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무협물
쌍놈 : 길고 가는 놈, 굵고 짧은 놈
작가 : 흑양오
작품등록일 : 201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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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바로, 남자한테 반하다.
작성일 : 17-02-03     조회 : 94     추천 : 0     분량 : 1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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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바로가 속해있는 유랑군이 도착한 곳은 촐로트 강이었다.

 

 돌멩이가 많아 돌멩이 강이란 뜻이다.

 

 촐로트강 인근에서 만난 서로군 병력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군대는 기세만 보아도 그 군이 강군인지 아닌지 거의 파악이 가능하다.

 

 그만큼 군대의 사기는 중요했다.

 

 하지만 서로군의 군대는 15만의 병력이 여진군의 함정과 기습을 당해 전투다운 전투도 하지 못하고 거의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여 공포에 젖어 있었다.

 

 갑장손은 이대로 물러나면 뒤를 밟혀 도리어 군이 위험해짐을 알고 있었다.

 

 해서 반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서로군의 간부들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하나같이 반대를 하였다.

 

 이러쿵저러쿵 서로 의견충돌을 하는 사이에 여진군은 더욱 다가오고 있었다.

 

 여진족은 진군을 천천히 하였다.

 

 천천히 이동을 하여도 언제든지 따라 잡을 수가 있고 당연히 이기리란 자신감과 함께 혹시 모를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유랑군에게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너네가 남아서 우리가 후퇴할 시간을 벌어주면 되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다 같이 싸워야지."

 "우리는 더 할 말 없네. 정 싸우고 싶으면 너네끼리 가서 싸우라고. 여진군하고 싸우다간 다 죽고 말거야."

 

 작전 회의실의 간부들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이런 답답한 상황 속에 여진군과의 전투냐 후퇴냐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작전 회의실에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갈(喝)!"

 

 누군가의 고함에 모두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초로한 이순(耳順, 60세) 정도 나이의 노인이 서서 지휘부의 수장들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허름한 피풍의(避風衣)를 두르고 있었다.

 

 너덜너덜하고 꼬질꼬질한 차림새와는 달리 노인은 강직한 얼굴과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런 시급한 상황 속에서 아군끼리 싸우기 바쁘다니... 전쟁이 장난인가?"

 "이보시오 누구... 장군님!"

 "장군님!"

 

 그 곳에 서 있는 사람은 불패의 군신(軍神) 신순이 장군이었다.

 

 신 장군임을 알게 되자 다들 공손히 예를 취하면서 모두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마치 살아났다는 생각인 듯 했다.

 

 신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항상 사망자가 극히 드물었다.

 

 신순이는 결단코 전공에 눈이 멀어 병력들을 마구 밀어 넣는 장군이 아니었다.

 

  신순이가 이끄는 군은 항상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뒤집었고 군의 피해 역시 언제나 최소화하였다.

 

 때문에 이곳에 있는 모든 장수들이 신장군이 도착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모두가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신 장군은 갑장손 장군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괴롭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용기(勇氣)입니다."

 "그렇다. 두려워하면 할수록 적들의 창과 검과 활은 더욱 우리를 잔인하게 유린하게 될 것이다."

 

 신 장군은 서로군의 부장들을 보며 추상같은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부군단장! 적들과 싸우지 않고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는 이는 지휘고하에 상관없이 군벌에 따라 참형을 시키도록 하라!"

 "예 장군님"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예!"

 

 곧 신 장군이 이곳에 도착을 했다는 소문이 서로군과 유랑군 내에 퍼졌다.

 

 하루하루 불안에 떨어하던 병사들은 눈빛에서 생기(生氣)가 흘러나왔다.

 

 신순이 장군이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암울하고 어둡던 군영 내에서 활기가 샘솟기 시작했다.

 

 [산하동색(山河動色)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산하(血染山河), 산과 강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신순이 장군의 무용과 무공을 표현한 것이다.

 

  화경의 고수인 신순이 장군은 적에게 두려움을 아군에겐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독바로는 저 초로의 노인이 불패의 영웅인 것에 대해 놀랐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초로하고 수수했던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병영에는 전과 다른 기세가 일어났다.

 

 그저 단 한명이 나타났을 뿐인데 2만의 병력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게 변한 것이다.

 

  어느새 독바로의 눈은 신순이 장군을 동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신순이 장군은 이 곳 서로군을 도착하기 전에 먼 곳에서 여진군을 염탐하고 왔다.

 

 "여진군의 출병 숫자가 몇인지 아는가?"

 "....."

 "....."

 

 다들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도망치는데 급급해서 정찰을 보내는 걸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순이 장군은 당장에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내가 보고 온 바로는 서로군의 숫자는 4만 내외일세."

 "4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여진군은 민족 특성상 이동식 막사를 지어 생활하지. 여진군의 사용하는 막사는 한 개당 20명의 병사들이 들어가 생활하네. 막사의 개수가 2000개였네. 해서 4만이지. 그리고 아군과의 전투는 이쯤이 될 것일세.”

 

 앞에 펼쳐진 군용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미 모든 것을 생각해 온 듯 했다.

 

 신순이가 가리킨 곳은 알타이 산맥 근처의 여기 저기 언덕 같은 곳이 있는 곳으로 산세가 기병을 타고 전투를 하기에는 극히 좋지 않았다.

 

 그리고 유랑군이 그 언덕을 점령해 진지 삼아 방어선을 구축한다면 꽤나 골치 아플 것이 분명했다.

 

 해서 여진군은 서로군과 유랑군이 그 곳에 도착하기 전에 병력을 치려 할 것이었다.

 

 현 시점에서 병력의 차이는 여진군이 아군의 두 배, 전투력도 2배, 게다가 적들은 활쏘기와 말 타기를 타고난 기병 부대였고 자신들은 대패를 당해 사기가 떨어진 보병부대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유랑군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신순이 장군은 계속 해서 작전을 설명하였다.

 

 “적의 수장이 간과한 것이 두 가지라네.

 첫째, 여진군은 설마 패퇴하는 병력이 그것도 절반의 숫자도 안 되는 병사들이 역습을 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 내가 절벽 뒤에서 관찰 했을 때 그들은 경계를 서는 몇 병사들을 제외하고 소풍이라도 나온 듯 여유로웠네.

  둘째, 유랑군의 수준일세. 그들이 지금 주둔하고 있는 곳은 뒤쪽이 경사가 심한 절벽이라네. 일반 병사들이라면 오르내리기 힘들겠지만 무공을 익힌 유랑군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 허점을 노려 오히려 기습에 들어가야 하네.”

 

 “저희가 먼저 저들을 친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저들은 말을 귀신처럼 다루며, 용맹하기 그지없는 여진군입니다. 장군의 말씀처럼 숫자는 두 배 차이가 납니다.”

 

 수하(手下)의 약한 소리에도 신순이 장군은 침착하게 작전 설명을 이어나갔다.

 

 "천문을 보니 내일 부터 먹구름이 몰려와 초저녁에 강한 폭우가 쏟아질 것이네."

 "내일 폭우가 쏟아진단 말입니까?'

 

 신순이 말에 제장들은 창문 밖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하늘을 깨끗했다.

  도저히 비가 올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서로군은 내일 폭우가 쏟아질 때를 틈타, 서로군의 1만 병력은 적의 좌에서 또 1만의 병력을 적들의 우측에서 포위한다. 그리고 꽹과리나 북, 징, 천아성을 모두 동원하여 큰 소리를 내어 적들에게 혼란을 주어,

 제 8계 암도진창(暗渡陳倉, 행동을 고의로 노출시키고 기습공격을 한다.)을 실시한다.

 

 그리고 유랑군은 금적금왕(擒敵擒王, 적의 머리를 친다). 적들의 진지 반대편 절벽에서 여진군의 진지에 침투하여 적의 수뇌부를 괴멸시킨다. 그러면 적들은 혼란에 빠져 자멸하게 될 것이다.

 유랑군은 적의 수뇌부를 모두 쳤으면 적의 막사에 있는 적기를 잘라 모두 없애라. 그러면 그것을 신호로 좌우 서로군 1만 명이 적을 포위하여 섬멸 할 것이다. 이이 있는가?"

 

 "알겠습니다 장군."

 "없습니다 장군."

 "명심하겠습니다 장군"

 

 *****

 

 그날 밤, 갑장손은 신순이 장군과의 독대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식어서 흐물흐물한 전병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장군께서 이리 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혼자 이곳에 온 것입니까?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시면 어쩌시려고요."

 "흘흘흘 이제 내가 이리 늙었다고 날 너무 무시하는 겐가."

 "그것이 아니라... 다만 저는..."

 "알고 있네. 하지만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늙은 목숨 하나와 2만 명의 목숨은 너무 큰 차이지 않은가."

 "늙은 목숨이라뇨, 장군께서 없으시면 이 나라도 무너지고 말게 불 보듯 훤합니다."

 "후우... 약관(約款, 20살)에 군에 종사하겠다고 가문에 출사표를 던지고 나와서 자그마치 10년 동안 하급무관만을 떠돌았지... 그러다 마침내 무과에 합격해 오호도독부 말단에 종 7품 도사(都詞)로 복무했었지......"

 

 까맣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과거 자신의 찬란하고 빛나던 과거인 듯 회상하며 추억에 잠겨 나지막이 이야기를 했다.

 

 "줄도 없고 실력도 없고 돈도 없는 놈이 고집은 세서 이리저리 굴러먹다가 운 좋게 전공을 세우게 됐지. 그리고 그 장군께서 날 좋게 봐주셔 뒤에서 밀어주셨지.

 그래서 한평생 전장에서 구르며 나라를 위해 일하다 이 나이에 대장군의 직함과 승선포정사사의 포정사(종 2품)까지 받아 부귀영화와 큰 명예를 누려봤으니 이제 곧 죽어도 여한은 없네."

 

 대장군은 장수들 중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직급이었다. 승선포정사사란 한 성을 통치하는 기관이었고 포정사는 그 곳의 수장이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만 나는 종 나라가 걱정이라네.... 이제 그만 들어가도록 하지."

 

 작전 회의 때 보여주었던 위엄과 패기는 모두 다 사라지고 돌아서는 신순이 장군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

 

 다음 날 유랑군은 갑옷 속에 물이 스며들어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수피(水皮)를 착용한 다음 조용히 무장을 마치고 멀리 돌아 매복을 하였다.

 

  배고픔을 육포로 달래고 하늘을 보자 어둑어둑해져 갔다.

 

 이때까지 폭우는커녕 바람 한 점 없이 이곳은 평온했다.

 

 "정말 비가 쏟아질까?"

 "그럼 신순이 장군님께서 허언을 했단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비가 올 날씨는 절대 아닌데."

 

 유랑군은 숙덕숙덕 거렸다.

 

 그리고 2시진이 더욱 지나자 밝게 빛을 뿜던 달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일각 후 신통방통하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다. 비가 온다."

 "출진 준비. 출진 준비."

 

 유랑군은 대열을 갖춰 적을 급습 할 준비를 하였다.

 

 유랑군은 신순이 장군의 신묘한 기상 예측 덕에 사기가 더욱 올라갔고, 이대로 작전을 수행하면 적들을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며 쥐고 있는 창과 방패를 더욱 꽈악 잡았다.

 

 그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서로군이 여진군 좌우에서 북과 꽹과리, 징, 천아성 등 엄청난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둥.둥.둥.둥.둥.

 깨개갱깨액깽

 뿌우뿌뿌뿌뿌

 

 먹구름이 몰려들어 갑자기 어두운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자 잠을 청하던 여진군은 놀라서 당황하기 시작했고 곧 진지는 혼란에 빠졌다.

 

 그 때 신호와 함께 유랑군이 경공과 벽호공(壁扈功, 무공을 이용하여 벽을 타는 방법)을 발휘하며 절벽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는 여진군의 진지 한 가운데로 빠르게 돌파를 시작했다.

 

 선두에는 대환도(大環刀)를 휘두르며 적들에게 무자비함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갑장손 장군이 있었다.

 

 "으아아악"

 "적이다. 기습이다!"

 

 유랑군의 기습에 놀란 적들은 우왕좌왕(右往左往)했다.

 

 사방에 경계병들이 감시를 했음에도 갑자기 나타난 유랑군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쏟아지는 빗소리는 유랑군의 전투와 비명소리를 죽여주었다.

 

  시끄러운 북과 징소리에 잠을 자다 깬 여진군은 다다른 유랑군을 보고나서야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방비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미 지척에 당도한 유랑군은 그대로 적진을 파고들어 무방비한 그들을 유린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적진을 휩쓸던 갑장손은 유랑군에게 명을 내렸다.

 

 "적의 수뇌부를 찾아라!"

 

 ********

 

 오꾸데이는 달빛 없는 어두운 밤에 엄청난 소리와 함께 3면에서 들이닥치는 적들을 보고 대경하였다.

 

 투울루이 가한에게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출전했던 그였다.

 

 그 역시 전쟁터에서 수십년을 보낸 백전노장(百戰老將).

 

 이미 패잔병 몰골을 한 적들이고 제아무리 유랑군이 온다한들 자신들의 강한 여진 기병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자만했다.

 

 다만 첩자의 보고에 의하면 신순이 장군이 서로군을 향해 홀로 출발했다기에 그의 기묘한 계략에 빠지지 않게 신중하게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미 된통 신순이 장군에게 당한 오꾸데이는 새가슴이 되어 소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정공으로 침착하게 전투를 벌이면 무조건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어두워진 밤에 정찰병(偵察兵)들은 신호를 보내지 않고 기습을 당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랑군은 오꾸데이와 여진군의 수뇌부들을 찾아 목을 치고 진지 내에 있는 깃발들을 잘라 버렸다.

 

 죽어가는 오꾸데이는 죽는다는 공포보다는 자신의 어리석은 군대 운용 때문에 수많은 여진군들이 학살당하는 것에 가슴아파했다.

 

 차라리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서둘러서 힘으로 서로군을 쳤었더라면 후회를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오꾸데이는 목이 잘리기 전 하늘을 보며 탄식을 했다.

 

 "가한이시여, 부디 보중하시길...."

 

 ********

 

 깃발이 잘림과 동시에 여진군 좌우에서 병력들이 기세등등(氣勢騰騰)하게 몰아 닥쳤다.

 

 여진군은 명령을 내릴 수뇌부가 없고 당황한 나머지 전열이 엉망이었다.

 

 진지 내에는 여전히 무공을 익힌 유랑군이 날뛰고 있었고 좌우에서는 서로군이 들이닥치니 결국 이리저리 방황하다 뿔뿔이 흩어져 각개격파(各個擊破) 당했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도리어 서로군과 유랑군을 상대하였으면 더욱 나은 결과가 이어졌겠지만 신순이 장군은 한 쪽 방향의 퇴로(退路)를 열어주어 여진군의 마음을 더욱 무너트렸다.

 

  사방에서 적들에게 둘러 쌓였지만 저 곳으로 향하면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절체절명의 순간 희망이 보이면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되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아군을 버리고 도망치는 아군을 보며 배신감과 나도 저곳을 향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대항할 생각을 버리고 모두 한 쪽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로군과 유랑군은 그저 도망치는 병사들의 뒤에서 병기만 휘두르면 될 뿐이었다.

 

 서로군을 미끼로 유랑군까지 지우러 왔던 오꾸데이의 4만 여진군은 그렇게 지리멸렬(支離滅裂)하고 말았다.

 

 [서로군 2만과 유랑군 700여명으로 여진군 4만의 기병을 몰살시켰다!]

 

 그 소식을 들은 북방군은 기세가 든든해졌고 서로군은 무사히 본국으로 퇴각할 수 있게 되었다.

 

 ********

 

 장수들은 다시 자리에 모여 상황 보고를 하였다. 신순이 장군 오른편에 갑장손 장군이 앉아 있고 과양일 백인장이 보고를 하고 있었다.

 

 ".......3만 이상의 적병들을 전멸시키고, 4000가량의 포로들을 잡았습니다. 나머지 적병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나 더 이상 쫓지 않았습니다."

 "음."

 "더구나 적들의 숫자는 아직 10만이 남아있고 저희의 병력은 17만 병력이 남아 있습니다. 병력 상 우위에 있지만 저들은 강군(强軍)입니다. 물론 신순이 장군님께서 버티고 있으신 한 저들은 섣불리 도발을 감행하려 하지 못 할 것입니다. 다만 이번 전쟁을 치루면서 의문이 드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뭔가?

 "저들의 무장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본디 태 나라는 사금이나 기타 광물 자원이 풍부하지만 철광석이 거의 나지 않아 무장상태가 빈약하기 그지없고 수입에 의존해서 군대를 꾸렸습니다. 나라에서는 이를 철저히 관리해왔었는데 이번 전쟁에 여진군의 무장은 거의 전 부대가 철저한 무장 상태였습니다. 해서..."

 "...무기와 군수품을 빼돌리는 게 아니냔 말인가?"

 "...예, 저들이 점점 더 무장을 갖추고 갑옷 등 훈련되어 온다면 이전보다 더욱 강한 군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보고에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과양일 백인장이 다시 보고를 시작하였다.

 

 "또 저들에게 아직 봉구호 장군님과 다른 장수들이 포로로 잡혀있어 그들이 포로의 목숨을 가지고 무엇을 요구하게 될지 미지수입니다. 더불어 이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번 북방군의 전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장군님을 벼르고 있는 간신들이 장군님께서 전쟁의 패를 물어 징계를 내리려고 들 것이지만 피하시기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신 장군님께서는 몰살할 뻔한 서로군을 구했는데 무슨 징계란 말인가.“

 

 그러한 과양일 말에 발끈한 갑장수는 노성을 터트리며 괜히 과양일에게 화를 내었다.

 

 과양일은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장군님께서 감수하셔야 될 것입니다."

 "좋다. 내가 책임을 지도록 할 테니 북방군 전체에 퇴각을 명하도록 하게.“

 

 신순이 장군은 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퇴각을 명했다.

 

 신 장군은 그런 사람이었다. 징계 따위 무서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수하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하니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장손은 그러한 신순이 장군의 말에 한 가지 토를 달았다.

 

 "하지만, 적들에게는 봉구호 장군과 다른 장수들이 포로로 잡혀있습니다."

 

 사뭇 밝아졌던 막사 내의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신순이 장군은 두 눈을 지그시 한참 감고 있다가 다시 뜨며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큰 결심을 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대로 퇴각하도록 하지."

 

 갑장손 장군은 다시 한 번 신순이 장군의 말에 토를 달았다.

 

 "봉 장군께서는 장군님의 둘도 없는 막역지우(莫逆之友)시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이대로..."

 "그만하게. 나도 가슴이... 가슴이 아프네. 하지만 그 친구를 구하자고 우리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네."

 "......."

 

 그 때였다. 밖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을 밀어붙이고 작전 회의실을 난입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랑군 소속 십인장 독바로입니다."

 

 과양일은 회의실로 무작정 밀고 들어온 독바로를 엄중하게 꾸짖었고 갑장손은 신순이 장군에게 독바로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인가, 군벌이 무섭지 않은가."

 "저 친구는 이번 작전 때 계략을 내어 우리 유랑군을 살린 녀석입니다."

 

 신순이 장군의 얼굴은 호기심이 어리며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듯 독바로를 보며 물었다.

 

 "아, 그 진법을 쓸 줄 안다는 녀석이로구나. 헌데 무슨 일로 이리 왔느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장군께서 곤란해 하시는 부분을 해결해 드리려고 합니다."

 "곤란한 것?"

 "저들에게 봉 장군님께서 잡혀갔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출정권을 주신다면 봉 장군님과 포로들을 구출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독바로는 공명심이나 야망, 이런 것들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자신과 싸부, 싸싸부만이 평안하길 바랬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에 몇 번의 전투를 통해 아군 병사들에게 전우애(戰友愛)가 생겼다.

 

 또 자신이 존경하기 시작한 신순이 장군님께서 곤란해지시는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행동한 것이었다.

 

 생각이 없는 듯 한 독바로의 말에 갑장손과 과양일은 크게 화를 내며 독바로를 꾸짖었다.

 

 "네 무공이 고강한 것은 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고작. 절정의 경지로 저기 10만의 여진군에게서 봉 장군을 구출한다는 건 자네 자만심이네."

 "흥, 공을 한번 세웠다고 천지 분간하지 못 하고 날뛰는구나. 썩 나가거라!"

 

 하지만 독바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똑바로 신순이 장군의 눈을 보며 재차 말했다.

 

 "장군님. 믿고 맡겨주십시오."

 

 과양일은 더 이상 무례를 두고 보지 않고 독바로를 향해 수장을 출수하였다.

 

  독바로는 마주 오는 과양일을 향해 태견각을 펼쳤다. 손과 발이 만나 부딪혔다.

 

 그 한 수로 과양일은 뒤로 5발자국 밀려났다. 물론 독바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갑장손 장군이 독바로를 향해 출수하였다.

 

 역시 절정의 끝자락에 닿아있는 갑장손 장군이 과양일을 도와 몰아치자 세 사람이 만들어낸 움직임에 막사 내에 광풍이 몰아쳤다.

 

 '아니, 이 엄청난 내공은 무엇인가?'

 

 내공을 모두 끌어 올리진 않았지만 8성의 실력으로 몰아붙이는 자신과 과양일을 동시에 상대해 비등한 실력을 보이는 독바로에게 깜짝 놀랐다.

 

 그 때였다. 가만히 구경을 하던 신순이 장군이 말했다.

 

 "그만."

 

 그러자 갑장손과 과양일은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약관 정도의 나이 인듯 한데 무공이 고강하구나."

 "과찬이십니다 장군. 하지만 저는 무공의 강함보다 더욱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은신과 도망입니다."

 "도망?... 하하하. 그래 36계의 최고는 줄행랑이라고 했네 맞네. 맞아. 껄껄껄."

 

 한참 신나게 웃던 신순이 장군은 독바로를 다시 쳐다보았다.

 

 독바로의 얼굴은 굳은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지그시 쳐다보던 신순이는 갑장손에게 명했다.

 

 "저 친구에게 내 갑옷과 말을 주게."

 "자, 장군..."

 "저 어린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이게 이성적인 방법이 아닌 것을 알지만... 내 친구에게 최소한의 뭔가 라도 해보고 싶네."

 ".... 알겠습니다."

 

 곧 병사들이 신순이 장군의 번쩍한 황금색 갑옷을 가져다 입혀주었다.

 

  독바로는 갑옷의 이음새를 단단히 동여맸다.

 

 갑옷을 입는 것은 막파걸이 손수 도와주며 말했다.

 

 "미친 놈. 10만 병력에 기어들어가겠다니"

 "하하하. 임무수행하고 꼭 살아서 돌아올게요."

 "든든히 먹어라. 남자는 밥심이다."

 "네.“

 

 막파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볶음밥을 입에다 퍼 담았다.

 

 이 와중에도 고기가 잔뜩 들어간 볶음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한 독바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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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길홍은 연중무휴(年中無休)’

 

 독바로를 천노병에 강제 입대 시키고 동길홍은 이제 군대를 설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동길홍 자신은 군대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독바로도 걱정되고 군대 생활도 알아볼 겸 위장 투입을 했다.

 

 흔히들 사람들이 사기꾼이 사람들 속여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편하고 쉽게 얻는 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잡범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사기꾼만의 자긍심과 자존심이 있는 자라면 예술 분야라고 생각을 한다.

 

  사기를 무작정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꽤나 긴 시간 동안 관찰하고 준비하여 시작하면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였다.

 

  동길홍과 같은 전문적인 사기꾼들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공을 들여 대상에게 접근을 한다.

 

 동길홍은 꾼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위대하고 대단한(?) 범죄자였다.

 

  사기꾼들이 대게 지적수준이 낮거나 못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들만 있는 줄 아는데 의외로 범인들보다 더욱 천재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동길홍은 그러한 천재였다.

 

  또 그의 분야는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절세신공을 바탕으로 하여 사기, 위조 계에서는 당대에 누구도 당해낼 수 없고, 고금을 통틀어서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칭송(?)받았다.

 

 도둑, 사기, 위조에도 방대하며 세분화 된 분야를 모두 통달하였다.

 

  주거침입, 전표위조, 통화위조, 신분위조, 허위공문서작성, 증거인멸, 허위진단서 등 다양하고 전문적 것들 모두를 말이다.

 

 이러한 동길홍의 정체를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무궁화 꽃때문 이었다.

 

 동길홍은 마지막에 항상 이 꽃을 두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만약 동길홍이 표식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동길홍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 했을 만큼 완벽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한다.

 

 어딜 여행가거나 본것들로 인한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남기고 싶어 한다.

 

 범죄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게 범죄자들은 완전 범죄를 꿈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대범한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사실 동길홍은 사기꾼을 하지 않았으면 제일 어울리는 직업이 각종 학문을 담당하는 문인들의 집단 한림원(翰林院) 정 5품 학사(學士, 한림원의 수장)나, 정부에서 운용하는 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 종 4품 제주(濟州, 국자감의 총장)이 제일 잘 어울렸을 것이다.

 

 동길홍의 지식과 지혜는 내로라하는 명사들과 현자들보다 더욱 넓고 깊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동길홍은 적귀로 신분 위조를 해서 발령받아 독바로를 지켜보다가 유랑군으로 전출가자 전령으로 위장 잠입하여 독바로를 한 번 더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보급관으로 들어가 군수품을 털어먹기 시작했다.

 

 이미 관직을 매수하기가 성행하는 종나라는 군 관직에도 썩어빠진 장교들이 판을 쳤다.

 

  은자 2냥이면 구입할 수 있는 창 한 자루의 가격을 은자 20냥에 구입해 차익을 남겨 먹었다.

 

 동길홍은 그러한 빼돌린 물품과 분식회계장부를 찾아내 돈의 흐름을 알아내고 돈을 빼돌렸다.

 

 얼마 후 행정병들과 군 간부들은 무궁화 꽃을 보고 통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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