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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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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화
작성일 : 16-07-15     조회 : 437     추천 : 0     분량 : 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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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온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짐칸으로 훌쩍 뛰어올라 탔다.

 짐칸에는 짚더미가 쌓여 있었고, 먹을 것들과 이런저런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이 목재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물론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쉽게 꺼내 먹진 못하게 되어 있었다.

 레온이 짚더미 위에 벌러덩 누웠다.

 “천국이구만.”

 한편 루나는 세이스의 안내를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예상대로 마차의 실내 공간은 무척 넓었다. 세 사람이 아니라, 여섯 사람은 족히 들어와도 될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루나는 레온이 신경 쓰여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레온,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세이스는 마차에 오르고 나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마부에게 명령했다.

 “출발 하세나.”

 “예, 나리. 이랴!”

 마차가 출발했다.

 좌석에는 푹신한 쿠션도 구비되어 있었기에 승차감도 상당히 좋았다.

 

 ***

 

 세이스와의 동행은 레온 일행으로서도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우선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고, 몸의 피로가 훨씬 감소했으니까. 게다가 레온은 마차를 타고 가면서 나무를 깎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그는 나무를 깎는 중에도 꾸준히 조식을 시행하면서 내기를 다스렸던 것이다.

 물론, 조식을 시행할 때는 조용하고 평평한 곳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레온은 이미 극마의 경지를 넘어 선 초절정고수였다. 그런 그에게 이 정도 가벼운 흔들림은 방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가 시전하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미 정신은 극마를 넘었는데, 신체가 입마(入魔)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 이런 조식 정도야 시시한 장난에 가까웠다.

 마차는 꾸준히 달렸다.

 만약 레온 일행이 걸어서 갔다면 하루도 더 걸렸을 거리를 마차는 단 반나절 만에 지나쳤다. 벌써 마을을 하나 지나친 마차는 이제 제법 너른 도시에 들어서고 있었다.

 서산에 길게 드러누운 구름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루나는 동화 속 그림 같은 풍경을 창 너머로 바라보며 감동에 젖었다.

 “아름답지요?”

 세이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넋 놓고 있던 루나가 얼른 정신을 수습하면서 대꾸했다.

 “네, 정말 너무 예뻐서 넋을 놓고 말았어요.”

 “하하. 그보다 더 예쁘신 분께서…….”

 “예?”

 “아, 아니오. 후후.”

 세이스가 신사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는 루나에게 일체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는 그녀의 마음을 훔치고 싶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바라보던 노을은 조금씩 나타나는 도시 건물에 의해 가려지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집들이 나타나더니 곧 사람들이 벅적벅적한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루나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20년이 넘도록 자신이 살고 있는 마르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이곳은 로렌토입니다. 교역의 중심도시로서 사람들이 제법 많고, 외부인이나 여행객들도 많이 머무는 곳이지요.”

 세이스가 짐짓 아는 체를 하며 말했다.

 루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사람 구경하기에 바빴다.

 바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휘황찬란한 마차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마차는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커다란 저택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루나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오늘은 늦었으니 이 도시에서 머물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하지만 저희들은 여관에서 머물 생각입니다.”

 “하하. 그래서 여관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세이스는 여유 있게 대답했지만, 밖을 둘러보는 루나의 눈에는 도무지 여관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다. 마차는 저택의 대문 안으로 들어와서 너른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저택은…….”

 “하하. 이곳은 로렌토에서 가장 고급 여관입니다. 저택으로 보이지만 사실 여관이랍니다.”

 그랬다. 루나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 이곳 정문에는 ‘로렌토궁 여관’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주로 귀족이나 돈이 많은 자유민들이 머무는 곳이었는데, 그야말로 초호화 여관이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 머문다면 아무리 루나와 레온이 돈을 넉넉히 가져왔다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게다.

 루나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때마침 마차가 멈추었다.

 마부가 달려와 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도련님.”

 “수고했네.”

 세이스와 루나가 마차에서 내리자, 여관 종업원이 달려 나왔다.

 “‘로렌트 궁’에 어서 오십시오. 예약은 하셨는지요?”

 “세이스 폰 리카드.”

 세이스가 간단히 자신의 이름만 언급했다.

 종업원의 표정이 급변하면서 태도가 더욱 공손해졌다.

 “아, 세이스 공이시군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객실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잠깐.”

 “예, 말씀하십시오.”

 “오면서 사정이 생겼네만, 방을 하나 더 구할 수 있겠나?”

 원래 이곳은 철저하게 예약 시스템을 통해서 숙박을 할 수 있는 여관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라의 실권자인 리카드 백작의 아들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랐다. 없는 방이라도 만들어서 내줘야 할 판이었다.

 종업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곧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그러자 루나가 급히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예?”

 종업원이 다시 돌아서자, 루나는 세이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세이스 공의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곳에서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때 마침 짐마차를 타고 왔던 레온이 루나에게 다가오며 눈치도 없이 소리쳤다.

 “우와! 여기 정말 좋다! 여기가 어디야? 우리 오늘 여기서 자는 거야?”

 “여기서 안 자. 우린 갈 거야.”

 “응? 왜? 그럼 여기까지 왜 온 거야?”

 루나의 대꾸에 레온이 김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럴 때 레온은 참 아이 같았다.

 그러자 세이스가 예의 그 신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루나 양. 혹시 객실료가 걱정인 것이라면 이렇게 동행한 것도 인연인데, 오늘 하루 숙박료를 내가 대신 내드리겠소.”

 그러자 루나가 깜짝 놀랐다.

 “객실료를 내주시겠다고요?”

 “그렇소.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쉬셨으면 하오. 물론, 이곳은 객실료에 석식과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니 식사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와아. 진짜 좋은 곳이잖아?”

 레온이 여전히 눈치 없는 태도로 소리쳤다.

 하지만 루나는 이미 이곳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상대방의 호의는 고마웠지만 이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옛날부터 아빠는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게 되면 언젠간 망한다고 말했었다. 지금 자신은 이미 분에 넘치는 혜택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루나가 고개를 저으려는데,

 “좋습니다! 세이스 공은 이제 보니 참 올바른 새끼… 아니, 올바른 분이었군요!”

 레온이 불쑥 대답을 해버렸다.

 루나가 얼른 귓속말로 나무랐다.

 “야! 그렇게 멋대로 정하면 어떻게 해!”

 “뭐 어때? 호의를 베푼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 이건 행운이야, 행운.”

 “하지만.”

 “뭐가 그렇게 불안해? 내가 함께 있잖아.”

 아, 또 저 표정.

 루나는 입술을 살짝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레온이 순간 미소를 지어버리면 모두 수긍하게 되어버리는 그녀였다. 물론, 그녀로서는 그 웃음이 마소라는 것을 모르니 자신의 이런 태도가 이상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데 세이스가 피식 웃으며 레온에게 말했다.

 “안타깝지만 당신의 방까지 마련해 주기는 힘들 것 같소. 뭐, 당신이 진정 남자라면 루나 양을 위해서 마구간에서라도 자면 되겠지만.”

 그는 여린 조소를 머금고 레온을 깔아보았다.

 후후,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찌질이처럼 자신이 잘 곳이 없다고 여자까지 끌고 이곳을 나가 허름한 여관으로 가겠나? 아니면 정말 마구간에서 자면서 너와 나의 신분 차이를 뼈저리게 느껴보겠나?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루나와 떨어져 다른 여관에서 홀로 잠을 자는 것일 테다.

 두 사람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세이스는 레온에게 약간의 질투심마저 느끼고 있었던 게다.

 거기에는 레온이 평민 주제이면서도 자신이 반해 버린 루나와 너무 친하다는 것이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 세이스는 우월한 기분에 흠뻑 젖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한데 튀어나온 레온의 대답이 세이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괜찮습니다. 우린 같은 방에서 자면 되니까. 어차피 두 명까지는 같은 값이잖습니까?”

 “뭣, 뭣이? 같, 같이 머문다고? 한 방에 두 사람이 같이?”

 “그렇소만?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세이스는 입을 척 벌리고는 루나를 돌아보았다. 뭔가 다른 말을 꺼내보라는 표정이었다.

 한데 루나의 대답에 세이스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네, 저희는 한 방에서 지내면 돼요. 레온은 제게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괜찮아요. 누구보다 믿으니까요.”

 “들었지요? 이제 안심이 되는지요?”

 “커, 커험! 그, 그렇다면 다행이오.”

 세이스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종업원을 향해 날카롭게 일렀다.

 “뭐 하나! 어서 방을 안내해 주게!”

 “예, 예! 먼저 어디부터…….”

 “당연한 걸 묻나!”

 “아, 예! 그럼 세이스 공이 머무실 객실부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세 분 모두 따라오시지요. 그리고 마부들께서는 마차는 그냥 두시고, 별관으로 가시면 다른 종업원이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종업원이 앞장서서 저택 본관의 계단을 올랐다.

 세이스는 입술을 쿡 깨물고 그 뒤를 따랐다.

 레온을 완전히 쫓아버릴 생각으로 나름 계략을 쓴 것이었는데, 오히려 두 사람을 한 방에 재우게 되었으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레온이 머물 방을 자신의 돈으로 따로 마련해준다는 것도 모양새가 웃기지 않나.

 ‘오늘 일진이 영 좋지 않아!’

 그는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걸음을 옮겼다.

 

 “고작 이 정도였군.”

 레온은 밖에서와 달리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반면 루나는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와아, 정말 좋다. 이 장식 좀 봐. 너무 예쁘다. 그런데 정말 방이 달랑 하나네. 침대도 하나야.”

 “예약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잖아. 어쩌겠어?”

 “그래도.”

 “왜? 아까는 누구보다 믿는다며?”

 레온이 피식 웃자, 루나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거야 네가 쫓겨나게 생겼으니까 그렇지!”

 “흐음. 그럼 내가 다른 여관에서 자도 넌 이곳에서 잘 생각이었단 말이군?”

 루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안 될 것 있어? 나도 이런 곳에서 한 번쯤은 자보고 싶은데, 뭐.”

 “그럼 정말 난 버려질 수도 있었던 거였군.”

 “그러니까 좀 경거망동 하지 마. 오늘만 해도 네가 세이스 공을 그렇게까지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냐. 유독 너한테만 차갑게 구는 것 보면 모르겠어?”

 “그 인간이 정말 그래서 나한테만 차갑게 구는 걸까?”

 “그럼?”

 “글쎄… 관두지.”

 레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레온으로서는 오늘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가 중원에서 살던 시절에도 귀족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귀족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그였다. 오히려 귀족들이 그의 앞에서 몸을 떨 정도였으니.

 그런 생활이 몸에 배인 그에게 오늘처럼 예의 바른(?) 행동은 상당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레온이 웃통을 훌 벗어던졌다.

 루나가 소리를 꺅 지르며 베개를 집어던졌다.

 “욕실 가서 벗어! 바보야!”

 결국 레온은 쫓기다시피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가 욕실 문을 열고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먼저 씻고 나올게. 기다리고 있어. 훔쳐보면 안 돼~”

 “변태냐!”

 루나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소리쳤고, 레온은 재미있다는 듯 웃어젖혔다.

 루나는 창가로 가서 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로렌토의 야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마르텐에서 생활하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마치 지금의 시간이 꿈만 같았다.

 잠시 후 레온이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다행히 탈의실에 구비된 가운을 입고 나와서 못 볼꼴을 보는 일은 없었다.

 루나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레온. 혹시 네가 받은 소개장을 세이스 공에게 보여주면 우릴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정확히 말해서 널 대하는 태도가.”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 소개장을 보여주자는 거지.”

 “싫어.”

 레온이 단박에 잘라 거부했다.

 “왜?”

 “그런 걸로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건 어차피 가식일 뿐이야. 그딴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거든.”

 루나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어차피 레온이 싫다면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 소개장이 정말 자신이 말한 만큼 효력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레온의 소개장은 대단한 의미가 있었다. 왕이 가장 총애하는 왕궁요리사의 소개장인 게다.

 그 묘한 관계에서 파생되는 특유의 권력이라는 것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레온은 그 소개장을 까발리며 다니고 싶지 않았다.

 루나가 욕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훔쳐볼 생각하면 죽어.”

 “말이라도 하지 말지. 더 훔쳐보고 싶게.”

 “흥!”

 루나는 혀를 빼죽 내밀고는 얼른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물소리가 들려왔다. 루나가 씻는 소리였다.

 레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귀를 닫자. 귀를 닫아. 제길! 저년 섭혼술(攝魂術)이라도 익힌 거 아냐?”

 물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도무지 정신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레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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