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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