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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궁사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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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화
작성일 : 16-07-14     조회 : 459     추천 : 0     분량 : 6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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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노릇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단야의 등은 여전히 차추만가의 등에 붙어 있었다.

 아무리 신형을 뒤집어 움직여도 단야를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릉!

 문득 차추만가는 미간을 좁혔다. 이 익숙한 소리는 검이나 도가 빠져나오는 소리. 활에서 무기를 바꾸었다는 뜻이다.

 아마도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단도를 꺼낸 듯한데, 그것이 차추만가의 가슴에 불을 지피게 만들었다.

 상대가 완전히 자신을 갖고 놀고 있는 것이니…….

 “이 개자식이 사람을 놀리나! 활이나 쏘던 나부랭이가 칼을 잡는다고 달라질 줄 알아!”

 쐐애애액!

 허리를 힘껏 비틀며 차추만가는 오른손의 만도를 날렸다. 이 이상 빠를 수는 없었다.

 얼마나 빨리 돌렸는지 허리가 아파왔다. 근육 한두 군데가 놀란 듯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엔 확실히 성공을 자신했다.

 까강!

 그리고 예상대로 만도의 앞에 단야가 서 있었다. 하나 피를 흘리고 잘려져야 할 그의 몸은 그대로였다.

 문득 차추만가의 눈에 기형도 한 자루가 들어왔다.

 시전에서 서역도라 불렸던 것 같은데 그걸 단야가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칼은 자신의 만도를 막고 있었다.

 가가각!

 그리고는 바로 힘 대결로 들어가자 차추만가는 온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격렬하게 움직이며 단야의 목을 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카카카카칵!

 “…….”

 그러나 그 어떤 짓을 해도 단야의 신형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물러나기는커녕 단야의 칼이 자신의 만도와 떨어지지도 않자 그는 얼굴색을 바꾸었다.

 “이놈! 감히!”

 키이이이!

 차추만가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고, 그의 만도에서 거무스름한 기운이 배어 나왔다.

 그야말로 최대한의 힘을 낸 것으로 그 기운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앞으로 내달렸다.

 타타타타탓! 지이이이익!

 단야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가자 차추만가는 더욱더 힘을 배가했다. 이번에야말로 단야를 죽이겠다는 듯 꽉 깨문 아랫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카랑!

 그리곤 기회가 왔다. 단야가 뒤로 밀리면서 검과 도가 떨어진 것이다.

 아주 작은 틈이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차추만가는 살소를 머금으며 빠르게 만도를 휘둘렀다.

 쩌어어엉!

 하나 단야는 곧 빠르게 신형을 다잡으며 다시 그의 만도를 막아내었다. 차추만가는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생각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한데,

 “…….”

 왼쪽 옆구리에서 섬뜩한 감각이 느껴지자 자신도 모르게 왼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뜨거운 것이 만져졌다.

 뜨겁고 끈적끈적한 이 느낌. 거기에 비릿한 내음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피였다.

 카랑!

 바로 그때 단야의 오른손이 움직였고, 차추만가의 만도가 살짝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단야의 칼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카카카칵!

 또다시 단야의 칼과 만도가 서로 얽혔다.

 그리고 이번엔 오른쪽 옆구리에서 불로 지진 듯한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왼쪽에 이어 오른쪽까지 당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차추만가는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뭘 어떻게 한 것인지조차 그는 알 수 없었다.

 이 단야라는 작자의 무공은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다시 묻겠다.”

 단야의 목소리에 차추만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착각이었을까? 차추만가의 눈에 비친 단야는 정말 두려웠다. 흡사 귀신의 형상처럼 보였던 것이다.

 “묘묘와 향 노야는 어디 있나?”

 다시금 들려오는 조용한 목소리. 그러나 이번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생략된 뒷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수 접히고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짐짓 비틀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큭큭… 알고 싶나? 그럼 알려주지.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 큰형님께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더군.”

 “큰형님?”

 아마도 일단주 천벽을 말하는 것일 터다. 그럼 이번엔 그자의 위치를 묻는 것이 수순이었다.

 “그래, 큰형님. 네놈 따위는 발끝에도 못 미치는 우리 큰형님! 차아앗!”

 카앙, 파아앙―!

 의외의 상황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만도를 밀어내더니 차추만가는 단야에게서 뒷걸음을 쳤다.

 아니, 뒷걸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등을 보이며 전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는 해도 단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데 그자의 도주 방향을 보는 순간 차추만가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손여라는 여인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야는 오른발을 크게 구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꽤나 거리가 벌어져 있지만 칼끝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파아아앗!

 “크아아악!”

 차추만가는 등에 기다란 자상이 났지만 멈추지 않고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는 손여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러자 단야는 한 걸음 더 내디디며 그의 뒤를 쫓았다.

 단야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큰 키 때문에 보폭이 상당했다. 게다가 손발도 모두 길어서 더 멀리 손을 쓸 수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촤촤앗!

 “우우욱!”

 또 한 번 왼쪽 넓적다리와 종아리에 자상을 남겨놓자 차추만가는 오른손의 만도로 땅을 찍었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만도를 밀쳐 냈다.

 “이야아압!”

 쩌어엉!

 만도는 반쪽으로 부러졌지만 그는 그 반동으로 앞쪽으로 빠르게 날아갈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거리가 벌려지자 단야는 나가려던 신형을 멈추며 왼손에 대궁을 들었다.

 이젠 발로 쫓는 것은 무리였다.

 신형을 뒤틀면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중을 날아가는 그를 맞추는 것은 단야에겐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차추만가의 악수(惡手)라 해도 틀림없었다.

 이제 오른손을 뒤로 돌려 도집에 서역도를 넣고 화살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데,

 “……!”

 단야는 빠르게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는 우측 하단부터 좌측 상단까지 대각선으로 힘차게 도를 밀어냈다.

 쩌어어어엉!

 “후읍!”

 단야의 입술이 꽉 다물려졌다. 팔이 저릴 정도의 충격. 그 충격과 함께 단야는 뒤로 한참 밀려났다. 바닥에 깔린 눈 때문인지 더욱더 길게 밀려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좌앗! 파아앙!

 오른발로 크게 원호를 그리며 밀려나는 신형을 세운 단야는 바로 양발을 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러자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콰아앙!

 눈과 함께 흙먼지가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가운데 단야는 땅에 내려섰다. 내려선 그의 눈에 한 사람의 신형이 보였다.

 키는 작지만 덩치가 좋은 사내였다. 그 덩치만큼이나 큰 도끼를 지닌 사내가 단야를 보고 얼굴을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큭큭, 이제 됐구만. 빌어먹을. 어디 더 날뛰어보시지, 이 미친놈!”

 “흐윽!”

 뒤쪽에서 차추만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단야의 고개가 돌아갔다. 오 장여 떨어진 곳에서 차추만가는 부러진 만도를 한 여자의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결국 손여를 인질로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단야의 귓가에 차추만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기 형님, 왜 이리 늦으신 겁니까? 이 사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훗, 미안하다. 이놈이 어떤 놈인지 좀 파악하다 보니 그리되었구나.”

 하기란 이름을 듣자 단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혁리가 말했던 풍마단의 셋째 단주의 이름, 설마 이곳에 단주 급 두 명이 같이 있을 줄은 몰랐다.

 누군가 숨어 있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 기회에 그들도 같이 나오게 하려 했었다. 한데 그것이 단주 급일 줄이야.

 “오냐, 이 개자식,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어디 얼마나 날뛸 수 있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주마! 일어서!”

 “흐윽.”

 “아, 아가씨!”

 가냘픈 손여의 몸을 잡아 일으키며 차추만가가 일어서자 어느새 그 옆에 수하들이 와 호위를 시작했다. 한데 복색이 조금 달랐다.

 그의 수하들이 아니라 이 하기란 자의 수하였다. 느낌으로 봐서 차추만가의 수하들보다 뛰어나 보였다.

 숫자는 약 이십여 명. 차추만가의 수하들과 비슷하지만 그들은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느새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단야는 눈에 손여라는 여인이 보였다. 여인은 무공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은 전혀 없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의연하다고 해야 하나? 그대로 끌려가게 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도 여인은 너무도 차분했다.

 오히려 보고 있는 단야가 더 마음이 초초해질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단야는 뭔가 가슴 한쪽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여인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단언컨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오호라? 이 개자식! 이제 좀 긴장이 되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차추만가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외쳤지만 단야는 대꾸조차 없었다. 그의 신경은 온통 그 여인에게 가 있었다.

 여인의 얼굴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늘에 맹세컨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 원인은 그 의연함에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 의연함으로 인해 기이한 형상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형상은 확연해지지 않았고, 그저 이리저리 이지러지며 어지러이 흔들릴 뿐이었다.

 “큭…….”

 단야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나마 흔들리던 형상들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것인데, 곱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미간을 찌르는 듯한 고통만이 남았다.

 두두둑.

 아니, 남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기이한 기운이 온몸 가득 퍼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한 기운이다.

 온몸의 혈관이 두드러지게 부풀어 올랐다. 팔이 떨리고 가슴이 뛰면서 숨 쉬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리고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이 느낌.

 꽈아아악!

 대궁이 부서져라 쥐어졌다.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그런지 덜덜 떨릴 정도였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

 순간 단야는 귓가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느꼈다. 고요한 세상 속에서 단야는 살짝 눈을 떴다.

 찌릿한 미간 때문에 완전하게는 뜰 수가 없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단야는 오른손을 움직였다.

 오른손의 서역도를 도집으로 돌려놓은 후 단야는 화살 세 대를 뽑아 들었다. 하기는 바로 옆에서 도끼를 쳐들고 내려칠 기세였다.

 그런데 단야는 그자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손여라는 여인을 향해서였다. 이상하게도 하기의 신형이 전혀 걱정이 되질 않았다.

 화살 한 발을 시위에 건 단야는 왼발로 땅을 박찼다. 왠지 왼 어깨 쪽에 묵직한 느낌이 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 8 장. 요녕성, 당평산의 양무곡3

 

 

 

 “비부수(卑斧手) 하기! 저놈이 이곳에 숨어 있었다니…….”

 혁리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나왔다. 설마 이곳에 풍마단주 네 명 중 두 명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솔직히 차추만가 저놈이야 그리 대단한 놈은 아니다. 무공도 그렇지만 꼬장꼬장한 객기와 수하들만 믿고 덤비는 놈이라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나 비부수 하기는 달랐다. 천벽, 서이구, 하기 이 세 사람은 상당한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지금 단야의 상태였다. 단 한 번의 도끼질로 단야를 뒤로 물러나게 만든 것이 바로 저 하기인 것이다.

 “아무래도 먼저 손을 썼어야 하는 것을…….”

 마유조는 때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하기뿐만이 아니라 하기의 수하들까지 모두 손요라는 여인의 옆에 가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을 건가요? 뭐라도 해봐야지요.”

 양소은은 굳은 결심을 한 채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비부수 하기야 단야가 상대하니 놔두고 손여라는 여인을 구하려 한 순간이었다.

 “응?”

 그녀는 살짝 눈을 좁혔다. 무언가 대기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한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다 느꼈다는 것에 있었다. 마유조와 혁리 두 사람 모두 두 눈을 크게 뜨며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나마나 그들이 보는 것은 단야였다. 지금 보이는 그는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비부수 하기조차 놀라며 한 걸음 물러날 정도로 말이다.

 “대체… 이게 무슨 무공이지?”

 언제나 침착하던 마유조의 입에서도 당황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야의 모습은 정말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을 만치 괴이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검은 운무와 같은 것이 그의 몸 주변, 특히 궁을 잡고 있는 왼손을 중심으로 휘돌고 있었다. 단야의 왼팔은 그 기운 사이로 언뜻언뜻 비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마유조를 놀라게 한 것은 그 기운이었다. 검은 운무가 나타난 순간 심장을 찌를 듯한 살기와 함께 한줄기 사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확연히 알 수 없는 그 기운. 짙은 살기 속에 가려져 있기에 웬만하면 느낄 수 없는 기운이었다. 마유조도 겨우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 그 기운 속에서 마유조는 무언가 또 다른 것을 꼬집어낼 수 있었다. 전혀 이질적인 기운 하나. 옅게 가리는 듯한 그 기운이 진짜 마유조를 당황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 기운은 어이없게도 정반대로 밝은 정기가 서린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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