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1571년 어느 날 마치 무협지 제목 같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이라는 제목의 시 하나가 조선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놔.
“이것이 정녕 8살짜리 여자 아이가 쓴 시란 말이요?”
“그렇답디다. 허엽의 여식 허초희가 쓴 시라고 합니다.”
“허 참 이거. 부끄럽구먼.”
“그리 생각 할 일이 아닙니다. 이런 시는 천재만이 지을 수 있는 시 이니 우리 같은 범인들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
“역시 자기위안에 천재 올시다..”
“그나저나 8살짜리 여자 아이가 어찌 이런 상상을 했을까요? 내용인 즉 신선들만 산다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를 받아 상량문을 지었다는 말이잖습니까. 여자들의 시란 그저 님을 그리워하는 상열지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줄 알았더니. 이 시는 스케일이 범 우주적이요!”
<장면 2>
허초희는 한 많은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천재들만이 할 수 있는 유언을 남겨.
“내 글을 모두 태워 버려라.”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작품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허초희의 유언을 충실히 따랐던 사람들이 있었어.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동생이 남은 작품들을 모아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어.
그리고 당대 최고의 학자 류성룡에게 찾아가 책 서문을 써 달라는 부탁을 해.
“대감. 송구합니다만 요절한 제 누이의 글 들입니다.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기에는 너무나 아까워 제가 이리 청을 들이러 왔습니다.”
“멋이라? 자네 형님이나 아우의 글이 아니고 누이의 글 이라고?”
류성룡은 홍길동의 저자 허균이 직접 부탁을 했기에 글을 보기는 했지만 의아함을 떨칠 수 없었어.
이 시대가 어느 시대라고? 그래 맞아! 여자지옥 남자천국 조선시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여자가 시를 쓴다? 그 것도 결혼 후 작품활동을 이어왔다고?
그래도 허균이 사사로운 부탁을 할 사람은 아니니 어디 읽어나 보자는 마음이었지. 누나의 글을 다 읽은 류성룡을 바라보며 허균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어. 류성룡의 표정이 못비도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야.
“대감마님 어떻습니까?”
“흠……세상이 어찌 이리 불공평 할 수가 있나! 하늘은 어찌하여 이런 미친 재능을 자네 집에만 몰아 주었단 말인가! 남동생은 홍길동의 저자이고 누나는 이런 시를!!”
류성룡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책의 출간은 무기한 연기되었어. 이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오명제라는 학자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00편의 아름다운 한국 시를 엮어 중국에서 출판을 하게 되었고, 여기에 오늘의 주인공인 허난설헌의 시도 포함되었지.
이 책이 대륙에 -본명 허초희 우리가 알고 있는 허난설헌- 엄청난 한류열풍의 기폭제가 될 줄을 아무도 몰랐어.
그리고 다시 7여 년의 세월이 흘러 중국 사신을 맡는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던 허균에게 중국 사신들의 면담 요청이 쇄도를 해. 이유는 단 하나.
“저기 허균님아! 우리 사람 당신 누나 시 너무 사랑 한 다해! 제발 당신 누나 글 좀 읽게 해 달라해. 우리 사람 금은보화 필요 없다 해. 돈과 미인은 우리나라가 더 많다 해.”
“지금 우리 사신단 완전 피곤하다 해. 중국 문단에서 억 만금을 주고라도 당신 누나 책 구해오라 해서 완전 피곤 하다 해”
이렇게 허균은 ‘난설헌집’을 중국 사신들에게 전해 주었고, 대륙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어..
대륙의 베스트 셀러인데 일본이 영향을 받았겠어? 안 받았겠어?
열도 또한 허초희 아니 허난설헌의 시라는 쓰나미를 맞게 되었지.
이 정도면 허난설헌께서 신사임당 Who? 라고 외칠 자격이 되지 않을까?
이 분의 작품과 인생사를 돌아보면 힙합 여 전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제대로 걸 크러쉬야!
앵무새처럼 랩을 내뱉는 무늬만 힙합 하는 사람 말고,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는 진짜 래퍼 말이야.
극심한 인종차별과 가난이라는 난지도 매립지 같은 환경에서도 흑인들이 힙합이라는 꽃을 피워냈듯이, 상상초월의 조선시대 여성차별 속에서 허난설헌은 시 라는 꽃을 피워내고야 말았어..
그럼 어디 그녀의 삶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
허초희는 여성으로서는 살기엔 역대 최악인 조선시대에 태어났지만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어.
아버지 허엽이 동인, 서인 중 동인의 당수였다고 해. 요즘으로 치면 정당의 대표였던 거지.
동인 중에서도 북인 계에 가까운데 이 쪽이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에 초희는 여자지만 어린 시절부터 글공부, 그림공부 등 사대부의 아녀자들도 받기 어려운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거지.
이렇게 아버지가 터전을 마련 해고, 뒤에 나선 것은 허초희 인생의 멘토인 12살 연상의 오빠 허봉 이야.
허봉은 어느 날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자신의 절친 이달을 찾아가.
“여보게. 이달~ 머하고 있나? 또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는 게야?”
“머라고 떠드는 게야? 자네처럼 금 수저 물고 태어난 자가 서자의 설움을 알기나 알고 나불거리는 겐가?”
“성깔 여전히 살아 있는 거 보니, 오늘은 좋은 작품 많이 나왔겠구먼.”
“객 적은 소리 그만 하고 용건이나 말하시게.”
“내 여동생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지? 그냥 두기 아까우이! 자네가 제자로 받아주게. 덤으로 허균이라는 남자아이도 있는데, 그 놈도 싹수가 보이는 것이 가르칠 맛이 날게야. 조선팔도에서 그 아이들을 가르칠 사람은 자네뿐이야. 내 이리 간곡히 청하네.”
이렇게 서자출신으로 벼슬길은 막혔지만 실력만큼은 최고인 이달이 초희, 균 남매의 스승이 되니 화룡점정!
최고의 스승과 하늘이 주신 재능으로 수 많은 작품을 양산해내며 꿈 같은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가 초희를 조용히 불렀어.
“초희야. 너도 이제 과년한 15세의 나이구나. 이 아비가 괜찮은 자제를 구해냈으니 결혼 준비를 하도록 하여라.”
“아버님 제 서방님이 되실 분이 누구신지요?”
“김성립이란 자로 너 보다 한 살 많은 안동 김씨 자손이다. 5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한 명문가의 자제이다.”
“제 의사와 상관없는 결혼은 결사 반대이옵니다. 그 분을 만나 뵙고 결정을 하게 해 주세요.”
“뭬야?! 내가 널 아무리 자유롭게 키웠지만 그건 안될 말이다. 초희야. 암. 안될 말이고 말고.
“…….”
“내 오늘 그 집으로 가 이야기를 매듭 지을 예정이니 넌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집을 나선 후 초희는 몸종을 불러 남장을 하기 시작했어.
“아씨. 지금 이 꼴로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내 서방님이 될 지도 모르는 분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이러는 게야. 남장을 하지 않으면 그 집안에 들어 갈 수 있겠니?”
“아씨 지금 미치신 거 아닙니까? 지금은 조선시대이옵니다. 대감마님 눈에 띄는 날에는 쇤네까지 죽습니다 요.”
이렇게 허초희는 남장을 하고 시가에 가서 김성립을 몰래 훔쳐보고 돌아온 후 밤새 울었다고 해. 이유는? 말해 모해~~
15살 허초희의 시집살이는 몹시도 고되었다고 해.
“너희 집안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어찌 아녀자가 글을 읽으며 더군다나 시를 쓴다고? 푸하하하하. 나 참 기가 막혀서. 사돈어른께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고 사시는 지 이해가 안가는 구나.”
“어머님. 아무리 제가 밉더라도 가족은 건들지 마세요. 행복한 가족생활을 위한 불문율인데 어찌하여,,,,,”
“뭬야?!!! 이런 어디서 감히 시어미에게!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니까! 나 참 진짜 어이가 없네.”
이런 상황이면 남편이라도 사랑으로 부인을 감싸줘야 하는데 김성립은 과거시험을 핑계로 집 안에 잘 붙어 있지도 않았다고 해.
허초희는 지인들에게 자신에게 3가지 한이 있다고 말했다고 해..
조선에서 태어난 것과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이백이나 두목 같은 남편을 만나지 못한 것.
지금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어. 가난이 개인의 성공과 출세의 발목을 잡듯이 엄청난 성 차별은 천재 시인 허초희를 막돼먹은 며느리, 부인으로만 취급을 한 거야.
이런 와중에서도 그녀의 창작 활동은 이어지는데 소년행과 동선요라는 시를 통해서는 무절제한 조선 남성들의 삶을 비판하고, 빈녀음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는 민중의 고된 삶을 달래 주었어.
신세타령이나 한 게 아니고 사회의 부조리를 노래하고 이상세계를 꿈꾸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물 일곱 송이 꽃이 지듯이 허초희는 27세에 요절을 하게 되는데, 사망을 즈음하여 여자로써 겪을 수 있는 모든 풍파를 겪게 돼.
시인의 틀을 마련해준 아버지와 스승을 소개 시켜준 자신의 절대적 지지자 오빠까지 당파의 소용돌이 속에 목숨을 잃게 돼. 설상가상 어머니로써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자식들의 죽음과 잇따른 유산까지. 이 모든 악재들은 선천적으로 유약했던 그 녀를 벼랑으로 몰고 갔어.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며 작은 거인 김수철 형님의 ‘못다 핀 꽃 한 송이’ 가 떠 오르는 다른 아재들은 안 계신 건가?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아재들의 뜨거운 댓글 릴레이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한 시가 있어 소개하고 글을 마칠까 해.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