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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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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화
작성일 : 16-07-07     조회 : 446     추천 : 0     분량 :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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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몬!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모리안 제프리는 애가 타는 표정으로 침대 옆에 앉았다. 먼저 와 있던 그의 부인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기만 했다.

 모리안은 미라처럼 전시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울상을 지었다.

 “내 아들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당한 게냐? 널 이렇게 만든 녀석이 누구냐? 이 아비가 가만두지 않으마!”

 하지만 전신의 고통이 지독하게도 생생한 버몬은 대꾸할 기운조차 없었다. 설사 그럴 기운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대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제프리가의 버몬이 고작 식당 종업원인 레온에게 당해 앓아누웠다고 하면 온 도시의 비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생각만 해도 분이 차오르지만 이런 일일수록 차분하게 대응해야 했다.

 사실 레온에게 당하던 순간까지만 해도 그가 시킨 모든 일을 그대로 행할 생각이었다. 그때는 단지 레온이 빨리 자신을 놓아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한데 막상 그 악몽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기억에 남는 것은 오로지 분한 심정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왜 그딴 애송이 따위에게 당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분수를 모르고 설친 놈에게는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새끼!’

 분이 복받쳐 오른 버몬은 저도 모르게 전신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곧 온 근육이 찢어질 듯 아픈 걸 느끼고 신음을 비실비실 흘렸다.

 “으으으……!”

 모리안이 의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닥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이야?”

 “그게… 외상은 없습니다만 이상하게 전신의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어긋나버렸습니다. 군데군데 골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골절? 아니, 외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게 저로서도 참 의아하군요.”

 모리안은 ‘이런 돌팔이’라고 소리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상대는 벌써 수 년 동안 제프리가의 주치의로 일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모리안이 잘 안다. 그가 절대 돌팔이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치료는?”

 “막 끝냈습니다만, 석 달 정도 요양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삼 주 정도 지나면 거동이 가능하겠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이건 그동안 복용해야 할 약입니다. 우선은 일주일분을 드리지요.”

 “수고했네.”

 의사가 나가고 나자, 모리안은 다시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버몬, 이 아비에게 다 말하거라. 널 이렇게 만든 자가 누구냐? 그 놈을 네 앞에 데려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들겠다. 그 뿐이더냐. 네게 한 짓을 똑같이 그놈에게 되갚아주마. 아니 그러고도 놈의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전부 잘라버리겠다. 도대체 널 누가 이렇게 만든 거냐?”

 버몬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새삼 아버지의 사랑에 감격해서 아니다. 다시 생각할수록 분하고 화가 치밀어서다.

 버몬이 탁한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아버지. 이 일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버몬. 이 지경이 된 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부탁이 있습니다.”

 “오냐, 그래. 뭐든지 말만 하거라. 이 아비가 무엇이든 들어주마.”

 “어쌔신을 둘만 고용해주세요.”

 “어쌔신?”

 모리안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아들을 보았다.

 무슨 일이기에 어쌔신까지 고용해달라는 건가. 도대체 상대가 누구기에?

 하긴, 버몬이라면 웬만한 일반인에게 이렇게까지 당하진 않을 게다. 비싼 돈을 들여 검술도 가르쳤고, 틈틈이 제 한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수련도 시켰다.

 그 결과 웬만한 놈들에게는 당하지 않을 만큼 강한 아들이라고 자부했다.

 한데 이토록 처참하게 당했으니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리라.

 “오냐, 알겠다. 당장 알아보마.”

 도시 제일의 부자인 모리안이 어쌔신 둘을 고용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는 영주와도 연이 닿아 있었고, 다른 도시의 귀족들과도 인맥이 넓었다. 그리고 살인청부업자와 같은 어둠의 경로로도 많은 이들을 알고 있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필요하다면 어쌔신 둘이 아니라, 소규모 용병단 하나를 통째로 살 수도 있을 만큼 재력가였다.

 “그리고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마세요.”

 “오냐, 오냐. 또 다른 할 말은 없니?”

 “어쌔신… 강한 자로 불러주세요.”

 “그래, 그건 염려 말거라. 필히 실력 있는 자로 고용하마.”

 “그럼 좀 쉬겠습니다.”

 “그래, 안정을 취하는 게 제일 우선이지. 그럼 아비는 이만 가보마.”

 모리안이 부인을 다독이고는 방에서 데리고 나갔다.

 고개도 제대로 돌릴 수도 없는 버몬은 가만히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그것만으로도 턱뼈가 찡하게 아파왔다.

 ‘레온,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

 

 ‘꿈의 밥상’에서는 한동안 평온한 나날이 흘렀다.

 하지만 버몬과 그란이 다녀간 이후로 확실히 매출도 줄어들었다. 그 전 같았으면 빈자리가 별로 없었지만, 녀석들이 다녀간 후로는 점심, 저녁때도 홀의 테이블이 절반이 채 차지 않았다.

 레온이 할 일 없이 파리만 쫒고 있을 때, 반가운 얼굴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바로 레온의 주치의를 맡고 있던 헤일즈였다.

 레온은 그간 헤일즈와 만나면서 그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가장 편하게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했던 사람이라는 사실도.

 물론 데이먼 역시 친아버지처럼 편하고 좋은 분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가족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점을 타인에게 상담할 때도 있는 법이다.

 레온은 얼른 일어나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헤일즈 선생님.”

 “오늘은 한가하구나.”

 카운터에서 독서에 빠져 있던 루나가 그를 보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요즘은 매일 이래요. 오죽하면 손님보다 책보는 시간이 더 많겠어요.”

 “그야 루나가 독서광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요즘 같아서는 손님이 책 보는 시간 좀 뺏어갔으면 좋겠네요.”

 “그래? 루나를 보려고 몰려드는 사람도 이제 없어?”

 “선생님!”

 “하하, 농담이야.”

 헤일즈가 웃으며 넘겼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진담이었다.

 루나의 외모는 마르텐에서도 은근히 유명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적인 면모도 있었다. 해서 손님들 중에는 정말 식사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루나에게 어떻게든 수작을 걸어보려고 오는 청년들도 제법 있었다.

 실제로 루나는 여러 차례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칼로 무 자르 듯 거절해 버렸다. 그녀는 아직까지 남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레온의 정기검진일은 아직 며칠 여유가 있었기에 헤일즈의 방문은 뜻밖이었다.

 헤일즈가 습관처럼 안경을 밀어 올리며 레온을 보았다.

 “며칠 전에 별로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면서?”

 무슨 일을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버몬과 그란의 이야기리라.

 옆에서 듣던 루나의 안색이 대번 굳어졌다. 그녀는 조심스레 레온의 눈치를 살폈다. 그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싫을 만큼 치욕적인 날이었으리라.

 하지만 의외로 레온이 해맑게 웃으며 대꾸했다.

 “별로 큰일도 아니었는걸요. 이제는 다 잊었어요.”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하는 레온을 보고, 루나는 내심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상했다.

 그렇게 당하고도 저리 웃음이 나올까? 어휴, 속도 좋아.

 “별일 아니었다니 다행이구나. 그래도 잠깐 진찰해볼까? 마침 홀도 한가하니 잠깐 올라가자.”

 “그래, 가서 선생님이랑 얘기도 좀 하고. 여긴 나랑 브란 아저씨가 보면 돼.”

 “정말 괜찮은데…….”

 결국 레온은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헤일즈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헤일즈는 레온을 침대에 눕게 한 뒤 몸 여기저기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아픈 곳은 없니?”

 장난하나? 그 정도로 아직까지 아프면 본좌는 살 가치도 없지.

 ‘아, 젠장! 난 왜 이렇게 생각이 극단적이지?’

 레온은 불쑥 떠오른 생각을 후회하면서 상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별로 심하게 맞지도 않았어요.”

 헤일즈는 명랑하게 대답하는 레온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사실 남자로서 ‘맞았다’는 표현을 쓰는 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할 텐데, 레온은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몸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구나. 이제 앉아도 된다.”

 레온은 윗옷을 입고 침대에 바로 앉았다.

 헤일즈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느긋하게 물었다.

 “요즘 운동하니? 몸이 좋아 보이는구나.”

 “예, 내공수련을… 아, 그냥 가볍게 몸을 단련하고 있어요.”

 레온은 내공수련을 한다는 말을 삼키고 대충 둘러서 말했다. 경험상 이곳 사람들은 내공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게 확실했다. 때문에 이것저것 설명하기가 귀찮은 그가 대충 둘러댄 것이다.

 “몸을 단련하는 건 좋은 일이지.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는 법이니까.”

 헤일즈는 빙긋 웃으며 들고 온 종이에 간단하게 메모했다. 레온의 몸 상태에 대해서 적는 것이리라.

 “혹시 그날 이후로 달라진 점은 없니?”

 “예를 들면요?”

 “뭐든 좋아. 몸의 변화도 좋고, 감정의 변화라든지, 기억의 변화라든지.”

 외부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불현 듯 잊혀 진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는 법이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그만한 치욕을 당했으니 정신적 충격이 없을 리가 없다.

 어떤 자극이든지 기억을 잃은 레온에게는 외부의 작은 자극도 뜻밖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별로 충격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었구요.”

 “그래, 정말 대수롭지 않았나보구나.”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는 거죠, 뭐. 더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을 테고.”

 헤일즈는 빙긋이 웃었다.

 어쩐지 레온이 과거에 비해 부쩍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때때로 요즘 레온을 보면 거의 칠십대 노인과 대화한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가끔은 아주 엉뚱하게도 보이지만.

 헤일즈는 메모하는 것을 멈추고 화제를 돌렸다.

 “너도 이제 스무 살이구나. 이제 서서히 네 앞날을 생각할 나이도 되었구나.”

 “예, 앞으로도 열심히 가게를 도와서 꼭 은혜에 보답할 생각이에요.”

 “하하, 그것도 좋지. 하지만 네 꿈이라든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레온의 기억을 되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과거를 파헤쳐서 기억을 되살리기 힘들다면, 미래를 떠올려서 오히려 과거를 알아낼 수도 있는 법이니까.

 기억을 잃기 전 레온이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 되새겨 낸다면 그것이 매개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데 이어진 레온의 대답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착한 일을 하고 싶어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잠시 멍하게 있던 헤일즈는 이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는 방 곳곳에 붙은 글귀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그 의지가 분명하게 보이는군. 왜 그렇게 착한 일에 집착하는 거니?”

 ‘왜라니? 그야 본좌의 성격이 지랄 같으니까 좀 고쳐보려고 그런 거 아니냐. 아! 안 돼. 또 욱하고 말았다. 자중하자. 나를 위해주는 사람에게 이 무슨 불경한…….’

 “마음이 넓어지고 싶어서요.”

 레온이 해맑게 대답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것이 있지 않겠니? 어떤 직업이라든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든지.”

 “흐음. 직업이라…….”

 레온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 그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격을 가졌고, 언제나 희생하며 남을 돕고 보살피는 사람은 누굴까요?”

 “응?”

 헤일즈는 엉뚱한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격에 언제나 남을 돕고 보살피는 사람이라.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이 질문이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세상이 그리 삭막했던가.

 한참을 생각하던 헤일즈는 가까스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대신관님 정도라면 그렇지 않을까? 그분이라면 모두가 존경하는 인격과 언제나 희생하며 남을 보살피고 기도하시는 분이니까.”

 실제로 현재 아란스 왕국의 대신관은 역대 최고의 성자라고 불릴 만큼 훌륭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종교가 가지는 국가 내의 권력을 부정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단지 신관이 할 일 많은 사람을 돕고,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힘을 주는 것이라며.

 “아! 그럼 대신관이 되면 모두가 존경하는 착한 인격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오히려 그 반대지. 모두가 존경하는 착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 대신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저 결정했어요. 대신관이 되겠습니다.”

 짧은 대화였다.

 한데 이 짧은 대화로 과거, ‘악마의 현신’이라고까지 불리던 혈마존의 새로운 목표가 정해졌다. 본래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표.

 그에게 ‘대신관이 되겠다’는 의지가 심어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혈마존의 시절 살상만 일삼던 그가 무의식중에 느꼈던 회의감이 이 순간 반영이 된 것인지도 몰랐다.

 하나 그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 남은 그의 인생에서 그 목표가 얼마나 멀고 험난한 길인지. 주위에서는 그를 착하게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더구나 자신의 성격은 죽어도 당하고는 못사는 성격이라는 것도. 남을 위한 희생 따위는 당최 할 성질이 못 된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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