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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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STAR 957-
1945년 12월 5일 이른 오후,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의 해군항공기지 관제탑은 루퍼트 테이블린 중위로부터 간헐적인 이상 무전을 받고 있었다. 그는 해상 탐색 훈련 비행 중인 제19 TBF어벤저 뇌격기 편대의 편대장이었다.
-육지가 보이질 않는다.-
-나침반이 고장 났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030도를 향해 북쪽으로 45분 간 비행중이다.-
-방향을 잡을 수 없으니 날씨 확인을 요청한다.-
해결되지 않은 상황 보고가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오후 6시, 결국 구조를 위한 비행정 한 대가 출발했다. 동체에 검은 별과 함께 957이란 숫자가 새겨진 비행정이었다.
구조 비행정의 조종사인 싱크 소위는 그들을 찾아 기지로 함께 귀환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찾을 수 있다면 말이다. 19편대의 조종사들은 모두 베테랑이었고 플로리다 상공을 한 바퀴 돌아 순찰하고 오는 아주 일상적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다섯 대 중 한 대는커녕 비행기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구조대는 벌써 세 번째 같은 장소를 맴돌고 있었다. 이미 전달 받은 예상 위치를 두 번이나 돌았고 알려준 좌표가 정확하다는 이야기 또한 두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날씨 상태가 좋지 못한 것도 모자라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 번 더 확인해 봐.”
부조종사인 스탠리 상사는 텅 빈 하늘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명령에 따랐다. 상사가 세 번째 무전을 보내고 응답을 기다리는 순간 계기판의 모든 바늘이 일제히 멈췄다. 하지만 비행기는 분명 굉음 속에서 날고 있었다. 싱크 소위는 다급히 관제탑을 불렀다. 그러나 몇 번을 외쳐도 무전기는 소음만 뱉어낼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탄 PBY 카탈리나가 19편대와 같은 운명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싱크 소위님! 좌측에…!”
스탠리 상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곤 곧 육중한 무언가가 날아와 거대한 기체를 밀어내듯 때렸다. 동시에 엄청난 소리가 비행정 안을 삼켰다.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이 이번엔 비행정 전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빙빙 돌며 날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속도가 너무 빨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도 없었다. 싱크 소위와 스탠리 상사는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괴이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구역질이 밀려왔고 뇌와 온 몸의 장기가 믹서기에 갈려 스프처럼 걸쭉해진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엄청난 충돌이 일고 비행정은 어디론가 튕겨 미끄러져갔다. 좀 전의 충돌이 측면이었다면 지금은 아래에서부터 올라와 척추를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그 충격은 마치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놀이 기구의 100배쯤 되는 것 같았다. 비행정은 30초 정도 모래 바람을 미친 듯이 일으키며 미끄러지더니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 이내 멈추었다. 싱크 소위가 기절한 사이 스탠리 상사는 주변이 고요해짐과 동시에 발밑에다 심한 구토를 쏟았다. 그리곤 정신을 잃었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사방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고요했다. 목과 어깨가 참을 수 없이 뻐근했고 옷 안 쪽에 안전벨트가 남긴 타박상의 흔적들이 간밤의 사고가 얼마나 통제 불능이었는지를 대신 알려줬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해가며 비행정 뒤로 들어갔다. 기체 내부에는 기관사와 항법사, 무전사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리고 나머지 선원들은 동체가 찢어질 때 휩쓸려갔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스탠리 상사는 게슴츠레 비행정의 좌측면을 바라봤다. 이미 구토로 인한 탈수 현상과 사고의 후유증으로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태였지만 실제로도 그 광경은 뭐라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것이 비행정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한 건 폭탄은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상사는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목이 부러진 기관사 옆을 지나 갈기갈기 찢어진 동체 측면으로 걸어갔다. 강제로 뚫어놓은 듯한 비행정의 문 밖에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이 보였고 주변에는 듬성듬성 모래에 파묻힌 구조물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스탠리, 무전이 먹통이야.”
싱크 소위는 잡음조차 일지 않는 무전기를 바닥에 던지며 일어섰다. 움직일 때 마다 근육통과 타박상이 온 몸을 죄여 오는 것 같았다.
“소위님, 여긴 무슨 섬 인가요?”
소위는 상사가 멍하니 서 있는 쪽으로 가 그가 보고 있는 풍경을 함께 바라봤다.
“사막으로 된 섬이라니. 그것도 플로리다에!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러게 말입니다. 허리케인이라도 만난 걸까요?”
“나도 모르겠어. 통신이 되어야 뭘 하든가 하지.”
그들은 이후로도 한 동안 무전을 시도하다 어느 순간엔가 의미 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해안선을 찾아 떠났다. 동체가 찢어지고 통신도 불능인 PBY 카탈리나 비행정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연료를 이용해 비행정을 터뜨려 위치를 알릴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안에는 아직 세 사람의 신원 확인이 가능한 시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금방 구조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싱크 소위와 셰인 상사는 아픈 몸을 이끌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목이 타는 갈증과 점점 참기 힘들어 지는 허기가 그들을 덮쳤다. 하지만 근처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걸어 마침내 물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물의 성분이 어떤가는 중요치 않았다. 게걸스럽게 목을 축이고 나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물외엔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며칠을 더 걸은 후 그들은 돌산에서 처음 보는 동물의 사체를 찾았다. 처음엔 원숭이라 생각했는데 한참 들여다 보다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상사, 뭐하는 거야! 셰인! 이봐, 스티븐!”
셰인 상사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결국 이성을 잃고 정체불명의 사체를 몇 점 뜯어 먹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비행정 안의 시체 세구가 떠올랐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었고 이미 썩어가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잠깐의 소동 이후 그들은 적당한 곳을 찾아 잠을 청했고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난 셰인 상사가 먹은 고기들을 게워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싱크 소위는 혼자 남았다. 상사의 어이없는 죽음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다시 바다가 보이는 곳을 찾아 떠났다. 섬 치고는 굉장히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을 지나 흙바닥이 끝나자 돌산이 이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위치한 물웅덩이로 겨우 목을 축였다. 음식을 갈망하던 마음은 조금씩 소극적으로 변해 이제는 물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며칠이 지나자 싱크 소위를 가장 견딜 수 없게 했던 것은 고독. 그리고 가도 가도 해안선이 나오지 않는 섬의 존재 그 자체였다. 무료함이 그를 덮쳤다. 그것은 어떠한 전염병보다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소위는 가만히 앉아 하늘을 봤다. 여전히 해가 보이질 않았다. 벌써 일주일, 아니 한참 동안이나 해가 지지 않았다. 셰인 상사가 말했던 허리케인설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돌풍에 휩쓸려 아주 먼 이름 모를 태평양 어느 섬에 불시착한 게 아니라면 북반부 어딘가에 떨어진 것이리라 확신했다.
해는 보이지도, 지지도 않았고 24시간 내내 밝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여러 곳을 비행해봤지만 이런 곳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는 백야 속에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점점 말라갔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어 그가 가는 곳마다 발소리 외엔 적막만이 흘렀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곳곳에 물웅덩이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잠에 들고 다시 깨어나 물을 마시며 괴이한 물건들이 처박힌 벌판을 헤매길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나타난 사막을 걷다 그대로 사라졌다. 온데간데없이.
15년 후, 어느 신문 기자는 제19 TBF어벤저 뇌격기 편대와 PBY 카탈리나 비행정이 사라진 장소를 가리켜 이렇게 이름 붙였다.
버뮤다 마의 삼각지대.
이것이 지구에서 명명한, ‘그곳’으로 향하는 입구의 가장 알려진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