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에서 섬서까지 가로 질러 올라가는 두 인형이 있었다.
한 명은 몸이 어느 장정 못지않지만 아직 얼굴에 어린 티가 났고 남자다운 몸과는 다르게 귀엽고 잘생긴 얼굴의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가진 황색 여행복을 입은 청년과 하얀 문사복에 얍삽해 보이는 수염과는 달리 깊고 그윽한 눈빛의 쥐를 닮은 중년인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유령이 걷는 듯이 상체의 흔들림 움직임이 전혀 없고 미끄러지듯 걸어가고 있었는데 여의신류를 사용 중인 독바로와 동길홍이었다.
독바로의 등에는 묵빛의 거대한 솥같은 궤짝을 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기다란 철죽이 꽂혀 있었다. 독
바로가 멘 궤짝 안에는 여러 가지 먹을 것과 옷가지, 염제창의 창두와 치우기 등이 담겨져 있었다.
이 궤짝은 묵중철(默重鐵)로 만들어진 궤짝인데 묵중철은 일반 철에 비해 다섯 배 가까이 무거운 쇠이다.
독바로의 궤짝의 무게는 150근(90Kg)으로 그걸 이고 광동에서 섬서까지 걸어가는 중이었다.
독바로는 즐겁게 여행이나 하는 기분으로 나왔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등에 메고 있는 궤짝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내공을 이용하더라도 몇 날 며칠 무거운 궤짝을 이고 걸으니 너무 힘들었다. 궤짝에 연결된 어깨끈이 어깨를 짓눌러 매우 고통스러웠다.
독바로는 구슬땀을 흘리며 여의신류를 펼치고 있는데 반면 동길홍은 정말 유랑하러 나온 듯 흥얼거리며 육포를 입에 물고 씹고 있었다.
"싸부 나도 그냥 이거 벗고 즐겁게 여행하면 안 돼요?"
"어허, 수련, 정신, 힘내라~"
건성건성 대답하면서 가지고 있던 판관필로 독바로의 머리를 툭툭 치며 저만치 걸어 나갔다.
독바로는 확 짜증이 났지만 머라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싸부를 따라 걸었다.
힐끔.
동길홍은 죽을 인상을 하고 있는 독바로의 얼굴을 보며 약을 올리듯 말했다.
"거 무겁지 않으냐?"
"몰라서 물으세요?“
독바로는 얄미운 동길홍에게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그러자 동길홍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딴죽을 걸었다.
"에잉, 무공 배워다가 어디다 쓰느냐~, 화경에만 올랐어도 그리 고생하지 않지 이 싸부를 보거라 화경..."
"아 예...예.."
약올리는 동길홍의 말을 끊은 독바로는 싸부를 쏘아보았다. 전설의 경지인 의형상인에 버금가는 눈빛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유자적한 동길홍은 독바로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화경에 오르려면 기초가 튼.튼.하여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이제껏 배운 공부를 다시 돌아보도록 해봐라"
독바로는 동길홍의 말에 힘든 상황 속에서 고통이나 잊으려고 처음 배웠던 것부터 다시 복기 해보았다.
물론 알고 있던 것들이었지만 그동안 익혔던 무공에 대해 다시 집중해서 생각했다.
'우리 사문의 무공은 만정신공에서 출발한다. 만정신공은 도가의 토납술에서 파생해서 호흡을 가늘고 길게 깊게 끊이지 않고...'
'녀석, 천재 아니랄까봐 금세 깨닫는구나 내 제자지만 무서운 놈이야'
동길홍은 푸근한 눈길로 자랑스러운 제자를 바라보았다.
'.... 여의신류는 행보여수, 낙각사채니... 흔들림없이 부드럽게 끊이지 않고.... 제천태견각 태극은 팔괘의 이치에 따라... 고려...신과 정이 합쳐지며 정신통일이 되어야 한다.. 금강... 강함과 무거움을 뜻하고 강맹하고 파괴되지 않는 남성을 상징한다.... 태백은 하늘과 땅 사이를 사람이 이어주는 올바른...'
"후욱. 후욱."
여의신류가 6성의 경지에 이르러 걸어가는 독바로의 발에선 주홍빛 기운이 초록빛으로 변하며 더욱 선명하게 대지를 찍었고 영롱한 기운이 터져나갔다.
여의신류가 6성으로 오르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잠시 동안만.
그렇게 몇 달 동안 걸은 두 사제는 섬서성의 성문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길홍은 성문을 비켜나가 조금 떨어진 곳의 대문에 이르렀다.
정문의 양 옆으로는 창을 든 두 무사가 갑옷을 입고 떡하니 서 있었다. 잠시 독바로는 밖에서 기다리고 동길홍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독바로는 밖으로 나오는 동길홍을 보며 말했다.
"싸부... 신세를 지신 분께서 무장(武將)이신가봐요."
"그래 아주 큰 신세를 졌지. 일단 우리 바로 밥부터 먹고 다시 올까?"
독바로는 먼가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밥을 먹자는 소리에 이내 헤실 거리며 싸부를 따라갔다.
인근 객잔에 들어선 두 사제는 음식을 시켰다.
"점소이 여기 잘하는 요리와 술과 안주거리를 내주게."
"저희 객잔에는 닭을 얇게 썰어 담백하게 우려낸 면 요리인 계사면(鷄絲麵)과 닭의 살코기를 발라 각가지 야채들과 매운 양념으로 볶은 신계소(辛鷄燒)가 제일 잘 나가고요. 술은 조조와 두보가 즐겨 마셨다는 두강주(杜康酒)가 일품입니다. 그걸로 드릴까요?"
"그러게."
곧이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계사면과 아직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벌건 신계소가 차례대로 나왔다.
안가 내에서의 거의 풀 종류만 뜯어먹던 독바로라 간만에 보는 고기 음식에 넋을 잃었다.
"흐르륵 쩝쩝. 싸부. 이거 쩝쩝. 하 죽이는데요."
"다 먹고 이야기 하거라 거 드럽게"
면 요리는 차분하게 먹는가 싶더니 신계소가 나오자 미친 듯이 입에 퍼 담는 독바로였다.
혓바닥을 알싸하게 지지는 맛을 느끼며 입술이 벌겋게 물들어갔다.
동길홍은 두강주의 뚜껑을 땄다.
뽕.
진한 주향(酒香)이 탁자를 가득 메웠다.
"너도 이제 거의 성인이니 주도(酒道)를 배워야 되지 않겠느냐."
"술이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지만..."
"자 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쪼로록..
탁한 빛깔의 두강주가 술잔에 채워지자 알싸한 술 냄새가 잔에서부터 올라오며 독바로의 코를 더욱 세게 찔렀다.
"어른과 마실 때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한 입에 털어 넣어라."
싸부의 말대로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두강주는 짙은 단맛이 남기며 목구멍을 부드럽게 넘어갔다.
속이 뜨끈해지면서 입 안에는 두강주 특유의 향을 남겼다.
싸부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은 독바로는 그렇게 첫 술을 두강주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두강주는 유령이 세 잔 마시고 3년간 잠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독한 술이었다.
다음날 지끈지끈한 머리와 울렁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독바로는 일어났다.
"으어어어어어"
"사람 소리를 내거라 네가 짐승이냐. 허허허 내공을 운용해서 주독을 몰아내면 한결 나을게다. 사내놈이 술이 그렇게 약해서야..."
아침은 뜨끈한 전복탕을 먹으며 속을 푼 바로는 궤짝을 짊어 메고 동길홍을 따라 어제 그 대문으로 갔다.
대문 앞 병사들이 두 사람을 막아서며 물었다.
"무슨 용건이요."
"천노(賤努)에 지원을 했다네."
동길홍은 눈짓으로 독바로를 가리키며 대답하자 그 말에 병사는 독바로를 힐끗 보더니 혀를 차며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르켰다.
"쯧쯧, 저리로 가보시오"
무사는 대문을 열어 두 사람을 통과시켰다. 동길홍은 병사가 가르쳐준 천막 밑으로 독바로를 데려갔다. 걸어가는 내 독바로는 동길홍에게 물었다.
"저 병사들이 우리를 왜 그렇게 쳐다보는거에요?”
“별거 아니다.”
“천노가 머에요?"
"천노란 노예병을 말하는 게다."
"....”
동길홍의 말에 독바로는 아직 남아있는 숙취 덕에 지끈 거리던 머리에서 먼가 섬광이 번쩍 지나간 듯 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독바로는 싸부를 보며 말했다.
“......설마 에이 설마요~ 싸부님 그죠?"
눈치가 빠른 독바로는 웃으면서 어금니를 물고 싸부를 보았다. 그리고 재빨리 튀려는 찰나, 어느새 독바로의 마혈을 짚은 동길홍은 궤짝을 옮겨 메고 독바로를 끌고 갔다.
'싸부... 싸부!!! 노예병이라니... 노예병!!!! 우리가 그지도 아니고 군대 보낼려면 장교로 보내주던가! 이 망할 노인네들 어쩐지 느낌이 쌔하더라니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오!!!'
”으으. 으으으으으으.“
아혈까지 짚어놨건만 격하게 반항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독바로의 얼굴은 핏발이 섰다.
"바로야 화경에 넘어서려면 무수한 경험이 중요한데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음... 조금 힘들겠지만 전선에 나가서 부디 다치지 말고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하거라."
”으으읍 으으.“
"음... 노예병은 탈영하면 참형에 처한다고 한다더구나. 거참. 우리 제자께서는 그러면 안 된다~"
엎어진 자세에서 분함과 억울의 눈물이 또르륵 흐르는 독바로였다.
반각 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버려진, 아니 남겨진 독바로에게 강압적인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 곳에는 검은 투구를 남자와 붉은 투구를 쓴 사람들이 있었다.
단촐하게 까맣고 빨간 투구의 양 옆은 턱선을 뒤덮어 귀를 보이지 않았고 앞이 보일까 싶을 정도로 눌러써서 눈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에게 하대를 하였다.
"천노들은 모여라!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이빨 보이는 녀석은 군령에 따라 벌을 줄 것이다."
"오와 열을 맞춰라!"
"앞 사람, 옆 사람 간격을 똑바로 맞춰라!"
다행이 시간 맞춰 마혈이 풀린 독바로는 일단은 줄을 맞춰 섰다.
곧 흑투를 쓴 남자는 자기소개를 하였다. 검게 탄 얼굴에 꽤나 큰 덩치의 사내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흑갈색의 몽둥이가 메여있었다.
"반갑다. 본관은 북방천로군의 광악(狂惡) 대병해라고 한다. 너희는 현 시간부로 은자 닷 냥에 몸을 판 천노병이 되었다. 너희들은 이제 이곳에서 짐승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 있는 적귀(赤鬼)들과 나 광악이 책임지고 너희들을 전장의 들짐승으로 만들어주겠다. 우리 훈련에 잘 따르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잘 따르지 않으면 이곳에 맞아 죽거나, 첫 전쟁터에서 죽게 될 것이다."
광악이 말하고 있을 때 였다. 어수룩 해 보이는 한 사내가 손을 들어 광악에게 질문을 하였다.
"저기 물어 볼게 있습니다."
"적귀."
광악은 대답대신 적귀를 불렀다.
"악!"
적귀는 광악의 말을 끊은 사내에게 몽둥이를 들고 달려갔다.
퍼퍽퍽.
적귀의 몽둥이에는 기운이 서려있었다. 잠시 후 몰매질을 당한 사내는 곧 숨이 끊어졌다.
"첫 사상자가 발생했다. 앞으로 본관의 말이 끝날 때까지 끊지 말도록 한다."
그러자 그곳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포와 혈기로.
광악은 계속해서 자기 할 말을 했다. 익숙한 듯, 마치 암기한 내용을 읊듯이 아무 감정 없이 말했다.
"첫째 본관이 물으면 관등성명을 댄다. 이곳에서 이름은 현재 선 열에 순서에 따라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1오부터 일, 이, 삼이다. 따라서 자열에 첫 번째 천노병은 이름이 자일 그다음 자이, 자삼이다. 이 이곳에서는 입대하기 전 이름 따위는 버려라. 이제부터 이것이 너희들의 이름이다. 따라서 본 교관이 부르거나 질문을 할 때 [천노병 묘칠] 이라고 말하면 된다. 둘째, 대답은 예가 아니라 악.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말의 끝은 다. 까.로 끝낸다. 셋째, 자살 또는 같은 천노병끼리는 죽여서는 안 된다. 넷째, 탈영하면 즉벌이다. 다섯째, 실전이 곧 연습이고 훈련이다. 훈련에 뒤쳐진 자는 죽음뿐이다."
대병해는 자기 할 말을 마치고는 뒤돌아서 사라졌다. 그러자 적귀들이 훈련병 주위를 에워쌌다. 그리고 맨 앞에 나선 적귀가 말했다.
"자 1열부터 본 적귀들을 따라온다."
그리고는 어디로 향하지 않고 바로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120명의 적귀들이 수백의 천노병들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터지고 어떤 사람은 팔이 부러졌다. 120명의 적귀들은 모두 무공을 수련한 자들인 듯 했다. 천노병들 중에 무공을 제법 익힌 자가 반항을 해보았지만 오히려 둘러싸이며 더 맞았다. 한 식경동안 폭풍처럼 흘러갔다. 독바로는 반항하지 않고 몸을 웅크리고 요령껏 맞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천노병들을 보며 말했다.
"본귀들이 질문이나 하명을 하면 대답을 악.으로 한다."
"악."
눈치 빠른 자들은 일어나면서 곧바로 악 대답하였다.
"그리고 대답소리는 크게 한다. 대답소리가 작아도 즉벌을 내린다.""
"아악!“
천노병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좋아 그럼 자 열부터 따라온다."
그제서야 만족스러운지 이번엔 정말로 적귀들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천노병들은 매질의 두려움에 몸이 아픈 것도 모르고 서둘러 적귀들을 차례로 따라갔다. 가다가 군수품을 챙기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적귀를 따라 막사로 도착한 독바로는 막사에 들어서자 다른 천노병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야 막 훈련이 끝난 듯 그들은 땀과 흙이 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적귀가 막사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본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적귀는 입구에 서서 누군가를 불렀다.
"막장(幕長)"
"천노병 막장 축제(丑制)"
천노병은 훈련병 기간 동안 십이지신과 번호로 부르다가, 훈련기간이 끝나고 첫 전투에서 살아남은 남으면 번호 대신에 글자 하나로 바꾸는 전통이 있었다.
생존에 대한 훈장 같은 것이었다.
훈련기간은 고작 한 달이었다. 천노병은 제대로 된 군수보급도 이뤄지지 않고 훈련도 대충 행군과 제식정도만 알려주었다.
천노병은 그저 화살받이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움직이는 인간 방벽.
북방의 태나라는 기병이 위주이기 때문에 천노병은 진형의 맨 앞에 서서 돌격해오는 기병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인간고기 방패 노릇을 하였다.
"신입들 인솔해라."
"악."
인솔을 마친 적귀가 나가고 고참 천노병들이 신입 천노병들을 보며 관심을 가졌다.
거친 분위기로 새로 들어온 신입 천노병들을 환영했다.
그중에 얼굴에 흉터가 사선으로 주욱 그어져 있는 남자가 가장 먼저 말했다.
"축팔이 누구냐?"
"천노병 축팔!"
"내가 축팔 기수였다. 내가 이뻐해주마 낄낄낄."
얼어붙은 신입 축팔은 딱딱하고 우렁차게 대답하고 험상궂은 얼굴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참들이 한마디 씩 했다.
"신입, 엉덩이 간수 잘해라. 따먹힌다 키키키."
"아 나도 첫날밤에 한 3명한테 밤새도록 따먹혔었지."
"이 새끼들아 빨리 자리에 가서 짐 풀고 식사 준비해."
"악."
그 때였다. 적귀들이 몽둥이질을 할 때 무공을 쓰며 반항해서 더욱 얻어 많았던 사내가 말했다.
날카로운 눈에 호리호리한 사내는 척 보기에도 제법 고집 있어 보였다.
"지랄들 하고 있네"
"역시 꼭 한명씩 나대는 놈이 있다니깐."
"풋 야 밟아."
기다렸단 듯이 고참 병사들이 신참을 향해 덤벼들었다.
신참은 꽤나 무공을 익힌 몸인 듯 몸을 놀렸지만 막사에 들어온 신병들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던 고참들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오래 구른 고참병으로써 다수로 한명을 조지는 노련함을 가졌다.
더불어 적귀에게 심하게 얻어맞아 부상당한 신참의 말로는 비참했다. 말 그대로 피떡이 되버렸다.
"그만그만 저 놈이 죽으면 곤란하다구. 죽어서 처벌받으면 우리만 피곤해 그리고 이놈들이 많아야 화살을 하나라도 더 가려지잖아."
신입을 신나게 때리던 축팔 기수라던 흉터 얼굴이 고참들을 말렸다. 그리고는 인상을 팍 쓰며 멍하니 얼어있는 신입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들 말이 좆같이 들려? 짐 풀고 식사 준비하란 소리 안 들려? 엉?"
"악."
첫 군기를 제대로 잡힌 신입들이 되었다.
독바로는 오는 길에 받은 군수 보급품을 재빠르게 풀어 정리하였다. 그러면서 팔자에도 없는 천노병으로 와서 아까 적귀들에게 맞은 몸 상태를 점검하였다.
이상하게 얻어맞기는 많이 맞았는데 일부로 과장되게 때린 듯 한 적귀 한 명이 의아했다.
상처도 겉피부만 상하게 교묘하게 때렸다. 그 적귀는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듯 꼭 달라붙어서 자신만 때렸었다.
'머지... 내가 무공이 강해서 그런가...'
잠시 고민을 하던 독바로는 아직 정신을 잃고 널브러진 반항신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리에 데려가 앉혔다.
약간의 의술을 아는 독바로는 기혈을 안정시켜주고 터진 곳을 지혈해주었다. 그러자 얼마 후 반항신입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는 못 믿겠다는 듯, 분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 반항신입에게 말을 붙였다.
”난 독바... 축구야“
”...축육 고맙다.“
”괜찮으면 우선 짐부터 풀어.“
아직 독바로도 혼란스러운 상태라 뭐라 위로의 말은 해주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말해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훈련의 시작은 아침에 뜀박질부터 시작했다.
어제 받은 나무 판때기 같은 방패 하나와 어느 뒷산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 같은 창을 들고, 갑옷인 듯 갑옷 아닌 갑옷을 입고 뛰기 시작했다.
몸에 무언가 걸치고 제대로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뛰면 상당히 숨이 가쁘다. 때문에 신입 천노병들은 얼마 달리다가 지쳐서 낙오하기 시작했다. 그런 신입들은 적귀를 봐야했다.
”뛰어라!“
”허억허억.“
천노병들은 다시 뛰었지만 적귀들은 따라 붙으면서 계속 때렸다. 대답을 안 했기 때문이다. 대답 소리를 듣고서야 몽둥이질을 멈췄다. 시간이 갈수록 뒤처지는 천노병들이 많았다.
적귀들이 다시 뛸 때까지 계속 때렸다. 뛴다고 뛰는데 뒤쳐지는 훈련병들 역시 몽둥이에 맞았다. 계속되는 몽둥이질에 결국 몇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작 아침 뜀박질에.
"전투 중에는 이런 뒤쳐지는 아군 한 명때문에 같은 편 10명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인이 살고, 동료들을 살리고 싶으면 뒤쳐지지 마라."
"악."
뜀박질이 끝나자 몽둥이질을 가혹하게 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지금 뒤쳐지는 한명을 때려죽이는 게 나중에 전투 중 10명이 살린다는 효율성 이유로 때려죽인 것이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오전부터는 제식에 대해 배웠다. 제식 중에 틀리면 단체로 얻어맞았다.
처음 만난 수많은 사람이 한 몸 같이 움직여질리 만무 했다. 다시 몽둥이찜질이 시작되었다. 훈련 시간이 끝나서야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되었다.
막사에 돌아온 고참이 제식 중에 신참들 때문에 얻어맞은 곳을 주무르며 말했다.
훈련 중에 간단한 것조차 실수해 다 같이 연대 책임을 받아 구르고 얻어맞은 그는 기분이 많이 안 좋다는 것을 험악한 얼굴로 표현했다.
"사람과 짐승을 빨리 가르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패는 방법이다. 안되면 팬다. 패다 보면 하게 돼있다. 그리고 돼도 팬다. 그럼 더 잘 하게 된다. 오늘 보충 훈련은 우리가 해주마. 오늘같이 멍청한 너희들 때문에 우리까지 피 볼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낮의 훈련보다 더욱 지독한 보충훈련이 시작되었다. 축삼이의 반항은 끝나지 않았다.
첫 날은 고참들이 축삼이를 제압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축삼이의 몸이 추슬러지자 무공이 고강한지 다수의 고참병들과 축삼이의 대결은 팽팽했다.
다음 날 아침 뜀박질 때 다른 막사의 신입 천노병들의 몰골 역시 말도 아니였다. 자신의 막사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며칠이 흘러 점심시간, 독바로는 배식을 받으러 갔다. 천노병들의 식사는 대부분 부실했다. 오늘은 멀건 죽 한 그릇이 나왔다.
다른 훈련병들의 죽에는 건더기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독바로의 죽에는 그나마 건더기가 많이 들어왔다.
독바로는 배식하는 적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적귀가 자신을 보며 윙크를 날렸다. 그 때 전음이 들려왔다.
[할 만하냐?]
독바로의 눈의 커졌다. 이 목소리는 독바로의 싸부 동길홍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독바로는 그 적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이게 머하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흠, 곧 있으면 훈련 종료인데 훈련이 끝나면 맨 뒤에 줄을 서거라]
독바로는 배식 순서가 밀릴 수 없어 배식판을 들고 자리로 갔다. 그리고 보니 첫 날 어떤 적귀가 자신을 팼는데 이상하게 다친 곳이 없다 했더니 싸부 동길홍이었나보다.
동길홍의 얼굴은 그간 독바로가 본 얼굴이 아니었다. 역체변용술로 감쪽같이 얼굴과 체형을 바꾼 동길홍은 이곳에서 적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배식 받을 때마다 들려오는 싸부의 가르침(?)에는 군 생활에서 최고의 행동지침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싸부한테 개기면서도 은근히 말을 잘 듣는 독바로다.
독바로는 막사에서 생활하면서 조용히 고참들과 신입들을 관찰했다.
마침 사문의 무공이 존재감을 지워주는데 좋은 은형귀영이 있었다.
우선 이 막사의 장(將)은 축제로 과묵하고 딱히 막사 인원들에게 관심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역할이라 막장(幕將)을 맡고 있을 뿐.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각을 깎고 있었으며 대체로 새를 조각했다.
그 다음 이 막사의 2인자, 부막장은 염소같이 생겼는데 특이한 목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부막장의 관등성명은 축하(丑河).
그리고 막사에 처음 왔을 때 축팔 기수였다고 말한 근육덩치 외눈박이는 축구(丑絿), 그리고 그와 친한 듯 농담 따먹던 사내는 축복(丑伏), 선임 고참 중 제일 막내이자 까칠한 축축(丑縮)외에 고참 11명과 신입 9명 총 20명이었다.
독바로는 축열의 아홉 번째였다. 그래서 훈련병 번호 소 아홉번째 축구(丑九). 그 외에 반항하던 무림 고수는 약 20살 중반의 나이로 축삼(丑三)이었고 축십(丑十)번 까지 있었고 축육(丑六)은 없었다. 죽은 모양이다.
고참들은 익숙한 듯 훈련하고 훈련이 마치면 도박을 하며 개인 수련을 하거나 쉬었고 신입들은 은자 닷 냥에 이런 미친 곳에 끌려와 지옥 같은 훈련을 보내는데 적응하느라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 훈련 기간이 끝날 때 쯤 그 곳에 모여 있던 모든 천노병들이 집합을 했다. 그리고 첫날 보았던 대병해가 나타났다.
"천노부대 이틀 안에 육갑산(陸甲山)으로 가 전투의 선봉에 선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졌다. 현재 종 나라는 태 나라와 수년간 전쟁을 벌여왔다.
북방의 유목 민족인 태나라는 원래 부족별로 병사들을 꾸렸기 때문에 소수의 병사들만 몰려왔었다. 하지만 유목민들 중에서 신성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뿔뿔이 흩어져있던 부족들을 통합해버렸다. 그 때부터 종나라는 계속해서 태나라 군사들에게 시달려왔다. 이번 육갑산 전투 역시 태나라 군사들의 침공을 막으러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