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魔敎)는 대륙에서 가장 큰 땅인 신강에 위치한다. 그중에서도 십만대산(十萬大山)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이 마교는 정작 교인들에게는 신교(神敎)라 불리운다. 이 7개의 세력 중 가장 영향력있고 대표하는 교단이 천마교(天魔敎). 따라서 신교의 전체를 칭할 때는 천마신교(天魔神敎)라 불렀다.
이러한 신교는 7개의 서로 각기 다른 교리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각 교단마다 대표하는 가문이 있었으니 마도칠세 혹은 7대세가라 불렸다. 그 이름은 천마교의 호천신가(護天神家), 현교(祅敎)의 사사신가(寺社神家), 명교(明敎)의 밀영신가(謐影神家), 일월교(日月敎)의 승일신가(昇一神家), 마나교(魔拿敎)의 마나신가(魔拿神家), 배화교(拜火敎)의 배화신가(拜火神家), 혈사교(血嗣敎)의 혈천신가(血天神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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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고 거대한 크기의 세가. 이곳은 천마신교의 7세력 중 세력이 가장 강하고 교주를 많이 배출한 마도의 절대 가문 호천신가(顥天神家). 이 호천신가의 연무장에 5살배기 아이가 목검을 들고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5년 전, 호천신가의 가주인 라부노(邏不咾)가 데려온 아이. 가주가 홀연히 아이를 데려와 양아들이라 말했을 때 세가의 사람들은 소란스러웠다. 수근대는 사람들을 보며 어쩌다 밖에서 생긴 아이라고 하였고 그 외에 어떤 것도 묻지 말라 하였다.
하지만 호천신가의 안주인 유발휘(蹂勃諱)는 갑자기 남자아이를 데려와 양자를 삼으니 딸만 낳은 자격지심(自激之心)에 아이에게 구박만을 주었다. 그리고 밤마다 가주를 들들볶아 아들 둘을 더 낳았다. 때문에 호천신가의 사람들은 유발휘의 눈치를 보느라 독고력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어미도 없이 보모 손에서 서자로 자란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 아이답지 않게 투정부림 없이 묵묵히 무공을 배우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독고력(獨孤靂).
그런 독고력을 가르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흑야대(黑夜隊) 대주, 흑의혈신(黑衣血神) 문창(捫摤)
차가운 인상의 문창이지만 팔짱을 끼고 묵묵히 독고력을 바라보고 있다. 독고력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혹독하게 가르치는 자신의 수련에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업둥이 출신만 아니라면...’
(자기 집 문 앞에 버려져 있었거나 우연히 얻거나 하여 기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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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력은 어릴 때, 유발휘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유발휘에게 잘 보이려고 부던히 노력을 했었다. 어느 날 유발휘가 외출하기 위해서 치장 전에 장미를 담근 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독고력은 잘 보이고자 어머니께서 즐겨 입으시는 초구(貂裘, 담비 털로 만든 겉옷)와 이추(귀걸이)를 미리 준비하려 방 안 곳곳을 뒤적였다.
유발휘는 목욕 후 방으로 돌아왔을 때 독고력이 방안을 온통 헤집어 놓았자 성을 내며 아이의 뺨을 때려버렸다.
짜악-!
위이이잉~
독고력은 화끈 거리는 통증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귀에서는 이명 소리가 들려 화를 내는 유발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독고력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랐다. 나중에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화를 낸 연유가 방안을 어지럽혀서 인 것을 안 독고력은 다음부터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독고력이 어릴 땐 어느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많아 집안을 신나게 돌아다녔었다. 그러다 라부노의 생일날, 가주전에 있는 납금박산로(納金博山爐, 황금을 입힌 향로. 신선이 사는 산 모양을 닮았다.)를 깨트렸다. 그 자리에는 가주와 유부인, 세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유부인은 바로 독고력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근본도 없는 것이...”
생일잔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해졌고 유부인이 어린 아이에게 과한 손찌검을 하였지만 아무도 나서서 달래 주는 사람이 없었다.
독고력은 멍하니 주변을 보았다. 사람들이 얻어맞은 자신을 보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말도 걸지 않았다. 그저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를 맞은 독고력은 부끄러움과 자괴심이 몰려왔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가버렸고 독고력은 마음의 큰 상처를 받았다.
독고력은 그날 저녁부터 연무장(演武場) 주위를 돌았다... 그냥...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걸었다. 계속...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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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옛 생각을 한 흑야대주는 저 멀리에서 이곳을 쳐다보는 사람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한차례 끄덕였다.
그 곳에는 다름 아닌 호천신가의 가주, 뇌극마제(雷極魔帝) 라부노가 있었다.
사실 라부노는 늘 독고력을 없는 듯 무시하고 관심이 없는 척 하였지만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흑야대주 문창은 가주의 은밀한 청을 받고 독고력을 수련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주 자신은 아무도 모르게 벌모세수(伐毛洗髓)도 해주고 밤에 몰래 추궁과혈(推宮過血)도 직접 해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항상 말과 태도는 차가웠다. 매번.
라부노는 일부러 독고력에게, 이 어린 아이에게 다그치고 매몰차게 대했다. 아무 기반도 없고 지지세력도 없는 아이였기에 정을 줘서는 안됐다. 혼자인 이 아이가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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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지거라. 그것만이 네가 살길이다.”
독고력은 라부노가 자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준 말을 곱씹었다.
문창은 첨엔 그저 가주의 명을 받고 독고력에게 아무 사심없이 의무적으로 기본적인 수련을 시켰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날 동안 독고력의 재능과 근성을 보고 감탄을 하였다.
독고력은 무공에 익히기 위해 태어났다는 양극신무지체(陽極神武之)를 지니고 있었다. 그 어떠한 것이든 범인(凡人)들에 비해 수십 배나 빨리 익히고 한 번 보고 익힌 것은 절대로 잊거나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독고력의 근성은 문창의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엄청났다. 손에 물집이 터져 쓰라릴 텐데도 짓물러져서 손이 아예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목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같은 사람은 최고가 되기 쉬웠다. 그리고 독고력에게는 그 재능과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마음을 고쳐먹은 문창이 독고력에게 물었다.
“도련님은 어떤 무인이 되길 원하오?”
“...제일 강해지고 싶어.”
"제가 도와 드리겠소."
‘도련님의 재능과 열정이라면 아마....’
그 후부터 수련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창은 독고력에게 수련을 가르치며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엄하게 말했다.
“연무장 50바퀴를 뛰어라.”
독고력은 5바퀴가 채 되지 않아 숨을 헐떡이고 10바퀴가 지나고 나서 쓰러질 듯 비틀거렸지만 끝까지 50바퀴를 다 뛰었다.
“허억.. 허억...”
“허리 숙이지 마라. 상체를 꽂꽂이 펴고 숨은 가늘고 길게 쉬셔야 한다.”
문창은 한식경도 채 기다려주지 않고 한 자루 목검을 들고 도를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호천신가는 대부분의 무인이 도를 주 병기로 사용했다. 때문에 문창 역시 도를 사용하였는데 문창은 도의 파지법(把指法)을 알려주었다. 검과 도의 파지법은 다르다.
“도와 검은 같은 단병(短兵)이라도 그 익히는 법은 완연히 다르다. 흔히 이르기를 '도는 맹호와 같고 검은 날으는 봉황과 같다'고 하는데 이는 도에는 용맹한 힘이 필요하고 검에는 가볍고 날쌘 재주가 필요하다는 뜻의 말이다.”
“예”
“백일도(百日刀). 천일창(千日槍). 만일검(萬日劍)이라고 해서 도가 약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익히기 쉽기 때문에 더욱 높이 올라가기 어려운 점은 사실이지만 평범함과 단순함이 큰 무서움이 되는 법이다 그것은 후에 경지가 올라가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문창은 독고력의 손가락을 고쳐주며 도(刀)의 10요결(要訣) 벽(劈), 료(寮), 괘(掛), 자(刺), 소(掃), 란(亂) 등을 알려주었다.
문창은 검을 들고 직접 시범을 보였다. 검을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내려치며 하파(下破).
"직도황룡(直道黃龍)"
검을 좌에서 우로 주욱 그으며 옆으로 후려치면서 평참(平斬).
"횡소천군(橫掃千軍)"
그리고 앞으로 나아며 검을 쭈욱 뻗어 찌르는 전자(前刺).
"선인지로(仙人之路)"
문창은 독고력을 돌아보며 말했다.
“삼재검법(三才劍法)이라는 것이다. 모든 검술은 가로베기 세로배기 찌르기 3가지가 합쳐져서 검술이 된다.”
휘익- 휘익- 휘익- 휘익- 휘익-
“검을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지점, 같은 선.”
휘익- 휘익- 휘익- 휘익- 휘익-
문창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움직임으로 궤적을 그렸다. 마치 허공에 선과 점이 그어져 있는 것처럼.
“자, 가로베기 천 번, 세로배기 천 번, 찌르기 천 번 해라.”
독고력이 흩트러질 때마다 문창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윽박질렀다.
“소초가식(小招佳式), 작은 동작이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대충할 생각 말고 사력을 다해라.”
독고력은 대답할 힘도 없어 그저 고개를 힘겹게 끄덕일 뿐이었다.
어린아이가 하기엔 과도한 수련이었지만 문창은 무표정한 얼굴로 독고력을 쳐다보았다.
독고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목검을 쥐고서 문창이 시킨 대로 묵묵히 검을 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은 비오듯 흐르고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어깨는 끊어질 듯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2시진이 지나 목검이 힘없이 흐느적거렸지만 마침내 모두 해냈다.
하지만 묵창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쉴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이미 뜀뛰기와 검술 훈련에서 진이 빠진 독고력이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모든 무공의 힘은 하체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듯이 설명을 시작하며 시범을 보였다.
문창은 발을 어깨넓이만큼 벌린 다음 무릎을 굽히고 엉덩이를 낮췄다. 마치 투명한 의자에라도 앉은 듯 하였다. 마식보(馬式步)였다. 마식보는 무공을 익힐 때 누구든지 맨 처음 배우는 것으로 지구력과 하체단련을 위한 참춘법(站椿法)이다. 마식보에는 천자마식(川字馬式), 사평마식(四平馬式), 사평보(四平步), 마보법(馬步法)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는데 문창이 행하는 마식보는 그 중 가장 어렵고 힘든 간동기마식(艱動騎馬式)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팔을 정면으로 쭉 뻗은 다음 몸을 유지한 채 발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기 시작했다.
종아리의 근육이 두 개로 쫙 갈라지며 위아래로 솟았다 내려갔다 하였다. 무릎 바로 위의 허벅지 밑 부분은 볼록 솟아올랐다. 간단히 시범을 보인 문창은 물러나고 독고력을 보며 말했다.
“반 시진 동안 해라.”
그리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가만히 처다 보았다. 독고력은 묵묵히 기마자세를 취하였다. 곧 어깨, 허리, 허벅지, 종아리 등 온 몸에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발가락으로 땅을 꼬집는다고 생각하고 단단히 잡아라! 엉덩이를 낮춰라! 팔을 더 높이 들어! 발뒤꿈치를 더 높이 올려라! 무릎 사이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문창은 독고력의 고통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잘 못된 부분만 지적할 뿐이었다.
다음날 문창은 세가 근처 뒷산으로 독고력을 데려갔다. 그 곳에는 삐죽삐죽 돌이 많이 솟아 있는데 높은 곳에 밧줄이 묶여있었다.
이곳은 바람이 세게 불어 바람이 늑대처럼 할퀴고 간다고 하여 풍랑곡(風浪谷)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문청은 독고력에게 밧줄의 3분의 2지점까지 올라가라고 시켰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바람은 더욱 거세게 느껴졌고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독고력은 죽을 맛이었다.
밧줄에 매달린 지 반각(半刻)도 되지 않았지만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바닥에서 불이 나는 듯 싶었다.
“강해지고 싶다고? 버텨라”
독고력은 이를 꽉 물었다.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어린 아이가 어찌 이렇게 독한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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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력 어릴 적 비사(祕史)
어느 정통무가, 이곳은 천마신교의 7세력 중 호천신가(顥天神家)와 더불어 천마교를 따르는 방패문(防牌門).
조용한 장원(場院)에 검은 복장에 왼쪽 가슴에 붉은 호랑이가 그려진 무복을 입은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칼을 꺼내들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殺戮)하였다.
“으악.”
“왠 놈들이냐! 정체를 밝혀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로써 방패문은 사라진다.”
그 시각 장원 안의 어느 방.
방패문의 가주로 보이는 중년인이 아이를 데리고 침대 밑을 밀었다. 그리고 바닥을 여니 어린 아이가 웅크리면 딱 맞을 만큼의 작은 공간이 있었다. 중년인은 아이를 밀어넣고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조용히 숨어 있다가 사흘 뒤에 나오거라.”
쾅.
중년인은 아이의 마혈을 짚고 문을 닫았다. 침대를 원래 위치대로 밀어놓고 칼을 뽑아 들었다. 잠시 후 붉은 호랑이가 그려진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방 안으로 들이 닥쳤다.
“문주 목숨을 거두러 왔소.”
“흥, 어디 해보아라.”
나흘 뒤, 조용하고 담백했던 장원은 불에 타서 거슬림만 남았고, 곳곳에 시체들이 즐비하였다.
그곳에 죽립을 쓰고 검은 용이 그려진 곤룡포를 입은 중년인이 찾아왔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낮은 소리로 탄식을 하였다.
“아아, ....늦어서 미안하네.”
끼익.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죽립을 쓴 중년인은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침대를 밀어 바닥을 여니 그곳엔 한 아이가 퉁퉁 부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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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어느덧 독고력은 9살이 되었다. 매일같이 하는 지독한 수련 덕인지 어린 아이에서 제법 소년티가 나기 시작했다. 문창을 닮아 무표정하고 고집있어 보이는 눈매를 가졌고 일자로 꽉 다물어진 입매는 열릴 줄을 몰랐다.
여전히 문창은 묵묵히 팔짱을 끼고 서있었고 독고력은 수련 중이었다. 여전히 지독하리 수련을 임하는 독고력은 새벽에 일어나 세가의 기본 심공인 백환심공(帛煥心空 : 비단같은 불꽃)을 1시진동안 수련하고, 연무장으로가 달리기를 하였다.
달리기는 쇠공을 달고 100바퀴를 뛰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허리를 펴고 숨을 가늘고 길게 쉬었다. 처음에 한 근짜리를 달고 뛰더니, 점점 무게가 늘어 지금은 3근짜리 까지 달고 뛰고 있었다. 달리기가 끝나고 난 후에는 바로 검법수련을 했는데 아직 삼재검법을 수련 중이었다.
목검에서 철검으로 바뀌었고, 철검을 휘두를 때마다 소리가 제법 매서웠다. 그리고 각기 3천 번씩 휘두르는데 흐트러짐 없이 일정하게 휘둘렀다. 철검은 앞에 놓인 두꺼운 철판을 두드렸는데 한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었다. 단단한 철판을 내공 없이 순수 근력으로 파는 것은 불가능 해보였지만 지난 몇 년간 수백자루의 목검과 철검을 박살내고 한 곳만 때린 결과 한 치나 파여 있었다.
기마자세는 하루 2시진도 거뜬히 하였고 풍랑곡에서 몸에 모래주머니를 매단 채 한 시진동안 줄에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독한 수련을 하지만 지난 수련기간 동안 독고력은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문창이 시키는 대로 수련을 하였다. 수련을 하다가 다치거나 무리하여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늘 서고에 박혀 서책을 읽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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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력이 호천신가에 온지 5년이 지난 10살이 되던 해에 마찬가지로 수련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천마신교가 있는 서북(西北)지역은 여름이면 매우 덥고 건조하다. 때문에 여름이 되면 땀을 비 흘리듯 하는 독고력이었다. 발목에 쇠공을 달고 100바퀴를 뛴 독고력은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지만 온 몸의 근육이 움틀되고 있었다. 그런 오밀조밀한 근육 위로 흐르는 땀을 닦던 때였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독고력 앞에 그늘이 지었다. 문창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에게서 백합의 향이 흘렀다.
소녀는 수건을 독고력의 머리 위에 씌워주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
독고력은 멀뚱히 그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 소녀는 너무나도 흰 피부를 가졌기 때문일까 주변이 거멓게 변해버리고 그 소녀만 하얗게 빛이 나는 듯 했다. 신기할 정도로 크고 동그란 눈은 사슴같이 초롱초롱하였다. 그 소녀는 작고 빨간 입술로 대답 없는 독고력에 다시 말을 걸었다.
"너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수련하는 거야?"
"나 알아?"
"그럼 호천신가에서 너 모르면 간첩이지. 매일 아침을 차려주는 숙수(熟手)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저기에서 가부좌를 틀고 내공 수련을 하고, 오전에는 하루 종일 기마자세를 하고 있잖아. 오후에는 발목에다 쇠공을 차고 연무장을 돌고 저녁에는 풍랑곡으로 가서 밧줄에 매달려 있는거."
"······"
하긴 그랬다. 매일같이 요란스레 수련하는데 모를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녀는 여전히 말이 없는 독고력에게 다시 말을 붙였다.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넌 나 알아?"
절레절레. 독고력은 고개를 저었다.
"훗, 그럴 줄 알았어.“
”...“
”내 이름은 라나장이야.“
”...“
라나장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호천신가의 가주의 장녀이자 후에 강호 십이화중 마중화(魔衆花) 또는 마화라 불리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고력은 수건을 소녀에게 돌려주고 무심하게 돌아섰다. 라나장은 아주 간단히 자신을 무시하는 독고력을 보고 허리에 양 쪽 손등을 얹었다.
독고력은 풍랑곡 한 켠에 매여 있는 밧줄에 매달려 수련을 했다. 하지만 이내 집중이 되지 않아 수련을 중도에 쉬었다. 처음있는 일이었다. 수련을 멈추게 된 이유는 라나장이 생각 난 것이다. 독고력은 이내 고개를 휙휙 저었다.
‘수련에 집중하자’
다음 날도 소녀가 찾아왔다. 독고력에게 수건과 물을 건네주었지만 받지 않았다. 라나장은 발끈하며 소리 질렀다.
”야! 가져온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부탁한 거 아니잖아“
되려 차분하게 대답하자 할 말을 잃은 소녀는 말을 흐렸다.
”아니 그건 그렇지만...“
”아는 체 하지마.“
그리고 독고력은 풍랑곡으로 사라졌다. 라나장은 사라지는 독고력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라나장이 수건과 물을 가져왔다. 여전히 독고력은 아예 대 놓고 무시를 하였다. 하지만 라나장은 넉살좋게 말을 걸었다.
”나랑 말하기 싫어?“
”...“
”나랑 친해지기 싫어?“
”...“
독고력은 몸을 풀고 충분히 쉰 다음 대답도,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냥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동안 라나장은 물과 수건을 가져왔다 혼자 말하고 무시당하고 그대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라나장은 풀이 죽은 얼굴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물과 수건을 가지고 독고력에게 향했다. 라나장은 연무장을 걸어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하필 독고력의 지척에서 넘어졌다.
독고력은 황급히 넘어지는 라나장의 몸을 두 손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독고력이 받친 손의 위치가 애매했던 것이다. 한 손은 어깨를 잡았지만 한 손은 가슴에 짚었던 것이다. 서로의 얼굴까지 한 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로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독고력이 라나장을 옆으로 던지듯이 밀었다.
”꺄“
”......“
두 사람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마냥 붉게 물들었다. 라나장은 두 팔을 교차해 양 어깨에 얹고 빽 소리를 질렀다.
”책임져!“
”뭐,뭐,뭘?“
독고력이 말을 더듬으면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내 몸을 더듬었잖아!“
”그, 그러니까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예의 차갑고 무심하던 독고력의 색다른 반응에 라나장은 재미를 느꼈다. 더욱 놀리고 싶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독고력과 대화를 나누고 싶고 친해지고 싶었다. 눈을 동그랗게 부라리고 짐짓 화난 척 윽박질렀다.
”그래서 책임 못 지시겠다?“
”우린 의붓남매야.“
”그게 머가 어때서. 순수 혈통을 지키네 머네 하면서 근친혼도 하는데.“
조금 숨을 돌리자 다시 차분해진 독고력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찾아오지마.“
독고력이 한 마디하고 돌아서서 풍랑곡으로 돌아갈려고 했다. 라나장은 독고력의 등을 보고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께 다 이를 거야.“
”......“
독고력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멈춰선 독고력을 향해 걸어간 라나장이 맞은편에 서서 두 눈을 보며 말했다. 독고력 또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인상을 찌푸렸다. 라나장은 한발 물러서는 척을 했다.
”알았어. 대신 앞으로 나를 보면 인사하고 내가 가져다주는 물과 수건을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면 안 이를게.“
”......“
”이를 거야.“
대답이 없자 다시 을렀다. 독고력은 잠시 뜸을 들여서야 대답을 하였다.
”알았어.“
그 날부터 독고력은 라나장에게 ‘안녕’, ‘고맙다’라는 말을 했지만 여전히 쌀쌀맞게 행동했다.
독고력은 그렇게 매일같이 찾아와 물과 수건을 가져다 주는 라나장을 보았다. 호천신가 가주의 딸이 자신에게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