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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레온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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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화
작성일 : 16-07-07     조회 : 506     추천 : 0     분량 : 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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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날 새벽, 마르텐 신전.

 “음? 당신은 어제…….”

 메이븐은 새벽 일찍 찾아온 레온을 보고 두 눈을 끔뻑였다.

 비록 날이 바뀌었다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신전을 찾았던 레온이었다. 한데 새벽같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메이븐도 내심 놀란 것이다.

 레온이 신관실 문 앞에서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신관님.”

 “예, 이른 새벽부터 오셨군요. 무슨 급한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어쨌거나 메이븐은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레온이 들 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관님, 오늘은 두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네?”

 레온이 자신의 양옆에 서 있는 두 남자를 가리켰다. 그들은 다름 아닌 어젯밤 레온의 방을 습격했던 어쌔신들이었다. 옷을 수수하게 갈아입어서 그런지 어제처럼 위협적인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분들이 신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해서요.”

 메이븐이 눈을 번쩍 떴다. 그렇지 않아도 마르텐 신전은 일손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레온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들렸다.

 “오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런데 이분들 몸이 좀 불편하신데 괜찮을까요?”

 메이븐은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대꾸했다.

 “여신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몸이 불편한 것은 조금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아… 역시.”

 레온이 감격한 표정으로 메이븐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착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는 동시에 팔꿈치로 양옆에 선 어쌔신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제야 그들이 몸을 움찔거리고는 조금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희들은 레온님의 가르침을 바, 받고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 그렇습니다. 저희는 보시다시피 몸이 불편해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죽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레온님을 만났습니다. 그, 그리고 레온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이곳에서 봉사하고 싶어졌습니다. 봉사란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저의 기쁨입니다. 이 세상은 한 번쯤 살 만한 아름다운 세상이니까요.”

 마치 책을 읽는 듯한 어조.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어떤 두려움으로 떠는 목소리. 가만히 눈 여겨 본다면 분명 그들은 어딘지 이상했다.

 하지만 메이븐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 앞에 와서 할 말을 여러 번 연습하느라 그렇게 보인 거라고 생각했다. 도통 그는 타인을 의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잘하셨습니다. 분명 이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분은 보람을 찾으실 겁니다. 여신께서 당신들에게 은혜의 빛을 내리실 겁니다.”

 보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쌔신들은 속으로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레온이 자신들의 몸을 어떻게 만진 건지, 정말로 팔다리가 자유롭지 못했다. 필요 이상의 힘은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꿈에도 힘든 일이 됐다.

 누가 알았을까? 그들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고.

 레온은 서서히 발길을 돌렸다.

 “그럼 신관님. 두 사람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 식당 일을 하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분들은 염려마시고 가보십시오.”

 “예, 오늘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앞으로 매일 와서 신관님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레온의 마지막 말에 어쌔신들은 그야말로 살아가는 희망을 잃고 말았다.

 앞으로 신전에서 도망가긴 틀린 게다.

 

 레온이 기분 좋게 식당으로 들어섰다.

 첫날부터 성직자 가이더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게다. 그 사실이 그의 기분을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식당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데이먼과 브란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음? 레온, 일찍 일어났구나. 운동 다녀오는 길이니?”

 데이먼이 밝은 표정으로 레온에게 인사를 건넸다.

 레온은 문득 어제 엿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든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늘 웃으며 대해주다니. 역시 좋은 녀석들… 아니, 분들이다.’

 레온은 짐짓 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예, 잠깐 신전에 들렸다가 오는 길입니다.”

 “허허, 이러다가 정말 레온이 신관님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정말 될 겁니다, 대신관.”

 레온이 웃으며 대꾸하고는 이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젯밤부터 어쌔신들 뒤처리를 하느라 옷도 갈아입지 못했던 것이다.

 “참, 레온. 심부름 좀 해주겠니?”

 “예, 말씀하세요.”

 데이먼이 짐짓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네가 주방 일도 조금 도와야 할 것 같구나.”

 “우와! 정말요? 저 주방 일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그래?”

 데이먼은 미안한 마음으로 꺼낸 이야기였는데, 의외로 레온이 기뻐해 주기까지 하자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다행이구나. 그래서 오늘 그에 대한 첫 심부름이란다.”

 지금까지 레온이 한 심부름은 조미료를 사오는 정도였다.

 실제로 이웃 도시까지 가서 소금을 얻어온 지난번 같은 경우는 그가 이곳에서 일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사고를 당했으니, 데이먼도 적지 않게 자책감을 느꼈던 게다.

 “무슨 심부름인가요? 기대되네요.”

 “식재료를 몇 가지 사왔으면 한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혼자 가지 말고 프라이스가 오면 같이 가는 게 좋겠구나. 참, 앞으로 보조일을 돕는다는 건 프라이스에게는 당분간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군. 프라이스는 아직도 출근하지 않았단 말이군.’

 별로 인상이 좋지 않은 프라이스와 함께 간다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레온은 내색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레온이 싱긋 웃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데이먼은 그런 레온을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10년 전부터 레온을 정말 아들같이 여기며 함께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레온이 늘 어려 보였고, 애틋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벌써 어른이 된 모양이다.

 

 ***

 

 프라이스는 레온과 함께 식재료를 사러 가는 내내 말이 많았다.

  식당에서 일한 경력으로만 본다면 레온이 한참 위였지만, 직위 상 주방보조는 서빙하는 사람보다 높은 위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소 거드름까지 피웠다.

 “알겠지? 음식에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식재료가 중요해. 너는 아직 잘 모를 테니 그냥 나만 따라다니면서 잘 보기만 해라.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잔심부름을 네가 하게 될 테니 가게 위치가 어디인지 잘 기억해 두라고. 내가 한 마디 해놓으면 상인들이 알아서 너한테 좋은 물건으로 내줄 거다. 참, 사오라고 한 게 뭐지?”

 “오이랑 가지, 그리고 배추랑 생선입니다. 아, 돼지고기도 있네요.”

 “그렇군. 그럼 먼저 야채상부터 가자.”

 두 사람은 야채상으로 갔다.

 아마도 프라이스가 단골로 가는 야채상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벅적였는데 역시 레온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호객꾼들을 지나 두 사람은 야채 가게 앞에 도착했다.

 “왔나, 프라이스.”

 빼빼마르고 콧수염이 고르게 번진 중년인이 가게 안에서 걸어 나왔다.

 “예, 오늘부터 이 녀석이 야채를 사러 올 겁니다.”

 “호오? 앞으로 레온이 온다고?”

 아마도 야채상은 레온을 진작부터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뭔가 얕잡아보는 듯한 눈빛으로 레온을 보더니 곧 프라이스를 돌아보았다.

 “그래, 오늘은 뭘 사려고?”

 “오이, 가지. 그리고 뭐였지?”

 프라이스가 레온을 돌아보았다.

 “배추요.”

 “아, 배추. 그렇게 주세요.”

 “후후. 기다려 보게.”

 중년인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주문한 것들을 한 상자 안고 나왔다.

 “자, 20코퍼네.”

 순간 레온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20코퍼라고?

 도대체 얼마나 좋은 야채를 내주기에 20코퍼씩이나 하나. 20코퍼면 2실버가 아닌가. 2실버면 어지간한 인부들이 일주일가량을 일해야 벌 수 있는 수익이다. 기껏해야 오이, 배추, 가지가 전부 아닌가. 아무리 수량이 많다지만 액수가 너무 비쌌다.

 한데 프라이스는 아무 말도 없이 2실버를 내밀었다. 그는 상자 안에 담긴 식재료를 확인도 하지 않고 걸음을 돌렸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래. 또 보세.”

 “잠깐.”

 두 사람의 작별을 방해한 사람은 레온이었다.

 그가 야채상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얼마라고요?”

 “20코퍼라고 했네. 왜 그러나?”

 야채상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레온을 깔아보았다. 레온은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꾸했다.

 “너무 비싸지 않아요? 겨우 야채 세 가지 샀는데 20코퍼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준 야채는 최상급 재료들이야.”

 “아무리 최상급이라도 너무 비싼데?”

 레온이 도발적으로 나오자 야채상은 몹시 기분이 상했다.

 듣고 있던 프라이스가 얼른 나섰다.

 “레온, 아저씨한테 무례하잖아! 어서 사과드려라!”

 “당신도 똑같아. 20코퍼나 되는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고 야채는 확인도 안 하고 들고 가?”

 프라이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았다. 평소 맥없이 착하기만 하다고 여긴 녀석이었다. 한데 지금의 레온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프라이스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거래했는지 네가 몰라서 그러나 보구나. 아저씨와 나는 벌써 3년 동안이나.”

 “3년 동안이나 이딴 걸 20코퍼에 샀단 말이군?”

 레온이 상자에 담긴 야채를 보며 중얼거렸다.

 프라이스도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어허! 무슨 말 버릇이 그러냐! 네가 야채를 잘 볼 줄 모르는 모양인데.”

 “그럼 잘 볼 줄 아는 당신이 말해보지.”

 “다, 당신?”

 프라이스는 이제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서 결국 야채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야채상 앞에서 전에 없이 실랑이가 벌어지자 어느덧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북적였다.

 “어이, 무슨 소란이야?”

 “글쎄, 야채가 안 좋은가 본데?”

 사태가 심각해지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야채상이었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프라이스와 은밀히 암거래를 해오고 있었다. 조금 덜 싱싱한 야채를 높은 값에 프라이스에게 팔아넘겨 왔던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이득 중 절반은 프라이스에게 따로 챙겨주었던 게다. 야채상이 얼른 중재에 나섰다.

 “이거 이러다가 집안싸움 나겠군. 그러지 말고 프라이스, 내가 1코퍼 깎아줄 테니 19코퍼만 내게.”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마무리 하려던 야채상은 얼른 프라이스에게 1코퍼를 내주었다.

 하지만 이어진 레온의 말에 그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반값으로 해줘야겠어, 아저씨.”

 “뭐, 뭣?”

 “이거, 야채. 별로 싱싱하지 않잖아. 최상품으로 해도 20코퍼는 너무 비싸. 그런데 이렇게 싱싱하지도 않는 걸 20코퍼나 받다니. 사기야.”

 “사, 사기?”

 사실 레온은 프라이스가 순순히 20코퍼를 넘겨줄 때부터 사태를 짐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모종의 암거래가 없었다면 이렇게 태연히 말도 안 되는 거래를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자신을 얕잡아 봐도 너무 얕잡아 본 게다.

 그때 프라이스가 소리쳤다.

 “오냐, 그래! 어디 네가 그렇게 안목이 좋은지 한 번 보자. 도대체 이게 어디가 그렇게 문제라는 거냐? 이건 주방 보조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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