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어느 촌에 한 노인과 아이가 있었다.
노인은 병상에 누워있고 그 곁에는 한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노인은 숨을 거두었다. 노인은 몇 해전 약초를 캐던 지노인이었고 그 옆에는 그 때 당시 지노인이 데려온 아기인 듯 싶다.
지다노는 아이에게 바르게 살라고 ‘독바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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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바로는 지노인이 돌아가시자 그동안 배운 약초 구하는 방법을 이용해서 약초(藥草)를 팔아 근근이 살아갔다.
오늘도 약초를 뽑아 팔기위해 가까운 성내(城內)로 가던 중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잡아주었던 것이다. 옆을 돌아보니 하얀 학창의(鶴氅衣)를 입은 중년인이 독바로의 손목과 허리를 잡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괜찮으냐?”
“네, 감사합니다.”
독바로를 일으키던 중년인은 눈빛을 번뜩이며 신기하다는 듯이 독바로를 쳐다보았다.
‘어린 아이가 어찌 이런....’
독바로는 중년인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재촉해 하남성 낙양 인근의 한 성문 앞에 등에 매고 있던 보따리를 쫘악 펼쳤다.
그때 아까 전부터 뒤에서 따라오던 왠 하얀 학창의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인이 독바로의 앞으로 다가왔다. 중년인은 얼굴이 꼭 쥐처럼 생겼으나 눈은 깊고 맑아 보였다.
“아이야, 이건 얼마냐?”
막 호객행위를 하려던 독바로는 고개를 돌려 똘망똘망한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대인(大人), 이 약초로 말씀드리자면 고려에서 난 인.삼.만큼이나 몸에 좋은 약초에요 단돈, 50문.”
하지만 중년인은 약초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약초를 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약초를 사러 온 게 아니다.”
“그럼 비켜주세요, 아저씨가 가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잘 안 온다고요.”
중년인은 대인이라 부르다가 약초를 사지 않는다니 바로 호칭을 바꾸는 아이를 보고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나랑 밥 한 끼 같이 먹지 않을 테냐?”
‘어린 아이가 벌써부터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 있구나.’
“제가 왜요, 전 약초를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야 된다구요. 빨리 비켜주세요.”
‘할부지가 낯선 사람은 따라가지 말랬는데....’
“나를 따라오면 약초를 팔지 않고도 밥 값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서로 딴 생각을 하다가 중년인은 슬며시 아이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독바로는 잠시 고민하더니 계산이 끝난 듯 약초를 펼쳐놓았던 꾸러미를 둘둘 말아 등에 짊어졌다.
“대인,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차피 이렇게 약초로 전전긍긍 팔아봐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따라가보고 수상하면 바로 도망치자.’
다시 대인이라 칭한 독바로. 그리고는 인근 약방(藥房)에 들러 약초를 싼 값에 처분하고 다시 왔다.
“헤헤, 가시죠 대인.”
그 와중에도 자신의 몫은 똑똑히 챙기는 독바로였지만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 어린아이였다.
성안 어느 객잔에 중년인 한명과 어린 8.9살 짜리 아이가 들어왔다.
“이보게 점소이, 여기 작계(炸鸡, 튀긴 닭) 두 마리하고 소면(素麪) 두 그릇이랑 고량주(高粱酒) 하나 내오게.”
“알겠습니다 대인 작계 둘 소면 둘 고량주 한 병 내오겠습니다~”
“그런데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바로, 독바로에요”
“어 그래.. 바로구나 바로는 몇 살이니?”
“10살이요”
“10살~ 노부는 동 노야(老爺)라고 한다.”
“네”
자신을 동 노야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이름을 다 알려주진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했던 음식과 술이 나왔다. 동 노야는 수수를 원료로 하여 빚은 술인 고량주를 한 모금하였다. 목을 넘기는 순간 입 안 가득 향이 퍼졌다. 기름진 작계와 먹으니 정말 잘 어울렸다.
동 노야의 눈치를 한번 슥 보던 독바로는 그야말로 허겁지겁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맛있게 식사를 했다. 특히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고기요리인 작계는 왜 이제서야 먹어보나 싶을 만큼 맛있었다.
“허허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로구나.”
“헤헤..”
“그런데 바로야 내가 돈이 없단다. 하지만 저기 돈 많아 보이는 귀한 집 도련님이 계산해 줄 거란다.”
“...네? 저분이 왜요? 아시는 분이세요?”
“아니 처음 보지만 내가 이야길 잘 해보면 계산을 해줄게다.”
“글쎄요... 그럴 일 절대 없을걸요?”
“세상에는 절대란 없단다.”
자신을 동 노야라 부르라고 했던 학창의을 입은 중년인은 윗 층의 한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 탁자에는 귀한 집 도련님으로 보이는 한 젊은 청년이 무료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는데 중년인은 그 탁자에 앉으면서 말을 걸었다.
“이보게 소협 잠시 앉아도 되겠나?”
그러자 옆 탁자에 앉아있던 호위무사들이 일어나며 동 노야를 제지하였다.
“무슨 일이냐?”
귀한 집 도련님으로 보이는 청년은 동 노야를 보며 호기심 반 경계심반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네 호 당주, 아 그리하시지요”
청년은 동 노야를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그런데 주위에 빈 탁자들이 많은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안다네. 무려 목숨을 하나 벌수 있는 이야기지.”
도련님은 삐딱하게 앉아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 동노야를 쳐다보았다.
“하하, 목숨을요? 그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내가 작계 두 마리와 고량주 한 병, 소면 두 그릇을 먹었거든. 자네도 식사를 꽤 푸짐하게 하고 있고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나와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떤가? 이야기를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자네가 계산을 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내가 자네 음식 값을 계산하겠네”
“....하하하, 좋습니다. 어떤 이야기죠?”
“어느 한 소녀가 산속에서 잠옷을 입은 채 맨발로 누구에게 쫓기고 있었네. 소녀는 무공(武功)을 모르고 그 소녀 뒤에는 가면을 쓴 덩치 큰 무사가 시퍼런 칼을 들고 쫓아가고 있었다네. 그러다 결국 소녀는 막다른 절벽으로 몰렸다네. 절벽에는 아무것도 없고 밑은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지. 앞에는 절벽, 뒤에는 가면을 쓴 무사.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가녀린 소녀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 소녀는 자력(自力)으로 살아 남아야하네 어떻게 해야 살수 있겠는가?”
청년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 그 소녀가 정녕 살 방도가 있단 말이십니까?”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을 쓰면 소녀는 살수 있다네.”
“하하하, 고작 음식 값으로 목숨 하나 벌수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내기를 졌으니 문제의 답을 일러주시지요.”
“정답은 종이에 적어 올려두고 가겠네. 모쪼록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도록 하세.”
동 노야는 자리에 일어나서 독바로에게 돌아가 싱긋 웃으며 교훈을 해주었다.
“음식 값을 저기 저 청년이 지불해준다는구나. 어떠냐? 세상엔 ‘절대’란 없다고 그랬지? 방법을 찾으면 돈이 없어도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단다. 특히나 말은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게 해준단다. 저 멀리 동이에서 속담으로도 있지.”
“.......”
동 노야를 말없이 쳐다보던 독바로가 물었다.
“...그럼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나요?”
“그건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다.”
“‘절대’란 없다면서요.”
“어려운 일이라고 했지 절대로 못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럼...... 저희 부모님을 다시 살려주세요.”
독바로는 간절한 눈빛으로 동 노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 노야는 독바로를 보며 말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면 그리 해주마.”
‘설마 하며 물었던 내가 바보지... 이런 이상한 아저씨한테...’
동 노야와 독바로가 나가고 나서 청년은 종이를 뒤집어보았다.
- 답은... 악몽에서 깨어나면 그 소녀는 살 수 있다네. 꿈에서 깨기만 하면 되는거지. -
“........ 크크크... 하하하하하 이거 고작 몇 냥에 큰 공부를 배웠구나... 생각 발상의 전환이라.. 하하하하”
동 노야는 독바로와 청년에게 말의 중요성과 생각 발상의 전환이라는 이치(理致)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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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성을 벗어나는 중년인과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동 노야와 독바로.
동 노야는 객잔(客店)을 나오면서 독바로에게 물었다.
“바로야 나를 따라 세상을 선도(善導)해 보지 않을테냐? 우리 문파의 신념에 따라 선량한 사람들을 선도하는 구도자 즉, 선도꾼이 돼보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동노야의 얼굴은 너무나도 온화해보이고 정의로워 보였다. 독바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싸부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이 말과 모습에 혹해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싸부와 내가 만난 지 이틀이 지났을 무렵 싸부가 갑자기 날 들쳐 업고 근처 나무와 바위가 울거진 곳에 숨었다. 그리고 잠시 후... 뒤에 칼을 들고 쫓아오던 무인들이 그 장소를 살폈다.
“칫, 눈치챘군. 방금 전까지 놈이 이곳에 있었다. 쫓아라!”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동노야와 독바로는 그 무리들을 몰래 숨어서 보고 있었다.
“싸부 무슨 일입니까 이게..”
“세상은 말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단다 선도를 하다 보면 말이다 오해를 사기도..“
“무슨 오해를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살벌하게 하는거에요?...”
“허헛, 일단 어서 피하는게 좋겠구나”
독바로를 등에 업고 동 노야는 멀어진 무리들과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등에 아이를 업고 뛰고 있음에도 그의 신형은 쭉쭉 뻗어나가고 발자국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동 노야의 얼굴이 어느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일 후 독바로는 저 멀리서 한 무리가 살벌하게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동 노야와 자신을 보며 소리쳤다.
“저놈들이다.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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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성(廣西省) 계림의 한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서점(書店)
그곳에는 머리가 반백이 되었지만 정갈하게 묶은, 평범하지만 푸근한 인상의 노인과 쥐처럼 생긴 학창의을 입은 중년인, 그리고 때가 꼬질꼬질한 한 아이가 있었다.
“스승님 그간 별래 무양하셨습니까?”
“오, 그래 이번에 또 크게 한건 했더구나 하남성의 별지부사를 건드렸다지?”
“네, 역시 말은 말보다 빠릅니다.... 그래서 말인데 스승님 당분간 조용해질 때 까지 이 아이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으음... 그러도록 하려무나, 헌데... 그 아이는 누구더냐?”
“이번에 새로 들인 제자의 제자입니다.”
“고놈 참 눈빛 한번 살아있구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독바로를 보았으면 눈빛이 살벌하다고 느꼈을 것 같았다.
그동안 하남성에서 광서성으로 쫓겨오는 동안 얼굴이 퀭해진 독바로였다.
“이놈아 네 사조님이시다 어서 인사 드리거라”
“안녕하세요.......싸싸부님... 그런데... 혹시... 서점 주인이세요?”
“허허허, 그냥 늙은이지.. 우선은 나를 따라오거라.”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벌써부터 싸싸부님이라 하는 아이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인 노인. 동 노야의 스승이라는 노인은 독바로와 함께 서점 뒷문으로 함께 나갔다. 그리고 동 노야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놀랍게도 방금 전 그 노인과 똑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잠시 후 하얀 무복을 입은 무인 무리가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백발이 성성한 동 노야에게 무례하게 말을 놓았다.
“이봐 노인장, 혹시 여기에 쥐새끼 두 마리가 오지 않았나?”
“안그래도 요즘 서점에 쥐새끼들이 들락날락 거려 책을 다 갉아먹으니 골치가 아픕니다. 고양이라도 사서 풀어놓던가 해야겠습니다 허허”
동 노야는 목소리마저 서점 주인인 노인과 닮아 있었다.
“이봐 노인장 지금 말장난하자고 여기로 온 것이 아니야, 이리로 40대 후반의 쥐처럼 생긴 중년인이랑 10살 가량되는 아이 못 봤냐고”
“글쎄요, 이곳은 작은 서점이라 낯선 손님이 오면 금세 눈에 뜨일텐데 보질 못했으니, 무사님께서 찾으시는 두 분, 아니 두 마리는 이리로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알겠어 노인장, 혹시 그 쥐새끼 두 마리를 보거든 바로 정의맹(正義盟)에 알리도록 해”
“예, 그리하도록 하지요”
한편, 독바로와 노인은 서점에서 나와 인근 마을에서 잠시 떨어진 한 장원(場院)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후원에 있는 마른 우물이 있었다.
노인은 독바로를 품에 안고 우물 속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에서 익숙한 듯 앞으로 걸어가더니 지그재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 걷고 나니 시야가 달라지면서 건물이 한 채 들어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장원의 우물 속에 건물이 있는 것이다.
“싸싸부님 여기는 어디에요?”
“이곳은 우리 문파의 안가(安家)라고 할수 있지. 우리 문파의 안가는 전국 108개의 안가가 있단다. 이곳에는 은잠기환진(銀簪奇幻鎭)이 펼쳐져있으니 당분간은 안전할게다.”
노인은 우물에서 뛰어내려 지그재그로 걸은 것이 은잔기환진의 생로를 걸은 것이다.
“문파가 있으신거에요?”
“예끼, 이놈아 우리 문파는 말이다 수 천년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신비문파(神秘門派)다. 밖에 일을 마무리하고 올 테니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노인은 독바로를 그곳에 두고 돌아서서 다시 왔던 방향으로 나갔다. 서점 주인인 노인의 이름은 등광형이었다. 등광형은 서점으로 돌아가니 자신의 제자인 동길홍이 어느새 사라졌음을 알았다. 그리고 태연하게 계속 서점에 있던 것처럼 행동했다.
잠시 후 하얀 옷을 입었던 무리들이 서점 인근에 나타나 등광형을 보며 백 각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군견이 냄새가 이쪽으로 이어졌다고 그랬느냐?”
“예 틀림없이 서점을 향했다가 저쪽으로 향했습니다. 서점 주인이 우릴 속인 것이 아닐까요? 한 번 족칠까요?”
평범한 촌노(村老)처럼 보이는 등광형은 사실 무공 고수였다. 20여장 떨어진 곳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등광형은 구부정한 자세에서 뒷짐을 쥐고 있었는데 뒷짐을 진 손의 소매 속에는 한 자루의 단검(短劍)이 있었다. 그것을 손에 쥐었다.
“음.. 촌무지렁이가 무공을 익히 무인이 잠입한다고 어찌 알겠느냐 노인은 놔두고 빨리 동길홍이나 쫓아라”
“예”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의 허술함이 목숨을 살린 것을. 서점주인은 비록 은퇴한 살수(殺手)지만 그는 한 때 제왕이라고 불리우던 사람이었다.
날이 저물어 어둠이 찾아들고
스윽
“잘 쉬고 있었더냐?”
“싸싸부님~, 싸부님은요?”
“니가 아직 너무 어려 데리고 다니면 위험해서 혼자 떠났으니 네 스승은 걱정하지 말거라. 제법 괜찮은 신법(神法)과 역체만용술(驛遞蠻勇術)을 익혔으니 쉬이 잡히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