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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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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
작성일 : 16-07-07     조회 : 442     추천 : 0     분량 : 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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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온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처음으로 가본 신전인데 이렇게 쉽게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관 메이븐 역시 무척 인자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역시 세상은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은 걸핏하면 욕지기를 쏟아내고, 때려 부술 생각만 하니.

 에휴, 마음을 다스리자.

 어느덧 꿈의 밥상에 도착한 레온은 2층 계단으로 올랐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정말 큰일이야. 이대로라면 뾰족한 수가 안 생겨.”

 잔뜩 근심에 찬 목소리가 방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 데이먼의 목소리였다.

 그냥 지나치려던 레온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데이먼의 목소리에 이어 이번에는 브란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주방 보조들을 해고해야 할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 식구인데…….”

 “그냥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일자리를 알선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제가 일자리를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후우, 그래도 3년 동안 같이 일했던 식구들을 해고할 수는 없네.”

 “사장님, 정에 이끌리면 지금의 경제난을 해쳐나갈 수가 없습니다. 특히 근래 보조원들이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임금 상승이 늦어지니까 그들의 불만도 점점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프라이스 그 녀석은 요즘 드러내놓고 고든까지 부추기고 있습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놈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싶지도 않습니다만.”

 프라이스와 고든은 주방 보조로서 일하는 자들이었다. 사실 레온의 눈에도 그 두 사람이 요즘 사장에게 불만이 많고 일을 게을리 한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데이먼은 지나치게 사람이 좋았다.

 “브란! 말을 함부로 하지 말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 있지 않겠나. 그래도 지난 3년 동안 열심히 우리 가게를 도운 자들이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저는 단지 녀석들이 은혜도 모르고.”

 “그 이야기는 됐네.”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레온은 이맛살을 구겼다.

 브란은 경제난이 어쩌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은 심각할 정도로 식당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일까? 보조원들을 모두 해고할 정도로?

 그때 다시 데이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 그들을 해고하면 부족한 일손은 어떻게 채우겠나?”

 “제가 돕겠습니다. 홀서빙은 레온과 루나가 함께 하면 될 겁니다. 이대로 계속 보조원들을 고용하면 임금 때문에 계속 빚만 늘어날 거예요.”

 결국 데이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그럼 자네가 그 두 사람의 일자리를 한 번 알아봐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 봉급도 50코퍼만 받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지금 80코퍼도 높은 금액이 아닌데. 거의 절반을 깎으면.”

 “사장님께서 재워주시고 먹여주시지 않습니까? 50코퍼만 해도 충분히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 괜찮습니다. 대신 그 돈으로 헤일즈 선생님께 약값을 드리도록 하지요. 헤일즈 선생님도 레온에게 지어주는 약을 자비로 사용하실 테니 부담이 클 겁니다.”

 “자네… 고맙네. 그리고 정말 미안하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사장님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브란의 부드러운 목소리 끝에 데이먼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레온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랬나. 자신을 치료하느라 식당의 사정이 많이 좋지 않았던 건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은 태평하게 지내지 않았던가. 최근 손님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제길!’

 레온은 입술을 질끈 씹었다.

 은혜를 갚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으면서, 벌써부터 신세 지는 일만 익숙해지고 만 게다.

 ‘데이먼과 브란. 두 사람 모두 너무 좋은 사람들이다. 내 주위에는 한 결 같이 좋은 사람만 모여 있구나.’

 레온은 침대에 털썩 몸을 눕혔다.

 그러고 보면 그가 의식을 찾은 뒤 주위 사람들은 온통 선한 사람들뿐이었다.

 데이먼과 루나 그리고 브란. 자신을 치료해주는 헤일즈. 거기에 오늘 만난 메이븐 신관까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가.

 어쩌면 이런 환경 때문에 혈마존이었던 그가 착한 레온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 건지도 몰랐다.

 

 레온은 한참 동안 이불을 덮고 뒤척였다. 데이먼과 브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그때, 레온이 문득 뒤척임을 멈췄다.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기척이 하나, 둘.

 두 녀석이 여기 숨어 있었군. 언제부터 있었을까?

 처음 방을 들어왔을 때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데 둘의 호흡이 잠시 흐트러진 순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과거 혈마존이었다면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아니 들어서기도 전에 둘의 기척을 감지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혼(魂)은 그대로일지라도 체(體)가 다르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본능과 초인적인 감각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련을 하는 것과, 이미 칠십 인생 수련을 하고 한 번 깨달음을 얻은 자의 차이는 큰 법이다. 기억을 잃었다지만 혈마존은 이미 한 번의 깨달음을 얻은 자였다.

 그러니 체가 약해도 본능이 이를 한참 넘어서고 있는 게다.

 하지만 아무리 혼이 강하다고 한들, 몸이 그 뜻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또한 한계가 있는 법.

 지금 숨어든 자들은 쉽게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호흡을 고르는 것과 미묘한 움직임으로 보아 상당한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어쩐다? 지금의 나로서는 정면 승부로 이기기 힘든 상대.

 레온은 짧은 순간 수 십 가지의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인간의 육체는 이미지 트레이닝만으로도 숙련되고 강해질 수 있다. 그만큼 혼이 육체를 지배하는 능력은 무한하다.

 물론 그 때문에 레온이 두 달여 만에 지금처럼 건강한 몸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레온이 다시 뒤척였다.

 마치 방 안에 잠입한 둘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게.

 둘은 완벽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다 준 셈이었다. 지금의 레온이라면 방에 들어서자마자 덮쳤어야 했다. 레온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그들의 신중함은 오히려 해가 된 게다.

 이내 레온은 잠이 든 척했다. 코는 골지 않았다. 어설프게 자는 흉내를 낸답시고 코를 골다간 오히려 위장이 들킬 위험은 더 컸다.

 잠시 후 숨은 자들의 기척이 확실해졌다.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호흡이 일반인과 똑같이 평범해졌다.

 이 정도면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금 민감한 사람이라면 눈치챌 만했다. 정말로 잠이 든 것인지 확인을 하려는 게다.

 레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척을 점점 더 노출했다.

 이윽고 두 그림자가 어둠에 파묻혀 소리 없는 바람처럼 침대까지 다가왔다.

 창가에서 스며드는 달빛이 복면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청부자는 타깃을 고통스럽게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놈이 고함을 지르지 못하도록 목부터 칠 생각이었다.

 목 가운데 부분에는 아문혈이 지나고 있지만, 중원인이 아닌 그들이 점혈 방법을 알리는 없었다.

 다만 목을 치면 순간적으로 목구멍이 부어올라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혈을 다시 풀어주면 말을 할 수 있는 점혈 방법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복면인이 수직으로 손을 내리쳤다.

 그때였다.

 레온이 순식간에 몸을 굴려 피한 후, 손목을 낚아챘다.

 “헙!”

 쉬이익! 탁, 팟! 팍!

 “컥!”

 레온은 순식간에 상대의 오른 손, 비유혈(臂儒穴)을 점하고, 차례로 팔을 따라 곡지혈(曲池穴), 호구혈(虎口穴)을 찔러 들어갔다.

 공격 방법을 정한 후 머릿속에서 수십 번 반복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에 그 속도는 가히 빛처럼 빨랐다.

 “이……!”

 곁의 복면인이 반사적으로 단검을 꺼내들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레온은 발가락에 힘을 주어 순식간에 적의 양 다리, 위중혈(委中穴)을 가격했다.

 파박!

 “크읍!”

 두 번째 복면인은 하반신을 점혈당했기에, 쓰러지는 속도가 비슷했다.

 레온이 점한 마혈은 모두 몸이 뻣뻣하게 굳기보다는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증세를 나타내는 곳이었다. 둘은 맥없이 무너졌다.

 레온이 양손으로 둘의 목 줄기를 콱 움켜잡았다.

 “끄윽!”

 “꺼어……!”

 복면인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레온을 쳐다보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한동안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물론 상급 어쌔신에 비하면 한참 수준 아래인 그들이지만, 그래도 중급으로 분류되는 두 사람이었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다. 실력 또한 그에 맞게 출중하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런 새파란 애송이한테 당하다니.

 ‘자는 척을 하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는 말인데.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녀석이지?’

 레온은 곧바로 두 사람을 벽으로 밀쳤다.

 결국 두 어쌔신은 버몬과 그란이 당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임무 실패.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줄이야.

 물론 타깃의 손에 죽을 생각은 없었다.

 자결한다.

 두 어쌔신은 혀 아래에 숨겨 둔 캡슐을 꺼냈다. 그런데,

 “그냥은 못 보내지. 크크크.”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레온이 두 사람의 아문혈을 점해 버렸다. 덕분에 어쌔신들은 입술 한 번 달싹이지 못했다.

 레온이 양손을 놓자 어쌔신들은 맥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레온은 놈들의 복면을 벗기고 양 손으로 두 사내의 볼을 꽉 움켜쥐었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 상태에서 그는 손가락을 넣고 휘저어서 캡슐을 꺼냈다.

 “크크, 하여튼 살수(殺手) 녀석들이 하는 짓이란 죄다 똑같단 말이지.”

 레온은 스스로 이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문득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왜 이런 것에 익숙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레온이 두 사람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네놈들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알고 있어.”

 어쌔신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레온을 바라보았다.

 최후의 보루인 자결용 캡슐마저 뺏긴 상태. 사지가 굳은 이대로라면 세 살 박이 아기가 와도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벌써부터 당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알아서 눈알 굴려.”

 어쌔신 둘이 눈알을 굴렸다.

 “버몬이야? 그란이야? 버몬이면 왼쪽. 그란이면 오른 쪽.”

 하지만 어쌔신들은 어느 쪽으로도 눈알을 굴리지 않았다.

 “훗, 곧 죽어도 규율은 지키겠다는 거지. 좋아, 어차피 둘 중 한 놈은 확실할 테니. 다음 질문. 네놈들 임무 실패하고도 살아 있으면 조직에서 가만둬? 가만두면 왼쪽, 아니면 오른쪽.”

 눈알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건 청부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지? 맞으면 왼쪽.”

 눈알이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럼 내가 네놈들 둘을 살려주지. 대신 손가락 하나씩만 끊자. 쓸 데가 있거든. 그리고 내가 청부한 놈에게 네놈들이 다 죽었다고 얘기해줄게. 어차피 청부자라고 해봐야 버몬 아니면 그란일 거 아냐. 그럼 조직에서는 굳이 네놈들을 죽일 필요가 없어지잖아. 안 그래?”

 하지만 그런다고 조직에서 봐 줄 리가 만무하다. 조직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임무 실패자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죽이려고 할 게다. 물론, 돈으로 움직이는 청부조직이 애써서 생존자가 있는지 탐색해볼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러니까 네놈들은 내가 살려주면 재주껏 숨어. 재수 없어서 죽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나 꽤 착하지? 맞으면 왼쪽.”

 이 자식 미친놈인가?

 어쌔신들은 기가 막히면서도 일단 눈알을 왼쪽으로 굴렸다.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가 우둘투둘 나간 망혼검을 쥐고 다시 돌아왔다.

 “좀 아플 거야. 참아. 아, 그리고 다신 나쁜 짓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 생각이야. 단근환동술(斷筋還童術)이라고 들어봤어? 쉽게 말해서 이걸 당하면 반신불수나 다름없게 돼. 급소 몇 군데를 끊어놓을 거거든. 그래도 다리를 좀 저는 정도에다가 힘줘서 물건을 들어 올리지 못할 뿐, 큰 불편은 없을 거야. 대신 앞으론 꼬맹이랑 싸워도 이길 수 없겠지.”

 어쌔신들은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이놈은 어떤 놈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태연하게 한단 말인가. 어쌔신들에게 있어서 다시는 검을 쥘 수 없다는 건 사형선고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단근환동술 역시 혈마존의 독자무공이었는데 마혈단골참과 마찬가지로 고문기술의 일종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마혈단골참은 시간이 지나면 절로 나을 수 있었지만, 단근황동술은 그렇지 않았다.

 단근환동술에 당하면 그 이름처럼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몸의 급소가 끊기거나 뒤틀려 결국에는 아이처럼 여린 힘밖에 낼 수 없게 된다.

 레온은 대꾸도 없는 상대에게 주절주절 말도 많았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아. 왜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만 했어? 세상을 살다보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이 많은데. 옛 말씀에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잖아.”

 과거 혈마존을 아는 자들이 이 소리를 듣는다면 어이가 뺨을 치리라.

 “그럼 먼저 손가락부터 자를게.”

 어쌔신들의 눈동자가 움찔 떨렸다.

 ‘이 개자식. 분명히 즐기고 있다. 독한 놈!’

 그런데 이어진 말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참, 너희들 신전에 가 본적 있어? 없지? 이거 끝나면 신전에 가서 봉사활동이나 해라. 그럼 조직에서도 못 찾아낼 거야. 상상도 못할 거 아냐. 살수가 신전에 처박혀 있을 거라고는.”

 도대체 이놈은…

 “그리고 가면 꼭 신관님한테 이렇게 말해. 내 말을 듣고 나서 오고 싶어졌다고. 그래 줄 거지?”

 “…….”

 “이런 쌍놈의 새끼들. 대답 안 해?”

 “…….”

 “…아… 참. 말 못하지. 미안해. 내가 가끔 욱하는 성격이 있어. 알아들었으면 눈알이라도 굴려줘.”

 어쌔신들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놈은 거절해 봐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줄 놈이었다.

 그들이 눈알을 한 번 굴렸다.

 “그래, 고마워. 나 대신관이 될 거거든.”

 만약 말문이 터진다면 소리라도 꽥 질렀으리라.

 ‘너 같은 놈이 대신관이 된다면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란 말이냐!’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뇌리를 들쑤시는 고통이 이어진 탓이다.

 레온이 천천히 검날로 새끼손가락을 썰어갔다. 어쩐지 즐거운 미소마저 머금고.

 그러다가 문득 레온이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 돈 좀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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