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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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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화
작성일 : 16-07-15     조회 : 434     추천 : 0     분량 : 7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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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가량 후.

 음식 문화의 충격(?)을 받은 생도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남기고 글라니스보다 앞서 돌아갔다. 식당에는 글라니스와 제임스만이 남았다.

 글라니스는 아직도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몽롱한 표정이었다. 그가 데이먼을 불렀다.

 “주인장, 계산하겠소.”

 “예, 손님. 잔금 10실버입니다.”

 “하하! 당신도 너무 정직하군. 우리가 계속 추가 주문했으니 5실버를 더 내겠소.”

 5실버씩이나!

 데이먼은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상대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얼마나 부자면 저렇게 거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 것일까?

 게다가 일류 미식가들이나 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반응들. 혹시 수도 아란스에서 유명한 식당 주인 정도 되려나?

 “10실버만 내셔도 충분합니다. 이미 과분한 돈입니다.”

 “그건 아니지! 어딜 가서 이런 요리를 먹어볼 수 있겠소! 오늘 나는 음식 문화의 충격을 받은 것이오! 그 신선한 충격 앞에서 5실버는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오! 이, 생선밥…….”

 “생선초밥입니다.”

 레온이 가만히 정정해 주었다.

 “그렇지, 이 생선초밥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음식이었소! 그러니 그냥 받으시오. 주인장이 거부하면 나야말로 이 요리를 먹을 자격이 없었던 사람이 되고 마는 거요.”

 ‘후후, 제법 생각이 있는 새끼… 아니, 손님이군.’

 레온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데이먼은 5실버를 받아도 될지 말지에 대해 행복한 고민을 했다.

 글라니스는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로서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합당한 가치를 내놓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가 워낙 완고한 표정으로 나오자 데이먼은 두말없이 받았다.

 “감사합니다, 손님.”

 “나야말로 감사하오. 그리고 자네.”

 그가 레온을 불렀다.

 “이 요리를 자네가 만들었다고 했나? 아니, 개발했다고?”

 “그렇습니다.”

 “호오, 그럼 이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아, 물론 비결을 전부 가르쳐달라는 것은 아니네. 몇 가지 요점만 짚어줘도 좋네.”

 “일단은 온도가 중요합니다. 입에 넣었을 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온도. 즉, 인간의 체온과 가장 흡사한 정도가 좋습니다.”

 “그건 왜 그런가?”

 “입에 넣었을 때 뜨거움이나 차가움을 먼저 느껴 버리면, 맛은 그 감각 뒤에 따라오게 되니까요.”

 “과연. 그리고?”

 “밥을 뭉쳐 만들 때는 이쑤시개로 찔러서 들어 올려도 그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선의 숙성도도 아주 중요하지요. 밥은 적당히 양념을 해놓으면 됩니다.”

 레온은 마기를 이용해서 생선을 적절히 숙성시켰다는 이야기를 쏙 뺐다. 그 비결을 밝히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말해도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군.”

 글라니스는 흥미로운 눈길로 레온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당당한 기품과 두려움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표정. 비록 작은 식당에서 하찮은 허드렛일이나 하는 자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모든 사람을 아래로 깔아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글라니스가 제임스를 돌아보고 물었다.

 “어떤가? 이 친구.”

 “재미있는 친구군요.”

 제임스도 레온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을 느끼고 내심 감탄했다.

 글라니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자네, 혹시 왕성에서 일해볼 생각이 있는가?”

 “예에?”

 깜짝 놀라 소리쳐 물은 사람은 레온을 제외한 모두였다.

 왕성이라니. 그럼 이 사람은 왕성에 관계된 자였던 것인가? 그럼 저 생도들과 이 사람의 정체는 혹시… 이 자가 왕성 요리사?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람들은 입을 척 벌리고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왕성 요리사의 눈에 띄어 직접적으로 제의를 받았다면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횡재가 아닌가! 이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이어진 레온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뭐?”

 모두 놀라서 레온을 쳐다보았다.

 질문을 한 글라니스도 놀랐다.

 “자네, 왕성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모르나?”

 “왕성에서 일한다는 건 왕성에서 산다는 뜻이겠지요.”

 “그게 아니라, 그 일이 자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모르냐는 말일세.”

 “왕성을 구경할 수 있겠군요.”

 레온이 태연히 말을 받았다.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루나가 불쑥 끼어들어 레온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너 제정신이야? 왜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거야? 앞으로 살면서 이런 기회가 몇 번이나 올 것 같아?”

 레온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글라니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재차 말했다.

 “왕성에서 일을 하게 되면 자네 삶이 훨씬 윤택해질 거라는 걸 보장하네.”

 “물론 그렇겠지요.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회를 놓치려 하나?”

 “좋은 기회라는 건, 본좌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좌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자 데이먼이 나섰다.

 “레온, 혹시 우리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만약 그런 거라면 우리는 신경 쓰지 말거라. 이건 네 인생에 다시없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이 기회는 네가 스스로 만든 것이잖느냐.”

 “그래. 그냥 가.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다고.”

 루나도 나서서 레온을 설득했다.

 하지만 레온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분명히 좋은 기회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리를 지키기 위해 그 기회를 포기했다면, 언젠간 다시 그만한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과거 혈마존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레온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건 너무나 중요한 기회였다. 게다가 이런 기회를 잡지 않는 이유가 자신들 때문이라면 더더욱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서 데이먼은 끝까지 레온을 설득했다.

 “레온, 만약 왕성으로 가게 되면 대신관이 되는 길도 가까워진단다.”

 “그래. 그곳에서 네 꿈을 키워야지.”

 사람들의 말에 레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른 것보다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좀 더 가까워진다니 조금은 고민이 됐다.

 글라니스는 묵묵히 레온을 바라보다가 품에서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그럼 일단 자네에게 소개장을 주지. 이 소개장을 가지고 있다가 마음이 내키면 왕성으로 한 번 찾아가겠는가? 당장이 아니라도 좋으니 여유 있게 생각하게. 혹시 혼자 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한 명 더 함께 갈 수 있을 걸세. 이걸 가지고 간다면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걸세. 그리고 나는 왕궁 요리사 글라니스 미르첸이라고 하네.”

 그의 마지막 말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어제부터 쉴 새 없이 놀라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놀랐다.

 ‘왕궁 요리사라니. 이 사람이 바로 왕궁 요리사였구나!’

 데이먼은 짜릿한 전율마저 느꼈다. 국내 최고의 요리사를 이런 허름한 식당에서 대접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그것도 두 번씩이나.

 글라니스라는 이름은 모르고 있었지만, 아란스의 왕궁 요리사가 단 세 명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왕성 요리사 중에서도 아란스 왕에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바치는 자들만이 왕궁 요리사라고 불린다.

 “흐응. 그렇구나. 레온이라고 합니다.”

 레온이 시큰둥하게 인사를 받았다.

 ‘아, 이 바보. 이건 통성명이나 하잔 소리가 아니잖아. 이분의 위명을 알고 좀 놀라란 말이야!’

 루나가 가슴속으로만 발을 동동 구르는데, 이어진 레온의 한 마디는 더욱 가관이었다.

 “그런데 이거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죠?”

 “자네가 왕궁의 주방에서 요리를 해볼 생각이 있다면 안 되겠지.”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레온이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두루마리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두루마리는 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레온의 행동을 보고 그저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대담한 건지, 무모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글라니스도 잠시 멍하니 보다가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가 웃음을 그치고 레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상 이상으로 그릇이 큰 건지, 아니면 무식한 건지 알 수가 없군.

 그가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왕궁에서 볼 날을 기대하겠네.”

 “감사합니다, 손님.”

 레온은 마지막까지 그저 평범한 종업원으로서 평범한 손님을 대하듯 했다.

 

 식당을 나온 글라니스가 걸음을 옮기며 제임스를 돌아보았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 친구 말씀입니까?”

 “그렇네.”

 “기백이 있고, 당당한 친구더군요.”

 “혹시 바보는 아니겠지?”

 제임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그 반대면 모를까. 글라니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후후. 재미있는 아이를 발견한 것 같아.”

 글라니스는 뭔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그랬습니다.”

 “뭐가 말인가?”

 “생도들 앞에서 웃통까지 드러내시다니요. 글라니스가 그런 반응까지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호오? 자네는 뭐라고 했더라? 물속에 살고 싶다고 했던가? 아니, 물고기가 되고 싶다고 했나? 거기에 주전자까지 들어 올려서…….”

 “그, 그건 글라니스가 먼저 그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니…….”

 제임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글라니스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따라한 거다?”

 “그, 그렇습니다.”

 “하하! 그런 건 따라하지 않아도 되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분위기에 자네도 취한 것 아니었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훌륭한 요리사는 훌륭한 코멘트를 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우스꽝스럽고, 미친 짓으로 보여도 이건 차후에 유명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네.”

 “훗날에요?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글라니스는 벌써 그 훗날을 떠올렸는지 빙그레 웃으며 팔을 활짝 펼쳤다.

 “보라, 그 옛날 왕궁 요리사 글라니스는 어느 시골 가게에서 이 생선초밥을 먹고 웃통을 벗어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나는 이미 바다에 왔노라’라고 말했다 한다.”

 글라니스가 제임스를 돌아보고 씩 웃었다.

 “어떤가? 이런 재미있는 실화가 전해진다면 훗날 생선초밥을 먹는 사람들의 입맛을 더 돋구어주지 않겠나? 그리고 그 말은 아주 유명해질 수도 있네. 마치 유명한 음유시인의 노래처럼 말일세.”

 “흠. 그렇게 말하고 보니 그럴싸하군요.”

 “그렇지. 주전자로 머리에 물을 쏟아 붓는 것보다야 훨 낫지. 안 그런가?”

 “글라니스. 제발 그 소리는 그만…….”

 “하하하!”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때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는 또 다른 눈이 있었다. 그 눈은 다시 허름한 간판이 걸려 있는 꿈의 밥상을 쳐다보았다. 그는 며칠 전까지 이곳에서 주방 보조를 하다가 해고 된 프라이스였다.

 “제길.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녀석들이 어떻게 단체 손님을 받은 거지?”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두운 새벽 위험을 무릅쓰고 한 일이 모두 허탕이 되고 만 게 아닌가.

 사실 그는 지난 밤 모두가 잠든 시간, 남몰래 꿈의 밥상에 잠입했다. 그리고 식재료를 전부 빼돌렸던 게다.

 꿈의 밥상이 단체 손님을 맞이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을 해고한 분풀이로 이보다 좋은 방법도 없다고 여겼다.

 그의 속셈대로라면 꿈의 밥상은 오늘 손님도 받지 못하고 거금의 위약금만 물어주어야 할 것이었다.

 한데 이게 웬 걸.

 단체 예약 손님이 들이닥치더니 한참 후, 이를 쑤시며 나가는 게 아닌가. 그것도 극찬을 하며.

 도대체 뭘 어떻게 만들어서 내놓았단 말인가?

 “따로 숨겨놓은 식재료라도 있었던 건가? 제기랄!”

 프라이스는 주먹으로 애꿎은 건물 벽만 때렸다. 그때.

 “어? 프라이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프라이스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레, 레온?”

 “오랜만이군요. 새로 얻은 일자리는 좋은가요? 임금도 훨씬 세니까 좋겠죠?”

 “그, 그래. 할 만하다.”

 프라이스가 어색한 태도로 대답했다.

 ‘설마 이 녀석, 내 말을 들은 건 아니겠지?’

 그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에.”

 “아, 오늘 일 끝나고 신전으로 가는 길이에요.”

 “그렇군.”

 “프라이스는 어쩐 일이세요?”

 “나, 나도 그냥 오늘 휴일이니 산책이나 할까 해서 지나가던 길이었다.”

 “흐응. 그렇군요. 그런데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내심 뜨끔한 프라이스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그럴 리가. 딱히 안 좋은 일이 없는데. 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희 가게도 요즘 계속 좋은 일만 생겨요.”

 “그, 그러냐? 다행이구나. 듣자하니 오늘 단체 예약 손님을 받았다면서?”

 “그렇죠. 그런데 어떤 개새끼가 식재료를 전부 가지고 도망갔어요. 그래서 데이먼이 조금 당황했는데, 결국은 잘 해결됐습니다.”

 레온은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가 ‘개새끼’라고 말을 내뱉는 부분에서는 프라이스도 등골이 오싹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레온의 두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분 탓이겠지.’

 프라이스가 활짝 웃었다.

 “그것 참 잘됐구나.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구나.”

 “그럴 거예요. 내일도 단체 손님을 받기로 했거든요.”

 “내일도?”

 “예.”

 “식재료가 없는데도?”

 “사실 식재료는 숨겨놓은 게 따로 또 있었거든요. 주방 안쪽 창고 아시죠?”

 프라이스가 곧 떠올리고는 대꾸했다.

 “거긴 술통만 쌓아두는 곳이잖나?”

 “예, 하지만 데이먼이 이번에는 워낙 조심성이 많아서 그 창고에도 식재료를 조금 넣어두었거든요.”

 “그랬구나. 그것 참 다행이다. 식재료 도둑은 거기에 둔 걸 몰랐던 모양이구나.”

 “그런 것 같아요. 참 바보 같지요. 조금만 찾아보았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문을 잠가놓는 것도 아니니.”

 “그래도 다행이잖니?”

 “그건 그렇죠. 내일은 300코퍼짜리 단체 손님이어서 정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라이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삼, 삼백 코퍼?”

 “네. 대단하죠?”

 “그럼 혹시 형편이 좋아지면 사장님은 나를 다시 부르실까?”

 레온이 짐짓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지만 그럴 일은 없을 듯합니다. 지금 인원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시는 것 같더군요. 게다가 프라이스는 지금 우리 가게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일하잖아요? 다시 올 필요가 없잖아요.”

 “그, 그렇지.”

 레온이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면 혹시 그동안 식재료 사면서 남겼던 돈이 높아진 임금보다도 센 거예요?”

 “무, 무슨 소리냐! 그런 짓은 몇 번 하지도 않았다! 그때 한 번 본 걸로 사람을 그렇게 몰아가는 게 아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레온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프라이스는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꾸 레온과 이야기하니 수치심과 증오심만 커져갔다.

 ‘두고 보자. 그 웃음이 쑥 들어가게 해주마.’

 프라이스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문득 레온이 잊은 것을 떠올린 듯 말했다.

 “아! 신전에 가야 하는데. 그럼 본좌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제발 좀 꺼져라.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렴.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다.”

 “예,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해요.”

 레온이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프라이스의 눈은 차갑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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