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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YYY MM 15D 00:00:00, 위치 확인 불가◀
*수신자 : 질리 타르스트두 위브
*발신자 : 조이 모트마조르 진
질리, 난 지금 기지로 돌아와 쉬고 있어. 정말 힘든 작업이었어.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결국 해냈지. 요점부터 얘기하자면 기체의 반을 기지까지 끌고 왔어. 제노아는 정말 대단해! 어떻게 그런 걸 만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 게다가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계속 내부를 손보고 있어. 조종 콘솔 부분을 개조 중이거든. 베네디도 굉장했지, 베네디가 없었으면 연료를 만들지 못해 끌고 올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엄청난 기계는 앞으로 나와 폰포플이 사용하게 될 거야. 아직도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아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우선 내부 수색을 마치고 나가 로블의 작업을 마저 도왔어. 기체 주변엔 죄다 쓰레기 같은 것만 있고 별 다를 게 없어서 결국 입구 쪽으로 돌아왔지. 엔진과 내부를 살펴보고 나온 제노아가 베네디와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어. 시동이 걸린 후부터 줄곧 그러고 있었던 것 같았어. 그러다 뭔가 합의를 본 듯 끄덕이더니 베네디가 쳄벨과 폰포플을 불러 모았어.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사이좋게 뼈에 몰두해 있더라고. 그 사이 제노아는 가져 온 공구함을 빙 둘러선 우리 발밑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어.
‘소닉이나 레이저로 된 건 전부 하나씩 집어.’
그 말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우린 이유를 물을 생각도 않고 일단 눈에 보이는 걸 하나씩 집어 들었어. 제노아는 이미 레이저 절단기를 골라 손에 쥐고 있었지. 쳄벨은 소닉 해머, 로블은 레이저 인두, 폰포플은 소닉 자, 그리고 나는 소닉 드릴을 집었어. 베네디는 따로 할 일이 있는지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어. 서로 손에 들고 있는 걸 쳐다보는 동안 뭐 하러 가는 거냐는 쳄벨의 물음에 제노아가 답했어.
‘이제부터 그걸로 기체를 반 토막 내러 갈 거야.’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 멍하니 있는 동안 베네디는 로블이 들고 있던 분석 스캐너를 빼앗더니 다른 쪽으로 가버렸지. 제노아가 빨리 안 따라오고 뭐하냐며 외치는 소리에 우린 반사적으로 움찔했어. 그리곤 공구를 하나씩 쥐고 얼떨결에 제노아 뒤를 따라 기체 위로 올라가려 애썼어. 정신 나간 놈이라고 투덜대면서도 로블과 쳄벨은 잘 따라가고 있었지. 나도 그 뒤를 열심히 뒤쫓아 가고 있었고 말이야.
그런데 폰포플이 제자리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거야. 뭐가 잘못됐나 싶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집어든 건 소닉 자인데 이걸론 기체에 구멍도 못 낸다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봤어. 물론 기체가 오래된 데다가 그리 단단한 것도 아니어서 레이저포 몇 대면 금방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을만한 합금이긴 했어. 하지만 출력을 최대로 손본다 해도 소닉 자로는 확실히 어림도 없었지. 기껏해야 구멍이나 몇 개 뚫을 정도였을 거야. 소닉 스크류 드라이버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사고 당시에 누가 쓰고 있었는지 아쉽게도 공구함에 없었어.
쳄벨이 하필 넌 잡아도 그런 걸 잡냐고 핀잔을 주는 동안 제노아는 그럼 자는 내버려두고 베네디가 연료 만드는 걸 도와주러 가라고 했어. 폰포플은 냉큼 소닉 자를 내려놓고 베네디가 분석 스캐너를 이리저리 흔들며 모래를 푹푹 찌르고 다니는 쪽으로 가버렸지. 이해가 안 됐어. 기체를 부숴버릴 거라면서 연료를 만든다니? 완전히 상반되는 행동이잖아. 난 우리가 지금 도대체 정확히 뭘 하는 거냐고 물었어. 제노아는 기체의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서 새로 조립해 소형 차량을 만들 거라고 했지.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외계 물건으로 말이야!
제노아가 한 때 시간의 유적 발굴단 엔지니어로 일하고 싶어 했단 걸 잊고 있었어. 고고학, 역사학, 지질학, 건축, 예술, 문화, 생물 등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마누스 항성계의 많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꿈꾸는 환상의 직업 중 하나잖아. 내 형제 중 한 명도 어린 시절 꿈이 시간의 유적 발굴단이었어. 너무 어려서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지. 솔직히 제복도 멋있고 장비도 진짜 장난이 아니잖아. 거기서 사고가 났다면 구조 신호 보내는 것쯤은 아주 우스운 일이었을걸? 장래희망으로 가져 보지 않은 내가 봐도 확실히 멋있어. 그러니까 제노아도 분명 알 수 없는 신기한 책 같은 걸 많이 읽었을 거야. 어쩌면 망가진 기체와 비슷한 것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우린 기체 위에 붙은 엔진을 잘라내는 것부터 시작했어. 제노아는 작동하지 않는 쪽은 제거하고 고칠 수 있는 나머지 한 쪽만 살려서 반으로 자른 기체 뒤에 이어 가동 시킬 거라고 했지. 설명으론 머릿속에 대충 그림은 그려지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상한 형태라 과연 잘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 그렇다 해도 별다른 수가 없었지. 제노아를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우리 셋 다 그랬어.
하지만 그 믿음은 작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제노아를 향한 원성으로 바뀌었지. 선심 쓰듯 공구함에서 하나 씩 집으라더니 사실은 자기가 제일 좋은 도구를 가지고 절단 작업을 시작했으니까. 소닉 해머를 고른 쳄벨이 노동자에 대한 배려라곤 조금도 모르는 양심 없는 놈이라며 가장 원성이 높았어. ‘이런 악덕 업주 같으니, 네 놈의 오늘 분 마감 식사는 내가 다 훔쳐 먹을 거다!’뭐 이런 말투로 우기기도 했지. 제노아는 자기들이 스스로 골라놓고 뭘 나를 비난하고 있냐며 모른 척 했어.
물론 개중엔 레이저 절단기가 최고이긴 했지만 레이저 인두나 소닉 드릴도 썩 나쁘진 않았어. 시간이 오래 걸려서 피곤하긴 했어도 나름 재밌었거든. 첨엔 레이저 도구들이 좋아 보이긴 했어.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기체 각 부분마다 잘 드는 도구들이 따로 있더라고. 누구 하나가 잠시라도 버벅 대고 있으면 서로 여긴 자기가 나설 차례니 넌 쓸모없는 그 구시대 유물 갖고 꺼지라며 헐뜯기와 자랑질로 바빠서 심심하진 않았어. 생각해보니 소닉 드릴도 해머만큼 반동이 심해서 팔이 좀 아프긴 했지…. 난 이런 운은 꼭 없더라.
엔진을 떼어낸 다음엔 간단히 중간 식사를 하고 난 곧바로 쳄벨과 함께 기체 안으로 들어가 내부 천장에서부터 몸통을 반으로 잘랐어. 엔진 쪽 보단 오히려 안이 더 쉬웠지. 자르는 도중에 있을 바퀴 부분의 손상을 막기 위해 아래쪽은 레이저 도구를 든 제노아와 로블이 외부에서 작업을 했어. 뒤쪽은 바퀴를 제외하곤 버리는 부분이었지. 바퀴는 잘라낸 앞부분에 연결해 삼륜차로 만들 예정이었거든. 그렇게 0.5피노를 꼬박 해체 하는 일로 보내고 나니 완전히 녹초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