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력은 놀라운 치유력을 보이며 상처를 아물게 하였다. 선천적인 체질과 어릴 때부터 수련한 외공에 이러한 장점이 있는 듯 했다. 문창은 독고력이 다 회복하고 다시 움직일만 하자 재차 곤륜산으로 향했다.
문창은 이번엔 뽀죡한 바위가 많이 솟은 곳에 독고력을 두고 떠났다. 역시 보름 뒤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이곳은 묵백랑(黙白狼)들의 서식지였다. 묵백랑들은 보통 늑대들에 비해 3,4배 큰 송아지만한 크기의 늑대들로 그 흉성이 지나치게 사나왔다. 수백 마리 무리지어 살고 있었고 묵백랑이 뭉쳐져 있을 땐 다른 영수들 또한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묵백랑은 날카로운 이빨은 호랑이의 목뼈도 단숨에 부러트릴 만큼 거세고 발톱은 바위를 잘라버릴 만큼 날카롭고 강했다.
후각이 예민한 묵백랑은 자신의 영토에 낯선 냄새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먼 곳에서 낯선 냄새를 풍기는 먹잇감을 노려보았다. 이내 자신의 무리에 동족들을 부르러 갔고 수백 마리의 묵백랑이 독고력을 에워쌌다.
독고력은 도망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 묵백랑을 이겨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도망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
수백 마리의 늑대가 울음을 터트렸다. 늑대들은 조심스러웠다. 독고력의 기세나 몸에서 풍기는 저 기분 나쁜 냄새는 자신들이 상대하기 꺼리는 지극묵독사의 냄새가 배여 있었기 때문이다. 묵백랑 사이에서 고고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보였다. 다 자란 소보다도 훨씬 큰 엄청난 크기의 늑대였다. 그 늑대의 정체는 묵백랑의 우두머리인 흑혈랑(黑血狼)이었다. 희고 검거나 칙칙한 회색 빛 색깔의 털을 가진 묵백랑 가운데 검고 붉은 털을 가진 흑혈랑은 수백 년에 한번 씩 태어나는 돌연변이 같은 영수였다.
어미의 뱃속에 배였을 때부터 어미에게 굉장한 식욕을 불러일으키게 해서 끊임없이 먹이를 탐하게 만들고 그렇게 먹은 어미가 바짝 마를 정도로 영양분을 빼앗아 뱃속부터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흑혈랑을 어미는 차마 낳을 수 없어, 흑혈랑 스스로 제 어미의 뱃속을 갈라 나오는 마수였다.
”크르르르“
흑혈랑은 자신의 영토에 침입한 저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못 마땅했다. 콧잔등을 잔뜩 찡그리자 날카로운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앞 발로 바닥을 긁으며 적의가 가득담긴 울음소리를 토했다.
”크르르 커엉!!“
흑혈랑의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산 속에 메아리를 타고 울려퍼지자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독고력을 향해 덮쳐갔다. 하나하나 큰 크기의 늑대들이 독고력을 할퀼 때 마다 피부가 찢겨지지는 않았지만 굉장한 충격을 주었다. 독고력은 묵백랑의 발을 몸에 맞다보니 속이 울렁거리며 토를 할 것 같았다. 아직 외공이 내부의 장기들까지 단련하지 못 해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독고력은 달려드는 늑대 하나하나 잡아채가며 광투공을 발휘했다. 광투공을 발휘하는 독고력도 마치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았다. 늑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손가락을 세워 눈을 찔렀다. 등 뒤에 올라타 목을 졸랐으며 다리를 낚아채 부러트렸다. 묵백랑들은 자신의 동족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며 피를 흘리면 더욱 광폭하게 달려들었다. 처절한 생존 싸움 두 번째, 늑대들과 인간이었다.
독고력은 특히 영리하게도 무리 속에서 기회를 노려가며 자신을 노리는 흑혈랑이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였다. 사투가 벌어진지 2시진이 지났을까 점차 힘이 빠져 속도가 느려진 독고력을 향해 흑혈랑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흑혈랑의 위치를 놓쳐버린 독고력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몸을 휘청거렸다. 도검불침을 이룬 독고력의 등에 상처를 입힌 흑혈랑은 발톱에 묻은 피를 혀로 핥탔다.
비록 공격을 당할 때 몸을 틀어 큰 피해를 줄여 상처는 얕았지만 피를 흘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피를 흘리게 되면 체력이 더욱 빠르게 소모되기 때문이다. 화끈거리는 등의 상처에 독고력은 흉폭한 야성을 터트리며 더욱 거칠게 묵백랑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흑혈랑이 재차 기회를 노리고 공격을 했지만 이미 방비를 하고 있던 독고력이 흑혈랑의 앞발을 막았다. 하지만 거대한 흑혈랑이 빠르게 달려드는 힘을 담은 앞발을 다 막아내지 못한 독고력은 저만치 날아가렸다. 독고력의 얼굴에는 흑혈랑의 발톱 자국이 흉하게 가로질러 있었다.
”크크크크크“
독고력은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묘한 흥분감에 웃음을 흘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치 술을 마신 듯이 기분이 좋아지고 온 몸에 활력이 돌았다. 저릿저릿한 팔의 감각에 묘한 쾌감마저 주었다. 무아지경(無我地境)에 접어 든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그러다 보면 억지로 임하지 않고 즐길 때 어느 순간 머릿 속에 꽃이 핀다. 머리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강한 쾌감을 준다. 그 쾌감을 승화시켜 몰입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적멸된다. 그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느려 보이고 신천지(新天地)에서 홀로 움직이는 경험을 한다.
독고력의 상태가 그러했다. 흙먼지 속에서 일어난 독고력이 웃음을 터트리자 흑혈랑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공격을 하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렸다. 앞발로 땅을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몸은 나아가지 않았다. 뒷발에 잔뜩 힘을 주고 웅크리며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뒷발이 반대로 힘을 가하면서 땅을 박차자 흑혈랑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독고력은 순식간에 10여 장을 좁혀오는 흑혈랑을 침착하게 보고 있었다. 독고력의 눈에는 흑혈랑이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른쪽 앞발이 위로 치켜들었다가 아래로 주욱 그어졌다. 하지만 독고력을 맞추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독고력은 앞발을 피해 흑혈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흑혈랑은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독고력을 떼어 놓기 위해 몸통을 이리저리 굴렸지만 쇠공마저 우그러트리는 독고력의 손아귀는 흑혈랑의 털을 잡고 놓지 않았다.
독고력은 흑혈랑의 왼쪽 앞발 어깨와 목을 한꺼번에 감싸 쥐고 강하게 힘을 주었다. 내공과 외공을 수련한 독고력의 힘은 범인들의 수십 배나 강력했다.
으드드득.
흑혈랑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세게 조여오자 고통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르렁~!“
울음소리를 들은 묵백랑들이 독고력을 물고 할퀴고 때렸지만 독고력은 결코 흑혈랑을 놓치지 않았다. 흑혈랑은 피와 숨이 막혀 이내 시야가 흐릿해지고 힘이 빠지자 땅으로 엎어져버렸다. 무거운 무게가 독고력을 내리 눌렀지만 오히려 묵백랑들의 공격을 막아주고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우둑. 우두둑.
흑혈랑이 버티는 힘이 줄어들자 흑혈랑의 어깨뼈와 목뼈가 부러지기 시작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더욱 힘을 주자 흑혈랑은 질식해 죽어버렸다. 괴사였다. 사람이 흑혈랑을 화살로 쏜 것도, 칼로 벤 것도 아닌 팔로 감아 졸라 죽인 것이다. 묵백랑들은 흠칫 했다. 자신의 우두머리가 죽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흑혈랑 밑에서 기어나온 독고력은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묵백랑들은 우두머리가 죽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묵백랑들은 단체 생활을 하는 조직적인 마수들이었고 우두머리 흑혈랑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흉악한 기세로 독고력을 에워쌓다.
독고력은 그런 상황에서도 희열(喜悅)이 가득 찬 얼굴로 자세를 납작 엎드리며 소리쳤다.
”허억허억, 덤벼 개새끼들아“
하루 뒤 무릎을 꿇어 앉은 독고력의 주위에 수백 마리의 늑대가 떼죽음 당해있었다. 짐승에 불과하지만 동족에 대한 의리가 굉장했다. 단 한 마리도 물러서지 않고 덤벼든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싸움도 독고력의 승리가 되었다. 보름의 남은 기간 동안 독고력은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주변의 늑대 시체를 정리한 다음 흑혈랑의 고기는 따로 발라내어 먹고 문창을 기다렸다.
이번엔 익혀서 먹을 수 있었지만 노릿한 산짐승의 맛은 어쩔 수 없었다.
독고력은 계속해서 곤륜산 정복에 나섰다. 다음은 열화편복이었다. 곤륜산맥의 화산 분출로 생긴 습곡융기 지대에 사는 동물이었다. 박쥐의 일종이지만 새끼를 낳지 않고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알을 낳는 장소가 문제였다. 바로 용암이 흐르는 곳 바로 옆에서 알을 낳고 그곳의 열기로 저절로 부화되게 한다고 한다. 용암의 열기에 견디기 위해서인지 피부는 단단해져 도검에도 잘리지 않고, 몸속과 발톱 등에 화열독(火熱毒)이라는 특이한 열독을 함유하고 있어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 무서운 마물이었다. 열화편복은 매우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 손으로 낚아채 찢을 수가 없었다.
독고력은 수만 마리의 열화편복을 하나하나 터트려 압살(壓殺)시켰다. 손과 발을 이용하는 것으로 모자라 열화편복을 물어서 씹었다. 강하게 질겅질겅 씹자 열화편복은 괴성을 질렀다.
”킈에에에엒~~“
다음은 산봉우리에 사는 설산신조(雪山神鳥)와 비응마조(飛鷹魔鳥)를 상대하였다. 공중을 굉장한 빠르기로 날아다니며 흑혈랑 못지않은 날카로운 발톱에 고전하긴 했으나 마찬가지로 독고력의 승리로 끝이났다.
이후로도 열양독을 가진 거대 두꺼비 삼목혈섬(三目血蟾),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입에선 독을 꽁무니에서는 강철처럼 질긴 거미줄을 뿜어내는 인면지주(人面蜘蛛), 신령호와 비슷하지만 흉성이 더욱 강한 마령호(魔靈虎), 거대한 이무기 과의 지극마룡(地極魔龍)까지 잡고 나서야 끝이 났다.
수십 번의 죽을 위기를 넘기며 독고력의 의지력과 생존 능력은 더욱 강해졌다.
또한 각종 영수와 마물들의 살코기를 밥 먹듯이 먹다 보니 주위에 지나다니는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독고력에게 공포를 느끼며 달아났다. 사람에 손에 길들어진 동물들은 엎드리거나 배를 뒤집어보여 복종의 자세를 취하였다.
매번 죽을 위기를 겪고 돌아오는 독고력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라나장 덕분에 흉흉한 기세를 흘리던 독고력이 사람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