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쥐어박은 등광형은 다리를 꼬아 가부좌를 만들어 앉으며 정수리와 양 손바닥, 양 발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만들었다. 독바로는 등광형을 따라 앉았다.
"만정신공을 수련하기 위해선 천주부동(天柱不動, 부동자세)한 상태에서 가부좌(跏趺坐)를 하여 잡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굳건히 하고 바르게 호흡하는데, 가늘고 길게 또 끊어지기 않으며 깊게 마셔야 하는 것이다. 호흡 속에는 기가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라는 것은 나무나 돌, 사람과 동물 하나하나 기운이 다르다. 강한 기운과 약한 기운,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이끄는 신공이 만정신공이다. 만정신공은 강하면서 부드럽고 부드럽지만 연약하지 않고 끊어짐이 없으니, 만정신공의 요체는 기기묘묘(奇奇妙妙) 면면부절(綿綿不絶)이다."
등광형은 독바로의 아랫배에 장심(掌心)을 대고 기를 불어넣으며 신공(神功)을 읆어주었다.
"숨을 뱉고 쉬는 법을 토납술(吐納術)이라 하고 이러한 토납을 반복하면 몸속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쌓이게 되는 것을 일컫어 운기토납법(運氣吐納法)이라 한다. 자, 이제 너는 내가 이끄는 곳을 기억하며 따라서 운기(運氣)해보거라."
독바로는 곧바로 운기를 시작하였다.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따라 기운들이 흘렀고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들이 넘실거렸다. 독바로는 온 몸의 감각이 활성화 되는 느낌을 받았고 새로운 활력이 샘솟았다. 선천지기는 여기저기 경락들을 자극하며 여기저기 어루만져 주었다.
이로써 후천적 무기한 고자가 된 독바로였다.
'첫... 운기를 바로 시작하다니... 그리고 이 기운들은 다 무엇인가. 천무지체라고는 하지만 벌모세수를 받고 영약을 섭취한다고 해도 이보다는 더 하지는 않을 것인데..."
등광형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독고력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2시진이 흘렀고 독바로는 눈을 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포만감에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기라는게... 공기가 이렇게 맛있는 건 줄 알았으면 진작 배우는 건데..."
콩.
첫날부터 만정신공을 운기할지 몰랐던 등광형은 당황하였다가 내친김에 쉬지 않고 보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우리 문파의 여의신류는 만정신공과 더불어 큰 자부심이자 무림 최고이다. 여의신류는 자음신법, 은형귀영, 북두칠보로 나뉘어져 있다. 우선은 일정 경지에 오르면 자음신법은 소리보다 빠르고 내력소모도 적어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천고의 경신법이다. 그 다음은 은형귀영. 소리, 형체 없이 은밀하고 귀신처럼 움직일 수 있는 보법이다. 또한 북두칠보는 총 일곱 걸음으로 만들어진 보법인데 단 일곱 걸음으로 피할 것도 제압 못 할 것도 없는 경세의 보법이다. 각 천추(天樞)·천선(天璇)·천기(天璣)·천권(天權)·옥형(玉衡)·개양·요광(搖光) 7보에는 각기 일곱 걸음이 있는데 총 49보로 방(防), 회(回), 전(前), 후(後), 좌(左), 우(右), 공(攻)의 묘리가 있다. 보법으로 공격하고 방어하고 물러서고 나아가고 제압하지. 그리고 일정 경지를 성취하게 되면 백만의 대군과 도검 속에서도 홀로 소요(逍遙)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북두칠보를 밟으며 다른 무공들과 연계를 하면 반배에서 몇 배 더 강력한 무공이 된다."
그리고는 구결을 읆어주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반시진이나 되었다. 하지만 이미 만정신공의 대단함을 맛 본 독바로는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천무지체라서 한 번 들은 것으로 구결을 모두 외웠다. 무공을 터득하기 좋은 근골을 가지기 까지 했는데 노력하는 천재라니.
구결을 모두 외운 것을 확인한 등광형은 천근추(千斤墜)로 바닥에 족적(足跡)을 남기면서 각기 다른 세 가지의 발자국을 남겼다. 첫 번째로는 등광형의 움직임은 휘적휘적 걷는데 어깨는 움직이지 않고 발바닥은 땅을 스치듯이 가볍게 걸었다. 마치 귀신이 걷는 듯이 미끄러지듯 걸었는데 자음신법이었다. 두 번째 걸음은 발끝은 언제든지 방향을 전환할 수 있고 회피와 반격,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게 팔방을 밟고 있었는데 북두칠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광형의 몸이 희끗해지면서 존재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바닥에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은형귀영이었다.
"여의신류의 요체(要諦)는 행보여수(行步麗水, 물처럼 끊임없는 움직임) 낙각사채니(흔들림없이 부드럽게 걷는 것)이다. 만정신공과 궁합이 잘 맞지. 만정신공과 여의신류는 정공(靜功)이기도 하고 동공(動功)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효과를 증폭시킨다. 신공을 운기하면서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 보거라."
독바로는 만정신공을 운기하며 발자국을 밟았는데 한 반향의 2발자국도 밟기도 전에 몸이 꼬이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의 관절 상으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발자국이었다. 등광형이 걸을 땐 별로 다른 점이 없어 보였는데 막상 그대로 밟으려 하니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쉽지 않을 것이다. 크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파 이래 최고의 기재인 나도 석 달이 되서야 끝까지 밟을 수 있었음이니... 보법을 다 익히기 전 까진 섬전신수와 제천태껸각, 십전총록은 익힐 수 없다. 하니 정진해서 빨리 익히도록 해라."
사실 등광형은 만정신공을 첫 운기하는데 1주가 걸렸고 보법을 끝까지 밟는데 까지 성공한 기간은 6개월이 걸렸다. 독바로가 자만심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네... 그런데 밥 먹고 하면 안돼요?"
맞을 소리를 골라하는 독바로였다.
어느새 두 달이 흘렀다. 그동안 독바로의 일과는 오전에는 만정신공을 수련하였고, 오후에는 여의신류를 수련하였다. 그 시간 외에는 밥을 먹거나 책을 보는 게 다였다. 그런데 독바로의 밥을 보통 사람들이 보면 까무러칠 것들이였는데 이유인 즉슨 반찬이 천년설삼무침에 석이버섯쌈, 고려삼랭이 하수오포이고 국은 백전제왕탕, 후식으로 과일은 천년음백실을 먹었다. 과도한 영약 섭취로 신체에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을 법한데 독바로는 오히려 더 쌩쌩했다. 그 이유는 독바로의 독특한 체질과 잠이 들 때마다 등광형이 추궁과혈과 벌모세수를 지속적으로 펼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모세수는 최소 3갑자 이상의 초절정 고수가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독바로가 읽는 책들도 다른 이들이 보면 깜짝 놀랄 만한 비서들이 즐비하였다.
천자문부터 시작해서 중용(中庸), 소학(小學), 대학(大學), 근사록(近思錄), 사서삼경(四書三經), 신선필법, 도가팔경 등 문관들이 보는 책들과 기물선초(약초책), 천하지지(천하를 그린 지도), 난정집서(왕희지 저서), 독물총요(毒物摠要), 제왕학(帝王學), 괴이지(怪異誌, 중원에서 보기 힘든 괴수들에 대한 것을 적어놓은 것.), 혈맹인명록(血盟人名錄), 반야심경(般若心經)... 불경과 약학 등 그 외 다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서책들이 가득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무공서 들을 보면 더욱 기가 막혔는데 절전 되었다는 당시 고금제일의 무공들이 가득했다. 구련조화인(九蓮造化印), 광풍파천무(狂風破天武), 북명신공(北冥神功)등 한 개만 강호에 뿌리더라도 혈겁이 일어날 듯 한 비급들이 굉장히 많았다.
무공 수련과 밥 먹는 것 외엔 할 것이 없는 이곳에선 유일하게 독배로가 가진 취미는 독서였으니 이런 수준 높은 서책들을 읽으려 자연스레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오늘은......"
어느새 두 달이 지나 어제 밤 똑바로는 어김없이 만정신공과 여의신류를 수련하였고, 산들산들했던 등광형의 신형처럼 매끄럽진 않았으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기어코 여의신류 7보의 끝을 밟았다. 하지만 마지막 발을 밟으면서 신형이 고꾸라졌고 오늘은 마지막 7보를 제대로 밟기 위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아침부터 정갈하게 씻고 깔끔하게 복장을 갈아입은 독바로는 초롱초롱한 눈이 굳건해져갔다.
제 일보 천추(天樞)를 밟으며 연지보(連枝步)로 어디든 움직일 수 있게 만들고
제 이보 천선(天璇)을 밟으며 소탑보(搔搭步)로 발을 끌며 나아갔다
제 삼보 천기(天璣)를 밖을 향해 기대게 하고, 왼발을 丁자 모양으로 뾰족하게 하는 선인보(先人步)를 밟고
제 사보 천권(天權)을 밟으며 대살보(大撒步)로 다리를 크게 뿌리면서 다시 한걸음
제 오보 옥형(玉衡)을 밟으며 좌마보(坐馬步)로 신형이 땅으로 쑤욱 꺼지듯이 주저 앉아서
제 육보 개양(開陽)을 밟으며 염보(殮步)로 나아갔다 물러났다.
그리고 마지막 제 칠보 요광(搖光) 칠보귀둔필사!!(七步鬼遁必死).
칠보를 밟음과 동시에 몸이 사라지듯 흐릿해졌고 독바로가 밟은 마지막 오른발에 지기(地氣)이 터졌다. 칠보를 밟은 독바로의 신형은 넘어지지 않고 우뚝 서있었다.
"이야! 됐다. 됐어 하하하하하"
그것을 지켜보던 등광형은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3개월만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6개월이 걸렸다. 대부분의 기재셨던 조사님들도 일 년에서 삼년은 걸리셔야 7보를 걸을 수 있으셨다는데... 천무지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그렇다. 너무 독바로를 위한 듯 한 걸음걸이인 듯 했다. 하긴 독바로의 사부 동길홍은 저 칠보를 밟는데 1년이 걸렸다.
"히히, 싸싸부 봣죠? 봤쬬? 헤헤헤헤 나 해냈어요 싸싸부보다 1달 빠~르게~"
콩.
"이제 술 취한 듯 느릿느릿 7보를 밟은 놈이 뭐가 좋다고 헤실 거리는 것이냐. 오늘부터 여의신류를 하루에 300번씩 수련해라."
휙~
등광형은 머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해낸 거냐며, 툭하고 수련하라 말하고는 뒤를 돌아섰지만 돌아선 그의 얼굴에는 포근한 '애愛'가 담긴 표정을 지었다.
어느덧 시간이 1년이 흘러 독바로의 키가 2 치(寸)나 커졌고, 하단전(下丹田)에 쌀알 같던 선천진기는 콩알만큼 뭉쳐있었다. 여의신류의 기초 수련은 끝내었다. 등형광은 독바로를 불러 새로운 무공을 가르쳐주었다.
"오늘부터는 제천태견각(帝天跆堅脚)을 익히도록 하마. 태견각은 고대 제천행사에서 제례 의식을 할 때, 가무와 유희를 신체 단련의 무예로 발전시키면서 만들어졌다. 때문에 신체 단련과 정신적인 무장을 통해 올바른 정신 수양을 하는데 도움이 되어 사기(死氣)나 악기(惡氣)가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 신체의 각 분절을 좌우 균형 있게 쓰고 인체 고관절의 유연성을 활용하기 때문에 다양하고 위력적인 각법이 나온다. 인체를 사용하지만 일격필살의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방어를 위한 기술 또한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 역시 대단히 뛰어나다."
잠시 숨을 돌린 등광형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또 태견각을 사용하면 제천운기(帝天韻記)가 발동되는데 이 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열 가지, 십 색이다. 백. 노. 주. 녹. 자. 파. 황. 적색으로 변하고 이 무공이 완성 되어 갈 쯤엔 붉은 색에서 점점 검은 빛으로 변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초식 또한 10가지인데 태극(太極). 고려(高麗). 금강(金剛). 태백(太白). 평원(平原). 십진(十進). 지태(地跆). 천권(天拳). 한수(漢水). 그리고 일여(一如)이다."
등광형은 독바로를 마주보고 서서 오른발을 뒤로 반 보 빼고 왼손은 무릎을 향하도록 하고 살짝 무릎을 굽히면서 말했다.
"노부가 익힌 것은 태극뿐이다. 태극의 팔괘(八卦)로 되어 있으며 하늘과 양(陽)을 의미하는 건(乾), 속으로 단단하고 겉으로는 부드럽다는 태(兌), 불을 나타내고 뜨겁고 밝음의 이(離), 우뢰를 나타내고 큰 힘과 위엄있는 진(震), 바람을 나타내고 바람의 강약에 따라 위세와 고요의 손(巽), 물을 나타내고 끊임없는 흐름과 유연함의 감(坎), 산을 나타내고 육중함과 굳건하다는 뜻의 간(艮), 음(陰)과 땅을 나타내고 뿌리와 안정 그리고 시작과 끝의 곤(坤)으로 이어져있다."
등광형은 시범을 보이며 왼쪽 발바닥을 위로 쭉 뻗었다. 서서히 하늘을 가리키던 발을 부드럽게 사방을 노니였다. 몸을 기생이 움직이듯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니 각법이 아닌 춤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오묘하고 웅장했다. 게다가 막상 발을 뻗을 때에는 몸이 관절마다 회전을 하며 그 힘으로 용수철처럼 팡하고 질렀다. 등형광이 백기신통비각술(百技神通飛脚術)의 화려한 발차기를 보여주며 설명을 계속하였다.
"이 하늘[天]ㆍ땅[地]ㆍ우뢰[雷]ㆍ바람[風]ㆍ물[水]ㆍ불[火]ㆍ산[山]ㆍ연못[澤]는 자연이니 팔괘의 근본으로 음양의 결합에 의해 만물이 생성이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을 만정으로 품은 만정신공과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태견각이 만나면 얼마나 효과가 증폭될지 미지수이다."
게다가 제천태견각은 다른 여러 각법들과는 달리 차고 때리는데 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밀고 밟고 누르고 걸고 찼다. 마치 발을 손을 쓰듯 다루었다. 이윽고 등형광이 마지막으로 고요하게 발을 내리면서 독바로에게 말했다.
"오늘부터는 만정신공 2시진, 여의신류 2시진, 태견각 2시진씩 수련하도록 해라."
"네~"
돌아서서 가는 등광형에게 독바로는 한마디를 더 했다.
"밥 좀 먹고요."
휘청.
독바로가 싸싸부를 따라 안가에 온지 어느덧 2년이 지난 지금,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왜소해보였던 독바로는 사춘기가 오면서 키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키가 크는 만큼 독바로의 무공 또한 일취월장하였는데 개파 이래로 제일가는 수재였다고 했던 싸싸부의 말은 어느새 쏘옥 들어가고 없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독바로의 외, 내면적 성장과 무공은 날을 거듭할수록 놀라웠다.
"핫."
탓. 파파팟.
한 소년이 웃통을 벗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소년은 독바로. 이제 제법 남자다운 태가 날 법한 독바로는 오늘도 어김없이 연무장(演武場)에서 무공수련 중이었다.
한 발을 내딛자 독바로의 신형이 주욱 미끄러져 나갔다. 뒤를 돌면서 다리를 쭈욱 뻗어 발 날을 허공에 찍었는데 발끝에선 하얀 기운이 넘실거렸다.
"북두칠보 제 이보 천선거문!(天璇巨門), 제천태견각 태극 4장 읍진세웅!(揖震世熊)"
몸을 비틀면서 발을 지면에 밟자 지지하고 있는 발에 거대한 기운이 맴돌았다. 만정신공에서 부드럽게 끊임없는 기운이 여의신류로 지기와 반탄하며 기운이 증폭되었고, 태견각으로 뿜어냈다. 그러자 곰이 벼락같은 포효를 하듯 독바로의 발이 내지르며 직선으로 상단을 밀어 찼다.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등광형은 독바로를 불렀다.
"바로야. 이리와 보거라."
"네."
오늘의 수련을 열심히 마친 독바로는 상체에 흐르는 땀을 슥슥 닦고 웃옷을 걸친 다음 쪼르르 등광형에게 다가갔다.
"만정신공, 여의신류, 태견각의 기본 수련을 닦았으니 이제부터 한 가지 더 배워보도록 하자꾸나. 내공과 경신법, 각법을 익혔으니 이제부터는 무기를 다루는 법도 수련하도록 하겠다."
"오 무기!"
사내아이인지라 안가 내에 있는 수많은 신병이기(神柄異奇)들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엄한 등광형의 감시 하에 그간 손도 대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무기들을 만져볼 기회가 온 것이다. 무기고로 쪼르르 쫓아가는 독바로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맑게 한 다음 이곳을 쭈욱 둘러보거라. 너에게 말을 거는 녀석이 있거든 가져와보거라."
"말을 걸어요?"
"그렇단다, 신물은 영성(靈星)이 서려있는 것들이 많다. 둘러보면서 네 마음에 말을 거는 녀석이 있는지 찾아보거라."
독바로는 수많은 신병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휘둘러보았다. 그러다 한 켠에 먼지가 소복히 쌓인 작은 검이 눈에 들어왔다. 먼가 이끌리듯 다가가서 검을 덥석 잡았다.
검이라고 하기엔 짧고 단검이라고 하기엔 어중간하게 길어보였다. 게다가 손잡이에 가죽도 대어 있지 않았다.
독바로가 손을 뻗어 그 검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검면에는 염제(炎制)라 음각되어 있었다.
염제는 검이 아니라 창두였다. 창의 앞, 머리쪽인 날 부분. 염제는 쇠 중 제일 강하고 무거운 현철(玄鐵)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현철 외에 뭔가 다른 것을 첨가한 것 같았는데 동길홍이 살펴본 결과 불의 기운을 다스리는 화령석(火靈石)이 섞인 듯 했다. 검붉은 염제는 귀한 것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보관 중이었는데 창두에 다는 깃과 창대가 없었다.
"음, 그것은 창두(槍頭)이구나. 피(鈹)와 거의 흡사하게 생겼지."
"창이요?, 피?“
피란 검의 모습을 한 창날을 가진 장병기였다. 창과 거의 흡사했지만 앞부분이 창과는 달랐다. 긴 날은 찌르는 것뿐만 아니라 베는 위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원래는 창두와 창간(槍杆), 그리고 그 손잡이 같은 부분에는 깃발을 달아 쓰는 기창으로 특이한 녀석이지. 꼭 너 같은 걸 골랐구나."
"왠지 이게 좋아요 정말 신병에는 영성이란게 있나봐요."
"창이라... 그럼 일단 창대부터 제작하고 창법도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사흘 뒤, 등광형은 거무튀튀한 창대하나와 비급을 들고 왔다. 사사십육식(沙死十六式)이라고 적힌 책 한 권과 철죽(鐵竹)으로 만든 성질이 무척이나 차갑고, 또한 탄성이 뛰어나고 강도 또한 엄청난 대나무 창대를 가지고 나타났다. 두께가 얇고 길이가 아주 긴 창이었다. 창간의 뒷 쪽에는 짤막한 준이 달려있었다. 준은 땅에 박아서 지지하는데 쓰고나 창날 대신에 임시방편으로 쓰는 곳이다.
창의 길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최소한 사용하는 사람의 신장보다는 긴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창은 사람 신장의 세 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적용된다. 너무 길면 손잡이가 휘어져 적을 찌를 때 오히려 위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염제라고 적힌 창두와 창간을 연결시키자 창두에서 준까지 총 길이가 8척(약 2.4M)이나 되었다.
독바로는 등광형이 주는 책을 보았다. 사사십육식이라 적힌 낡은 서책이었다.
"사사십육식은 400년 전 사신창왕(死神槍王)이 쓰던 창법이다. 보고 익히도록 해라."
툭.
등광형은 다른 무공들을 가르칠 때와는 달리 책을 던져주고 사라졌다. 별거 아닌 듯이 던져준 저 비급은 과거 사신창왕을 무림제일창으로 만들어준 무공이었다. 고금 5대 창법 안에 들어가는 절세신공이지만 익힐 수 있으면 익히고 말라면 말라는 듯이 대충 등광형이었다.
사사십육식은 개방의 별종이 만들어낸 창술이었다. 개방의 제자였던 그는 창술에 관심이 많아 항룡이십팔장(降龍二十八掌)을 창술로 담아내었는데 바로 이것이다. 개방의 방도였던 그는 후계자 싸움에서 밀리면서 누명을 써 추살령(追殺聆)이 떨어졌고 그런 그가 피했던 곳이 군대였다.
항룡이십팔장이라는 절세장법을 익힌 무림인인 그라도 군대의 갑옷과 많은 인원을 상대하려면 무기가 필요했다. 살고자 무기를 들고 수많은 적군이 밀려들어오는 것이 모래와 같이 느껴진 그는 진형에 따라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용의 모습을 본 따 상대를 압살하는 무공을 창안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사사십육식이었다.
사사십육식은 전 8초식 후 8초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 8초식은 창술의 기본 모태가 그 묘리가 담긴 것이라 독바로가 처음 익히기에 아주 좋은 무공이었다. 후 8초식은 창으로 강기를 뿜어내는 초식들이었고 수많은 적들을 상대하기에 용이하고 그 어떤 공격에도 포위되지 않고 뚫어낼 수 있는 무공이었다.
독바로는 또 하나의 절세신공과 귀한 철죽으로 만든 창간까지 얻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들이 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 줄 몰랐다. 아마 이 사실을 아는 다른 무림인이 있었더라면 분통을 터트렸을 것이다. 천무지체와 영약으로 만든 밥, 절대고수의 가르침, 신병이기가 널리고 널려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배우는 것마다 절세신공을 익히는 독바로는 하늘이 모든 것을 한 명에게 몰아주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