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장난을 좋아하는 그녀라도 마유조의 성격을 크게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단야란 자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한눈에 보고 느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저 단야라는 친구는… 풍마단과 싸우려 한다.”
“…네?”
결론을 확 말해 버리니 역시 양소은과 모안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도 풍마단이라는 단체를 모를 리 없다. 이 요녕성에서 가장 강한 마적단이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여기 계신 이 단야라는 분이 지금 풍마단과 싸운다니……. 아, 드디어 관에서 도적 떼를 섬멸하는군요. 잘되었습니다.”
모안은 웃으며 말했다. 대규모 토벌군이 구성되고 그곳에 단야가 참가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그것이 아니면 지금의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니, 그것이 아닐세. 실은…….”
혁리는 천천히 지금까지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마을의 몰살부터 혁리와 마유조가 조사하러 간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단야의 이야기를 그는 단숨에 말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났을 때 두 사람의 반응은 혁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에 반응을 보인 것은 양소은이었다.
“미쳤군요. 지금 관의 도움도 없이 간다고요? 더욱이 이렇게 예쁜 월홍을 데리고서요?”
물론 월홍이 살짝 정신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실은 혁리의 마음속에선 양소은이라도 이 단야의 미친 짓을 막아주었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그만하시지요. 사저님 말대로 월홍까지 안고 그들을 찾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마음을 먹은 후 방법을 찾으시는 것이 좋겠군요.”
모안은 냉랭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더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사형과 혁 형에겐 죄송하지만 두 분께서 도와주신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본산에 연락을 하여 사람들이 와도 될까 말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소.”
모안의 말을 자르며 단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모안은 그게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이어 들린 단야의 목소리에 그의 얼굴은 단박에 헝클어졌다.
“전 저 두 분께 도움을 부탁한 적이 없소이다.”
“……!”
사람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황당해도 이렇게 황당한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지금 단야는 혼자서 풍마단과 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마단이 아니라 이곳에서 제일 용한 의원에게 가셔야겠군요. 맨 정신에 죽으러 간다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말입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어서인지 모안은 조금 실례라 싶을 정도로 말을 건넸다.
그러나 단야는 그 말에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고개를 돌려 혁리와 마유조를 보며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이 아이의 목숨을 살려주신 점, 정말 감사드리오.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보은하겠소.”
확실히 그건 사실이었다.
단야가 올 때까지 월홍을 살린 것은 마유조와 혁리.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월홍은 얼어 죽거나 나중에 온 자들에게 죽었을 터이다.
“도움은 이 정도로 충분하오. 이젠 혼자 가겠소.”
“무슨 말을…….”
단야의 말에 혁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제야 이 단야라는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풍마단에 혼자 덤빈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저 모안의 말에 발끈하여 하는 소리가 아니다. 발끈해서 하는 소리라면 저렇게 침착한 반응이 나올 수가 없었다.
남이야 뭐라 하든 말든 그의 길을 가겠다는 표현이었다.
솔직히 시간이 지나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된다면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이나 마유조를 통해 관이든 아니면 설산이든 도움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진심이었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판도 이런 오판이 없었던 것이다.
드륵.
의자를 뒤로 뺀 채 단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월홍이 폴짝 뛰더니 단야의 바지춤을 잡았다.
“그럼…….”
그걸로 끝이었다. 단야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듯하더니 신형을 돌려 출입문을 향해 움직였다. 양소은은 멍한 표정으로 단야를 보다 이내 눈을 떨어뜨렸다.
“안녕.”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목소리. 아이는 나가면서도 활짝 웃으며 한 손으로 양소은에게 흔들고 있었다.
양소은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솔직히 양소은은 그간 아이 같은 것은 잘 모르고 살았다.
등에 멘 쌍검의 운용만이 중요한 것이지 여자로서의 덕목은 담을 쌓아도 정말 높이 쌓아 올렸다.
그런데 오늘 저 월홍이란 아이를 보면서 왠지 가슴 한구석이 진하게 아려옴을 느끼고 있었다. 도무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 잠깐!”
입구를 막 나서려는 단야와 월홍을 향해 양소은은 소리쳤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단야를 향해 소리쳤다.
“이 망할 작자! 당신이야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월홍은 어찌할 것인데! 이 아이도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
버럭 소리를 지르는 양소은을 보며 단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양소은은 양손을 어깨 위로 향해 검파를 잡았다.
“어찌하면 너처럼 이기적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월홍, 이리 오렴! 이런 자를 따라가면 안 돼! 죽어도 당신 혼자 죽으라고!”
이미 버럭 소리친 그녀의 목소리에 객잔은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마유조는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가려 했는데, 이번엔 모안이 마유조를 말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형, 이건 사저의 말이 옳습니다. 단야 당신이 제정신이라면 지금 그 아이를 이곳에 놓고 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 역시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소은과 모안이 이렇게 나오자 정말 상황은 악화일로가 되어 싸움은 필연적인 상황이 되었다.
순식간에 일행의 주변은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고 호기심 많은 몇몇 사람들은 완전히 나가지 않은 채 입구 주변에서 양소은과 모안, 그리고 단야를 보며 침을 삼켰다.
“후…….”
단야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강렬한 기운과 함께 몸을 돌린 단야의 두 눈에선 인광이 폭사되기 시작했다.
무력을 사용한다니 그 역시 같은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한데…….
“안 돼, 단 아저씨.”
월홍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사리 같은 손을 쫙 펴며 단야의 앞을 막아선 것인데, 작은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저 누나하고 형… 좋은 사람이야. 월홍, 그렇게 느껴.”
“…….”
단야는 살짝 굳은 얼굴로 월홍을 바라보았다. 물론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싸우지 않으면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저쪽이었다.
“알아, 단 아저씨 화난 거. 그래도 하지 마. 부탁이야.”
방긋 함박웃음을 지으며 월홍은 단야에게 말했고, 그러자 단야의 눈빛이 변했다. 한결 차분한 눈빛으로 다시 바뀌었던 것이다.
“훗.”
단야의 입에서 작은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손을 들어 머리를 슬쩍 쓰다듬자 월홍의 입에선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에헤헤. 가요, 단 아저씨.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본다.”
월홍이 바짓단을 붙잡자 단야는 다시 움직이려 했다. 그때 양소은이 다시 한 걸음 나서며 소리쳤다.
“월홍아, 너 그 사람 따라가면 큰일 나! 그러니 어서 이리로 오너라! 어서! 대체 뭣 때문에 그런 고집을 피우는 것이야!”
양소은의 목소리에 월홍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양소은을 바라보더니 이어 손을 들어 한 사람 한 사람 가리키기 시작했다.
혁리, 마유조, 양소은과 모안까지. 그리고는 손을 내리며 다시 붉고 작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단 아저씨에겐 나 혼자뿐이야.”
“……!”
양소은의 머릿속에 섬뜩한 기분이 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양소은뿐만 아니라 혁리, 마유조, 모안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확 치고 나가는 것이 있었다.
자신들은 모두 친구지만 단야의 친구는 자신 혼자라는 뜻이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설마하니 저 어린아이가 이리도 생각이 깊을 줄은 몰랐다. 분주한 거리에 눈길을 뺏기고 단 경단을 쪽쪽 빨던 그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황당한 마음에 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월홍은 단야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약 일각 동안 네 사람은 자리에서 선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동작을 취한 것은 양소은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신형을 돌려 자신의 봇짐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사, 사저! 대체 어딜 가시려 그럽니까? 지금 혹……?”
“너 이 자식, 지금 저 말을 듣고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저게 지금 올해 일곱 살 남짓한 놈이 할 소리야!”
“에… 예?”
양소은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신형을 움직였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객잔을 나서며 다시금 외쳤다.
“저 입에서 제 나이 때의 어리광 섞인 말이 튀어나오도록 해주겠어! 뭐야, 저 자식!”
“사, 사저!”
우당탕!
가까이 있는 탁자 하나를 뻥 찬 양소은은 밖으로 사라졌고, 그 뒤를 모안도 부리나케 따라갔다.
“허허허, 틀린 말은 아니군그래. 아니, 일곱 살은 훨씬 넘으니 그건 아닌가?”
혁리의 목소리였다. 그는 피식 웃으며 짐을 정리해 이내 어깨에 들쳐 메며 마유조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돌아갈 것인가?”
혁리는 단야를 따라가겠다는 표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마유조는 피식 웃으며 혁리에게 대답했다.
“저 골치 아픈 놈을 단야 그 친구에게 보냈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장문인께서 아시면 날 죽일 것일세.”
“하하하, 그도 그렇군. 하면 어서 따라오시게. 계산은 그대가 하도록 하고.”
혁리는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고, 마유조는 그런 혁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나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혁리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번갈아 가리키던 월홍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친구라…….”
나직한 목소리 하나를 흘려놓은 채 마유조는 객잔을 나서고 있었다.
제 3 장. 요녕성, 서벽의 홍루1
일행의 수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객잔에 들었을 때처럼 여섯 명 그대로였다. 하나 위치는 조금 달라졌다.
선두에 섰던 혁리 대신 단야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붙어 있어야 할 월홍은 지금 뒤쪽에 가 있었다.
선머슴 같은 여인인 양소은의 한쪽 다리에 찰싹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양소은은 연신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일순 그 웃음이 싹 사라졌다.
그건 단야의 발걸음이 멈춘 곳 때문이었다.
단야가 멈춘 곳은 커다란 두 개의 문짝이 활짝 열린 곳으로 그 양편 기둥에 붉은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마적단과 싸운다 어쩐다 하더니 다 개소리였나? 이봐, 당신. 지금 미치지 않고… 야!”
단야는 잠시 그 너머를 바라보다 신형을 움직였다.
그가 아예 본격적으로 여기저기 좋은 홍루가 있는지 찾는 듯 보이자 양소은의 입에서는 당연하게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망할 자식이 진짜 죽고 싶나! 당장에 돌아가지 못해! 망나니짓도 유분수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군요. 이봐요, 단야.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모안까지 나서서 물어보지만 단야는 역시 아무런 말 없이 돌아다니기만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저기 호객하는 자들이 단야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단야는 그들 모두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서벽은 꽤 큰 도시이기에 홍등가의 수가 상당했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군. 월홍아, 안 되겠다. 우린 그만 가자.”
“아냐, 누나. 단 아저씨는 쓸데없는 짓 안 해. 항상 말하면 바로 지켜.”
“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월홍이 말하자 혁리는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조금 황당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월홍이 이야기하자 뭔가 노리는 것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다 한순간 그는 무릎을 탁 쳤다. 그도 잘 아는 것을 왜 이제야 생각했는지 싶었던 것이다.
“이런 멍청한……! 과연 이런 수가……!”
“자넨 또 무슨 소리인가?”
혁리의 목소리에 마유조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도 지금 이곳에 온 것이 마음에 걸리는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문파에 좋지 않은 소리가 들어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혁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저 앞에 단야가 뭔가 알아냈는지 어느 가게로 불쑥 들어가는 것을 보자 발걸음을 재게 놀리며 다시 말했다.
“일단 저기로 들어가세. 들어가면 알 것이야.”
“대체 이게 무슨…….”
단야에 이어 혁리까지 이리 나오자 마유조는 인상을 쓰면서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네 명은 단야를 따라 어느 홍루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옵… 응?”
점소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뭣도 모르는 놈들이 할 거 없으면 점소이나 하라 하는데 점소이만큼 힘든 일은 세상에 없었다.
특히나 홍루에서 일하는 점소이는 더욱더 힘들었다. 단 한 번의 눈길로 상대의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하니 말이다. 물론 기준은 있다.
걸친 것, 손가락에 낀 것, 걸음걸이, 그리고 같이 온 일행의 모습. 이 네 가지만 봐도 어느 정도의 손님인지 알아야만 하는 것이 숙달된 점소이의 요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어느 정도 자부하는 것이 있다. 단 한 번의 모습으로 적어도 칠 푼의 손님은 알게 된다고 말이다.
내 이름은 육삼. 이 홍루가에서 나름대로 상당한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다. 이미 삼십 줄을 넘어섰으니 점소이로서는 너무 많은 나이임은 사실이다.
하나 그만큼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확실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 감각이 지금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말이다. 놀러 온 사람의 구색이라면 일행이 뭔가 맞지가 않는다.
사내 넷에 여인 둘. 그중 하나는 젊고 하나는 어린, 이상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다.
검을 차고 오는 무림인들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나 이렇듯 제일 앞에 사냥꾼인 듯한 사람이 나서는 것은 흔치 않았다.
본능은 그에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날 것을 권하고 있었다.