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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
작가 : 해적선장
작품등록일 : 201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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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광해군의 이복동생으로 살아가기
작성일 : 17-02-23     조회 : 473     추천 : 0     분량 : 4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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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2년 선조는 51세의 나이에 19살의 신부 인목대비를 맞이해. 선조는 후궁들에게서 낳은 자식들은 많지만 정비에게서 낳은 자식이 없었어. 하지만 그의 주치의가 누구야? 바로 허준이야!

 

 “상감마마 저만 믿으십시오!” 라고 했을까?

 51세의 나이에 허니문 베이비를 잉태하여 온 조정의 희비가 교차해. 선조는 마냥 신났고, 인목대비 라인은 기적과도 같은 일에 숨죽여 기뻐하지. 광해군측의 눈치를 보면서 말이야.

 

 29살이 된 왕위 계승 1순위 광해군의 장인 유자신은 인목대비전의 장독대를 깨트리고 대비 전 궁녀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못 된 장난도 쳤다고 해. 인목대비가 불안함을 느껴 낙태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이 정도면 귀여운 수준 아닌가?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개 고생은 혼자 다했는데 적장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것이 몹시나 짜증나는 일이었을 거야.

 

 이런 어수선한 와중에 인목대비가 첫 아이를 무사히 출산 하는 날 양쪽의 희비는 다시 엇갈려.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명공주가 태어났기 때문이야. 딸인 것을 확인한 광해군의 장인 유자신은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고, 싱글벙글 웃으며 ‘경하 드리옵니다. 마마’ 라는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고 해.

 

 선조는 52세에 정실부인에게서 얻은 늦둥이 딸이 마냥 귀엽기만 했어. 조선시대의 왕의 자식들은 6~7세가 되기 전까지는 호칭도 없이 그냥 아기씨라고 불렀어. 최소한 저 나이가 되야 재산도 주고 왕자, 공주로 불리게 되는데 선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정명공주가 2살이 되자 4백만 평 의 농지에서 나오는 세금을 공주 앞으로 책정. 이 재산이 천 석정도 된다고 하니 요즘 미성년자 주식부자 부럽지 않지.

 

 헌데 허준이 명의는 명의인가 봐.

 또 3년이 지나 선조는 정명공주의 모친인 인목대비와의 사이에서 드디어 왕자를 보게 되었어. 정명공주의 친동생 영창대군이 태어난 거야. 광해군 진영에서는 난리가 났어 하루 하루가 피를 말리는 날의 연속이었어. 혹시라도 왕위 계승자의 자리를 빼앗길 까봐 두려움의 연속이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어.

 

 하지만 선조는 영창대군이 2살 되던 해 에 수조권을 주는데 이 것은 정명공주가 토지에 대한 세금만 받는 것과 달리 토지 소유권 전체를 준거야. 선조가 어차피 영창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넘길 것이 아니라면 광해군이 오해가 없게 좀 더 확실히 처신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아.

 

 1608년 정명공주 6살 영창대군이 3살이 되던 해에 선조는 재위 41년 만에 승하를 하게 되었어. 그가 광해군과 7명의 최 측근 대신에게 남긴 유언은 광해군을 더욱더 빡 치게 하는데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아.

 

 “세자여! 형제 사랑하기를 내가 살아있을 때처럼 해라”

 

 “대신들아. 영창대군이 너무나 어려 걱정이 많아 내가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니 들이 광해로부터 잘 지켜 주기 바란다. 이상.”

 

 광해군은 섭섭하기 이를 때가 없어.

 “살아 생전에도 그리 차별을 하시더니 죽어서도 나를 믿지 못하고 오직 영창에 대한 걱정뿐이시로구나. 혹시나 했지만 아바마마의 속 마음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아끼는 당신의 영창! 잘 보살피리다.”

 

 광해군은 자신보다 나이 어린 아버지의 정실부인과 그녀의 자식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드디어 조선의 15대 왕으로 등극을 했어

 이제 갑 을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 되었어. 인목대비는 살아남기 위해 어린 남매를 데리고 광해군에게 문안인사를 갔다고 해.

 

 아래의 일화는 인목대비의 측근이 쓴 것으로 추측되는 계축일기에 나오는 내용이야.

 “전하 영창대군, 정명공주가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어서 들라 하라.”

 

 “오셨습니까? 대비마마. 이런 정명공주가 그 사이 참으로 많이 컸구나. 이리 와 보거라.”

 광해군은 인목대비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었지만 정명공주는 얼굴도 쓰다듬어 주며 참으로 예뻐 하였다고 해. 하지만 영창대군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인목대비가 어린 영창대군을 슬쩍 광해군에게 떠 밀어.

 

 “대군도 어서 주상전하에게 가 보세요.”

 

 하지만 광해군은 냉담한 눈길만 주니 어린 영창대군은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아.

 “으앙~~~주상전하는 어찌하여 누님만 예뻐 하십니까! 어머니 저도 다음 세상에는 형님의 사랑을 받게 여자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시추에이션 이야?

 

 이를 바라보는 인목대비는 얼마나 불안 했겠어?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린 동생에게 풀어야만 하는 광해군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을 것 같아.

 하지만 이들은 일반 가정이 아닌 로얄 패밀리잖아. 소주 한 잔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앙금을 풀 수 있는 관계가 아니야.

 

 살얼음판 같던 긴장관계가 이어지던 1613년 3월 조정에 역모가 보고 되었어.

 그런데 역모의 주모자는 정명공주의 외할아버지 즉 인목대비의 친 아버지인 김계남이라고 보고가 되었어. 딸과 외손자를 살리기 위해 김걔남이 정말 움직인 건가? 아니면 광해군측의 조작된 사건일까?

 이후 광해군은 즉각적이고 빠른 조치를 취해. 바로 이듬 해 8살이 된 영창대군을 귀양지에서 죽여버려.

 인목대비는 제발 아들만 살려 달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광해군에게 보냈지만 광해군은 이를 무시하고 엄지 손가락을 꺽어내렸어.

 

 “일 없다. 즉각 집행하라.”

 연이어 인목대비를 후궁으로 유폐시키고, 그렇게 예뻐하던 정명공주는 심지어 평민으로 강등 시켜버려. 이 불쌍한 모녀는 가택연금 수준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게 됐는데 현재 덕수궁 안에 석어당 이라는 건물이 모녀가 지내던 곳이라고 해.

 

 가택연금을 시켜 놓고 광해군은 가끔씩 정명공주의 안부를 물었다고 하는데 이게 진짜 안부를 묻는 건지 알 수가 있나. 남편 잃고 아들까지 잃은 인목대비는 울면서 정명공주는 이미 죽었다고 모두들 물러가라고 하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겠어?

 

 서인으로 강등이 되니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심리적 압박감까지 안고 살아야 했어.

 그런데 이런 생지옥 속에서 32살의 인목대비를 위로한 것은 12살 정명공주였다고 해.

 “어마마마, 제가 요즘 아바마마의 필체를 흉내 내어 서예를 하고 있습니다. 어마마마도 아바마마가 보고 싶으시지요? 비록 용안은 뵐 수 없지만 제가 쓴 글씨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으시옵소서.”

 

 선조의 글씨체는 한석봉체를 따라 한 것이라 여자들이 따라 하기 힘든 상당한 힘이 요구되는 글씨체였다고 해. 12살 고사리 손으로 어미를 위해 아비의 글씨를 흉내 낸다?

 정명공주는 보통 멘탈은 아니었어.

 

 이때 익힌 서예솜씨가 그녀를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서예작가로 만들었는데, 노력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고 전문가들이 평한다고 해.

 정명공주는 후에 8글자를 써서 각 2글자씩 자신의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막내 아들인 홍만희가 간직하다 세상에 알려진 글자가 ‘화정’ 이야.

 맞아 이연희가 주인공으로 나온 그 사극 화정이 정명공주 이야기야.

 

 그래도 두 모녀는 어찌어찌 살아가고,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정명공주가 21세가 되던 1623년 음력 3월 어느 날 한 무리의 군사가 야심한 밤에 이 모녀의 집에 들이 닥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마음을 다스리려 했지만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냐? 무엄하도다. 어찌 하여 이런 밤중에 여인들만 있는 집에 와서 행패란 말이냐? 내가 한 때는 이 나라의 왕비였던 사람이다.”

 

 “대비마마 저희는 능양군의 명을 받들어 대비마마를 궁으로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어서 궁으로 납시어 광해군의 폐위에 결제 도장을 찍어 주십시오.”

 그랬어. 그 날의 소동은 그 유명한 인조반정이야. 인조반정은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웠다고 해.

 

 •폐모살제 : 어머니를 폐위 시키고 동생을 죽인 죄

 

 •친명반청 : 명나라를 섬기고 청나라를 배척한다.

 

 인조가 내세운 첫 번째 명분을 지키기 위해 인목대비가 필요했고, 그녀가 대비로 복귀하면서 광해군을 폐위 시키고 인조를 새 왕으로 지명할 수 있었던 거야. 인목대비 입장에서도 아들에 대한 복수도 하고 자신의 자리도 찾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이렇게 두 모녀는 그야 말로 금의환향을 하게 되었어.

 

 그런데 말이야. 인조가 즉위 4일만에 한 일이 먼지 알아?

 그건 바로 정명공주 시집 보내기 프로젝트야!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고? 인조는 명분 없는 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목대비에게 온 정성을 다했어. 그러니 그녀의 딸인 –당시 기준 21살 노처녀- 정명공주 시집 보내기가 긴급한 숙제였던 거지.

 

 새 정부는 공주의 남편인 부마를 간택하기 위해 전국에 금혼령을 내렸어.

 “그래! 어느 집 자제들이 부마 후보로 왔는지 한 번 보자꾸나.”

 

 “주상전하. 망극하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명단이……명단이……”

 

 “어찌하여 그러느냐? 어서 명단을 공개하라.”

 

 “명단을 공개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9명 밖에 없사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정명공주와 혼인을 할 만한 나이대의 남자들은 이미 다 유부남이옵니다.”

 

 그랬어. 이 때는 조선시대였던 거야. 과연 우리의 정명공주 시집 보내기 프로젝트는 어떤 결말을 맞이 할지 다음 이 시간에……

 

 더 많은 이야기는 여기로

 http://blog.naver.com/jy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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