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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궁사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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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화
작성일 : 16-07-14     조회 : 491     추천 : 0     분량 :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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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대답은 진효가 아니라 옆에 있던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손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하려 했다. 한데,

 “저 왔어요.”

 “월홍! 왜 이제 와!”

 짜랑한 목소리와 함께 월홍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양소은의 옆에 앉자 양소은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졌다.

 그녀는 월홍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고개를 돌렸다.

 월홍과 같이 간 사내, 단야는 수십여 개의 나뭇가지를 등에 메고 있었다. 아마도 사용한 화살을 다시 충원하려는 듯했다.

 “당신 진짜 힘들지도 않아?”

 양소은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고,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의 싸움을 하고도 쉬지 않고 바로 산으로 가다니…….

 월홍을 불가에 데려다준 후 단야는 신형을 돌려 어디론가 움직였다.

 일행 중에서도 가장 외곽의 어두운 곳에 자리 잡고는 등에 진 나뭇가지를 내려놓았는데, 그때였다.

 “등을… 다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손여였다. 그녀는 단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단야의 손목을 만졌는데 이상하게도 단야는 순순히 손목을 내맡겼다.

 “대단치 않소, 그냥 두어도.”

 “세상에 그냥 두어도 될 상처는 없습니다. 다행히 소녀 일신에 의술이라 불릴 만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 손 아가씨.”

 시비 하나가 손요를 말리려는 듯 다가왔다.

 하나 그것은 의술을 펼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의술이라도 낯선 남자의 팔을 덥석 잡는 손요의 성정 때문인 듯했다.

 “왜 그러느냐? 얼른 준비나 하거라.”

 “예? 여기에서요?”

 “하면 어디서 한단 말이더냐? 좀 전까지 다친 사람들은 어디서 치료했고? 왜 이리 맹하게 구는 것이냐?”

 “…….”

 단야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 그녀는 이미 생각을 굳힌 것처럼 행동했고, 단야는 순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오홀, 뭘 그리 고민하나? 천하의 연의문에서 봐준다는데 당장 윗도리 벗지 그래? 어디 가서 돈 주고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

 홍설검 항임까지 빙글빙글 웃으며 나서자 단야는 더욱더 당황했다. 그러나 진짜 당황스러운 것은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그녀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양손에 흰색 천을 들고선 단야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고 있으니 단야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눈은 정말 익숙하지 않았다. 살기 어린 짐승이나 사람의 눈이야 수백, 수천 개가 한꺼번에 노려봐도 끄떡없었지만 이런 눈은 한 개만 있어도 힘들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단야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한꺼번에 윗도리를 벗었다.

 “흡!”

 단야의 상의가 벗겨지자 여기저기서 흠칫한 비명이 터졌다. 심지어 그다지 놀랄 일이 없는 반양 장로 등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왠지 단야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시선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향하는 그 시선 중 하나가 이런 동정과 두려움이었다.

 단야의 몸엔 몇 개인지도 모를 상처가 나 있었다. 방향도 가지각색이라 어떤 것이 큰 상처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데, 사실 움직이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런 상처 입은 등에도 또다시 생채기는 있었다. 손여는 살짝 만져 보고는 이내 손을 움직였다.

 “꽤 큰… 상처군요.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

 손요는 빠르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보기엔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여인이었지만 상처 앞에서 손을 움직이는 것을 보니 확실히 연의문 사람임을 알게 해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들이었다. 빠르게 손을 놀리면서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리려던 것을 말해 드리지요. 저 물건들은 원래 이쪽으로 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 임의대로 운반하는 중이었죠.”

 “응?”

 단야의 등에서 눈을 돌리며 혁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 이쪽으로 가서는 안 되는 길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이 안 갔던 것이다.

 “이 물목의 주인이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래는 금안로(金安路)로 가야 하는 물건입니다.”

 “금안로! 황궁에 가야 할 물건이란 말인가?”

 혁리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이제야 뭔가 이해가 가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러니 당연하게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안로? 그게 뭐죠?”

 양소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혁리에게 묻자 혁리는 굳은 얼굴을 만들었다. 그는 침중한 안색을 유지한 채 말했다.

 “금안로는 말 그대로 안전한 길.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바로 황궁의 물건들을 옮기는 길이기 때문이지. 특히 인근 국가에서 진상품이나 조공을 바치는 길이기도 하기에 보안이 상당하단다.”

 금안로라는 것은 확실하게 정해진 길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이었다.

 각지에 산재해 있는 관군의 주둔지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금안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길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 상단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금안로를 이용한다는 것은 곧 황실의 물건이란 뜻이니…….

 여기까지 혁리가 말하자 모두들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문제가 뭔지 너무나도 확연해지는 것인데, 이제 이들은 범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금안로의 물건을 빼온다는 것은 나라에 반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 때에 따라선 문파에 해가 갈 수도 있소, 소저. 그걸 알고서 한 것이오?”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아닙니다. 저것은 금안로로 가야 할 물목의 십분지 일. 원래대로라면 물건을 봐준 저희 연의문에 주기로 한 물건입니다.”

 “…….”

 혁리의 미간은 더 이상 어찌 구겨질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대관절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젠 그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최악은 아니라는 말부터가 이상하니…….

 “으흠, 나중에 받아야 할 물건을 미리 받았다 이거냐? 그것도 네 독단으로? 오홀.”

 우오상의 입술이 씰룩였다. 그는 대충 이 상황이 이해가 갔던 것인데, 아마도 시간문제였을 터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약재를 역병이 도는 곳으로 가져갈 생각인 것이다.

 좋은 일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완전한 불법만 아니면 다 저지를 만한 여인이 바로 손요였던 것이다.

 “하나 아가씨의 그 결정에 일비님께서 돌아가셨어요. 그건… 분명 문책받으실 겁니다.”

 “…현모…….”

 시비의 입에서 나온 일비라는 말에 손요의 손이 멈추었다. 어느새 단야의 몸엔 하얀 천이 돌돌 감겨 있었는데 상처 치료는 거의 다 된 듯했다.

 “그 부분에 관해선… 나중에 벌을 달게 받을 것이야.”

 잠시 흔들리는 듯하던 신형은 이내 빠르게 다잡았고, 단야의 치료는 그렇게 끝이 났다. 단야는 어색한 얼굴로 옷을 주워 입고는 신형을 돌렸다.

 “다행히 충분히 쉬신 것 같군요. 어떤 무공인지 모르지만 조심하십시오. 사람의 몸은 강한 듯하면서도 약하답니다.”

 “…….”

 단야의 눈이 흔들렸다. 이건 자신에게 한 이야기다. 바로 단야 자신에게 말이다.

 실은 산에서 나무만 해온 것이 아니었다. 월홍과 같이 올라간 단야는 정말 죽은 듯이 쓰러졌었다. 잠을 잤던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나 분명 몸 안에 휘돌았던 이상한 기운 때문일 터였다. 자신도 모르는 그 기운이 몸을 혹사시켰기에 쉴 수밖에 없었다.

 “강한 듯하면서도 약하다라……. 과연 명언이로고.”

 “클클, 그래. 명언이다, 명언. 명심해라, 시커먼 아이야.”

 그 의미를 아는 것은 손여뿐만이 아니었다. 항임과 우오상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듯했다.

 물론 그들이 얼마만큼 아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항임은 턱짓으로 단야의 앞에 놓인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일단 그것부터 마저 하려무나. 조금이라도 쉬려면 부지런히 놀려야지?”

 그의 목소리에 단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칼을 꺼내 매끄럽게 다듬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차분히 손을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숙련되었다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한 개의 살을 매끈하게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였다.

 “와, 진짜 잘하네.”

 “그럼요. 단 아저씨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데요.”

 자랑스럽다는 듯 월홍이 입을 열자 양소은은 방긋 웃는 표정으로 월홍의 뺨을 꼬집었다. 한데 그때였다.

 “다 좋은데 대체 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저? 이, 뭐, 귀신이요, 내가?”

 “응?”

 여태껏 조용히 있던 사내, 모안이었다. 그는 뚱한 얼굴로 월홍과 양소은을 번갈아 보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만 소개시켜 주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하는 말이 툭툭 마음을 찔러 양소은이 심통이 난 것인데, 그 심통은 지금도 여전했다.

 마침 조용하던 참에 이야기가 나온 터라 모두의 시선이 모안에게 향했다. 어쩔 수 없이 소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모안이 생각한 순간 정말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꺼져.”

 “…….”

 모안은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항임과 우오상의 탁한 웃음소리뿐이었다.

 

 

 

 제 9 장. 요녕성, 당평산 인근

 

 

 

 째잭, 짹…….

 겨울이라도 새들은 운다. 동이 터 오르려 하는 어스름한 새벽을 뚫고 새소리가 들려왔다.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단야에게는 이 소리가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온몸을 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 욱신거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등허리에 입은 상처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단야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활부터 잡았다.

 끼리릭.

 “…….”

 시위를 채 반도 당기지 못했다. 평소처럼 힘을 쓸 수가 없자 단야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온 힘을 다했다.

 끼이이이이.

 겨우 평소처럼 크게 잡아당기자 엄청난 고통이 어깨와 팔을 관통했다. 눈 밑에 살포시 매달렸던 잠이 사라진 것은 애저녁의 일이다.

 그렇게 최대한 시위를 당긴 채 단야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양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큰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시시시시시.

 갑자기 단야는 검은색 기운이 왼손에 감기는 것을 보았다. 어제 한 번 보았던 그 기운인데 그것이 지금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왼 어깨부터 손목까지 모두 휘감기는 그 모습에 단야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한순간 오른손 손가락을 놓쳤다. 그러자,

 빠아아앙!

 “뭐, 뭐야!”

 “습격인가!”

 “…….”

 단야는 놀란 눈을 만들었다. 설마 이렇게 큰 소리가 날 줄은 몰랐다. 마치 시위 주위에 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가는 듯했다.

 오죽했으면 자던 혁리와 모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까? 두 사람은 활을 들고 있는 단야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앉았다.

 “아이고, 단 형. 진짜 왜 그래요? 아구, 놀래라.”

 모안은 가슴을 두드리며 진짜 놀란 척을 했다. 단야는 쓴웃음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로서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

 “고놈 참 힘차게도 당기네.”

 “그러게나. 한 십 년만 젊었어도 나도 해볼 텐데. 에잉.”

 해학스런 두 사람의 목소리에 단야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의 뒤엔 항임과 우오상이 앉아 있었다.

 “늙으면 잠이 없어서 말이야. 네 녀석이 잠자는 것 좀 봤다.”

 우오상의 말에 단야는 미간을 찡그렸다. 도무지 그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이번엔 항임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확신이 좀 필요했다, 아이야. 네가 과연 귀신의 아이인지 아닌지 말이야.”

 단야의 미간은 더욱더 좁아졌다. 귀신의 아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우오상은 슬쩍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부탁 하나 들어주련?”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의 소원 좀 들어주라.”

 항임도 손을 비죽 내밀며 말하자 단야는 머리가 헝클어지는 기분이었다. 부탁이 어떤 것인지 알 턱이 없었다.

 “손 한번 잡아보자. 그게 소원이야.”

 “…….”

 단야는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칫하면 목숨을 맡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손을 맡긴다는 것은 믿어달라는 의미와도 같은 것이니…….

 아마도 자신의 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뜻이리라. 한데 왠지 기분이 나쁘질 않았다.

 워낙에 해학적인 사람들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들에게서는 왠지 모를 반가움 같은 느낌이 들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단야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서 양손을 들어 두 사람에게 맡겼다.

 “오……!”

 “으음……!”

 각기 감탄사 한 번씩 내뱉고는 둘 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단야의 몸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는데, 단야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주 작은 두 줄기 기운이 온몸을 다 훑고 나가는 느낌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말 삽시간에 끝이 났다. 어느새 그들의 손은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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