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몇 달 후 독바로가 지내는 안가에 손님이 찾아왔다. 근 2년 만에 타인을 처음 보는 터라 신기했다.
손님은 2남 1녀로 회색 옷을 입은 각진 다부진 얼굴의 40대 중년인과 검은 옷을 입은 왜소하지만 묘한 분위기의 노인, 그리고 붉고 화려한 옷을 입은 30대 중반의 아름다운 얼굴의 미인이 찾아왔다.
싸싸부의 오랜 지기(知己)들이라고 하는데 10년에 한 번씩 연락을 하여,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등광형이 회색 옷을 입은 중년인에게 물었다.
"말코 놈과 괴짜 놈은 안 온 모양이지?"
"성삼(聖三)이는 부처가 되는 약을 만든다고 연단(鍊鍛) 중이라 못 온다고 하였고, 우대(佑大)는 온다고 했는데 아직인 모양이야"
젊어 보이는 중년인은 무례하게 나이 많은 등광형에게 말을 놓았다. 하지만 등광형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그 때 독바로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이놈은 내 제자의 제자 놈이다."
그걸로 소개를 끝낸 등광형. 그러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말했다.
"호호호, 니가 바로구나 어머~ 어쩜 이렇게 귀엽게 생겼니?"
"가, 감사합니다."
"할망구, 홍이 놈처럼 헛바람 넣지마라."
"흥. 남 이사 멀 하든."
싸싸부가 젊은 여인에게 할망구라고 하는게 이상한 독바로였다.
'싸싸부의 성격상 없는 소리는 안하시는 분이신데.'
"내가 소개를 해줄게. 나는 화한(花恨)이고 이쪽은 전진한(電鎭寒) 오라버니. 이쪽은 산두(散杜)이야. 우린 모두 네 싸부의 오랜 지기들이야"
회색 옷을 입은 강한 인상의 허리춤에 곤(棍)을 차고 있는 쪽이 전진한, 검은 옷의 고요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산두이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사숙조(師叔祖)님들 저는 14살, 82대 문주.....가 될 독바로입니다."
소개를 하는 도중 전진한은 손에든 보따리를 독바로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묵빛 바랜 허름해 보이는 곤룡포(袞龍袍)를 꺼내 독바로에게 주었다.
"이건 내가 강호행(江湖行)을 한때 입던 용린보(龍鱗褓)다. 첫 만남 선물이야. 가진 이 곤 두개와 그 것뿐이니 그것을 네게 주마. 그리고 아까 오면서 듣기로 네가 창을 만진다고 들었다. 나중에 내 친구 중에 건수(乾殊)라는 녀석이 있는데 그 용린보를 보게 되면 아는 체 할게다. 한 수 가르쳐달라고 해라."
"호호호, 전 오라버니도 참 성격 급하시긴. 흐음~ 그럼 나도 먼가 하나 줘야 하는 건가?"
그러면서 품에서 둥근 패를 하나 꺼내서 독바로에게 주었다.
"이건 밀오패(謐汚牌)인데 너 줄게. 알다시피 너네 문파가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도 없겠지만 그냥 편하게 음식점 같은데서 가서 그걸 보여 주면 웬만한 곳에선 공짜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화한은 독바로의 패를 꼬옥 쥐어주었다. 그러자 다음 산두라는 노인이 반투명한 장갑을 독바로에게 주었다.
"이건 포천적양갑(怖穿寂攘匣)이라는 건데. 천잠사를 특수한 방법으로 더욱 얇게 뽑아 만든 장갑이란다. 착용하고 있으면 눈에 잘 뜨이지 않고 착용감도 뛰어나지 특히 검기로는 잘라 낼 수 없고 검강(劍强)이상은 돼야 자를 수가 있지."
"감사합니다."
하나하나 귀한 것을 받았지만 그저 가벼운 선물을 받은 듯 독고력은 머리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그 때 머리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나왔소. 문 좀 열어주시오.]
"우대가 왔나 보네요. 등 오라버니가 나가보세요."
"아 아닙니다. 제가 모시고 올게요."
독바로는 진법을 통과해 바깥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때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음 너는 누구냐?"
"헉."
그 곳에는 거대한 학 한마리가 날고 있었는데 그 위에 정갈해 보이는 백의를 입은 하얀 수염이 듬성난 노인이 앉아있었다.
그 거대한 학은 '천년홍학(千年紅鶴)'이라는 영수였다.
"저는 독... 독바로라고 하는데 싸싸부님의 제자의 제자인데..."
너무 놀라 횡설수설하는 독바로를 보며 노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 그래? 껄껄껄 난 네 스승의 아우이다. 만나서 반갑구나."
"예 사숙조님 반갑습니다."
그리고는 독바로는 하얀 수염이 난 노인을 데리고 진법을 통과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화한이 우대에게 이야기 했다.
"우대야 독바로에게 선물 했니? 우린 첫 만남이라 한가지 씩 선물 했는데."
"아 그래요? 음 그럼 저는 이걸 주면 되겠네요."
우대는 품에서 작은 목갑을 꺼내 독바로에게 주었다.
"생사귀혼단(生死歸魂團)인데 너도 이제 무림인이니 혹시 다치게 되면 그걸 섭취하거라. 우리 사문에서 나는 귀한 영약과 성삼 형님의 연단술(鍊丹術)으로 만든 약이다. 웬만한 부상은 다 회복시켜 준다."
"감사합니다"
"등 오라버니, 어떻게 2년 동안 편지 한 통도 안 보내실 수 있으세요? 제가 이렇게 짝도 없이 있는 게 누구 탓인데요."
우대와 독바로가 선물을 주고 받을 때 화한은 등광형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항상 냉막하고 지엄하게 생활하던 등광형이 난감한 듯 먼 곳을 보며 딴청을 부리면서 변명을 하였다.
“저놈을 가르치느라...”
“흥.”
등광형은 괜히 독바로에게 가서 수련하라고 이르며 보냈다. 수련장에서 받은 선물을 펼쳐보는 독바로는 저 멀리서 떠들썩한 소리를 들으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손님들이 다들 돌아갔다.
독바로의 오늘 하루는 뜬금없이 풍족한 하루였다. 그리고 싸싸부의 요고(?)도 알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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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대 조사 정거임(貞祛臨)은 시골 아주 작은 마을 산자락에 사는 나무꾼이었다. 대대로 나무꾼 집안이었던 정거임의 집안은 부유하지 않지만 소박하게 살아가는 정 많은 나무꾼이었다. 오늘도 그지없이 나무를 베러 올라온 정거임은 웃옷을 벗었다. 7척(1척=30cm)에서 약간 모자란 거대한 신체와 두툼하다 못해 터질듯 한 팔뚝과 가슴을 씰룩이며 도끼자루를 붙잡았다. 기실 정거임의 신체는 패웅지체(覇雄肢體)였다.
다른 나무꾼들 보다 많은 벌목량을 하는 정거임은 오늘 등지게에 벌목한 땔감을 지고 가까운 마을로 내려갔다. 당시 상황은 흉년이 들어 곡식이 귀한 상황이었다. 해서 많은 양의 벌목을 해도 넉넉한 곡식을 쉽게 구하기가 어려웠다. 먹지 못해 아사자들이 생기고 산 여기저기에는 도적들과 산적들이 기하급수(幾何級數)적으로 늘어갔다.
정거임은 겨우겨우 조금의 곡식을 구한 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그의 사랑스런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곰 한 마리와 여우 한 마리, 토끼 한마리가 살았는데 그 곳은 정거임의 세상 전부였다.
"정소소, 여보~ 나왔소."
집이 보이자 우렁찬 목소리로 가족들을 불렀다. 그런데 평소라면 아빠~하면서 품에 안길 이쁜 딸과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당은 여기저기 헤집어져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정거임은 별안간 불안해지면서 다급하게 집 문을 벌컥 열었다.
소박하던 그의 집안 풍경도 굉장히 어질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소..소소야..."
이제 5살이 되어 말도 이쁘게 하고 애교도 부리던 그의 딸이 싸늘하게 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기저기 구타를 맞은 듯 한 흔적과 겁간한 흔적이 남아 있는 그의 아내가 누워있었다.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괴성을 질렀다.
"으으으.... 으아!!!!!!!!!!!!!"
광분한 그는 도끼를 두 자루를 들고 산자락을 내달렸다. 얼마 전 시장에서 집 근처에 도적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산채에 도착한 정거임은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쾅 때려 부셨다. 안에서 사람들이 달려 나와 정거임을 둘러쌓다. 한 명이 앞장 나와 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의 정거임을 보고 더는 나서지 않았다.
"왠 놈이냐!"
"너희들이냐.“
정거임은 싸늘하게, 말을 건 사내에게 질문을 하였다.
"뭘 말이냐?"
"너희가 내 아내와 딸을... 우리 가족을....“
정거임이 슬픔과 화를 참으려 욱욱 눌러 말했다. 하지만 산적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하듯 서로 대화를 하며 떠들어댔다.
"혹시, 저기 밑에 있던 거기 말하는 거 같은데?"
"아, 그 년 살결이 야들야들하긴 했지 낄낄낄."
"그런데 머? 너 혼자서 우리한테 덤벼보기라도 할려고? 흐흐흐"
6척이 넘는 거대한 정거임이지만 이쪽은 백여 명의 무리를 짓고 있었다. 숫자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이곳에 홀로 쳐들어와 활개치고 있는 거인을 보고 비웃기 시작했다. 몸을 잔잔하게 떨던 정거임의 몸이 떨림을 멈추고 고요해졌다. 잠시 간의 침묵을 보인 정거임은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갑자기 달려드는 정거임에 놀라 주춤하던 그들은 허둥대다 폭팔적인 순발력으로 덮쳐오는 정거임에게 죽임을 당했다. 순수한 힘으로 오장 앞에 있는 그 개새끼들의 몸을 일격에 세로로 반 쪼개버렸다. 실로 놀라운 신력이었다.
”뭐, 뭐야?“
"야! 죽여버려."
"놈은 혼자다 죽여! 죽여!"
정거임은 상대가 칼을 찔러 와도 물러서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목숨이 위험한 곳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할 뿐 적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대신에 상대의 모든 걸 다 부수고 찢어버렸다.
"크아아앙!!!"
흡사 맹호가 울부짖는 듯 한 소리를 내며 산채에 있는 도적들을 양 떼 무리를 습격하는 사자마냥 여기 저기 휩쓸고 다녔다.
곧 그곳은 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의 도끼날에 쪼개진 적은 그나마 온전한 편이었다. 도끼머리에 맞아 터져버려 뇌수가 줄줄 흐르는 도적들도 있고 점점 도끼날이 무뎌지자 신체가 짖이겨져버렸다.
겁을 먹은 도적들은 달아나려 했지만 입구는 한 곳이었고 그 곳은 정거임이 날뛰고 있었다.
반 시진 후.
온 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뒤집어 쓴 정거임은 정신을 차렸다. 그 곳은 시산혈해(屍山血海), 대다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과 온통 붉어진 바닥 위에서 정거임은 울기 시작했다.
"흐으으그윽"
그저 순박하고 정 많은 정거임은 나무를 하며 아내와 딸을 보며 큰 욕심 없이 행복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정거임은 부러지지 않은 남은 한 자루의 도끼를 들어 생을 마감하려 하였다. 힘껏 자기 머리로 내려찍었다.
그 때, 어디선가 동전이 날아왔다.
쨍.
도끼를 날려버린 동전은 다시 주인에게로 되돌아갔다. 정거임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에는 뚱뚱하고 나 돈 많소 하는 부유한 차림의 노인이 서있었다 정체불명의 뚱뚱이를 보던 정거임은 잠시 후 기절해버렸다.
"쯧쯧쯧"
여기저기 부상을 많이 입은 정거임은 이대로 놔두면 과다출혈로 죽을게 분명했다. 품안에서 하나의 환과 꺼내 먹인 다음 점혈을 해서 지혈을 했다. 옷을 찢어 간단한 응급처치를 해준 다음 거구의 정거임을 들쳐 메고 산길을 내려왔다.
다음날 저녁이 돼서야 정신을 차리는 정거임은 눈을 뜨자 여기저기 밀려오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어디지?"
"일어나지 말게. 난 계팔저(繫捌抵)라고 한다네. 내가 자넬 데리고 왔네"
정거임은 정신을 잃기 전 동전을 던져 자신의 도끼를 쳐낸 의문의 돼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금 떠오른 자신의 가족과 어제의 참상을 떠올린 정거임은 돼지를 원망했다.
"왜 날 데려와 치료하셨소. 난 이제 살아갈 이유가 없는 몸인데."
"도적들을 그 꼴로 만든걸 보니 무슨 사연인지는 대충 알겠네만. 살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나."
"틀렸소. 내 가족들은 모두 죽고 나 또한 대량 살인을 해버린 범죄자니 살 가치가 없소."
"만약 가족들이 하늘에서 자네를 보면 정녕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길 원하겠나?"
"....그건"
"일단은 기운부터 차려보세."
그리고는 혼자 있을 시간을 주기 위해 계팔저는 밖으로 나갔다.
옆에 놓인 계팔저가 가져다 놓은 죽을 보면서 문득 배가 고픔을 느꼈다.
"흐으흐흐으"
너무 슬프면서도 배고픔을 느끼는 자신의 꼬라지가 웃기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정거임은 서럽고 이상하게 울었다.
다음 날. 싹 비워진 그릇을 가지러 온 계팔저는 정거임에게 말했다.
"자네, 내 제자나 해보겠나?"
"......예"
"좋네. 음 우리 문파는 정... 흠흠, 정신병자문일세. 난 3대 문주 계팔저이네"
그 날 부터 정거임은 계팔저에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무공을 배우긴 늦은 나이이긴 했지만 타고난 신력과 패웅지체를 타고난 정거임은 백년 전 부법으로 녹림을 통일했던 폭우부왕의 폭우패부(暴雨覇斧)를 익혔다. 정거임은 슬픔을 잊기 위해 무공을 매진에 또 매진하였다.
그리고 십년 후 강호에 두 자루의 도끼를 든 무인이 나타났다. 그 무인은 특히 민간인을 해치는 도적들이나 수적, 산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의 도끼질 한 번에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들썩이고 두 번의 도끼질엔 시체가 산이 되고 피가 바다가 되었고, 도끼질 세 번에 하늘이 쪼개진다 하여. 수라천부(修羅天斧)라 불리웠다.
그리고 삼십 년 후 정거임은 하나의 무공을 창안하였는데 멸절파천황(滅絶破天荒)였다. 무공을 창안한 후 무림행을 할 당시에 그의 부를 아무도 한 번을 받아내질 못하니 그 무공은 그 후로도 세인들의 무공 순위에 손꼽을 때 빠지지 않는 무공이 되었다. 하지만 정거임의 사후에 무공은 실전되어 점점 잊혀지다 전설상 가상의 무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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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자문 25대 조사 벽집수(綼輯秀)
그는 원래 길림성 토박이이자 5대 째 가업이 내려오는 골동품 가게 외아들이었다. 어렸을 적 부터 벽집수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물건들을 보면 바로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었다.
그런 그는 아버지가 일하고 계시는 가게에 놀러가 골동품들을 구경하고 깨끗이 닦고 분류하는 일을 정말 좋아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아버지의 가게에 나와 새로 들어온 물건들을 꼼꼼히 살피고 천으로 깨끗이 닦은 다음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의 푸른 장포를 두른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음, 혹시 여기에 이렇게 생긴 상자 없니?"
"아, 있습니다 손님 잠시만요."
손님이 보여준 그림에는 길다란 상자였는데 용이 상자를 따라 타고 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잠시 후 벽집수가 가져온 상자를 살피던 푸른 장포의 손님은 가격을 물었다.
"얼마니? 은자 3냥이면 후하게 쳐주는 것 같은데..."
"금자 2냥은 주셔야 되는데요."
"이런 빈 철 상자를 금자 2냥이나 달라고?“
마른 장작 같은 손님은 벽집수와 흥정을 시작했다.
"네. 보시면 알겠지만 이 상자는 희귀하기로 금강석보다 더하다는 자모철(紫摸鐵)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양을 음각한 연대로는 약 500년은 된듯하고. 아, 자모철이 먼지는 아시죠? 모르시면 알려드릴게요. 자모철은 독에 민감하기로 은보다 더한 금속이고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금속에 독을 떨어트리면 색상이 검게 변하는데 더 독한 독일수록 더욱 짙게 변한다고 합니다.“
어린 벽집수는 노련한 전문가처럼 유식하게 상자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을 하였다.
"호오. 어지간한 전문가들도 자모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어찌 알고 있니?"
"제가 어리다고 보는 눈마저 어린 것이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장사를 30년 째 하고 계신데 제가 웬만한 수집 전문가들보다 보는 눈이 더 낫다고 하셨어요."
자신을 자랑하며 우쭐해 하는 벽집수를 보며 장작은 굉장한 사실을 알려준다는 듯이 소곤소곤 말을 했다.
"그럼 이 상자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고 있니?"
"비밀이요?
"니가 만일 이 녀석의 비밀을 알아내면 금자 4냥을 주마."
"음... 맞추지 못하면요?"
"은자 3냥."
벽집수는 고민하였다. 사실 그는 아직 돈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진귀하고 귀한 물품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이 철 상자가 자모철이라는 것 외에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리고 어짜피 물품이 들어왔을때 은자 2냥에 매입하였으니 마음이 더욱 동하였다.
"네 좋아요. 대신 시간은 얼마나 주실 건데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마."
다음날 장포 노인이 어제 그 시간에 다시 찾아왔다. 이 노인의 이름은 후덕오(厚德悟).
"비밀을 알아냈니?"
"아뇨...“
밤새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 싶어 이모저모 뜯어보고 연구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 벽집수는 장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으음 그럼 은자 3냥에 내가 이 자모철로 된 상자를 구입하는 거다?"
"네. 대신 이 상자에 대한 비밀을 저도 알려주세요."
그러자 후덕오는 상자의 윗부분 한 쪽을 뜯어내고 한 변을 잘라 펼쳤다. 펼쳐진 자모철 상자의 안쪽에는 갑골문이 써져있었다.
"음. 독왕전설(獨往傳說) 극독지문(劇毒地文) 만혈지도(滿血地度). 이게 무슨 뜻이에요?
"오 갑골문도 읽을 줄 아는 게로구나. 사실 이 상자는 500년 전 독존의 지존신물이 묻힌 곳을 알려주는 보물지도야. 이 글귀에 숨겨진 장소에 가서 독존의 지존신물을 수습할 수 있지. 고금 제일의 독인이었던"
"우아~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물건의 숨겨진 비밀과 그것에 따른 지식. 딱 벽집수 취향저격 제대로였다. 어떻게든 같이 따라가서 독존의 무공이 실존하는지 보고 싶었고 자신도 이런 경험과 지식을 더욱 배우길 갈망했다. 그때 후덕오가 벽집수에게 권했다.
"날 따라오면 같이 공부하고, 여행도 하고,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데 나를 따라갈래?"
"네"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는 벽집수
그 날 그렇게 그는 어렵사리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후덕오를 따라갔다.
벽집수는 그렇게 정신병자문에 가게 되었다.
벽집수가 정신병자문의 무공을 배웠다. 그는 선조들의 무공, 모아둔 영약과 신병이기들을 보고 탐욕에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진귀한 보물들을 보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벽집수는 무공에 흥미가 생기자 다른 무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모든 무공과 영약 그리고 신병이기들을 수집하였다. 대대로 내려오던 그 많던 재물을 과거 11대 문주 산동부(㦃蝀部)가 108개의 안가를 짓느라고 다 탕진한 이후 그 전보다 훨씬 많은 물건들과 재물을 모았다.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많은 무공들을 모으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지역문파의 독문 절기부터 시작했고 15년이 흘러 이제 남은 곳은 대문파들. 만정신공 7성에 오른 다음 소림의 장경각(藏經閣)과 마교의 천마고(天魔庫)까지 털었다. 그 계획의 횟수는 자그마치 5년. 적으면 적다고 할 수 있고 많다고 하면 많은 시간이었다. 오로지 수집만을 위해 열정을 바쳐 도둑질을 하였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만정신공 8성에 이르렀다. 쉬지 않고 무공 수련을 한 결과였다. 이제 남은 곳은 단 한 곳. 황실의 황룡서고(黃龍書庫)뿐.
집념에 불타오르며 도둑질에 열정을 활활 태운 벽집수. ...7년 후.
"크하하하하 천하에 내가 가져 보지 못한 것은 없구나."
국가에서 그를 수배 내렸다. 그가 가져간 엄청난 물건들과 재물들을 옮긴 수단은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최근 몇 십년간 전설의 대도 귀탈투도(鬼奪偸逃)에 대한 현상금은 무려 황금 1백관이었다. 그가 이렇게 잘 피해 다닐 수 있었던 건 11대 문주 산동부의 108안가 덕이 컸다.
"이제 중원에선 더 모을 만 한건 없고. 이제 새외로 가볼까?"
그리고 20년 뒤 백발의 노인이 된 그는 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
"너는 이제부터 정신병자문의 26대 문주다."
아이에게 무공 수련을 3년간 시키더니 들고 있던 서책을 놓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새로운 이세계로 가는 방법이라... 그곳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기대감에 벅찬 벽집수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