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귀궁사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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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화
작성일 : 16-07-14     조회 : 425     추천 : 0     분량 : 6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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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현촌의 묘묘와 향 노야… 어디 있나?”

 문득 귓가에 한줄기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추만가는 미간을 찡그렸다. 단야의 목소리였다.

 “응?”

 뜻밖의 말에 차추만가는 입술을 실룩였다. 누굴 살려라, 혹은 꺼져라가 아니고 웬 사람들 이름이니 말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는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용현촌이라는 말에 뭔가를 생각하다 미간을 쫙 폈다. 누구인지 알 듯했던 것이다.

 일단주 천벽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웬 노인과 여자를 개인적으로 데리고 가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이름이 뭔지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 그 나이든 놈과 어린 년? 이것참, 어떻게 하나?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차추만가가 이죽거리며 말하자 단야는 오른손을 월홍의 머리 뒤에서 빼내었다. 그러자 어느새 그의 손엔 화살 세 개가 들려 있었다.

 “그럼…….”

 단야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른손을 들어 대궁에 시위를 먹이더니 힘껏 잡아당기며 말했다.

 “기억나게 해주지.”

 끼이이이이!

 단야의 얼굴에서 귀신의 형상이 나타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

 

 솔직히 궁수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무리 나아져 봤자 원거리 원호 무기를 쓰는 것일 뿐, 근접전에서 승부가 나는 것이 정상이라 생각했다.

 하나 단야란 사람의 활은 달랐다. 그가 활을 들고 자신들을 원호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형 마유조가 이야기하고 혁리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을 땐 사실 어느 정도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홍루에서 말머리꾼을 살해하는 것이야 일방적인 학살이라 무공에 대한 것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단야라는 사람의 무공은 정말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긴 호흡 한 번 내쉴 때 두세 명의 풍마단원이 죽어갔다. 말 위에 있든 땅 위에 서 있든 간에 보이면 곧 죽음이었다.

 벌써 이십여 명의 풍마단원이 고혼이 되자 차추만가의 얼굴은 한순간 파랗게 질려갔고, 살아남은 풍마단원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양소은은 새삼스레 이 단야라는 사람에게 새로운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단야는 활을 쏘면서 앞으로 나가더니 어느새 제일 앞에 나가 있었다.

 “이 정도면 기억이 나나?”

 스읏.

 또다시 오른손에 세 개의 화살을 집어 든 채 단야가 말했다.

 차추만가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함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단야의 무공이 너무나 높았다.

 시신을 보며 활솜씨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심한 결과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서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부족하다니… 아주 차고 넘치는구만. 그러니…….”

 차추만가는 시간을 끌며 옆의 부관에게 눈짓을 했는데 그건 바로 뒤에 있는 여인들을 한 번 더 인질로 잡으란 소리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 단야란 자는 이 여인들의 목숨을 살리려 하는 것이 눈에 역력히 보였기에 그런 것인데, 그 생각이 실천되기도 전에 막혀 버렸다.

 파파팡! 터터텅!

 여인의 주변에 있던 사내 둘이 이 장여 뒤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몸엔 화살이 박혀 있음은 당연했다.

 “…빌어먹을!”

 생각하기도 전에 당해 버리자 차추만가는 수중의 만도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좋아, 알려달라니 알려주지.”

 스스스스스.

 차추만가의 몸에서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몸 주변에 흐르는 공기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 가진 내력을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와 느낌으로 보건대 차추만가의 무공은 보기보다 상당한 듯했다.

 단야는 오른손을 움직여 월홍의 몸에 매여져 있던 전통을 다시 벗겨내었다.

 “이제부턴 나 혼자 움직여야겠다, 월홍.”

 “응, 단 아저씨. 알았어.”

 월홍은 순순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단야는 한 손을 움직여 다시 전통을 허리에 찼다. 차추만가가 무슨 짓을 할지 안 봐도 뻔하니 말이다.

 수하들이 안 되니 스스로 나설 터이다. 아무래도 묘묘와 향 노야의 안위는 그 후에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차추만가는 움직였다.

 “단… 날 꺾은 이후에 알려주마!”

 스스슷, 파아아앗

 차추만가의 신형이 흐릿하게 떨리는 듯하더니 어느새 단야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끼이이이이!

 단야는 뒤로 물러나며 화살에 시위를 먹였다. 거리는 약 오 장여. 물론 지금도 좁혀오는 중이었다.

 파아앙… 카각…….

 첫발을 날리자 차추만가는 바로 반응을 해왔다. 그는 허리를 틀며 만도를 크게 휘둘렀던 것이다.

 화살이 반으로 갈라지며 옆으로 나가자 단야는 두 번째 화살을 날렸다. 둘 사이의 거리는 삼 장. 한데 날린 것은 쇠로 된 화살이 아니었다.

 파아앙!

 이번엔 부수지도 않은 채 그냥 흘려 버린 후 차추만가는 더욱더 다가오는 속력을 배가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비릿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타타탓.

 단야는 뒤로 다시금 물러서며 세 번째 화살을 먹였다. 이 장여 안으로 날아온 차추만가의 눈을 향해 다시금 날렸다.

 파아앙, 티이잉!

 정확히 화살은 차추만가의 미간을 향했지만 차추만가는 피하지도 않았다. 만도를 들어 날아오는 화살의 옆면을 툭 쳐 그 궤적을 바꾸었던 것이다.

 “한가락 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 결국 이 정도였구만. 큭큭, 네놈의 멱을 따주마!”

 타탓, 스파아아앗!

 놀라울 만치 빠른 일격이었다. 그는 마치 팽이처럼 휘돌며 공격을 해왔는데, 이건 최대한도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스치기만 해도 상당한 타격이 있을 터이다. 더욱이 차추만가는 검을 쥔 양손을 펴거나 굽히면서 속도까지 조절했다.

 피피피핏!

 일순간 단야의 몸 주변에서 작은 핏방울이 터져 나왔다. 말할 것도 없이 차추만가의 공격에 여기저기 작은 상처를 입은 것이다.

 “크크큭, 가까이 붙으니 역시 네놈도 별수가 없구나! 어디, 활로라도 때려보시지! 하아압!”

 스파라라랑!

 차추만가의 만도가 더욱더 크게 휘둘러지기 시작했고, 단야의 몸에선 조금씩 흐르는 피의 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담담한 상태 그대로였다.

 

 “사형, 도와줘야 되는 것 아닌가요? 저러다 죽겠어요!”

 양소은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단야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움직임은 혁리에게 바로 제지당했다.

 “아니, 잠깐만. 함부로 나설 때가 아닌 것 같구나.”

 “…….”

 혁리의 목소리에 양소은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놔두면 단야는 죽게 될 터다. 그것도 상당히 처참한 모습으로 말이다.

 “저자의 무공을 보고도 몰라요? 저건 상당히 틀이 잡힌 무공이라고요.”

 “그래, 잘 알고 있다. 중원이 아닌 여진의 무공이구나. 마라살도(魔羅殺刀)라 불리던가?”

 기혈이 뒤틀린 것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마유조가 말하자 양소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이름은 그녀도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소뢰음사의 마라살도임을 알면서도 이리 태평합니까? 사형,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어느 정도 무공이 잡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소뢰음사의 무공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도 태평한 이 두 사람이라니…….

 소뢰음사의 마라살도는 그냥 겉멋만 가득한 무공이 아니다. 가장 실전적이고 살인적인 도법으로서 만도와 함께할 때 그 위력을 배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괴이하고 독랄하다. 솔직히 그건 무공이라 부를 수가 없는 것들. 그저 살법(殺法)이란 이름으로 불려야 정상인 것들이다.

 “생각은 내가 아니라 단야 저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넌 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느냐?”

 “…….”

 마유조의 목소리에 양소은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갑작스레 움직임이라니?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그때였다. 무언가 눈에 확 와 닿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상단의 여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조금씩이긴 해도 멀어지고 있었고, 어느새 곡구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소용돌이 같은 마라살도 앞에서 용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저 친구는 상단의 사람들을 살리기로 작정한 것 같군. 그렇게 봐야 하지 않겠나?”

 혁리의 말에 양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단야의 움직임을 이 두 사람이 꿰뚫어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가 부탁했어요. 저 사람들도 구해달라고.”

 “으, 응?”

 쪼롱한 목소리에 양소은은 고개를 내렸다. 거기엔 언제 왔는지 월홍이 큰 눈을 또로록 굴리며 서 있었다.

 “네가 부탁을 했다고? 저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양소은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월홍에게 물었다. 월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못들은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자신이 도와달라고 할 땐 꿈쩍도 안 하더니 이 아이가 도와달라고 하자 도와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저 단야라는 사람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니 말이다.

 “힘들겠지만 해준다고 했어요. 그럼 될 거예요.”

 “…….”

 그야말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쪼그만 아이가 무엇을 알까 싶지만 어쩌면 단야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이니 특별한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 이 단야와 월홍이란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가 못내 궁금해질 따름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보호자의 관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같은 피가 흐르는 관계일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생긴 것이 너무도 차이가 나니 말이다.

 “말도 안 되지, 그것만은.”

 “…뭐가 말도 안 된다는 거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혁 오라버니. 호홋.”

 “…….”

 혁리와 마유조는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어 양소은을 바라보았지만 양소은은 그저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화제를 돌리기라도 하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그렇다면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요? 저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호해 줘야죠.”

 “그래, 그건 좋은 생각 같군. 다만 언제인가가 문제가 되겠구나.”

 얼떨결에 한 말에 혁리가 맞장구를 치자 양소은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했으니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혁리는 시기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유조의 생각은 살짝 다른 듯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 보이는군. 마지막 한 수를 끌어내려 하는 것인가?”

 “마지막 한 수요? 그건 또 뭔가요, 사형?”

 또다시 뜻 모를 이야기를 하는 마유조의 말에 양소은은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꽉 다문 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하나 그는 분명하다고 여겼다. 분명 단야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려는 셈이었다.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세력. 그들을 끌어내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차추만가는 한인이 아니었다. 그는 뼛속까지 여진족이었고, 당연히 여진의 모든 것을 따랐다. 그리고 그건 풍마단이 되어서도 그렇게 했다.

 어릴 때 그는 소뢰음사에 간 적이 있었다.

 여진족 아이들이 언제나 꾸는 꿈인 소뢰음사의 무승이 되고 싶었던 것인데, 운 좋게도 그는 동량(棟樑)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도 잠깐, 그의 나이 열둘이 되자 더 이상 재지가 없음을 소뢰음사의 사람들은 알았고, 그 길로 내쳐지게 되었다.

 그때 익힌 것이 바로 이 마라살도. 다른 것은 기억에 없지만 이 마라살도와 내력의 기본인 합원공(合元功)은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밥줄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가 완전한 마라살도를 알 리는 없었다. 마라살도의 아홉 가지 변화 중 그는 채 세 가지도 깨닫지 못했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한데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 진한 아쉬움이 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최소한 다섯 개라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단야라는 놈이 그 원인이었다. 커다란 대궁을 들고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는 주제인 이 사냥꾼 놈은 곧 죽을 것 같더니 이젠 여유있게 피하고 있었다.

 쾌(快)를 기본으로 한 평격(平擊), 직격(直擊), 그리고 원격(圓擊), 딱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그때그때 쓰는 것이 마라살도의 기본, 물론 지금은 절대 안 먹히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놔둘 수는 없는 일, 차추만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단야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그어 내렸다.

 파아아아!

 역시나 단야는 반 족장 옆으로 이동하며 너무도 수월하게 공격을 피했고, 직격이 실패하자 그는 바로 평격으로 이동했다.

 단야는 한 걸음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피잇.

 바로 지금이었다. 물러나는 단야의 발을 주의 깊게 보고 있던 차추만가이기에 온 내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물러나는 단야의 발이 땅에 내려서기 직전에 공격할 셈이었다.

 당연히 피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허리를 축으로 빠르게 몸을 비틀며 오른손을 뻗자 또 한 번 만도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지금이야말로 그는 단야의 몸을 베었다고 생각했다. 한데,

 스스슷.

 “…….”

 어스름한 안개 같은 것이 보인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의 만도는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야에겐 전혀 손을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무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 차추만가는 등줄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 땀은 단야의 신형을 놓쳐서가 아니었다.

 어느새 단야의 등이 자신의 등과 딱 달라붙었던 것이다. 단야는 마치 친구 사이에 등을 마주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세를 잡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제야 차추만가는 본인이 당했음을 느꼈다. 이 정도의 보법을 쓰는 자라면 이렇게 가까이 오도록 놔둘 리가 없다.

 지금까지 상대의 손에 놀아난 꼴이었고,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인질들과 멀어진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죽엇!”

 쐐애애액―!

 아마도 오늘 가장 쾌속하게 날린 일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한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차추만가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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