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룡쟁투.
모든 잠마룡들이 참여해 비무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발표가 있은 후 잠마룡들은 더욱 수련에 매진하였다.
마룡쟁투가 시작 되었다.
마룡쟁투의 조건은 이랬다.
서로 한명씩 지정해서 대결을 벌이는 것이었다.
즉 내가 선택받아서 한번, 내가 선택해서 한번이었다.
둘이 서로 겹치고 자신을 선택하는 사람이 없으면 한번만 결투를 벌이면 되었다.
하지만 잠마룡들에게 선택을 계속 받으면 계속 비무를 할 수 있었다.
단, 한 번 지명을 받았던 잠마룡은 거부권을 행사 할 수 있었다.
또 상대가 장외로 밀려나가거나 기권을 하면 승리하였고 목숨을 해쳐서는 안되었다.
방법과 시간에는 제한이 없었다.
2주 후에 있을 마룡쟁투 때문에 잠마룡들은 더욱 치열하게 수련하였다.
현무노의 예상대로 치기 어린 아이들의 자존심이 마음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2주 후 마룡쟁투가 시작되었다. 소출파가 진행자로 나섰다.
”자, 올라와서 지명자를 말해라.“
소주우가 연무장에 설치된 무대 위로 올라왔다.
”버러지 독고력 나와.“
독고력이 일어나서 나가려던 그때, 도본일이 나섰다.
”잠깐 너 나랑 붙자.“
”하, 버러지 새끼가 미쳤구나.“
”쫄리면 말고.“
”좋아 너부터 박살내주마 올라와.“
도본일이 두 자루의 겸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소출파가 다시 한 번 조건을 설명하고 진행을 시켰다.
”크크, 양 팔을 부러트려주마.“
소주우가 도발을 했지만 도본일은 상대를 경시하지 않고 기수식을 취했다.
소주우가 먼저 선공을 취하며 검을 뻗었다.
도본일은 겸으로 침착하게 막아가며 방어를 취했다.
교관들에게 배운 대로 침착하게 상대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렸다.
도본일은 공격을 막아내며 점차 거리를 좁혀갔다.
이따금씩 검이 도본일에게 닿았지만 옷과 피부만 살짝 살짝 베었을 뿐이었다.
”이익. 죽어. 화령난무(火鈴亂舞)“
소주우는 뜻대로 잘 되지 않자 동작을 크게 하며 강한 초식을 구사하려 했다.
검에서 불꽃이 일며 막 공격을 하려던 차, 동작이 커지며 빈틈을 드러내자 도본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겸을 뻗어 소주우의 목을 때렸다.
”컥.“
울대를 직격 당하자 순간 숨이 막혀 정신이 흐려지며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때부터 일방적으로 도본일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소주우가 다시 자세를 잡을 시간을 주지 않고 짧게 몰아쳤다.
퍽퍼퍽퍽퍽퍽퍽퍼퍼퍼퍽퍽퍽.
연신 뒤로 몰리며 몸의 여기저기를 두들겨 맞으며 결국 무릎을 꿇은 소주우는 도본일에게 패했다.
”더 할 껀가?“
”이이이익. 죽여 버리겠다.“
도본일이 자신을 내리깔아 보며 으스대는 걸 보자 화가 난 소주우가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도본일이 이미 목에 닿아 있는 겸을 살짝 당기자 소주우의 목에 피가 살짝 흘렀다.
소주우는 움찔거리며 행동을 멈추고 분함에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소출파는 도본일의 승리를 외쳤다.
”도본일 승!“
”우와~!~!~!“
”휘익~~“
도본일이 승리하자 같은 조원의 아이들이 함성과 휘파람을 부르며 좋아해주었다.
그 사이 이세기가 무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 막 격투대 밑으로 내려가는 소주우에게 힐난을 주었다.
소주우는 그런 이세기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아.. 병신들한테 지면 어쩌자는 거야? 어이 독고력 날 지명해라. 이 새끼 발라주고 다음 네놈이다.“
이세기는 도본일은 안중에도 없다는 무시하고 독고력에게 도발했다.
곧이어 도본일과 이세기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세기는 공격적으로 도본일을 몰아쳐갔다.
이세기는 소주우와는 달리 상당히 강했다.
특히나 소주우에 비해 내공이 두 배는 더 쎈 것만 같았다.
막고 있는 겸이 찌르르 울리며 손아귀까지 울렸다.
도본일은 열심히 방어를 했지만 강맹한 공격에 계속 뒤로 물러났다.
”어이 안 돼지 안 돼.“
도본일이 뒤로 밀리며 장외로 떨어질 것 같자 반대로 돌아 무대 중앙으로 몰아넣고 계속 공격했다.
어느 순간부터 힘이 딸린 도본일은 이세기에게 계속 얻어맞았다.
이세기는 한 단어, 단어에 한 대씩 내리 찍었다.
”으윽.“
”버리지면. 버러지답게. 버러지같이. 살으란. 말이야. 버러지야.“
모욕적으로 도본일을 검면으로 후려쳤다.
이를 본 독고력의 조원들은 분개했다.
소출파는 도본일에게 말했다.
”기권을 말해라.“
”아, 아직...“
하지만 도본일은 자존심 때문에 버텼다.
더욱 열이 받은 이세기는 계속해서 도본일을 때렸고 결국 기절할 때까지 때렸다.
기절하고 나서야 대결은 끝이 났다. 초주검이 된 도본일은 조원들에게 업혀 나갔다.
이세기는 손가락을 까닥까닥 하며 독고력을 가리켰다.
그러나 독고력보다 먼저 나선 이가 있었다.
편한북이였다.
”내가 먼저 상대하지.“
”편한북. 내가 승일신가 후계자라고 대충 봐줄 거 같아?“
”편한대로 해.“
이세기와 편한북은 비등하게 싸웠다.
하지만 이세기가 미세하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편한북의 목에 칼이 닿으면서 패했다.
독고력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세기에게 말했다.
이세기의 호흡이 많이 거칠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친 거 같은데?“
”너 같은 버러지 따위 상대해줄 여력은 있다.“
하지만 이세기는 독고력을 무시하며 허세를 부렸다.
독고력은 고개를 끄덕이고 무대 위로 올라가 몸을 풀었다.
그런 독고력을 보며 이세기는 콧웃음을 치며 멸시하였다.
”흥. 삼류처럼 행동하는 거 봐라.“
그러거나 말거나 독고력은 상대의 말을 무시하고 늘 하던 대로 몸을 충분히 풀어준 다음 기수식을 취했다.
대결이 시작되자 독고력이 먼저 달려들었다.
”차앗. 팔을 잘라주마.“
이세기는 첫 공격부터 살수를 사용했다.
독고력의 팔을 잘라낼 속셈이었다.
독고력은 상대의 공격을 비켜 맞아가며 전진했다.
따당.
”아니? 육신갑?“
육신갑은 검기의 공격마저 막아주었다.
다만 튼튼한 독고력의 몸이라고 해도 검기를 맞으니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아마 기운을 흘리지 않았으면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 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일부러 맞아주고 전진한 보람이 있었다.
공격하기 위해 뻗은 검을 쥔 손목을 낚아챈 독고력은 자신의 몸과 이세기의 몸을 같이 흔들었다.
이세기는 독고력의 난생처음 보는 공격에 당황했다.
잡힌 손을 무시하고 불안정한 자세에서 독고력의 몸을 때렸다.
힘이 전혀 실리지 않았다.
독고력은 묵묵히 이세기의 공격을 받아내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이세기는 독고력이 자신의 위에 올라오자 화를 내며 발버둥 쳤지만 어림없었다.
”꺼져 이 새끼야!!!“
독고력은 이세기의 위로 올라타 주먹을 내리 꽂았다.
한 팔을 무릎으로 깔아 뭉기고 한 다리를 뒤로 길게 뻗어 엄지 발가락으로 땅을 콕 찍자 무게 중심을 낮아지며 이세기의 몸을 확실하게 묶어 두었다.
퍽퍽퍽.
이세기는 한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지만 정신없이 때리는 공격에 더 이상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려 일어나기 위해 상체를 들썩이며 버둥거렸다.
그 순간 독고력은 이세기의 뒤로 돌아 팔을 턱밑으로 집어넣고 다른 한팔로 더욱 힘을 가해 목을 졸랐다.
흑혈랑까지 졸라서 죽여버린 독고력의 괴력은 빛을 발했다.
이세기는 독고력의 허벅지를 벅벅 긁고 팔꿈치로 옆구리를 쳤지만 가소로울 뿐이었다.
결국 이세기는 두 다리로 바닥을 아래위로 긁으며 조금 더 버티다가 기절해버렸다.
연무장에 아이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곧이어 소주우와 의두북 등 이세기를 따르는 아이들이 따졌다.
”무인의 자존심은 어디 갔다 팔았냐. 정정당당히 해라!“
”시정잡배 같은 녀석. 썩 꺼져!“
아이들이 거세게 비난하자 범력폭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범력폭이 손을 들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범력폭이 독고력을 보며 말했다.
”그래 비겁하구나.“
”...“
”맞아요 비열합니다!“
”이건 무효입니다!“
독고력은 침묵을 지켰고 범력폭이 자신들의 편을 들자 더욱 신난 아이들은 고함을 질렀다.
다시 범력폭이 손을 들고 아이들을 진정시킨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나 독고력이 이겼다. 그렇지 않느냐?“
”....“
”....‘
갑작스런 반전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비겁하지만 이겼구나. 비겁한 독고력을 이겨볼 녀석은 올라와라.”
그리고 무대 위를 내려갔다.
범력폭이 내려가자 의두북이 분개하며 올라왔다.
하지만 의두북 또한 독고력이 착 달라붙어 넘어트리며 위에서 주먹을 내리꽂자 어쩔 줄 몰라하며 얻어맞다가 기절해버렸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독고력의 실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모양새는 좋지 않으나 이세기와 의두북을 연이어 이겨버린 것이다.
그 다음은 백유유가 히죽 웃으면서 올라왔다.
“아, 좀 더 익으면 먹을려고 했는데 살짝 맛만 봐볼까?”
“...”
소출파는 독고력의 의사를 물어본 후 긍정을 표하자 대결을 진행하였다.
독고력은 기수식을 취하며 자세를 낮췄다.
백유유는 먼저 장을 뻗어 독고력을 공격했다.
독고력은 직접적으로 맞지 않고 흘려 보냈으나 백유유의 내공은 어마어마했다.
’으윽.‘
힘과 속도가 이세기보다 훨씬 강했다.
독고력은 백유유에게 마찬가지로 접근하려 했으나 백유유는 날렵한 보법으로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백유유는 그 사이에 독고력의 약점을 파악한 것이다.
독고력은 백유유에게 근접하려 했으나 백유유는 결코 거리를 주지 않았다.
발을 놀려 거리를 벌리면서 가지고 놀 듯 계속 장법을 날렸다.
독고력은 백유유의 날렵한 신법에 당할 수 없어 계속 두들겨 맞기만 하였다.
독고력은 이대로 얻어맞다가 패할 것 같았다.
이에 결심을 한 독고력은 양 팔을 들어 얼굴을 감싸고 들소처럼 질주해 백유유의 공격을 허용하고 접근했다.
큰 충격에 독고력은 입 속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가벼운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독고력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백유유의 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독고력은 초근접 거리에서 박투를 했지만 백유유의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초근접의 거리에서 독고력에 비해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독고력은 계속해서 얻어맞았지만 잡은 백유유를 놓지 않았다.
결국 백유유의 발목을 후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백유유의 다리를 겨드랑이에 감싸고 꺾었다.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
백유유는 그 때부터 기질이 달라졌다.
두 눈이 검게 물들면서 더욱 강한 내공을 사용했다.
검게 물든 주먹을 쥐고 독고력의 정강이를 때렸다.
독고력은 고통을 참으면서 백유유의 발목을 돌리며 꺾었다.
퍽퍽퍽퍽. 뻐걱.
결국 독고력의 정강이가 부러지며 다리가 풀렸다.
하지만 부러졌기 때문에 풀어준 것이 아니다.
독고력 역시 백유유의 발목을 부러트렸기 때문이었다.
백유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독고력을 보며 웃었다.
명백히 화난 표정인데 미소 띤 백유유의 얼굴은 괴이했고 무서웠다.
독고력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말했다.
“이제 해볼 만 하겠군.”
“크큭큭. 아 재밌네 재밌어. 아 쫄깃해.”
두 사람은 다리를 쩔뚝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갔다.
누가 봐도 속도나 내공 면에서 독고력이 밀렸지만 독고력은 얻어맞으면서도 백유유에게 한 대씩 한 대씩 때렸다.
백유유는 화가 나서 더욱 내공을 끌어올리며 독고력을 때렸다.
백유유의 손은 점점 짙어져갔다.
퍽.
“우욱.”
독고력은 뒤로 멀리 날아가며 손에 땅을 짚고 상체를 세웠다.
울컥.
꽤나 심한 내상을 입은 듯 검은 피를 토해냈다.
소출파는 경기를 말리려했다.
“그만... 기권을...”
“계속하겠습니다.”
소출파의 말을 끊고 독고력이 일어나 다시 백유유에게 다가갔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광기어린 백유유와 이미 망신창이가 된 독고력의 대결에 말을 잃고 보고 있었다.
경기는 계속 되고 백유유가 살심을 머금고 독고력을 때렸다.
고통스러울 텐데도 독고력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 더 흉폭한 야성의 눈빛이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 또 전진하였다.
백유유는 물러나려 했지만 부러진 발목에 결국 따라잡히고 말았다.
백유유는 처음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대가 강해서 외공으로 인해 질기고 강해진 육체가 질린 것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고통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전의를 꺾지 않는 부동의 정신력에 백유유는 화가 일었다.
독고력은 결국 맞아가며 상대에게 접근해서 몸을 껴안았다.
그리고 백유유의 어깨 살점을 한 움큼 물었다.
“크아악!”
백유유는 어깨를 물고 있는 독고력의 등과 뒤통수를 계속해서 때렸다.
결국 독고력은 눈동자가 돌아가며 기절해버렸고 독고력의 입 속에는 백유유의 살점이 들어있었다.
기괴할 정도로 표정이 일그러진 백유유는 쓰러진 독고력을 죽이려고 손을 하늘로 높이 올리고 내리치며 숨통을 끊으려고 할 때 범력폭이 백유유의 손을 막았다.
우웅.
강맹한 공격이 서로 부딪히니 파공음이 울었다.
범력폭은 소출파를 보며 눈짓을 했다.
“백유유 승!”
백유유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 대며 막아선 범력폭을 노려보다 결국 격투대를 내려갔다.
백유유가 내려가자 백유유를 따르는 잠마룡들이 백유유의 부러진 발목과 피가 나는 어깨를 지혈해주려 다가갔으나 백유유가 다가오는 잠마룡들을 밀치고 사라져버렸다.
’더 있다간 모조리... 죽여 버릴 거 같아. 아직 발각 돼서는 안 되지.‘
백유유의 눈동자는 검게 물들었다.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 외 잠마룡들은 기절한 독고력이 조원들에게 업혀오자 혀를 내둘렀다.
치료를 받으러 사라지는 독고력을 보며 다들 팔뚝을 손으로 쓸었다.
소름이 돋은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대결을 처음 보았다.
육체적인 전투는 분명 독고력이 졌다.
내공과 무공 차이는 백유유가 훨씬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전투는 누가 봐도 독고력이 압도했다.
백유유가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당황하면서 손을 저었기 때문이다.
다쳐도 일어나고 백유유가 질릴 만큼 달라붙었다. 독고력은 승리에 미친 놈 같았다.
소강상태에 빠진 그때 비유이가 무대 위로 올라오며 이국중을 불렀다.
이국중은 요즘 틈틈이 자신에게 붙어 헤프게 웃는 비유이가 귀찮았다.
그리고 오늘도 무대 위로 자신을 부르니 짜증이 났다.
비유이가 밀영신가의 정통 후계자만 아니었으면 심하게 대했을 것이다.
호명당한 이국중이 얼굴을 찌푸리며 올라오는데도 비유이는 방긋 웃으면서 대결에 임했다. 백유유나 독고력처럼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
둘 다 일대일 격투에서 장기를 발휘하기 힘든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이국중은 궁을 다루는 무인이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생긴 활대로 도처럼 휘두를 줄 알았다.
활의 모양은 일반 활들처럼 ( 모양이지만 밑 부분에 손잡이처럼 여유분이 더 있었다.
때문에 활과 환도를 다루는 듯 했다.
반면 비유이는 술법이 장기였다.
차선으로 장법을 익히긴 했지만 수준이 높지 않았다.
결국 이국중이 이겼지만 비유이는 머가 좋은지 계속 웃고 있었다.
이국중은 그런 그녀를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다음은 현설이 무대 위로 올라와 라나장을 불렀다.
라나장은 현설이 갑자기 자신을 호명하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대결의 한번은 해야 했으니 자신과 하려나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현설이 라나장을 무대 위로 부른 건 질투심 때문이었다.
결국 이 비무도 라나장 때문에 독고력이 나서서 생긴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독고력이 중상에 처하자 더욱 독이 올랐던 것이다.
대결이 시작되고 라나장은 현설이 의외로 거칠고 공격하자 당황했다.
마치 생사결을 겨루는 것 같았다.
라나장은 그저 현설이 진지하게 임하나 싶어서 자신도 진심을 다해 대결에 임했다.
현설은 사사신가의 신물인 나찰환령을 흔들며 라나장을 압박했다.
나찰환령은 작은 구슬과 뱀의 비늘 같은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어 이것을 손에 차고 흔들면 상대의 신경을 뒤흔들어 준다.
하지만 라나장은 뇌극신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뇌전이 이는 손을 뻗어 현설을 압박했다.
결국 승부는 라나장의 승리로 끝나버렸고 현설은 분함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외 아이들은 서로 상대를 지목하며 대결을 벌였지만 백유유와 독고력만큼 몰입할만한 대결은 없었다.
비무가 끝나고 범력폭은 잠마룡들에게 처음으로 3일 동안의 휴식기간을 주었다.
잠마룡들은 신이나 화염산을 벗어나 시내로 나가 술을 마셨다.
이번 비무대회를 안주거리로 특히 화젯거리는 소주우를 이긴 도본일과 독고력에게 진 이세기, 백유유에게 패한 독고력 이야기였다.
잠마룡들은 독고력에 별호를 만들어주었다.
의지강패(意志强覇), 의지력이 강하기가 으뜸이라는 뜻이었다.
*************
독고력은 치료실에서 뼈를 맞춘 다리를 보며 분한 듯 허벅지를 때렸다.
결국 백유유에게 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현설과 라나장이 들어오며 타박과 걱정을 해주었다.
“어머, 아픈 사람이 자중하지 못하고 뭐하는 거야?”
“괜찮아? 어디 아픈데 없고?”
독고력은 라나장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설은 두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독고력에 앞에 늘어놓았다.
라나장은 놀란 눈을 하며 현설을 쳐다보았지만 현설은 일부로 못 본채 했다.
이에 질새라 라나장도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꺼내놓자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독고력 앞에 펼쳐졌다.
그사이 현설은 음식을 하나 집어 독고력의 입에 갖다 대었다.
“자 아~”
“내가 먹을게.”
“스읍 나 팔 아파 아~”
독고력은 고집스럽게 현설이 젓가락을 내밀자 어쩔 수 없이 받아먹었다.
그러자 라나장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그리고 자신도 음식을 하나 집어 독고력의 입 앞으로 내밀었다.
독고력은 아직 씹지도 않았는데 라나장이 젓가락을 내밀자 우물거리며 말했다.
“나 아직 먹고 있어.”
“그래서 내가 싸온 거는 안 먹을거야?”
나긋나긋 말하는 라나장에게서 먼가 공포스러움을 느낀 독고력은 결국 받아먹었고 두 볼이 빵빵해졌다.
그 후로 현설과 라나장이 먹여 주려했지만 독고력이 거절했다.
심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백유유와 한 판 더 붙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손은 괜찮으니깐 내가 먹을게.”
그리고 자신이 알아서 먹기 시작했다.
독고력은 일단 배를 채우느라 급급해서 두 사람을 못 보았지만 현설과 라나장은 서로 눈을 맞추며 기 싸움을 했다.
***********
한판 자신의 분타로 외출 나온 이세기는 하인들을 마구 때리며 분풀이를 했다.
퍼퍼퍼퍽.
하인을 때리고 있었지만 그는 하인을 때리는 것이 아니였다. 독고력이라고 생각하며 손속을 과하게 두었다.
“으아악 버러지 따위한테 기절을 하다니!! 죽여 버릴 테다!!!”
“오빠 참아. 아우, 오빠는 왜 그런 버러지한테 기절한 거야 깔끔하게 진 것도 아니고 눈을 뒤집혀서 기절하는 바람에 애들이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거 알아?”
“이이익 나가! 편한북~~~!”
이상연은 이세기의 성질을 붇돋고 방에서 쫓겨 나갔다.
이세기는 독고력과의 대결은 편한북과의 대결에서 진기 소모가 심해 졌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설마하니 외공을 익힌 독고력이 육신갑까지 이뤘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철저히 내가중수법을 이용해서 공격했었으면 자신이 이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들러붙어 바닥에 뒹굴어 목을 졸라 이기다니 무인의 수치였다.
염장을 늘어놓는 이상연을 쫓아낸 이세기는 한참 술을 마시며 잔뜩 취해 시녀들을 불렀다.
시녀들은 술에 취해 화가 난 이세기를 무서워하면서도 다가왔다.
이세기는 자연스럽게 시녀의 머리를 자신의 하초로 땅겨 빨게 하고 한 손은 다른 시녀의 가슴을 그러쥐었다.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시녀의 얼굴은 찌푸려졌지만 이세기에겐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남의 고통 따윈 안중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 걸어놓은 라나장의 초상화를 보며 빨고 있는 시녀의 머리카락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
백유유도 자신의 본가에 돌아와 지하로 향했다.
철장에서 젊은 청년을 꺼내 어깨를 물어 뜯어버렸다.
“퉤. 끄끄극끅 이런 느낌이구나.”
백유유는 청년이 죽을 때까지 여기저기 계속 물어 뜯었다.
결국 과다출혈로 죽은 청년이 차갑게 식자 중년인을 한명 더 꺼내 여기저기 부러뜨렸다.
발가락부터 발목, 무릎 등 하나대로 차근차근 부셔나갔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러져 움직이지도 못하며 발버둥 쳤다.
몸의 모든 뼈가 부러지며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고통만 늘자 중년인의 눈빛은 백유유를 보며 그냥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듯 했다.
백유유는 더 이상 부러트릴 뼈가 없자 발로 밟아 머리통을 터트리고 나서야 다시 붕대를 갈아 치료를 받으면서 죽은 청년과 중년인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마치 작품을 그리는 듯 백유유는 침중했다.
***********
꿀맛 같은 휴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였다.
백유유는 모든 걸 다 잊은 듯 아무렇게 서있었지만 이세기와 소주우는 독고력과 도본일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범력폭은 다시는 싸우지 말라고 강조했다. 특히 생사여탈권을 사용하겠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분함을 참느라 둘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했던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는 마룡대전에 참가한 아이들이 서로 친해진 듯했다.
싸운 뒤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면서 다시 치고 박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호탕하게 친해져서 돌아온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서로 물꼬가 트자 친해지는 것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유이는 요화(姚華)의 체면도 버리고 이국중을 노골적으로 따라다녔다.
이국중은 항상 차갑고 딱딱하고 무뚝뚝하게 비유이를 대했지만 비유이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단순한 여인이 되어 종일 쫓아다녔다.
이국중은 비유이의 관심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자신과 비유이의 신분차이는 굉장히 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유이는 푼수처럼 매일 이국중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사소한 것을 챙겨와 이국중에게 선물하였다.
이국중이 다치면 약을 발라주고 무공 수련을 하면 물끄러미 구경하였다.
그리고 소소한 자신의 하루 이야기를 옆에서 계속 조잘거렸다.
이국중은 단답형으로 대답을 꼬박꼬박해 주었는데 돌아선 이국중의 표정은 싫지 않은 듯 해보였다.
이국중의 품속에는 비유이에게 받은 삼황내문(三皇乃文, 행운을 가져다 주는 부적)이 들어 있었다.
현설과 라나장의 사이는 멀어졌다.
확실히 치료실에서 현설의 달라진 모습에 라나장은 충격을 받고 서먹서먹해진 것이다.
현설은 그런 라나장의 관계에도 독고력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갔다.
라나장은 독고력과 아는 채를 하고 싶었으나 처음에 독고력이 생각해둔 계획 때문에 접근을 하지 못하고 애만 태웠다.
현설은 둘 사이에 뭔가가 있음을 직감하고 승부를 볼 작정을 하였다.
독고력은 다리가 부러져 붙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수련밖에 모르는 수련바보짓을 하고 있었다.
현설은 독고력, 도본일과 함께 외출을 나갔다.
독고력은 남아 있으려 했으나 현설의 강압을 받은 도본일까지 나서자 마지못해 나간 것이다.
셋은 술을 거하게 마시고 돌아오다 도본일이 몰래 빠져나갔다.
현설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독고력은 하는 수 없이 현설 가문의 분타에 데려다 주었다.
현설이 미리 말해둔 덕에 분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 응답이 없자 독고력은 갈등을 하다 결국 빈 집에 현설을 부축하고 들어갔다.
아무 방에 들어가 현설을 침상에 눕혔다.
현설은 머리카락을 퍼트리며 축 늘어져있었는데 독고력은 자신도 모르게 현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쁘긴 이쁘군‘
독고력은 현설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무측야수공을 익혔기 때문에 많이 예민한 독고력은 묘한 촉감에 잠을 깼다.
촉감은 입술에서 느껴졌다.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었다.
놀랐지만 독고력은 잠에서 깨지 않은 척 했다.
하지만 현설은 독고력이 깬 사실을 느꼈다. 그리고 가만히 자는 척하고 있는 독고력에게 더욱 적극적인 입맞춤을 했다.
입을 벌려 혀를 넣어 독고력의 입 속을 누볐다. 입술을 빨고 깨물고 비볐다.
독고력은 결국 잠든 척을 그만두고 눈을 뜨고 현설의 양 팔을 잡아 떼어냈다.
독고력은 거칠게 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현설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고는 현설이 말릴 새도 없이 나가버렸다.
현설은 다음날 비유이와 어젯밤 상황을 설명하였다.
“분명 깨있었는데 잠든 척을 했어 그리고 한참동안 입을 맞추었거든? 이게 무슨 의미일까? 독고력도 내가 좋다는 거겠지? 아니면 그냥 충동적인 거? 너무 놀라 몸이 굳은 건가?”
“까악. 언니 입을 맞출 때 가만히 있었다는 건 언니가 마음에 있다는 소리죠. 맞지? 그러니까 독고력을 불러다가 식사하면서 확실히 물어봐요.”
도진개진인 비유이가 박식한 척 대답해주었다.
같이 듣고 있던 도본일이 비유이가 묻자 어색하게 대답했다.
“으응.. 그런 거 같아.”
“그러면 그런 거지. 같아는 머야?”
하지만 긍정적인 답변에 기분이 들뜬 현설은 표정이 밝았다.
독고력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현설이 따로 불러내자 괜히 목을 문지르면서 굉장히 어색해 했다.
현설은 그런 독고력을 보며 물었다.
“어제.”
“어제?”
“응 어제. 분타에서. 나랑. 입맞춤했잖아.”
“...”
“너도 나 좋아하는 거지? 내가 마음에 있지?”
“저, 저기 그게...”
독고력은 곤욕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에게는 라나장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톨이인 자신의 곁을 지켜준 라나장이.
그 때 자신도 왜 가만히 있었는지 몰랐다. 돌아와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후회했다.
하지만 현설에게 상처주긴 싫었다.
더군다나 현설과 라나장은 친구사이였다. 라나장은 내성적이라 친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세계 모든 사람의 공통이자 본능이지.”
독고력의 말에 현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내 독고력의 이상한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독고력은 끝까지 현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갓난아기도 낯을 가리면서 싫고 좋음을 표현하고, 말을 트면서 더욱 부각되지. 연애도 그중 한가지야. 이것은 누군가에게 배워서 그리되는 게 아니라 본능. 그게 사람이야”
”그래서 너도 내가 좋아?“
현설은 길어지는 독고력의 말에 참지 못하고 본론을 다시 이야기했다.
하지만 독고력은 대답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사람은 태어날 때 팔 두개, 다리 두개, 눈 두개지?“
”응“
”그런데 간혹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앞을 보지 못하면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어. 나도 그래.“
결국 거절이었다.
독고력 나름대로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평소와는 달리 말을 길게 하면서 돌려 말했지만 자신은 연애 장애인이다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이었다.
독고력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현설은 그런 독고력을 보며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