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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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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작성일 : 16-07-07     조회 : 444     추천 : 0     분량 : 6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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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레온은 방 복판에 기마 자세로 섰다. 그리고 두 손을 나란히 하고는 천천히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우-!

 그의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열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후, 양손에서 뭔가 희미한 기운이 생길 듯하다가 이내 소멸됐다.

 “후우, 아직 안 되는군.”

 지금 그는 두 손을 통해 내기를 뿜어내는 시도를 하는 중이었다. 하나 워낙 몸이 약한지라 내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도통 체내에 진기가 별로 없었다. 단전에는 내단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이상한 점은 몸의 상태와 다르게 기분만큼은 언제라도 진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그가 혈마존의 시절 아무렇지도 않게 진기를 사용하던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데, 육체가 바뀌어버렸으니 가능할 리가 없는 게다.

 그래도 레온은 별로 낙심하지 않았다.

 왜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연마한다면 틀림없이 원하는 경지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너무 약해. 난 지금까지 뭐했던 거지? 몸도 단련시키지 않고.’

 기억을 잃은 그는 애꿎게 자신의 게으름을 탓했다.

 “그래도 그 애송이들을 손보는 것쯤은…….”

 자세를 바로잡은 그의 두 눈에는 전에 없이 살기가 휘돌았다. 만약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숨 막힐 듯한 그 기백에 질려버리고 말았으리라.

 “남은 일은 그 개새끼들을 찾아내는 것이군.”

 레온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은 채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쩐지 그의 표정에는 묘한 희열마저 감돌고 있는 듯했다.

 

 ***

 

 버몬과 그란은 새벽 늦게까지 도시의 주점을 휩쓸 듯이 돌아다녔다. 물론 그들이 가는 곳마다 아수라장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둘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부자였지만 이 도시에서 생활하는 한 돈이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상점 주인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지나가는 거지에게 돈을 받아내는 게 더 쉬우리라.

 알딸딸하게 술이 오른 두 사람은 유흥가의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뒷골목을 거의 벗어날 때 즈음,

 “어이, 거기 둘.”

 문득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버몬과 그란은 아랑곳없이 제 갈 길을 걸어갔다.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목소리는 똑똑하게 들었다.

 다만 이렇게 시건방진 목소리로 두 사람을 부를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걸음을 멈추지 않은 게다. 틀림없이 다른 사람을 부르는 소리일 터.

 하지만 목소리는 다시 두 사람을 향해 똑똑히 들려왔다.

 “거기, 사람하고 개도 구분 못하는 병신새끼, 둘.”

 이번에는 좀 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제야 버몬과 그란이 걸음을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걸어오는 동안 이 골목에는 자신들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잘못 부른 게 아니란 말인가? 저렇게 시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정말 자신들을 불렀단 말인가?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버몬과 그란이 몸을 돌렸다.

 이제는 부른 자가 누구든 용서할 수 없었다. 사람을 착각해서 부른 것이든, 다른 사람을 향해 부른 소리든 봐주지 않는다.

 자신들의 발걸음을 세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두드려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을 터.

 “어떤 놈이 감히…….”

 버몬이 말을 뱉다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그란을 돌아보았다. 그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다보니 이렇게 어이없는 일도 다 있나.

 목소리가 익숙하다 싶었지만, 설마 저놈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둠 속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온 사내는 선한 외모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레온이었다.

 ‘방금 저 놈이 우리를 부른 게 맞나?’

 버몬은 너무 황당해서 한참 동안 말도 나오지 않았다.

 레온은 두 사람과 다섯 보정도 떨어진 곳에 딱 멈춰 섰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는 턱을 살짝 들었다.

 “기어라.”

 버몬과 그란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내가 잘못들은 거지? 그렇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같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게 술을 핥아먹고 취했나? 취기가 아직도 안 간 건가? 도대체 얼마나 맞고 싶어서 저 지랄을 하나.

 버몬과 그란이 술을 마셨다지만, 아무데서 두드려 맞을 정도로 만취된 상태는 아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근근이 검술을 익히고 몸을 단련해왔기 때문에 어지간한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한데 새파란 애송이가, 그것도 낮에 자신들 앞에서 네 발로 기어 다니던 식당 종업원이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해대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비웃음마저도 나오지 않았다.

 “미쳤나?”

 그란이 물었다.

 레온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했다.

 “기라고 했다.”

 “번개 맞고 머리가 이상해졌다더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냥 돌아가라. 이번에는 특별히 봐 줄 테니. 하지만 더 이상 우리를 화나게 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버몬과 그란은 전에 없이 선심을 베풀었다. 사실 당장 때려죽여도 상관없었지만, 괜히 미친 놈 건드려서 재수라도 없어질 까봐 그냥 돌려보내자는 의도였다.

 한데 레온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더욱 가관이었다.

 “지금 기어도 네놈들은 본좌가 용서할 수 없어. 그래도 조금이라도 빨리 기는 것이 네놈들이 덜 고통스러운 길이야. 수를 세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네놈들 고통은 일분씩 추가다.”

 “이 자식, 이거 완전히 돌았구먼?”

 그란이 히죽 웃으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걸어왔다.

 “하나.”

 어쭈구리?

 “둘.”

 하, 이 미친놈 보게.

 확실히 뭘 잘못 먹어도 심하게 잘못 먹었나 보다.

 “셋.”

 “셋, 뭐? 셋, 뭐? 이 새끼야. 넷, 다섯, 여섯, 어쩔래?”

 그란이 레온의 뒤통수를 치려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레온이 그의 손목을 탁 움켜잡았다. 그 와중에도 레온은 수를 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넷.”

 “이 새끼, 손 안 놔?”

 그란은 손을 빼내려고 힘을 주었다. 그런데 한 번 잡힌 손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레온의 힘에 눌려 손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다섯.”

 그제야 버몬이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걸어왔다. 단단히 손을 봐주려는 생각이었다. 이제 미친놈이든 뭐든 사정을 봐주기에는 놈이 지나치게 기어오른 탓이다.

 “도저히 말로는 안 되겠군. 건방진 녀석!”

 버몬이 순간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찰나,

 쉬익!

 레온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파바밧!

 “컥!”

 “억!”

 레온은 두 사람을 순식간에 벽으로 밀어붙이면서 재빨리 어깨부분의 거골혈(巨骨穴)을 짚었다. 거골혈은 마혈(痲穴)의 일종으로 점혈당하면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일 수가 없다.

 물론 상대가 고수라면 점혈하는 순간 진기를 불어넣어야겠지만, 이런 양아치를 상대로는 단순히 혈을 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혈을 짚인 두 사람은 자신들이 왜 뻣뻣하게 굳는지도 모른 채 눈만 끔뻑끔뻑 떴다.

 두 사람이 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레온은 다시 목 가운데의 아문혈(啞門穴)을 번개처럼 점했다.

 아혈(啞穴)까지 점혈당하자 당연히 버몬과 그란은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이 모든 행동이 레온의 본능에 따라 이루어졌다.

 레온은 두 사람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섬뜩한지 버몬과 그란은 마치 악귀의 광소를 마주한 것처럼 오싹했다.

 ‘이 녀석이 낮에 보았던 그놈 맞나?’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 보던 레온과 너무 달랐다. 지금의 레온은 마치 사악한 악마에게 영혼이 덧씌워진 것처럼 보였다.

 레온이 즐거운 듯 말했다.

 “다섯까지 셌다. 오 분이야. 원칙대로 하자면 지금도 세고 있어야겠지만 네놈들에겐 오 분도 오십년처럼 느껴질 게다. 크크.”

 버몬과 그란은 레온의 비소를 보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자식에게 이런 힘이 있던가. 도대체 뭘 할 셈일까?

 마치 두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레온이 말했다.

 “지금부터 네놈들에게 안마를 좀 해주지. 제법 시원할 거다.”

 레온은 버몬의 한쪽 팔을 잡더니 슬쩍 힘을 주었다. 순간 우두둑하면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버몬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두 눈을 부릅떴다. 머리가 아찔해 질만큼 격심한 고통이었지만 목구멍에서는 비명조차 터지지 않았다.

 레온은 멈추지 않고 버몬의 몸 곳곳을 주물러갔다. 그럴 때마다 우두둑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고, 버몬은 입에 거품을 물어갔다.

 마혈단골참(魔穴斷骨斬).

 혈마존이 만든 독자무공으로서 분근착골의 고문 방법 중 하나였다. 하나 일반적인 분근착골에 비해 그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한데다 너무 잔인하기에 마공으로 분류됐다.

 마혈단골참을 제대로 시전하면 상대는 단 일각도 견디지 못하고 광인(狂人)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내기가 부족한 레온으로서는 마혈단골참을 시전하면서 투살진기를 주입할 수 없지만, 기본적인 수법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질려버리게 만들 수 있었다.

 특히 내공을 전혀 수련한 적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마혈단골참을 당하며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리라.

 곁눈질로 버몬이 당하는 것을 본 그란은 벌써부터 몸이 쑤셔오고 있었다.

 사실 점혈을 당하는 순간도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다만 워낙 빨리 당해 버려서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었던 게다.

 한데 지금 버몬의 표정을 보면 그야말로 죽는 게 낫겠다는 표정이지 않나. 버몬은 입에서 거품이 나고 눈동자가 뒤집어져 흰자위가 다 드러날 정도였다.

 레온은 평소의 레온이 아닌지 오래였다. 마치 지옥에서 화염을 뚫고 올라온 발록처럼 무시무시했다.

 레온의 말대로 5분은 길었다.

 고문을 당하는 버몬에게도, 순서를 기다리는 그란에게도 50년처럼 길었다. 아니, 영원이라고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이었다.

 이윽고 버몬의 고문이 끝나자 레온이 그란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그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레온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비명이라도 지르며 도망가고 싶었지만 몸도 입도 말을 듣지 않았다.

 “벌써 땀으로 축축하잖아. 너무 긴장하지 마. 긴장하면 더 아파.”

 ‘이, 이런 괴물 같은 새끼!’

 욕지기가 튀어나왔지만, 당장 말문이 열린다면 용서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지금부터 안마해줄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하긴,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할 수 없게끔 할 테니까 문제는 없겠군. 본좌가 직접 안마까지 해주는데 의식을 잃어버리면 곤란하지.”

 우두둑!

 ‘끄아아악!’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고통이 뇌리를 쑤셨다. 비명을 토해내고 싶어도 머릿속에만 왕왕 울릴 뿐이다.

 우두둑, 뚜두둑.

 의식이 끊어지면 차라리 편하겠건만, 레온의 말대로 의식은 또렷했다. 그만큼 고통은 더욱 고스란히 느껴졌다. 먼저 고문을 당한 버몬이 눈물 나도록 부러웠다.

 레온은 이번에도 정확히 오 분 동안 마혈단골참을 시전했다.

 고문이 끝났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온 몸의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어졌으니 고통은 완치되는 동안 계속 될 게다.

 그란은 비에 쫄딱 맞은 생쥐처럼 전신이 땀으로 젖었다.

 레온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말했다.

 “몸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석 달은 족히 걸릴 게다. 하지만 한 달 뒤부터는 거동이 가능하겠지. 그렇게 해놨으니까. 정확히 한 달의 여유를 주지. 한 달 안에 우리 가게에 다시 오도록.”

 레온은 마지막으로 히죽 웃고는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 사람에게는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소름끼쳤다.

 “알아들었지?”

 레온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마혈과 아혈을 점혈당했으니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알아들었으면 눈동자라도 굴려.”

 버몬과 그란이 미친 듯이 눈동자를 굴려댔다.

 “그래, 그럼 이제 혈을 풀어주마.”

 레온은 두 사람의 마혈과 아혈을 모두 풀어주었다.

 하나 그건 또 다른 고문이었다.

 마혈은 몸을 마비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그만큼 고통을 느끼는 감각도 무디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때문에 혈이 모두 풀려버린 두 사람은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그대로 쓰러진 두 사람은 밤하늘이 찢어져라 비명을 내질러댔다.

 그런 두 사람을 등지고 레온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아, 정말 듣기 좋은 소리야.’

 그나저나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혹시 주위 사람들 모르게 엄청나게 나쁜 짓만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문득 과거에 대해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정리했다.

 과거에 어떤 모습이든지 지금의 난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길을 걸으면 된다. 그게 내가 만들어가는 나니까.

 ‘착하게 살아야지.’

 이제 이런 짓도 안해야겠다.

 레온은 다시 한 번 착하게 살 결심을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복수를 해서 그런지 발걸음이 몹시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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